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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수다-12화 (12/150)

# 12

12화. 결심(2).

“역시...”

역시나 수백 개의 던전 중에 E급 헌터의 공략 시도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애초에 E급에게는 던전 공략에 대한 허가자체가 잘 떨어지지 않는 탓이다.

더 확실히 공략 가능한 D급 이상의 헌터들이 즐비한데, 굳이 E급 헌터에게 공략을 맡길 필요가 없었다.

< E급 짐꾼 한 자리 구합니다. >

< E급 세 명. 짐꾼 팀입니다. C급 던전 짐꾼 경험 있습니다. >

E급 헌터들은 고작해야 짐꾼 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는 실정이었다.

간혹 공략대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인맥 등의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래서야 혼자는 결코 불가능하고, 팀을 이룬다고 해도 공략을 시도하는 것은 어려워보였다.

능력의 한계를 지어놓은 등급이 문제였다.

헌터 자격증을 습득하며 헌터가 되긴 했지만 제대로 된 헌터로 취급받지 못하는 E급인 탓에 제약이 많았다.

정식 살수가 되기 전, 막 살수 훈련이 끝나고 첫 살인을 했을 때와 비슷했다.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이 아니게 됐음에도 살수라 불리지도 못했던, 그저 살인자에 불과했던 때와 말이다.

물론 헌터는 살인자와 다르지만.

***

“뭐하냐?”

형이 한참 헌터넷을 살피던 나를 찾아왔다.

내 병원비를 위해 번듯한 직장을 포기하고 목숨을 건 짐꾼 생활을 선택한 부모님과 함께 더 없이 고마운 존재.

내가 김태빈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의 헌신은 고마웠고 갚아야할 빚이다.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었어. 왜?”

“내일 짐꾼 한 번 해볼래? 헌터로 활동하기 전에 경험해보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형은 일반인임에도 꾸준히 짐꾼으로 활동해 왔다.

그러고 보니, 왜 형을 배제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김시연과 장만식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형인데.

짐꾼.

변화 이후, 헌터와 같이 생겨난 직업 중 하나로, 어감이 썩 좋지는 않지만 그들이 하는 일을 이만큼 잘 표현한 단어도 없다.

짐꾼의 역할이 헌터들이 던전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처리한 몬스터의 사체를 해체하고 마나석 등의 부산물을 수거해 짊어지고 뒤따르는 것이니 말이다.

특히, 몬스터의 심장에 박혀있는 마나석을 채취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마나석은 스님들의 몸에서 나오는 사리와 같이, 몬스터가 품고 있는 마나가 결정화 된 것으로, 던전의 등장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삶을 크게 변화시킨 물건이었다.

마나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발견한 인류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지금은 헌터들의 방어구와 무기에서부터, 자동차의 배터리나 발전소에서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헌터의 등급과 같이 S등급부터 E등급까지, 그 크기와 담겨 있는 마나의 양에 따라 값어치가 천차만별인데, 가장 값어치가 떨어지는 손톱만한 크기의 E급이 개당 10만원에 달하는 만큼, 몬스터의 부산물과 더불어 헌터들이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물론 짐꾼의 수입원은 아니다. 짐꾼은 던전의 등급에 따라 정해진 수당을 받을 뿐이다.

일반 직장인의 급여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목숨을 걸고 하는 것에 비하면, 무척이나 값싼.

“그래.”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넷이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긴 하지만 백문불여일견이다.

오직 시험만을 위해 운용되는 < 심약한 고블린 던전 >이 아닌, 다른 던전들을 경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형이 짐꾼 생활을 하며 보고 들은 것도 알 수 있을 테고 말이다.

“그래? 그럼 내일 아홉시에 같이 나가자.”

형은 내 수락에 살짝 상기된 얼굴로 내 방을 나섰다.

오랜 시간 함께 하지 못했던 동생이다. 어쩌면 다시는 깨어난 동생을 보지 못했을 지도 몰랐다.

