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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수다-19화 (19/150)

# 19

19화. 팀(3).

내가 떠나간 자리에 남겨진 팀원과 짐꾼들은 제각기 적당한 자리를 골라 휴식을 취했다.

아무리 변변치 않은 전투라 해도, 분명 목숨을 걸고 싸웠고, 곧장 이뤄진 전후처리에 다들 적잖이 지쳐있었다.

주변에 수십의 병든 오크의 사체들이 헤집어 진 채, 널브러져 있었지만 그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릴 만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네 명의 팀원은 병든 오크들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었고, 다른 네 명의 짐꾼들은 그보다 더한 것도 셀 수 없이 봐온 이들이었다.

“휘유.. 듣던 대로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팀원 중 한 명인 이재호가 말했다.

굳이 콕 집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 어마어마함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말하는 이재호를 포함한 팀원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김시연과 장만식에게 몇 번이고 듣긴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무표정한 얼굴로 십여 마리의 오크를 도살해버리는 태빈의 모습은 같은 편임에도 이재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제가 말했잖아요. 잠깐 사이에 더 괴물이 돼 있을 줄은 몰랐지만.”

장만식이 답했다.

장만식이 E급 시험에서 태빈을 본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승급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데, 태빈의 무위는 단순히 승급으로만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의심쩍었는데, 지금은 제가 헌터가 된 뒤로 내린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영기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헌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E급 헌터를 받아주는 팀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간신히 팀을 구한다 해도, E급 헌터를 필요로 하는 팀이 제대로 된 곳일 가능성도 적었다.

E급들 십 수 명이 모여 공략과 짐꾼을 병행하거나, 심지어 E급은 화살받이 정도로 취급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그런데, 절대복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건 팀이 강력한 팀장을 지닌 번듯한 곳이었으니, 이는 김영기의 기대 이상이었다.

“팀장님의 무위도 무위지만 그보다 팀장님이 승급을 했다는 게 중요해요. 팀장님은 이곳에서 수련을 한다고 했어요. 승급의 실마리가 있는 게 분명해요.”

김시연은 일찍부터 태빈의 무위를 알고 있었고, 이에 큰 관심이 없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자신의 역량으로 가늠할 수 없는 인간임을 깨달은 탓이다.

그보다는 태빈이 E급을 넘어서 승급한 사실에 주목했다.

개인의 무위를 떠나 각성 등급을 뛰어 넘는 승급은 수많은 헌터들이 바라면서도 우연에 기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드문 일이다.

그리고 김시연 또한 승급을 바라는 수많은 헌터들 중에 하나다.

그 우연의 산물이 눈앞에, 같은 팀에 버젓이 있으니, 기대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승급만 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가 없을 텐데...”

E급 임에도 헌터의 삶을 살아가기로 택한 이들 대부분은 승급이라는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사실 네 명의 팀원들 또한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승급은, 가능하다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 놓을 수 있을 정도다.

태빈이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면, 절대복종을 넘어 노예가 될 자신도 있었다.

“저 어르신.”

김시연은 태빈에게 직접 묻기보다는 자신들보다 조금 더 오래 태빈과 같이한 짐꾼들을 공략하기로 했다.

태빈에게 말을 붙여봐야 답도 없는 무시나, 단답만 간신히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고작 두 번의 만남에, 몇 시간 함께 한 것뿐이지만 김시연은 태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불편하진 않으세요?”

물론 짐꾼들에게도 무턱대고 묻지는 않았다.

아직은 오늘 처음 만난 어색한 사이다. 묻는다고 곧장 대답해 줄 리도 없거니와 짐꾼들이 태빈에게 보이는 신뢰를 생각했을 때, 경각심만 줄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우선 친밀감을 쌓는데 주력했다. 오늘만 보고 말 것도 아니고, 앞으로 공략을 함께 한다고 했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김시연을 비롯한 팀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다섯 시간을 짐꾼들과 친분을 다지는데 사용했다.

***

“시간됐습니다.”

내가 돌아왔을 때, 대부분이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모두가 집중하고 있었기에 나는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그들을 일깨웠다.

“아. 오셨군요.”

내가 낸 인기척에 유일하게 경계를 서고 있던 김영기가 뒤늦게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명상에 잠겨 있던 다른 이들도 하나 둘 눈을 떴다.

“명상. 수련의 일환이라면, 좋은 선택입니다.”

어떻게 명상을 생각해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제대로 된 심법이 없는 이상, 큰 효과를 보기는 힘들겠지만 대기에 충만한 기운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을 것이다.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내 대답에 김시연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짐꾼들의 얘기 속에서 태빈이 항상 명상하듯 거닐었다는 것을 듣고 따라한 것뿐이다.

사실 명상을 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했다. 기를 느끼지 못하는 그녀로서는 단순히 명상만으로 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태빈이 확인을 해준 이상, 믿고 따를 생각이었다.

그건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또한 자신들이 행한 일이 헛되지 않았다는 말에 만족스러워했다.

“갑시다.”

시간이 많지 않기에 나는 곧장 던전을 나서기 위해 움직였다.

미리 확인해 둔 던전 핵만 파괴하면 끝이었기 때문에 어려울 건 없었다.

쩌저적.

지키는 몬스터가 병들어 다 죽어가던 오크였던 만큼, 던전 핵도 무력했다.

내 투박한 칼질 한 번에 던전 핵이 힘없이 깨져나갔다.

동시에 사방의 환경이 깨진 유리창처럼 쩍쩍 갈라지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던전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세상이 무너지는 변화에 놀라 우왕좌왕했겠지만 이 자리에 그런 이들은 없었다.

