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21화. 상위헌터(2).
“감사합니다!”
기대에 없던 내 호의에 팀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숙여진 그들의 몸이 감격에 겨워 부르르 떨려왔다.
“태빈아.”
예상외로 내 형인 태성 또한 가르침을 청해왔다.
짐꾼 아저씨들도 마찬가지.
그들 또한 팀원들이 명상을 하는데, 함께 했었고, 내 곁에서 나의 성장을 지켜봤다.
그러니 욕심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자신들이 무언가를 익히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라는 것은 알지만 스스로 몸을 지키기 위한 한 수라도 배우길 바랐다.
팀원들에게 가르침을 준 순간, 그들만 예외로 둘 생각은 없었다.
아저씨들은 이미 무공을 배우기에는 늦었지만 짐꾼 일을 해온 덕분에 기본적인 체력과 근력이 뛰어났다. 때문에 간단한 외공을 가르치기로 했다.
그리고 형인 태성은 가족이니 만큼, 내가 전담으로 붙어 가르칠 생각이었다.
형은 말 할 것 없이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였고, 아저씨들은 팀원들 보다 우선해 내가 지키기로 마음먹은 이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
팀원들과의 문제는 해결했지만 B급으로의 승급도 골칫거리였다.
B급 승급은 D급 승급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협회를 비롯한 모든 헌터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러한 관심은 결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D급 헌터로 남아 있을 수도 없으니, 승급을 안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선택을 해야 했고, 그 결정은 이미 나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정이 나있는 문제에 나는 망설임 없이 협회로 향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승급시험을 신청하러 왔습니다.”
이전과 같이 안내원이 나를 맞이했고, 이어진 내 말에 이전보다 더 경악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
고작 한 달, 태빈의 연이은 승급 요청에 협회가 다시 한 번 분주해졌다.
은밀하게 태빈은 첫 번째 승급을 이용했던 협회 관계자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한동희 헌터가 B급에 오르기까지, 수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3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김태빈 헌터와 같은 경우는 말이 되질 않습니다. 처음부터 등급을 속였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김태빈 헌터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등급을 숨겼다는 말입니까?”
태빈이 E급에서 D급으로 승급하는 데, 삼 주, D급에서 이번 B급 승급 요청에는 한 달이 걸렸다.
헌터의 등급이 고착화되어 있는 만큼, 불과 두 달 사이에 E급에서 B급까지 성장했다고는 믿기 힘들었다.
태빈이 처음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기 위해 등급을 속였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김태빈 헌터는 마력 탐지기 검사도 두 번이나 치러냈습니다. 김태빈 헌터의 승급이 말도 안 되게 빠른 것은 맞지만 마력 탐지기에 두 번이나 오류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반론도 있었다.
그 근거는 바로 마력 탐지기.
간혹 자신의 등급을 의도적으로 속이려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에 고안된 것으로, A급 마나석으로 만들어져 A등급 헌터의 마력 보유량까지 정확한 측정이 가능한 도구였다.
태빈이 A등급을 넘어 S등급이라면 모를까, 마력 탐지기가 유독 태빈의 측정에서만 연달아 오류를 일으켰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았다.
“그래도 고작 두 달입니다. 기기의 오류보다는 E급에서 B급까지의 성장이 더 말이 되질 않습니다.”
“마력증후군의 영향일 수도 있습니다. 승급으로 인해 모두 잊고 계신 듯한데, 김태빈 헌터가 마력증후군에서 깨어난 지, 아직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는 더 높은 등급으로 각성했지만 마력증후군의 영향으로 뒤늦게 제 등급을 찾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김태빈의 믿을 수 없는 성장은 변해버린 세상의 상식선에서도 설명이 되질 않는다.
김태빈의 측정에서만 마력측정기의 오류가 발생했다는 것보다 더.
때문에 태빈이 앓았던 마력증후군에 대한 얘기까지 나왔다.
“마력증후군에서 깨어난 시점부터, 이미 모든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영향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혹시... 이계의 기억을 가지게 된 것은...”
설왕설래가 이어지는 가운데, 누군가 조심스럽게 새로운 의견을 꺼냈다.
“으음...”
시끄럽던 좌중이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한순간에 적막에 휩싸였다.
간혹 그런 이들이 있었다.
각성 과정에서 이계의 존재의 기억을 얻으면서 그들의 능력까지 얻게 되는.
사실 등급을 속였다거나, 마력측정기가 오류를 일으켰다는 것보다는 이계의 기억을 얻었다는 게 그나마 신빙성이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외면한 가능성이었다.
이계의 기억을 얻은 이들 가운데, 온전한 모습을 보인 이들이 드물었기에.
“아직 확실하지 않은 일입니다. 다만, 김태빈 헌터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는 있을 것 같군요.”
여러 의견을 귀담아 듣고 있던 협회장이 입을 열었고,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의 승급에서 태빈은 협회를 향한 관심을 돌릴 기회가 되었고, 이번에는 협회가 주목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
확실히 상위헌터로 구분되는 B급은 단순히 상태창만 확인하고 넘어갔던 D급 승급과는 달리, 조금은 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했다.
협회는 D급 던전의 솔로잉과 B급 던전의 공략대 참여,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것을 요구해왔고, 이는 기존의 C급 헌터들이 B급 헌터로 승급 할 때의 조건과 같았다.
“D급 던전은 태빈님께서 원하시는 던전을 선택하시면 되지만 B급 던전 공략대는 협회 측에서 구성할 예정이며, 정확한 평가를 위해 이번에 B급으로 승급하는 헌터 분들과 함께 하시게 될 겁니다.”
