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살수다-9화 (9/150)

# 9

9화. 실전평가(3).

“같이 가요.”

김시연이 다급히 내 뒤를 좇았다.

본대에 남아있든, 정찰을 하든 불편한 건 매한가지지만 그나마 태빈의 곁이 나았다.

무관심하긴 하지만 적어도 적의는 없었으니까.

망설이던 장만식도 같은 마음으로 따라왔다.

“괜찮을까요?”

김시연이 태빈을 바라봤다.

무려 서른 마리의 고블린이 매복하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아무리 놈들의 매복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해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조용히.”

나는 온 신경을 전방에 집중한 채,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고, 내 발걸음은 자그마한 소리조차 만들어 내지 않았다.

내공이 있었다면, 기감을 이용하면 되겠지만 지금은 오로지 육체의 감각에만 의존해야 했다. 때문에 어떠한 방해도 섞여 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뒤에 따라붙은 둘이 문제였다.

나름 조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풀벌레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숲속에서 둘이 만들어내는 소음은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게 느껴졌다.

역시 둘은 짐밖에 되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 떨쳐 버렸어야 했다.

“...둘은 여기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놈들과의 거리가 100보 정도로 좁혀졌을 때, 수풀이 떨리기 시작했다.

고블린들도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아직 공격 범위 내로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주변의 수풀이 흔들릴 정도로 성급히 부산을 떨어대는 꼴이 한심했다. 저래서야 매복을 하고 있던 의미가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러나 나는 금방 생각을 고쳐먹어야했다.

내가 아닌 다른 응시생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고블린들의 매복은 훌륭했다.

위치를 알고 있음에도, 흔들리는 수풀을 보고 있으면서도, 장만식이 멍청한 얼굴로 내 지시의 의미를 묻고 있었으니 말이다.

“방해되니까.”

나는 귀찮게 설명하지 않았다.

내 단호함에 둘이 상처받은 얼굴로 바라봤지만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같은 응시생이 아니었다면,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감정에 일일이 대꾸할 이유는 없었다.

“네?!”

“방해된다니...”

내가 은연중에 둘을 무시하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짐 취급을 한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그래도 공략대장 자리에 지원했을 만큼,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둘은 충격으로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뭐라 반박을 하고 싶은데 마땅히 할 말이 없다는 사실이 둘을 더 괴롭게 만들었다.

실제로 같은 정찰조로 편성됐지만 지금까지 둘이 한 일은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온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차라리 잘됐다.

굳어버린 둘을 놔두고 나는 은밀하게 걸음을 옮겼다.

수풀이 놈들에게 훌륭한 위장막이 되어주었지만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커져가는 소리에 놈들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듯 잡혔다.

놈들은 갑자기 멈춰선 김시연과 장만식을 때문에, 분명 아까까지 둘과 같이 있었던 인간 하나가 보이지 않아 당황했다.

자신들의 매복이 들킨 것은 아닌지, 지금이라도 기습을 감행해야 하는 게 아닌지, 설왕설래하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캬르르르.

놈들은 선택은 공격이었다.

하나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봐야 고작 인간 셋뿐이다. 서른이나 되는 자신들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상대였다.

서른 마리의 고블린이 일제히 수풀 속에서 튀어나와 김시연과 장만식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습!”

전방에서 밀려오는 고블린 떼에 김시연과 장만식이 소리치며, 각자 검과 도끼를 들고 놈들을 막아섰다.

약체로 평가되긴 하지만 고블린은 제법 날쌘 몬스터다. 괜히 본대와 합류하겠다고 등을 보였다가는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당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본대도 고블린들의 습격을 목격하고 다급히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차대영이 정찰조 셋을 싫어하더라도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낸 이상,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쁘지 않군.’

고블린들이 내가 생각한대로 움직인 것은 아니었지만 의외로 괜찮은 상황이 연출됐다.

