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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수다-22화 (22/150)

# 22

22화. 오우거.

“우선 진형을 먼저 갖추고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우거의 괴성이 꽤나 먼 곳에서 들려오고 있긴 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곳이 던전이다.

때문에 당장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다 해도, 팀원들은 이형준의 지시에 따라 각자의 직업에 맞게 진형을 갖춰갔다.

“직업이 없다고요?”

“네.”

이형준이 당황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모든 헌터들은 각성과 동시에 자신의 능력과 직업 등 간단한 기억을 가진다.

검을 든 것으로 보아, 하다못해 전사, 검사라는 흔한 직업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무직이라니.

E급 헌터의 경우 간혹 직업이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B급 승급을 치르는 헌터가 직업이 없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음... 보아하니, 검을 쓰시는 것 같은데, 일단 후방에서 원거리 딜러들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고민하던 이형준이 말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굳이 태빈이 없더라도 공략을 진행하기에 무리는 없었다.

때문에 괜히 전방에 변수를 배치하기 보다는 후방에 두기로 결정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후방을 선호한다. 살수는 드러나지 않았을 때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그럼,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간단히 진형을 갖춘 열둘의 헌터들을 숲을 가로질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열둘을 세 명의 교관이 몸을 숨긴 채, 뒤따랐다.

***

놈들의 괴성이 숲 전체에 간헐적으로 울려 퍼졌기 때문에 오우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괴성이 들려오는 곳을 따라가면 그만이었다.

“전방 이백 미터 블랙 타이거!”

간혹, 놈들의 손길을 피해 도망치는 몬스터 몇과 마주치기도 했다.

그러나 헌터들을 발견했음에도 싸울 생각도 못하고 정신없이 도망만 치는 몬스터들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오우거와 싸우기 전, 헌터들의 무기를 붉게 달구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이제 보이는 군요.”

몇 번의 몬스터 무리와 조우한 끝에 헌터들은 나무 몇 그루가 사방으로 쓰러져 생겨난 공터에 다섯 마리의 오우거가 뒤엉켜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크왁. 크왁.

놈들은 아직 헌터들을 보지 못했는지, 서로 간의 장난질을 멈추지 않았다.

족히 5m는 되어 보이는 오우거들의 장난스러운 손길에 두 팔로도 안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나무들이 갈대마냥 꺾여 쓰러졌다.

그 주위로 놈들의 발에, 몸에 깔려 으스러진 뼛조각들이 나뒹굴며 희뿌연 먼지를 만들어 냈다.

“오우거들이 아직 눈치 채지 못할 때, 공격하겠습니다. 원거리 딜러 준비해주세요. 목표는 가장 오른쪽 놈입니다. 김태빈 헌터는 뒤에 남아 원거리 딜러들을 보조해주시고, 나머지는 저와 함께 놈들의 왼쪽을 칩니다.”

이형준이 곧장 명령을 내렸다.

운이 좋았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핏물과 주변 가득한 뼛조각들로 보아 한껏 배가 찬 놈들이다.

공략대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선공을 취한다면, 쉬이 한두 마리는 제거하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이형준의 명령에 따라 궁수 둘과 마법사 하나가 공격을 준비했고, 나머지 헌터들도 무기를 들어올렸다.

오우거는 마나건으로 한 방에 무력화 시킬 수 없는 몬스터로, 놈들의 화만 돋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마나건은 쓰지 않았다.

곧이어, 이형준을 필두로 여덟 명의 헌터가 오우거를 향해 쇄도 해 나갔고, 동시에 원거리 딜러들의 화살과 마법이 가장 오른쪽에 있던 놈에게 쏘아졌다.

푹. 푹. 쾅!

담긴 화살과 마법이 오우거의 팔과 어깨, 그리고 몸통에 순차적으로 틀어 박혔다.

두 발의 화살은 머리를 노렸지만 오우거가 계속 움직여댄 탓에 적중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크와왁!

화살과 마법에 적중당한 오우거가 괴성과 함께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목표했던 머리를 맞추지 못한 탓에 죽이지는 못했으나 마지막 마법이 몸에 적중하면서 꽤나 타격을 입은 듯했다.

뒤엉켜 있던 오우거들의 시선이 일제히 원거리 딜러들에게로 향했다.

“죽여!”

그 때, 왼쪽으로 쇄도했던 헌터들이 둘씩 쪼개져 네 마리의 오우거들을 노렸다.

‘궁문의 무공, 그리고 탄기와 비슷하군.’

나는 검을 든 채로, 조용히 헌터들이 하는 양을 지켜봤다.

두 궁수의 활시위에 걸린 화살촉과 마법사의 손앞 허공에 마나가 밀집하는 게 느껴졌다.

푸른빛과 붉은빛을 머금은 각기 다른 마나.

이는 드물게 활을 쓰는 무림 집단 궁문의 무공과 기를 쏘아내는 탄기와 비슷한 형상이었다.

‘나머지는 낭인, 아니 녹림도들과 비슷하다고 봐야 하나.’

오우거들에게 붙어 근접전을 펼치는 헌터들은 거친 모습이 그 성격만큼이나 포악한 형태의 무공이 대다수인 녹림도와 유사했다.

확실히 B급 헌터들 쯤 되니, 낭인만도 못했던 E급 헌터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여전히 내공, 마나의 운용은 미숙하나 족히 일류 무인에 준하는 실력이었다.