그랬기에 형은 동생인 나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

다음 날,

나는 형과 함께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우리가 짐꾼으로 참여하게 된 던전은 D급으로, < 난폭한 리자드맨 군락 >이다.

리자드 맨은 도마뱀 형상을 한 이족보행 몬스터로, 인간을 보면 앞뒤재지 않고 공격해 올 정도로 난폭한 몬스터였다.

인간을 공격하는 것은 다른 몬스터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리자드맨과 같이 자신의 생사도 도외시한 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놈들은 드물었다.

던전 앞에 도착하니, 우리 형제를 제외한 세 명이 먼저 도착해있었다.

셋 모두 짐꾼이었고, 일반인이었다.

형과 마찬가지로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건.

아직 < 난폭한 리자드맨 군락 > 공략을 위한 헌터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말씀드렸던 제 동생입니다. 그래도 E급 헌터이니, 방해는 되지 않을 겁니다.”

형은 미리 도착해있는 짐꾼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견학 비슷한 개념으로 나를 끼워 넣은 듯했다.

“안녕하십니까. 김태빈이라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형이 마련한 자리였기 때문에 예의를 갖췄다.

“이재성이라고 하네. 마력증후군을 앓았다지. 이렇게 쾌차해서 다행이야.”

셋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중년 사내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 사람 좋은 미소에 위화감이 들었지만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반가워. 태성이한테, 많이 듣기도 했고, 최근 뉴스고 신문이고 매일같이 소식을 접해서 인지, 더 반갑네.”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른 둘도 차례로 인사를 건네 왔다.

셋 모두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짐꾼들 사이에서 형의 평판이 좋은 덕분이었다.

“인사는 이만하면 됐고, 곧 헌터분들이 오실 테니, 일단 준비부터 하지.”

나는 중년 사내의 지시에 따라 공략을 준비했다.

듣던 것과 달리, 짐꾼이 하는 일은 던전 내부에서 몬스터의 사체를 해체하고, 부산물과 마나석을 챙기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짐꾼은 공략 전, 비상식량과 물품을 챙기는 등, 던전 공략에 필요한 잡다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잡부에 가까웠다.

“E급이라도 역시 헌터는 헌터네.”

“태성이 동생 덕분에 오늘은 좀 편하게 가겠어.”

짐꾼 아저씨들이 무거운 짐을 번쩍번쩍 들어 옮기는 나를 보며 기꺼워했다.

공략전에 챙겨야하는 물품도 물품이지만, 공략과정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부산물과 마나석이 만만치 않다. 평소에는 이를 네 명의 짐꾼이 모두 책임져야 했기에 꽤나 고된 노동을 요구했다.

그런데, 나의 합류로 자신들이 해야 할 노동력이 확 줄어들 것 같았으니, 기껍지 않을 리 없었다.

짐꾼들이 공략에 필요한 준비를 마치자, 헌터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총 열 셋.

스톰이라는 팀명을 가진 팀으로, 형의 말로는 E급, D급 던전을 공략하는 팀들 가운데 꽤나 유명한 팀 중 하나라고 했다.

모든 헌터들이 도착하자, 차례로 < 난폭한 리자드맨 군락 >에 진입을 시작했다.

짐꾼들은 헌터들 뒤에, 나는 가장 마지막으로 던전에 발을 들였다.

***

습한 공기와 함께 늪지가 나를 맞이했다.

“으... 리자드맨 군락은 언제나 짜증나는 군.”

“이러니, 화종 팀이 실패했지.”

헌터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서 공략에 실패한 팀이 있었기에 이번 던전에 나오는 몬스터가 리자드맨이라는 것과 환경이 늪지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아는 것과 직접 겪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

깊이가 깊지 않아 빠진다 해도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늪지의 물이 기본적으로 발목까지 잠겨오는데다 질척거리는 개흙이 걸음마다 발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 상당히 거슬렸다.

“뒤에 조심해요.”

C급 셋과 D급 열로 이루어진 스톰 팀의 리더 강혁이 짐꾼들을 향해 당부했다.

늪이 끌어당기는 힘은 일반인이 빠져나오기 힘든 수준이다.

