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18화. 팀(2).
“처음부터 오크 던전이라니.”
병들었다고는 하나 명색이 오크이니 만큼, E급 헌터들에게는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김시연을 비롯한 네 명의 팀원 모두 던전에 들어선 순간부터 잔뜩 굳어진 채,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나마 내 무위를 일부나마 경험한 김시연과 장만식의 긴장은 덜한 편이다. 둘은 내가 무모하게 공략을 진행했을 거라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위험하다 해도 도와줄 교관이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긴장을 지우지는 못했다.
“재성씨. 오늘은 끝나고 막걸리나 한 잔하지.”
“막걸리? 좋지.”
오히려 일반인에 불과한 짐꾼들이 여유로운 모습이다.
그들은 나 다음으로 여유로움을 가지고 산책 하듯 뒤를 따랐다.
내가 있음에 E급으로 격하된 오크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난폭한 리자드맨 군락 >에서 그들을 지켜주기도 했고, 몇 차례 함께 짐꾼 일을 하면서 나에 대한 신뢰는 더욱 단단해졌다. 고작 E급 던전 따위에 흔들리지 않았다.
“저기 있군.”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던 내 시선의 끝에 오크들이 있는 부락이 보였다.
고작 아홉 개의 움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부락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규모였다.
움집 사이로 몇몇 오크가 불편한 거동을 옮기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움집 안에서도 기침 섞인 기척이 느껴졌다.
이미 부락에는 죽음의 기운이 짙게 내려 앉아 있었다.
“전투 준비.”
나는 무심히 검을 들어 올렸다.
병들어 꺼져가는 생명이라고는 하나 동정심을 느끼지는 않는다. 죽여야 할 대상에게 감정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 몬스터에게 줄 감정 따위는 없었다.
“공격.”
짧은 한 마디와 함께 나는 쏜살같이 부락을 향해 쏘아졌고, 팀원들이 한 발 느리게 뒤따랐다.
취익... 취익...
놈들의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부락 여기저기서 갑작스런 습격에 놀란 오크들이 튀어나왔지만 무기를 들 힘조차 없어 보이는 놈들이 태반이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서넛의 고블린을 상대하기는커녕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모양새였다.
그럼에도 놈들은 살고 싶은지, 연신 가쁜 숨을 내쉬면서 나에게 맞서왔다.
툭 건들기만 해도 쓰러져 죽을 것 같은 놈들이었지만 내 손속에 자비는 없었다.
병든 오크들은 무자비하게 휘둘러지는 내 검을 견뎌내지 못했다. 내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여지없이 한 마리 오크의 목이 떨어져 내렸다.
“음.”
순식간에 십여 마리의 오크에게 안식을 선사한 나는 검을 거둬들였다.
애초에 상대도 되지 않을 몬스터들을 학살하고자 던전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내 목적은 오로지 던전 내부에 충만한 기운에 있었다.
앞서 열 마리의 오크를 죽인 것은 그저 그간 쌓아온 내공을 비롯한 내 능력을 시험해보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나 놈들은 시험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내공을 되찾지 못했더라도 놈들의 숨통을 끊어 놓는 데는 한 번의 휘두름, 그 정도면 족했을 것이다.
더 이상 놈들을 상대할 가치가 없었다.
“이제 부터는 여러분들이 맡으세요.”
아직 서른 마리가량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는 팀원들에게 맡겼다.
수가 꽤 많긴 하지만 현재 놈들의 상태라면, 팀원들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직 새로 뽑은 팀원 둘의 실력을 확인하지 못하긴 했지만 김시연과 장만식 정도만 된다면, 충분하리라 여겼다.
“예?!”
예상외의 내 명령에 팀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봤다.
순식간에 열 마리의 오크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에 든든하기 그지없었는데, 갑자기 빠진다고 하니, 놀란 것이다.
“알겠어요.”
그러나 놀람도 잠시.
앞서 보였던 오크들의 약한 모습에 제법 자신감이 생긴 듯, 금세 침착하게 오크들을 상대해나갔다.
처음 본 팀원 둘은 실전 평가에서 나에게 가려지긴 했지만 다른 응시생들보다 발군의 능력을 선보였던 김시연이나, 타고난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괴력으로 오크를 양단해버리는 장만식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E급 헌터로서의 제 몫은 해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서른 마리의 오크가 고작 네 명의 헌터에게 모조리 목숨을 잃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면 충분했다.
서른에 달하는 수는 압도적이었지만 병든 오크들은 호전적인 성격으로 싸움을 즐기는 오크 본연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두려움에 젖어, 그저 제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두를 뿐이었다.
오크들은 그렇게 발버둥 치다 네 명의 팀원들에게 차례로 목숨을 잃어 갔다.
“무기 수거하고, 마나석만 챙겨주세요.”
모든 병든 오크를 처리한 뒤, 나와 팀원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수순으로 넘어갔다.
방금 전까지 헌터였던 나와 팀원들은 곧장 짐꾼으로 바뀌어, 뒤에 있던 진짜 짐꾼들과 오크의 사체를 헤집기 시작했다.