‘오우거. 3급 몬스터가 저 정도라면, 1급 몬스터는 단순히 가진 힘만 봤을 때, 최소 초절정, 어쩌면 화경 이상일 수도 있겠군.’

처음 마주한 오우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살폈다.

주먹질 한 방에 나무가 터져나가고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린다.

가진 바 육체 능력이 인간을 아득히 상회하는 놈들은 굳이 비교하자면, 외공을 극한으로 익힌 무인과 같았다.

그러나 무인과 같은 지능은 없었다. 그저 가진 힘을 가지고 무식하게 싸워댈 뿐이었다.

아쉬웠다.

숲의 최상위 포식자라 불리며 강한 축에 속한다는 몬스터가 저 정도 밖에 되지 않음이.

‘내가 나설 것도 없겠군.’

여덟 헌터들은 네 마리의 오우거를 상대로 잘 싸우고 있었고, 화살과 마법에 쓰러진 한 마리는 미처 일어나기 전에 다시 한 번 쏟아진 공경에 사경을 헤맸다.

상황이 이대로만 흘러간다면, 후방에 있는 내가 굳이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크와와와!!!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숲 저 멀리에서 커다란 괴성이 들려왔다.

***

일류에 달한 내 기감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거리는 백 미터 남짓.

좀 더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멀리까지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괴성을 질러댄 놈은 분명 그 이상의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인간과 오우거는 보폭자체가 달랐다.

괴성이 울려 퍼지고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부서져 허공으로 튀어 오른 나무와 뿌옇게 피어오른 흙먼지가 육안으로 확인될 만큼, 빠르게 가까워졌다.

“젠장! 뒤다!”

괴성과 함께 후방에서 숲을 파괴하며 달려오는 오우거들이 보였다.

수는 셋.

기존의 다섯보다 많지는 않지만 문제는 놈들이 후방에서 접근 중이라는데 있었다.

후방에는 세 명의 원거리 딜러들이 있었고, 그들을 지켜야 할 여덟의 헌터들이 네 마리의 오우거에 묶여 있는 상황이다.

만약을 대비해 태빈을 남겨두긴 했으나 홀로 세 마리의 오우거를 상대하기는 무리였다.

“원거리 딜러! 다리를 노려! 시간을 벌어! 김태빈 헌터!”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던 전투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형준은 원거리 딜러들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린 후, 원거리 딜러들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태빈을 찾았다.

“젠장! 도망간 건가?!”

그러나 후방에는 세 명의 원거리 딜러들만 확인이 가능할 뿐, 태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답 또한 들려오지 않았다.

팀원이 전투 중에 도망치는 일은 드문 일이었지만 없는 일은 아니었다. 때문에 이형준은 사라진 태빈이 도망쳤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태빈마저 도망쳐버린 이상, 자신들이 네 마리의 오우거를 쓰러트릴 동안, 원거리 딜러들이 버텨주길 바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최대한 버텨!”

이형준은 성급한 판단을 내렸던 자신을 자책했다.

사실 B급 던전에 고작 다섯 마리의 오우거가 있다는 게 말이 되질 않았다.

보통 열 마리에서 열다섯 마리 가량의 오우거가 나타나는데, 다섯은 너무 적었다.

승급 시험이기에 어느 정도 배려가 깔려있을 거라 지레짐작 하는 오판을 해버린 것이다.

안일했다.

후방에 나타난 오우거들은 그 안일함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었다.

“제기랄. 도망치다니. 내가 오른쪽을 맞지.”

“내가 왼쪽.”

“가운데를 맡겠다.”

갑작스런 습격에 원거리 딜러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사라진 태빈을 욕하며 후방에서 달려드는 오우거를 겨냥했다.

고작 세 마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같은 수의 원거리 딜러들로는 결코 이겨낼 수 없는 상대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는 이형준의 말대로 놈들의 다리를 노려 기동력을 떨어트린 후, 시간을 버는 수밖에 없었다.

과연 통할지는 미지수지만.

푹. 푹. 쾅!

두 대의 화살과 한 발의 마법이 정확히 각자 목표한 오우거의 정강이와 무릎 등 다리 부분에 틀어박혔다.

무릎에 맞은 한 놈은 순간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고, 정강이에 맞은 놈은 달려오던 그대로 앞으로 나뒹굴었다.

커다란 허벅지에 화살이 박힌 놈만이 그대로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려왔다.

관절 등의 부위를 맞추지 않는 이상, 놈들에게 화살은 그저 작은 침과 같았다.

“좋았어!”

두 놈이 휘청거리고 나뒹굴었으니,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길어야 수 초. 짧게는 눈 깜짝 할 시간을 번 것에 불과 했으나, 공격이 통한 것 자체가 고무적이었다.

“빨리.”

세 명의 원거리 딜러들은 빠르게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다.

이번 목표는 멀쩡하게 달려드는 놈이었다.

놈은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빨랐고, 어느새 코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자신들을 짓뭉개기 위해 팔을 휘두르면서.

크와아....

“뭐... 뭐야?”

원거리 딜러들은 오우거에게 자신들이 준비한 공격을 가하지 못했다.

괴성을 지르던 놈이 갑자기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입에서 피를 토하며 달려오던 그대로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활시위를 겨눈 채, 마법을 캐스팅 한 채,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죽어버린 오우거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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