# 24
24화. 오우거(3).
“도망친 게 아니었군요.”
아무리 기습이라 해도 단숨에 오우거의 숨통을 끊어놓는 태빈의 실력에 헌터들은 그가 도망친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모두가 갑작스런 습격에 당황하고 조급함에 평정심을 잃었을 때, 태빈만이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살려 기회를 노린 것이다.
“놈들이 눈치 챌까 미리 말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팀원들에게 뒤늦은 이해를 구했다.
내가 원치 않았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공략대라는 팀으로 묶인 동료들이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그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나는 숨죽이고 있었고, 그러한 행동은 충분히 비난 받을만한 일이었다.
“괜찮습니다. 덕분에 살았는데요. 뭘.”
팀장인 이형준은 잘못된 판단을 내렸고, 헌터들을 위기에 빠트렸다.
다른 헌터들 또한 안일함에 젖어 팀장의 오판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다.
누구를 탓할 자격도 없거니와, 실패로 돌아갔을지도 모를 공략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한 나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다들 나에게 감사했다.
무사히 공략을 완료한 것은 둘째 치고, 생명의 은인이었으니.
“이제 던전 핵을 파괴하고 공략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에 대한 감사로 채워진 대화가 마무리 되고, 이형준은 허공을 응시했다.
나는 어렴풋이 숨어있는 세 명의 위치를 알고 있었지만 다른 헌터들은 교관의 위치를 알지 못했기에 이런 식으로 보고를 하는 것이다.
공략 시작, 몸을 숨긴 교관들은 헌터들이 위기에 처한 순간에도 기척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그들의 능력이라면, 태빈의 행동을 주시하며 충분히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모두 고생했다.”
교관들은 공략이 확실히 끝난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각기 다른 세 방향에서 나타난 교관들로 인해, 아직 긴장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헌터들이 순간 움찔하며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기도 했다.
물론 힘을 준 손을 휘두르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휘둘렀다 한들, A급 헌터인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도 못했겠지만.
“평가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겠다.”
오우거 사체를 수습하고, 던전 핵을 부수는 것으로 공략을 마무리하고 나니, 곧바로 헌터들의 승급 평가 결과가 발표됐다.
공략과정을 관찰한 교관들이 직접 평가를 내렸기 때문에 결과 발표가 미뤄질 이유는 없었다.
“먼저 이형준 헌터. 공략팀의 팀장으로서 판단력은 미흡했지만 개인적인 능력은 B급 헌터로 충분하다. 합격.”
교관은 팀장인 이형준을 시작으로 차례로 헌터들의 평과 결과를 발표했다.
평과 결과로 인해 헌터들이 일희일비하는 일은 없었다.
분명 개개인 마다 미흡한 점은 있었지만 애초에 B급으로 각성한 이들이다.
상위 등급으로 각성했다 하더라도 차근차근 경험을 쌓기 위해 C급 헌터로 시작, 부득이하게 승급시험을 보게 됐을 뿐이다.
때문에 그들이 보여준 능력은 B급 헌터로 부족함이 없었고, 전원 B급 헌터로 승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태빈 헌터. 팀원과 소통의 부재가 아쉽긴 하지만 다른 부분은 전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
다른 열한 명의 헌터 모두가 승급한 가운데, 그들을 뛰어넘는 활약을 보인 내가 B급 헌터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소통의 부재는 원래 홀로 움직이는 게 익숙하다 보니, 별 수 없다.
어차피 또 다시 팀이나 팀원을 만들 생각도 없고, 길드 같은 곳에 소속될 것도 아니니, 크게 상관없는 부분이다.
***
결과가 발표되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각기 마중 나온 이들이 있었다.
헌터 시험이 C급까지 밖에 없기에 별도로 승급 시험을 치렀을 뿐,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애초에 B급으로 각성한 이들이다.
각성자체를 상위등급으로 한 이들인 만큼, 이미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고, 그들이 직접 마중을 나온 것이다.
길드에서 헌터들을 마중 나온 이들 중, 몇몇이 홀로 동떨어진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B급 헌터임에도 소속된 곳이 없어 보이는 나는 충분히 그들의 흥미를 끌만한 존재였다.
“안녕하세요. 청룡 길드의 석현진이라고 합니다. 저는 모르시더라도 길드에 대해서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실례지만 잠시 말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이내 자신을 석현진이라 소개한 청룡 길드의 관계자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청룡 길드.
백룡 길드와 함께 쌍룡이라 불리며 국내 헌터계에서는 손에 꼽힐 정도로 유명한 길드다.
청룡 길드에서 나서자, 몇몇이 한발 늦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쉬워했고, 그 외의 일부는 여전히 흥미롭게 지켜봤다.
소속 헌터가 나에 대해 말했거나, 말하지 않았거나.
일부는 내 능력을 보고 꼭 길드에 영입해야 한다고 설파했고, 일부는 같은 B급에서 강력한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나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그에 따른 반응의 차이였다.
“네.”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과거 유명 문파의 무인들이 그랬듯, 이토록 자신이 소속된 곳에 대한 자신감 있는 이들 대부분은 내가 평소와 같이 자신을 무시하면, 자신과 더불어 소속된 곳까지 무시당했다며 쉽게 분노하는 경향이 있다.
말 몇 마디 섞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길드와 엮일 생각은 없지만 굳이 무시해서 척을 질 생각도 없었다.
“보아하니, 소속된 곳이 없는 것 같은데, 맞나요?”
석현진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미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확인 차 한 물음이다.
B급 헌터는 상위 헌터로 분류되는 만큼, 소속된 곳이 있다면, 승급시험을 막 마치고 나온 헌터를 이렇게 홀로 놔두며 홀대 할리 없었다.
