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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수다-20화 (20/150)

# 20

20화. 상위헌터.

< 영악한 고블린 소굴 >의 공략은 빠르게 진행됐다.

놈들의 함정 수준이 일전에 경험했던 고블린보다 한 단계 높다고는 하지만 내 기관진식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그들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고, 그들의 함정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고블린들의 영악함도 마찬가지였다.

첫 매복에서 동료를 잃은 놈들이 거리를 벌려 마비독이 발린 독침을 쏘고, 투척 무기를 던지는 등 원거리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나는 놈들이 유효사정 거리에 도달하기도 전에 쏜살 같이 튀어 나가 목을 베어버렸고, 놈들의 공격은 무의미한 발악에 불과했다.

함정과 자신들이 자랑하는 마비독까지 통하지 않자, 고블린들은 한데 모여 최후의 항전을 준비했다.

계속된 실패로 각개격파 당하는 것보다 수적 우위를 이용해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이었다.

방법은 나쁘지 않았으나 상대가 좋지 않았다.

나는 놈들의 틈 속으로 거칠 것 없이 뛰어들었고, 그대로 놈들을 유린했다.

팀원들의 활약도 있긴 했지만 압도적인 내 무위와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어째... 우리가 방해만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수십의 고블린을 학살하는 내 모습에 우울해진 김시연이 작게 중얼거렸다.

“뭐... 그런 느낌이 없을 순 없죠.”

팀원들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태빈이 양떼 사이에 뛰어든 늑대, 아니 오우거마냥 고블린들을 헤집어 준 덕분에 다들 어렵지 않게 몇 마리씩은 죽일 수 있었다.

분명 E급 헌터 넷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일을 해냈음에도 기쁜 마음은 들지 않았다.

E급 헌터치고는 제법 괜찮은 활약을 했지만 앞에 있는 괴물로 인해 자신이 초라해진 느낌이었다.

“저는 수련을 하고 오겠습니다.”

나는 팀원들이 느끼는 감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던전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오직 수련에 대한 열망만 가득했다.

때문에 뒷정리까지 빠르게 마무리한 나는 곧바로 수련을 하고자 했다.

“저... 잠시 만요.”

“무슨 일입니까?”

그런 나를 김시연이 불러 세웠다.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결연한 그녀의 표정에 나는 발길을 멈췄다.

“저희에게도 가르침을 주실 순 없나요? 부탁드려요.”

“...”

김시연의 물음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삼류 무인에도 미치지 못하는 헌터들.

잘해야 절정, 혹은 일류무인에 불과하고, 십중팔구는 그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때문에 팀원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나에게 팀원들은 그저 공략에 필요한 인원을 맞추기 위한 구색에 불과했다. 내가 원하는 경지에 도달하면 언제든 등 돌릴 수 있는 찰나의 인연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고작 한 번의 술자리 탓인지, 순간 망설임이 들었고, 갑작스런 청을 곧장 거절하지 못했다.

“일단은 전과 같이 명상을 하십시오. 혹시라도 기를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가르쳐주겠습니다.”

나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하지 않은 스스로에게 놀랐다.

과거였다면, 애초에 망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대가 매몰차다 느낄 정도로 거절하거나 무시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팀원들이 E급임에도 헌터 일을 하는 이유는 하나같았다.

돈.

가족을 위해서 더 많은 수익이 보장되는 헌터를 포기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위해 헌신했던 부모님과 형의 모습이 투영됐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들을 외면하지 못했다.

“기요?”

“마나라고 하는 게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더 쉬울 것 같군요.”

“명상을 하면 마나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죠? 알겠어요.”

김시연은 곧장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태창에 마력이라는 능력치가 존재하고, 마나가 무엇인지도 안다. 그러나 E급 헌터는 그 마력이 0으로, 마나를 다룰 수 없기에 E급 헌터인 것이다.

그럼에도 김시연은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태빈은 무시할지언정,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

기대감서린 팀원들을 뒤로 하고 나는 개인 수련에 집중했다.

당장 팀원들에게 심법을 가르쳐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만약 팀원들을 가르치게 된다면, 단순한 가르침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꼭 백살문의 무공이 아니더라도, 그들에게 무공을 전한 다는 것은 이곳에 새로운 무림의 뿌리를 내리는 것이고, 이는 몇 번을 심사숙고해도 부족하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 내 경지가 누군가를 가르칠 만한 수준도 아니었다.

깨달음의 경지를 떠나 이제 막 내공을 쌓으며 첫발을 내딛었는데,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로 시간과 심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나의 성장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

나는 < 영악한 고블린 소굴 >이후, 한 달 간 세 번의 공략을 더 해냈다.

내 목적은 오로지 내공에 있었다. 때문에 소득에 관계없이 가장 빠르게 허가가 날 만한 던전을 위주로 공략을 진행했고, 대부분 헌터들이 기피하는 수준 낮은 던전들이었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다.

“드디어.”

던전의 수준과는 별개로, 나는 심법에 전념한 덕분에 한 달 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과거의 경지를 되찾은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무림의 무기에 기를 실을 수 있는 일류 무인 수준이다.

물론 화경에 달했던 나의 깨달음은 이미 그 경지를 아득히 넘어 섰지만 순수 내공의 양만으로만 따졌을 때의 얘기다.

이는 지구의 B급 헌터와 같은 경지로, 처음 김태빈의 몸으로 깨어났을 때를 생각하면, 놀랄 만큼 빠른 성장 속도였다.