모두가 덤덤히 무너지는 세상을 바라봤다.

***

무너진 던전 뒤로 지구의 환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던전은 완전히 사라졌고, 더 이상 던전의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었다.

“태빈 팀. 5시간 57분. 공략 확인했습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협회 직원이 사무적인 말투로 공략을 완료한 나를 맞이했다.

5시간 57분.

기나긴 시간 대기하느라 지루했는지, 나를 향한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았다.

E급 던전 중에서도 약한 몬스터에, 가만히 놔둬도 도태될 던전이었기에 파견된 직원이 한 명 뿐이었기 때문에 더 기다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내 알바는 아니다.

나와 팀원들은 직원을 통해 간단한 확인 절차를 마친 뒤, 공략을 마무리했다.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절차가 복잡해졌겠지만 피해가 전무한 덕분이었다.

“다음 공략 일정이 잡히는 대로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첫 만남인데 그러면 쓰나.”

모든 공략이 마무리 되고, 나는 짧게 인사를 나눈 뒤, 헤어지고자 했다.

그러나 짐꾼 아저씨들은 나를 곧장 보낼 생각이 없었다.

단순히 그들의 성화뿐이었다면, 거절했겠지만 형까지 합세한 탓에 어쩔 수 없이 팀원들과 첫 만남을 기리는 자리를 가졌다.

과거 살행을 한 뒤에 홀로 마시곤 했던 독하지만 씁쓸한 죽엽청과는 달리, 막걸리라는 술은 제법 맛이 괜찮았다.

그 덕분인지, 처음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영 어색했는데, 함께 하는 술맛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

나는 만취한 짐꾼 아저씨들을 챙긴 뒤, 똑같이 만취한 형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 같아서는 내공을 운기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미약한 내공으로는 아직 살기를 온전히 제어하기 힘들었다.

제어할 수 없는 살기가 가족들의 편한 잠자리를 방해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아쉽지만 집에서는 운기를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아쉬운 대로 헌터넷을 뒤지며 다음 공략을 준비했다.

“흐음...”

던전 공략은 C급 이하의 하급일수록 경쟁이 치열하다.

던전의 수가 상급보다 몇 배가 많긴 하지만 공략을 원하는 헌터들이 그보다 많기 때문이다.

특히, E급 던전은 소득이 적지만 위험도가 상당히 낮기 때문에 모든 헌터들이 공략을 원하는 던전이다.

때문에 협회 측이 내 요구에 따라 약간의 편의를 봐준다고는 해도, 허가를 따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 병든 오크 부락 >도 모든 헌터들이 꺼릴 만큼, 확연히 소득이 떨어지는 던전이었던 덕분에 곧장 공략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만 봐도 우리 팀이 얻은 소득이라고는 병장기 몇 개와 다섯 개의 마나석이 전부였다.

가치로 따지면, 백만 원 정도.

협회 측에서 추가로 던전 공략 보상을 지급하긴 하지만 E급의 경우 그 보상금이 턱없이 적다.

이 또한 백만 원 가량으로, 우리 팀은 오늘 하루 공략으로 이백을 번 것이다.

나를 포함한 헌터 다섯과, 짐꾼 넷. 아홉의 인원이 투입 된 것치고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균등하게 나눈다 해도, 인당 고작 20만 원가량의 소득을 올린 것이니 말이다.

물론 실제 공략 시간은 한 시간 남짓으로,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는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과거 나는 몇 푼에 살인을 하곤 했지만 무림과 이곳은 엄연히 다르고, 이 세계의 기준으로 목숨을 걸고 하는 일에 20만 원은 너무 적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헌터넷을 살피는 동안, 나는 쓸 만한 몇 개의 던전을 찾아냈다.

< 단결된 킬러비 둥지 >

< 영악한 고블린 소굴 >

< 굶주린 독 개구리 서식지. >

< 단결된 킬러비 둥지 >에서 출몰하는 몬스터 킬러비는 벌처럼 생겼지만 그 크기가 50cm에 달하는 거대 비행 몬스터다.

E급 던전 유일의 비행 몬스터로, 벌과 같이 독침을 주 무기로 하며 수식어와 같이, 단결해 헌터들을 공격해 오기에 꽤나 까다로운 몬스터지만 불에 약하다는 명확한 약점으로 인해 E급으로 격하된 몬스터였다.

다음으로 < 영악한 고블린 소굴 >은 같은 고블린이지만 실전 평가 때, 경험한 < 심약한 고블린 던전 >의 고블린보다 한 층 더 영악한 놈들이라고 보면 된다.

던전 내에 설치된 함정의 수준도 높고, 놈들의 행동도 더 영악하기 때문에 상당한 주의가 필요한 던전이다.

마지막 < 굶주린 독 개구리 서식지 > 역시 개구리와 유사한 몬스터로, 강한 산성을 띄는 독액과 기다란 채찍과도 같은 혓바닥이 주 무기였다.

모두 E급 던전이긴 하나, 난이도에서는 꽤나 차이가 있었다.

킬러비의 독침과 독 개구리의 독액은 독 내성이 없는 하급 헌터들에게는 위험했기 때문에 고블린이 가장 약하다고 볼 수 있었다.

소득 또한 마찬가지로, 정제하면 약으로 사용되는 킬러비의 독침과 독 개구리의 독액에 비해 고블린은 무기부터 건질 것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내 선택은 당연히 < 영악한 고블린 소굴 >이었다.

까다로운 함정과 놈들의 영악함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는 소득에 자연히 경쟁이 덜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이번에도 나는 무난히 공략 허가를 따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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