여의치 않는 상황을 제외하고 헌터들이 짐꾼 일을 하는 게 내가 팀을 만들 때, 절대복종과 함께 제시한 또 하나의 조건이었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에 달하는 몬스터의 부산물을 챙기고, 사체를 뒤져 마나석을 수거하는 일을 고작 몇 명의 짐꾼이 다 맡기에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든 일이다.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형도 포함되어 있는데, 짐꾼만 고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네.”
팀원들도 불만은 없었다.
전투가 치열했다면 모를까, 학살에 가까운 일방적인 싸움에 체력 손실도 적은 편이다.
이미 알고 있던 조건이기도 했고, 다들 짐꾼 일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들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꺼이 짐꾼들을 도왔다.
덕분에 작업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짐꾼 넷에 헌터 다섯이 나서기도 했고, 병든 오크의 경우, 부산물이 쓸모가 없어 마나석만 챙기면 됐기 때문에 오래 걸릴 일이 아니었다.
“고작 다섯 개라니...”
놈들이 생각보다 약했던 만큼 소득도 적었다. 아쉽지만 E급 마나석 다섯 개가 전부였다.
수거한 무기가 적지 않긴 했지만 고철 수준에 불과했다.
예상외로 저조한 소득에 팀원들과 짐꾼들이 아쉬움을 표했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애초에 목적이 돈에 있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가 성장해 높은 등급의 던전을 공략하게 되면, 돈은 자연히 따라올 테니 말이다.
“이제 던전 핵만 파괴하면, 끝이네요.”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김시연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가 단순히 짐꾼들의 일을 덜어주고자, 직접 몬스터 사체를 해체하고, 팀원들에게 돕도록 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공략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마무리 하는데 있었다.
내 목표가 단순한 던전 공략이 아닌, 어디까지나 내공의 회복에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섯 시간. 나는 이곳에서 수련을 할 겁니다. 팀원 분들도 각자 알아서 시간을 보내도록 하세요. 죄송하지만 형이랑 아저씨들도 좀 기다려주시고요.”
생각보다 약한 병든 오크의 전력에 공략과 뒤처리까지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급 던전 공략에 부여된 시간은 최대 6시간으로, 그 시간이 지나면 공략 실패로 간주, 구조대가 파견된다. 그러나 그 이전에 공략을 완료하고 나면, 남는 시간 동안 던전 내에서 무엇을 하든 상관이 없었다.
아직 던전 안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다섯 시간이나 남아 있었고, 나는 남은 시간 동안 심법 수련을 하고자 했다.
“수련이요?”
“알겠어.”
역시나.
나에 대한 신뢰로 쉽게 수긍하는 짐꾼 아저씨들과는 달리, 팀원들은 의문을 가졌다.
처음에는 팀원과 짐꾼들을 먼저 내보낼까했다.
그러나 모두가 나간 던전에 홀로 남아 있는 것도 이상한 노릇이다.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협회 측 관계자에게 댈 변명도 마땅치 않았다.
때문에 세간의 의심을 받기보다는 소수의 팀원과 짐꾼들에게 어느 정도 밝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내 수련 과정을 드러내 놓고 보여줄 건 아니다.
던전은 넓고, 꼭 팀원들과 짐꾼들이 있는 곳에서 수련을 할 필요는 없었다.
단지 같은 던전 내에 머무는 것이다.
“예.”
팀원들은 더 묻지 못하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내 단호함에 굳이 절대 복종이라는 조건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
나는 팀원과 짐꾼들을 부락 내에 남겨두고 곧장 부락을 벗어나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던전 입구에서 부락까지 오면서 한 차례 확인은 끝났다.
병든 오크를 모두 처리했다고 해서, 완전히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인근에 나를 위협할 만한 생명체는 없었다.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 나는 꽤나 높은 위로 올라섰다. 커다란 나무의 크기만큼, 굵직한 가지는 나 하나쯤 올라선다 해도 거뜬했다.
나는 곧장 가부좌를 틀고 살혼심법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투투둑.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살혼심법을 운용하자, 지독한 살의가 몸 주위로 흘러나왔다.
주변에 있던 벌레들이 그 살기를 이기지 못하고, 바르르 떨며 죽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심법의 성취가 5성을 넘어서면, 내부에 살의를 갈무리 해둘 수 있지만 그 이전까지는 이렇게 넘쳐흘렀다. 때문에 백살문에서 정식 살수를 가르는 기준이 살혼심법의 5성 성취이기도 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다면, 감히 심법을 운용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내놓고 살기를 흘려대니, 적이 있다면 내 존재와 위치를 모르라야 모를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거칠 것 없는 지금, 나는 살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주변의 기운을 솜 물먹듯 빨아들였다.
대기에 충만하다 못해 터질 것만 같은 기운이 내 전신에 가득 들이찼다 나서기를 반복했다.
아직 굳어진 단전을 완전히 깨트리고 내공이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라, 몸 안에 잡아 둘 수 있는 양은 미미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밟아왔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미미하다고는 하나 과거 내공을 쌓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후...”
길게 호흡을 내뱉는 것을 마지막으로 심법을 마무리했다.
한창 수련을 하던 시절에는 몇날며칠을 운기로 보낸 날도 적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다섯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다.
그럼에도 단전에 들이차 넘실거리는 기운은 나를 무척 만족스럽게 만들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