솔직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작 네 번 밖에 공략을 진행하지 못했고, 던전 내에 있는 시간이 적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이제 던전 내부만 아니라, 지구에서도 편히 운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류의 경지에 오르며 살혼심법 또한 5성에 올라섰고, 나는 살의를 내 안에 갈무리 할 수 있게 됐다.

“흠...”

일류무인, B급 헌터의 경지에 오르며 만족감과 동시에 고민 또한 생겨났다.

B급.

B급 헌터부터는 하급 헌터라 불리는 C급 이하의 헌터들과 확연히 다르다.

일단 보통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벌이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C급, D급 헌터들도 일반 직장인의 몇 배에 달하는 돈을 벌어들이긴 하지만, B급부터는 일반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게 된다.

던전 내의 몬스터 사체 하나가 수억을 호가하고, 마나석 또한 억 대가 우스울 정도니, 더 말 할 것도 없었다.

그 외에도 국가 내에서의 대우 등 여러 가지가 달라지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침내 홀로 던전을 공략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B급 헌터 이상부터는 C급 이하 던전에 한 해, 솔로잉이 가능했다.

즉, 더 이상 팀원들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게 됐고,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

나와 팀원들은 총 네 번의 공략을 진행하는 동안, 형과 짐꾼 아저씨들을 매개로 꽤나 친밀해졌다.

나는 처음처럼 팀원들을 마냥 무시하지 않았고, 팀원들 또한 전보다는 나를 덜 어려워했다.

그러나 내가 일류무인의 경지에 가까이 다가섰음을 알았을 때부터 나는 의도적으로 그들을 멀리했다.

괜히 정이라는 사소한 감정에 치우쳐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단순히 옛 경지를 찾기 위해서라면 지금과 같이 내공을 쌓아가도 상관없다.

그러나 나는 무인으로서 더 높은 경지에 대한 향상심이 있었고, 단순이 과거의 무위를 되찾는 것만으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향상심은 과거 살수 시절, 나를 살왕의 자리에 올려놓은 감정이었고,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과 더불어 유일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욕심이었다.

현재도 마찬가지.

언제까지 E급 던전이나 전전하며 머물 생각은 없었다.

더 높은 등급의 던전에서, 더 강한 적을 마주하고, 더 높은 경지의 헌터들을 만나며 전생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다.

돈은 그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일 뿐이다.

살수 시절, 식욕, 성욕 등의 욕심이 없었던 나는 풍족하지 않았지만 부족함도 없었고, 그것만으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나에게 돈은 그저 나로 인해 희생을 강제당한 가족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어 줄 수 있을 정도만 있다면 충분했다.

“팀장님.”

그런 와중에 불안한 표정과 떨리는 눈빛을 한 김시연이 나를 찾았다.

다른 팀원들 또한 비슷한 얼굴로 그녀의 뒤에 시립하듯 서있었다.

“팀장님께서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까?”

내가 최근 들어 팀원들을 멀리했으니, 그들도 이러한 내 고민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직설적으로 얘기해 올 줄은 몰랐다.

항상 내 눈치를 보느라 제 의견을 제대로 피력하지 못하던 팀원들이었는데, 의외였다.

“솔직히 저희들은 계속해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팀장님의 발목을 잡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김시연과 팀원들이 나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들 또한 내가 E급에 머무를 헌터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함께하며 지켜봤기에 모르라야 모를 수가 없었다.

어느 D급 헌터가 수십 고블린 무리에 뛰어들어 그들을 학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고블린이 약한 몬스터라고는 하나 이는 C급 헌터조차도 용기 없이는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부담 갖지 않도록 먼저 말을 꺼내준 것이다.

“그게 여러분의 결정입니까.”

아무리 스스로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해도, 쉬운 길을 마다하는 게 결코 쉬운 결정일리 없다. 수없이 갈등했을 테고, 어렵게 내린 결정일 것이다.

일부 불만스런 표정이 깃들어 있는 팀원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팀원 모두의 결정이었다.

그러한 그들의 마음이 내 마음을 울렸다.

줄곧 억눌러왔던 감장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면서 이런 사소한 일에도 마음에 파문이 일곤 했다.

“당장은 함께 할 수 없더라도 언젠간 함께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팀원들의 결심에 나 또한 오랜 고민을 끝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무공들 가운데, 쓸 만한 심법들을 개인의 특성에 맞게 가르쳐 주기로 결정했다.

약속한 대로라면, 내가 그들에게 가르침을 내릴 이유는 없다.

한 달의 시간 동안, 기를 느낀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김시연은 여전히 감을 못 잡고 있었고, 이재호와 김영기도 마찬가지다.

의외로 장만식이 가능성을 보이기는 했지만 아직은 가능성일 뿐,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사실 무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도 제대로 된 심법을 가지고 몇 달을 고생해야 간신히 느낄 수 있는 게 기다.

단순 호흡법만으로 기를 느낀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만큼, 한 달 만에 어렴풋이 그 존재를 눈치 챘다는 것은 장만식의 재능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대기에 기가 풍부하다 하더라도 말이다.

나머지 셋도 부족하기는 했지만 계기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재능과 별개로 그들의 노력은 진짜였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단 한 번도 내 말에 의심을 품고 명상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걸고 매달렸다.

나는 그들이 계속해서 노력해 나갈 수 있도록 작은 도움을 줄 뿐이다.

아무리 뛰어난 심법이 뒷받침 된다 하더라도, 노력 없이는 높은 경지에 올라 설 수 없다.

내가 자유라는 목표를 가지고 죽을 만큼 노력해 백살을 달성해 낼 수 있었듯, 그들 또한 내 가르침을 계기삼아 끝까지 포기 하지 않고 더 높은 등급이라는 목표를 향해 계속 노력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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