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살수다-16화 (16/150)

# 16

16화. 승급(2).

지구에 던전이 생겨나고, 이에 대항하는 헌터가 나타난 지도 벌써 5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 5년 동안, 대부분의 헌터가 승급을 포기하고 기존의 등급에 안주하며 살아갈 만큼, 처음 정해진 등급에서 승급을 하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한국의 경우에는 딱 세 번뿐이다.

처음은 A급 헌터에서 S급 헌터가 된 박동석으로, 초기의 등급 평가에 오류가 있었다는 말들이 많긴 했지만 어쨌든, 한국에서는 승급을 이룬 최초의 사례였다.

그 다음이 총 3년에 걸쳐 E급 헌터에서 B급 헌터까지 승급한 한동희.

무려 세 등급을 뛰어넘은 그로 인해 당시 많은 헌터들이 승급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헛된 희망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많은 헌터가 더 높은 등급을 꿈꾸며 부단히 노력하고 무리한 공략을 진행했지만 결과는 그 만큼 많은 이들의 죽음뿐이었다.

이 사건이 모두가 헌터의 등급은 우연이 아니고서야 변하지 않는 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가장 큰 계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1년 전, 손민아라는 D급 헌터가 C급 헌터로 승급한 일이었다.

손민아는 한동희 이후, 오랜만에 나타난 승급 헌터였지만 낮은 등급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이미 등급은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모두의 머리에 박혀버린 탓에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이렇듯 기존의 각성 등급을 뛰어 넘는 헌터가 나타난 것은 세 번 뿐이었고, 이에 관한 승급시험 또한 박동석 때 1번, 한동희 때 3번, 손민아 때 1번, 총 다섯 번만 치러졌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E급 헌터 하나가 승급시험을 신청하고 싶다고 하니, 여자의 지금과 같은 반응은 무리가 아니었다.

“네.”

승급시험에 대해 알아 봤을 때부터 쉽게 처리될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예상했다.

채근한다고 일처리가 빨라지는 것도 아니고, 기다림에는 언제나 익숙했기 때문에 나는 느긋하게 여자의 업무 처리 결과를 기다렸다.

***

“한동희 헌터가 E급에서 D급으로 승급했을 때, 어떤 식으로 평가가 이루어졌었죠?”

“D급 헌터 셋이 참관해 응시생의 능력을 보고 판단을 내렸었습니다.”

헌터의 등급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헌터 협회는 근 1년 만에 나타난 기존의 각성 등급을 뛰어넘는 승급 지원자를 두고 논의가 한창이었다.

한국에는 총 세 명의 승급 헌터가 있었지만 E급이 D급으로 승급한 전례는 오직 한동희 헌터 한 명뿐이다.

당연히 기준이 될 만한 평가 방법도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려 4년 가까이 지난 일이기에 너무도 오래 전의 기준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력 측정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주긴 했지만 초기에는 던전을 직접 공략하는 실전평가도 없었고, 그저 같은 등급의 헌터들의 판단이 평가의 전부였다.

동급 혹은 상위 헌터와의 대련, 그리고 실전 평가까지 다각도로 이루어지는 지금과는 상당부분이 달랐기 때문에 당시의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흠... 그 부분은 차차 논의하기로 하고, 그보다는 이번 승급이 헌터들의 관심을 돌릴 방법이 되지 않겠습니까?”

협회장이 다소 음흉한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봤다.

최근, 몇몇 던전에서 이상 징후가 발생했다.

백 마리가 넘는 리자드맨이 나타나면서 D급 던전 수준을 넘어섰던 < 난폭한 리자드맨 군락 >과 같은 일이 곳곳에서 일어난 것이다.

당연히 던전의 등급을 매기는 등, 관리 책임이 있는 협회에 헌터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협회의 모든 업무를 각 길드로 이관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가뜩이나 길드로 인해 좁았던 입지가 더 좁아질 대로 좁아져 이제는 설 자리가 없을 정도까지 돼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협회 측은 지금껏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이상 징후의 원인도 찾아내지 못한 상황이다. 섣불리 입을 열었다가는 더 큰 비난을 직면하게 될 수 있었다.

협회를 이끌어가는 협회장의 입장에서 작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었고, 헌터들의 비난서린 관심을 돌릴 무언가가 필요했다.

“....”

다들 협회장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은 하고 있었으나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괜히 먼저 입을 열었다가 일이 잘못될 경우, 책임이라는 독박을 쓰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조용히 있다가 대세에 묻어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으음...”

하나같이 몸을 사리는 모습에 협회장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협회의 존폐가 위협받고 있는데, 다들 제 몸만 사리고 있으니, 화를 참을 수 없을 지경이다.

“손민아 헌터 때도 그렇고, 김태빈 헌터가 E급에 불과하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허나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협회장이 폭발하기 직전, 누군가 용기를 냈다.

헌터 협회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신혜은 헌터.

그녀는 협회에 등록된 모든 헌터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었고, 김태빈에 대해서 이곳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독박을 쓸 수도 있지만 일이 잘 풀리면 그 공로를 독차지 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그녀는 과감히 입을 열었다.

“몇몇 분은 알고 계실 수도 있겠지만 김태빈 헌터는 얼마 전, 마력증후군에서 깨어난 사람입니다.