“있습니다.”
석현진의 물음에는 의도가 명확히 보였다.
소속이 없다면 나를 영입하고자 하는.
그러나 나는 길드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있다고요?”
“네.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석현진은 믿지 못하겠다는 살짝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앞으로 함께 행동할 계획은 없지만 내가 팀을 이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애초에 거짓을 말할 이유도 없었다.
“아. 팀이요.”
석현진의 인상이 풀어졌다.
길드에 소속되어 있다면, 힘들겠지만 팀이라면 가능성은 차고 넘쳤다.
팀은 신의로 뭉쳐있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돈을 위해 목숨을 거는 헌터가 실질적 이익이 보장되는 길드를 마다할 리는 없으니까.
최소한 석현진의 생각에는 그랬다.
“저희 청룡 길드는 헌터님과 같은 인재를 바라고 있습니다. 헌터님께서도 막 공략을 마치고 나와 지치기도 하셨을 테고, 이미 저희 길드에 대해서 알고 계실 테니, 굳이 길게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혹시 관심 있다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질척댈 정도로 달라붙지는 않았다.
B급 헌터가 상위 헌터라고는 해도, A급, S급 헌터와는 달리, 영입을 위해 구차하게 매달릴 정도는 아니었다.
석현진은 이 정도의 어필이면 충분하다 여겼다.
“알겠습니다.”
나는 청룡 길드에 대해서는 1도 알지 못했지만 그의 자신감을 다행이라 여겼다.
석현진이 건네는 명함을 받아들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기대와 다르게 연락할 일은 없겠지만.
***
미리 준비를 해두었는지, 일전에는 박우석이 직접 찾아와 전해줬던 것과 달리, 곧장 B급으로 갱신된 헌터 자격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B급 헌터가 된 나는 일단 암살자 계열의 딜러 분류됐다.
몬스터들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사각에서 단숨에 숨통을 끊어 놓았던 나의 사냥방식에 대한 감독관들의 평과 결과였다.
“아직 멀었어.”
E급으로 깨어나 상위헌터라 불리는 B급까지.
내공 한줌 없던 몸에서 일류 무인의 수준에 올라섰다.
근 두 달 만에 이룬 성과치고는 대단했지만 내 기준에는 아직 한참 멀었다.
이제 고작 일류의 경지에 올라섰을 뿐이다.
지구에서는 상위 헌터라며 치켜 세워주지만 무림의 기준으로 보면, 이제야 진정한 무인의 반열에 첫걸음을 내딛었다 봐도 무방했다.
일류 너머에 절정과 초절정, 그리고 나와 같은 시대의 수백만 무인 중, 단 스무 명만이 올라선 경지인 화경까지.
나는 아직 세 단계를 더 올라서야 전생의 무위를 되찾을 수 있다.
그리고 무위를 되찾는 다고 끝이 아니다.
화경 다음에는 당시 네 명만이 존재했던 현경의 경지가, 그 너머에는 무림 역사상, 마교의 초대 교주 천마, 무당의 장삼봉, 소림의 달마, 이렇게 단 세 명만이 발을 디뎠다고 알려진 자연경의 경지도 존재 했다.
혹자는 자연경 위로 신화경 등의 경지가 존재한다고 하지만 무림 역사상 신화경의 경지에 오른 이는 없었기 때문에 현 무림에서는 자연경이 무의 끝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유일하게 천마신교에서만 초대 천마가 신화경에 올라 등선했다고 믿을 뿐이다.
지금 내 목표는 현경이다.
중원 십대 고수였던 살막주 여문휘를 대상으로 한 살행을 성공시키면서 현경의 경지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문주의 배신으로 깨달음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죽음과 함께 간신히 잡았던 깨달음은 날아가 버렸고, 이는 7호에게 억지로 감춰두었던 마음을 전하지 못한 것과 더불어 전생에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생에서는 꼭 현경의 경지에, 가능하다면 그 이상의 경지에 올라 진정한 무의 끝을 경험하고 싶었다.
“음?”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던 순간,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전화 벨소리가 들려왔다.
발신인은 김시연.
내가 간신히 삼류를 벗어난 수준이기는 하나, 무공을 전수한 팀원 중 한 명이었다.
내가 B급 시험으로 빠지면서 던전 공략은 불가능해진 팀원들은 짐꾼으로 활동하며 수련을 계속해 나가고 있었다.
장사의 기질이 있는 장만식만 따로 외공을 익혔고, 나머지는 내가 전해준 두 개의 심법과 검법을 익혔다.
짐꾼 일을 하면서 수련을 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아무 발전도 기대할 수 없던 지난 날 보다는 희망적이었기에 팀원들의 얼굴은 한 없이 밝았다.
추가로, 무공을 전수하면서 온전히 팀원들을 받아들인 나는 그들에게 말을 편히 하게 됐다.
애초에 나보다 한두 살은 어렸고, 팀원들도 팀장이자, 가르침을 받는 입장에서 나에게 계속 존대를 받는 것을 불편해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은 마음 편히 던전에 들어 올 수 있겠구먼. 고맙네.”
짐꾼 아저씨들에게는 간단한 호신공을 전해줬다.
무공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기본적인 것이지만 일반인인 그들에게는 그조차도 크나큰 도움이었다.
침착함만 잃지 않는다면, 적어도 한두 마리의 9급 몬스터에게 당하는 일을 없을 테고, 아저씨들이 힘을 모으면 한 마리일 경우에 한해서 8급까지도 해볼 만 할 것이다.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아무것도 못해보고 죽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유일하게 형에게는 아직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형은 팀원이나 아저씨들처럼 대충 가르칠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데, B급 승급으로 바빴던 탓에 아직은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