김시연과 장만식에 대한 나의 평가도 상향됐다. 짐이라고만 여겼던 둘은 훌륭한 미끼가 되어 주었다.

고블린들은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둘을 향해 곧장 달려 나갔고, 나는 은밀히 놈들의 뒤에 붙었다.

매복의 위치와 숫자, 모든 정보를 전달해줬음에도 응시생들이 마음먹고 숨어있는 고블린의 매복을 찾지 못했듯, 놈들은 완벽히 몸을 숨긴 내 존재를 전혀 눈치 못했다.

캬르륵.

내 손에 있던 검이 가장 후미에서 달리던 고블린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목덜미를 꿰뚫린 놈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가래 끓는 신음만 흘리다 죽음을 맞이했다.

잔뜩 흥분한 채, 눈에 보이는 김시연과 장만식을 향해 달려가는 놈들의 뒤를 노리는 것은 내가 지금껏 행해왔던 어떤 살행보다 쉬웠다.

나는 목을 꿰뚫고, 베어내고, 폐를 찔러 최대한 조용하게 놈들의 수를 줄여나갔다.

100보.

고블린들이 초록색 짧은 다리를 바삐 놀리며 고작 그 거리를 달려 나가는 사이, 나는 여덟 마리나 되는 고블린의 숨통을 끊어 놓을 수 있었다.

“저게 어딜 봐서 E급이냐고...”

“C급 헌터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이 중얼거렸다.

괴성을 질러대고, 흉흉한 기세를 숨김없이 내뿜으며 달려드는 고블린들을 보며 잔뜩 긴장했던 김시연과 장만식이다.

그러나 잠깐 사이에 긴장감은 씻은 듯 사라졌고, 한 사내에 대한 경이만이 남았다.

희끗희끗 태빈의 신영이 나타날 때마다 후미에서 픽픽 쓰러지는 고블린을 보고 있자니, 같은 E급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내가 왼쪽!”

“오른쪽 맡을 게요.”

그렇다고 마냥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수 마리의 고블린이 태빈의 손에 의해 쓰러졌지만 여전히 스무 마리가 넘게 남아 있었고, 그들의 적의는 명백히 자신들을 향해 있었다.

장만식이 거대한 도끼를 쥔 손에 힘을 주며 한 걸음 내딛었고, 김시연도 질 수 없다는 듯 검을 치켜들었다.

스무 마리의 고블린들이 부담스럽고, 두렵긴 하지만 한 번의 격돌만 견뎌내면 본대가 도착한다.

그 정도도 해내지 못한다면, 정말 방해꾼밖에 되지 않기에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이를 악물었다.

푸슉. 푸슉.

둘을 향해 달려들던 고블린들이 일제히 입에 대롱을 물었고, 작은 침들이 일제히 쏘아졌다.

고블린의 주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마비독이 발라져 있는 독침이었다.

“젠장! 피해!”

갑자기 쏘아진 독침 세례에 김시연이 아연실색하며 바닥을 굴렀다.

놈들이 독침을 사용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달려오는 상태에서까지 쏘아댈 줄을 몰랐다. 때문에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러대고 나서야 간신히 독침을 피해낼 수 있었다.

“큭.”

“괜찮아요?”

“견딜만합니다.”

빠르게 바닥을 굴러 독침을 피해낸 김시연과 달리, 덩치가 큰 만큼, 좋은 과녁이었던 장만식은 독침을 전부 피해내진 못했다. 누런빛을 띄고 있는 독침 두 개가 장만식의 팔뚝과 허리춤에 박혀 있었다.

그래도 곧바로 마비가 오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장만식이 워낙 터프한 덕분인지, 아직은 그럭저럭 견딜 만 해보였다.

캬륵.

한 차례 독침 세례가 쏟아진 뒤, 곧바로 격돌이 시작됐고, 고블린들이 녹슨 단검이나 조잡한 꼬챙이 수준의 창 등으로 두 사람을 공격해왔다.