단순히 하급 헌터의 승급이 아닌, 2년 만에 마력증후군에서 깨어난 기적의 인물의 승급. 이를 잘 엮는 다면 충분히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거 괜찮은 방법이군요.”

“마력증후군과 승급을 연결시키면 충분히 관심을 끌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이라고 아무 생각이 없어서 입을 닫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김태빈의 이야기가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저 혹시 모를 책임을 피하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

신혜은이 먼저 입을 열자, 너나 할 것 없이 맞장구를 치며 그녀의 의견에 동조했다.

“흐음. 그래요. 그럼 일단 마력을 비롯한 능력치 측정부터 실시하세요. 적당히.”

협회장이 태빈의 승급과 관련한 지시를 내렸다.

기본적인 마력과 능력치가 충족되지 못하면, 승급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협회장은 끝에 ‘적당히’라는 말을 덧붙였다. 혹시나 기준치에 약간 미치지 못하도록 합격시키라는 의미였다. 협회장 또한 이를 정확히 언급하지 않으면서 책임에서 살짝 벗어난 것이다.

기준에 미달하는 헌터가 상위등급을 부여받을 경우, 활동을 함에 있어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협회장에게는 일개 헌터의 안위보다 헌터들의 관심을 돌리는 게 더 중요했다.

이렇게 태빈이 모르는 사이에 음모 비슷한 일이 자행되고 있었다.

***

꽤나 길었던 기다림을 뒤로하고, 나는 우선 마력 측정을 받았다.

측정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한 명의 측정관이 내 마력을 직접 확인, 기준치를 통과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럼 측정기에 손을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측정기.

마나석을 기반으로 체내의 마나를 측정하는 도구다.

처음 해보는 것이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동그란 구체모양의 측정기에 손을 올려놓고 기운을 일으키면 끝이었다.

“네.”

나는 곧장 측정기에 손을 올려놓았다.

측정기의 마나석과 내 마나가 공명했고, 수치화됐다.

간신히 기준치를 달성한 마력은 걱정이 없었다.

“전투력 측정은 현재 준비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진 전투력 측정.

체내의 마력을 실제 전투에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측정이다.

나는 전투력 측정 또한 무난히 통과했다.

아니 측정관은 무슨 생각인지, 제대로 된 측정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 내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 제대로 보기나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음... 그런데... 짐꾼으로만 활동한 기록이 있을 뿐, 던전 공략 경험이 없네요.”

실제로 내가 공략에 참여한 것은 E급 시험 때를 제외하면 짐꾼 활동뿐이다.

리자드맨과의 전투 경험이 있긴 했지만 강혁과의 약속도 있고, 나는 능력의 삼할을 숨기라는 무림의 명언을 따랐다.

무인에게 있어 드러나지 않은 삼할은 위기의 순간, 구명줄이 되어 줄 수도 있고, 생사대적을 만났을 때, 비장의 수가 될 수도 있다.

무인의 경우도 그럴 진데, 살수의 경우는 더 하다. 삼할을 넘어 오할, 아니 그 이상을 숨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살수가 전력을 드러내는 경우는 살행을 행하는 그 찰나의 순간뿐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

고작 승급을 위한 측정에서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네. 뭐 문제 될 거라도 있습니까?”

나는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측정관을 바라봤다.

어차피 등급은 마력과 전투력을 기준으로 매겨지기에 던전 공략 여부는 상관이 없었다.

문제를 삼을 만한 여지는 없었다.

“아닙니다.”

측정관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준치에 근소하게 미치지 못하는 전투력도 넘어간 마당에 공략 경험을 가지고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애초에 사소한 부분은 문제 삼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이상, 문제가 되더라도 문제 삼을 생각도 없었다.

왜 그런 지시가 내려진 건지는 의문이었지만.

“능력 부분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마력은 기준선을 충족했군요. 간단한 승인 절차 뒤에 D급 헌터 자격증이 발급될 겁니다.”

측정관은 그 말을 끝으로 평가를 마쳤다.

기준에 미달하는 능력이나, 공략 경험이 없는 부분은 윗선에서 알아서 판단할 일이었다.

***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협회로부터 D급 헌터 자격증이 발급됐다는 연락이 왔다.

기대 이상으로 빠른 일처리였다.

문제는,

“죄송합니다. 저희 측도 김태빈 헌터의 승급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끌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내 승급이 시간에 따라 꺼져가던 나에 대한 관심에 다시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헌터 자격증이 발급되기도 전, 그 보다 빠르게 소문이 퍼져나갔고, 언론이라 불리는 정보단체는 의뢰금이 아닌, 오로지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살기에 세간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생각하면 앞뒤 가리지 않았다.

< 마력증후군에서 깨어난 김태빈. D급 헌터로 승급. >

< 김태빈 헌터. 한국의 네 번째, 승급. >

< 연이은 기적. 마력증후군에서 승급까지. >

곧장 내 의사는 상관없이 수백 개의 인터넷 기사가 쏟아졌다. 신문과 뉴스에서도 시간을 할애해 중요하게 다룰 정도로 지대한 관심이었다.

게다가 거의 사라졌다 기자들이 또 다시 한 마디 인터뷰라도 따내기 위해 집 앞으로 몰려들었다.

“후...”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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