나는 이번에 B급으로 승급하는 헌터들과 함께 일주일 뒤, B급 던전 < 흉포한 오우거 무리 > 공략에 나설 예정이었다.
처음에 B급 이상의 등급으로 각성을 했다 하더라도, 각성 후, 처음으로 받을 수 있는 헌터 등급은 최대 C급.
B급 이상의 상위 헌터가 되기 위해서는 최초 각성 후에 협회에서 요하는 기준을 충족해야 했다.
상위 등급 헌터가 귀중한 만큼, 밑에서부터 경험을 쌓도록 해,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었다.
“알겠습니다.”
협회가 제시한 조건은 모두 B급 헌터라면, 무난히 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바였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조건을 곧장 수락했다.
***
일주일 뒤,
나는 < 흉포한 오우거 무리 >던전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D급 던전 솔로잉은 삼일 전, < 끈끈한 스파이더 둥지 >를 공략함으로써 끝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번 공략만 무사히 완수하고 나면, B급 승급 조건이 충족됐다.
“오셨습니까? 이번 공략팀 팀장을 맞게 된, 이형준이라고 합니다.”
경력 등의 기준을 바탕으로 공략팀 팀장을 맞게 된 이형준이 나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네 왔다.
그 외에도 몇몇이 살짝 긴장된 얼굴로 각자의 무기를 점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나와 함께 던전을 공략할 헌터들로 보였다.
“자. 그럼 다들 모이셨으니, 간단한 브리핑 후, 공략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뒤로 몇몇 헌터들이 도착했고, 모든 헌터들이 모이자, 이형준이 헌터들을 집중시켰다.
이번 < 흉포한 오우거 무리 >던전 공략에는 나를 포함해, 열 두 명의 헌터들이 참여할 예정이었다.
나는 D급, 나 이외에는 모두 C급으로, 단순히 등급 상으로는 공략을 시도하기조차 힘든 구성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나를 제외한 열한 명 모두 각성 당시부터 B급 측정을 받은 이들로, C급 헌터로 경험을 쌓은 뒤, 승급시험을 치리는 이들이다.
모두 B급 헌터에 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변만 없다면 충분히 공략이 가능했다.
“오우거는 B급 던전에서 볼 수 있는 지상 몬스터 가운데, 최강으로 손꼽힐 만큼, 강한 몬스터입니다. 교관들이 함께한다고는 하나, 그들은 관찰자일 뿐이니 결코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번 공략에는 E급 시험 때와 마찬가지로 안전과 평가를 위한 A급 교관들이 함께한다.
다수가 공략을 진행하다 보면, 자연히 묻혀가는 헌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헌터들을 걸러내기 위함이었다.
E급 시험 때와 다른 점은 사망자가 발생한다 해도 묵인한다는 점이다.
E급 때는 아직 헌터가 되기 전인 응시생들이었기 때문에 교관이 개입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사실상, 던전 안에서는 같은 공략대 팀원들을 제외한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 없는 만큼, 교관들 또한 철저히 관찰자로서만 머물 뿐이었다.
물론, 정말 죽을 위험에 처한다면, 외면하지는 않겠지만.
“무사히 공략을 마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형준은 오우거에 대한 것부터 시작해 공략대의 무사기원을 마지막으로 브리핑을 마쳤다.
“그럼 입장하겠습니다.”
그 뒤에 이형준을 선두로, 나를 포함한 열두 명의 공략대 헌터들과 세 명의 교관들이 < 흉포한 오우거 무리> 던전에 입장했다.
***
우거진 숲.
오우거 무리의 영역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산발적으로 울리는 오우거의 괴성을 제외하면, 숲에 어떠한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는 듯, 모두가 숨을 죽였다.
작고 약한 벌레들은 괴성이 울릴 때마다 땅속으로, 나무속으로 몸을 숨겼고, 새들은 쉬지 못하고 날갯짓을 계속했다.
오우거의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만큼, 작다는 것과 우악스러운 손길을 피할 수 있는 날개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지 못한 동물과 몬스터들은 오우거와 마주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 살아야 했다.
그런 오우거 무리의 영역에 낯선 생명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열다섯의, 숲에서는 쉬이 보기 힘든 인간들이었다.
“무사 공략을 기원하지.”
그 중, 셋이 무리를 이탈해 숲 속에 신형을 숨겼다.
나무 위로, 수풀 속으로 숨어든 그들은 어떠한 기척도 남기지 않았다.
“A급 헌터...”
남겨진 이들 가운데, 누군가 짧은 탄식을 터트렸다.
공략팀은 태빈을 제외한 모두가 각성등급 B등급을 받은 헌터들이다.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사라지듯 모습을 감춘 A급 헌터들의 능력은 과연 놀라웠다.
“이곳은 오우거의 영역. 정신 팔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형준이 교관들의 능력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팀원들을 일깨웠다.
A급 헌터의 능력을 잠시나마 일견한 것보다는 당장 공략을 성공하는 게 더 중요했다.
B급 헌터로 올라서고 못하고를 떠나, 공략 실패는 죽음을 의미한다. 던전에 들어 선 이상,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예.”
그제야 팀원들도 자신들이 놀러온 것이 아님을 상기해냈다.
오우거.
B급 헌터가 된다면, 숱하게 만날 몬스터이기는 하나, 숲의 최상위 포식자라고도 불리는 만큼,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