지금이야 늪에 발이 묶인다고 해도 꺼내줄 수 있지만 리자드맨과 조우하고 나면, 짐꾼에게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헌터들이 앞서 나가며 그나마 발디딜만한 곳을 따라 이동했고, 짐꾼들이 그 뒤를 따랐다.

스톰 팀의 헌터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지날 수 있다하더라도, 조금 더 안전하게 움직이며 뒤에 있는 짐꾼들까지 배려했다.

“D급 던전이 위험하긴 해도, 이래서 스톰 팀이랑 함께하면 편하다니까.”

“그러니까요. 누가 우리 짐꾼들까지 신경 써 주겠어요.”

짐꾼들은 사소한 배려에 스톰 팀 헌터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사실 짐꾼들이 헌터들이 해야 할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해주는 만큼, 신경 써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배려도 짐꾼을 노예와 다름없이 여기는 대부분의 다른 헌터들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그들 틈에서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마음먹고 보법을 밟으면 늪지 따위에 애먹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쓸데없이 힘을 빼며 눈에 띄는 행동을 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짐꾼들과 똑같이 푹푹 빠지는 늪에 고생하며 뒤따르는 나는 영락없는 한 명의 짐꾼이 되어 그들 틈에 녹아 있었다.

***

한창 걸음을 옮기던 헌터들이 멈춰 섰다.

멀찍이 서른 마리가량의 리자드맨 무리가 어슬렁거리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편이다. 놈들을 먼저 발견했으니.

D급 헌터보다는 못하지만 E급 헌터를 상회하는 전투력을 가진 리자드맨이 서른 마리, 과연 D급 던전이라 할만 했다.

“뒤로 가자.”

헌터들이 무기를 꺼내들자, 짐꾼들은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났다.

기본적으로 던전에서는 스스로 챙겨야 했다.

아무리 스톰 팀의 헌터들이 드물게 짐꾼을 배려한다고는 하지만 전투 중에까지 챙겨주지는 않는다.

괜히 가까이 있다가는 전투에 휩쓸려 눈먼 칼이라도 맞을 수도 있으니, 알아서 떨어져 있는 게 상책이었다.

“형. 이쪽으로 와.”

나는 헌터들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 만일을 대비해 검을 꺼내들고 형을 곁으로 불렀다.

다른 짐꾼들도 제 일신을 지키기 위한 호신 무기 하나씩은 지니고 있었기에 검을 든 내 모습이 이상하진 않았다.

그 사이, 진형을 갖추고 전투 준비를 끝낸 헌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활이나 총을 꺼내들고 리자드맨 무리를 겨냥했다.

스톰 팀에 원거리 계열로 각성한 헌터는 셋뿐이지만 근접 계열의 헌터라도 원거리 무기는 기본이었다.

근접 계열의 헌터들이 들고 있는 총은 통칭 마나 건으로, 마나석을 가공한 총알을 사용하는 대 몬스터 전용 화기다.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제대로 된 마력의 운용 없이는 사용할 수 없기에 E급 시험에서는 볼 수 없었다.

고작 D급 헌터들이 일당백의 용사들이 아닌 만큼, 근접전이 벌어지기 전에 최대한 많은 타격을 입히기 위함이다.

“쏴라!”

세 대의 화살과 열 발의 총탄이 리자드맨 무리에게로 쏘아졌다.

일격 일살의 공격은 아니었으나, 십여 대의 화살과 총탄 모두가 정확히 리자드맨에게 틀어 박혔다.

백발백중!

개중 두 개의 화살은 적중 한 순간, 폭발하며 리자드맨을 그대로 불태워 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원거리 무기로 이뤄진 공격에 다섯의 리자드맨이 고혼이 되어 늪지에 머리를 처박았다.

캬라락!!

그제야 헌터들을 발견한 리자드맨은 < 난폭한 리자드맨 군락 >이라는 던전 명에 걸맞게 흉포한 괴성을 내지르며 미친 듯 달려들었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늪지를 가로지르는 도마뱀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역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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