태빈에게 줄곧 무시당하긴 했지만 김시연은 응시생들 중, 유일하게 교관에게 한방 먹일 정도로 뛰어난 응시생이다. 그녀는 검을 수족과 같이 휘두르며 어렵지 않게 고블린들을 상대해냈다.

장만식 또한 마비독에 당해 한쪽 팔의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못했지만 거대한 도끼를 넓게 휘둘러 고블린들의 접근을 불허하며 수비를 굳건히 했다.

“놈들을 죽여라!”

두 사람이 제 자리를 지키는 사이, 본대가 도착했다.

그리고 차대영의 명령과 함께 고블린들은 활약에 목말라 있는 응시생들의 손에 의해 쓸려 나갔다.

그 과정에서 내 손에 죽은 고블린은 열셋.

서른의 고블린들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수가 내 손에 명을 달리했다.

그로 인해 응시생들 가운데, 절반가량은 아직 손맛도 보지 못했음에도 첫 번째 전투가 끝이 났다.

***

고블린의 기습으로 시작된 전투는 응시생들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살짝 긁힌 정도의 경미한 부상자만 있을 뿐, 사망은커녕 중상자도 없었다.

응시생들이 피해 없이 전투를 치러낸 것은 반길만한 일이었지만 평가를 내려야 하는 교관들은 그로 인해 골머리를 앓아야했다.

이론은 빠삭하더라도 실전을 처음 겪는 응시생들이다. 적당히 당황도 하고, 위기도 맞이해야 평가를 내릴 텐데, 그러한 과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태빈의 탓이었다.

C급도 식별하기 어려운 거리에서부터 놈들의 매복을 미리 발견해냈고, 단신으로 놈들의 후미를 완전히 궤멸시켜버렸다.

남은 것은 전후방으로 공격받으며 혼란에 빠진 오합지졸의 고블린들 뿐,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할 리 없었다.

그나마 고블린을 선두에서 막아낸 김시연이나 장만식의 경우에만 정찰조 임무 수행과 본대가 합류하기 전까지 십 수 마리의 고블린을 상대로 보여준 것이 있었기에 간신히 평가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팀장님.”

건식은 태빈으로 인해 초래된 작금의 상황이 자신 탓인 양 눈치를 봤다.

아무래도 자신이 관찰하던 응시생이었으니,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깨져도 덜 깨질 테니.

“크크. 오랜만에 재밌는 놈이 나왔군.”

그러나 팀장은 건식의 우려와는 다르게 오히려 웃음을 터트렸다.

태빈은 스스로 헌터로서 자각도 없고, 향상심도 없는 여타 E급들과는 달랐다.

말 그대로 재미있는 놈이다. E급 시험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오로지 헌터가 됐을 경우, 받게 되는 혜택을 취하기 위해 헌터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모이는 시험이 바로 E급 헌터 시험이다.

남자들은 군 입대를 대신한 대체복부를 위해서, 여자들은 길드나 헌터 협회 등의 관련 업계 취직에 필요한 스펙을 위해 보는.

헌터계에서도 이러한 E급 헌터에 대한 말이 많은 상황이지만 관련 업무의 인력부족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목숨 바쳐 몬스터들과 싸우는 D급 이상의 헌터들은 이들을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기도 했고.

교관부터 팀장까지, 헌터 짬밥이 몇 개인데 모를까.

태빈은 고작 E급으로 만족할 놈이 아니다. 아무리 헌터의 등급이 고착화 되어있다고 해도, 포기할 놈이 아닌 것이다.

간혹 그런 놈들이 있었고, 또 개중에서도 간혹 등급을 올리는 놈들이 있었기에 오랜만에 흥미가 돋았다.

“김태빈 응시생 합격처리하고, 평가 계속 진행하도록.”

그럼에도 팀장은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려 본분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아쉽지만 잠시 호기심을 넣어 두기로 했다. 호기심으로 인해 직장을 잃을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러나 시선만은 태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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