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살수다-8화 (8/150)

# 8

8화. 실전평가(2).

“언제?!”

두 사람의 눈에 놀람의 빛이 서렸다.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며 나아가는 줄 알았는데, 언제 함정까지 해체해 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함정이 설치된 지역에 들어선지, 제법 됐음에도 자신들은 함정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기습도 조심해야 하는데...”

자존심이 상한 김시연이 작게 중얼거렸다.

함정을 발견하고 해체하는 것과 기습은 별개다. 기습 포인트가 가까워진 만큼, 그녀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원한다면, 따로 행동해도 좋습니다.”

내 행동에 대한 거듭된 반발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차피 함께 다녀봐야 짐밖에 되지 않을 둘이다. 행동에 방해를 받을 바에는 혼자가 편했다.

“그건!...”

그제야 김시연이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말마따나 기습이 있을 지도 모른다.

자중지란으로 전력을 반감시키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었다.

“후...”

김시연이 한숨을 한 번 내 쉬고는 조용히 내 뒤를 좇았다.

장만식도 마찬가지로, 더 이상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

건식은 정찰조 셋에게 따라붙을 것을 명받았다.

정찰이 위험한 만큼, 지켜보는 교관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기에 모두가 내켜하지 않는 임무였다.

그러나 건식은 흔쾌히 임무에 나섰다.

우연으로 치부하긴 했지만 시선을 마주쳤다는 느낌을 준 응시생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정찰조를 관찰하는 내내, 건식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게 E급이라고...?”

나무 위에서 세 사람을 살피고 있던 건식이 중얼거렸다.

의식하고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놀라서, 너무나 큰 놀라움에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이었다.

태빈의 정찰 능력은 C급 헌터인 건식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함정까지 찾아내서 해체하고 있을 정도니,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설마...?”

문득, 태빈과 눈이 마주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조금 전에는 그저 우연이라 여겼다. 하지만 태빈의 능력을 확인한 지금은 결코 우연이라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거칠 것 없이 걸음을 옮기면서 단 하나의 함정도 놓치지 않고 있는 태빈이다.

여전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편에 혹시나 하는 의심이 생겨났다.

“미친...”

그리고 의심은 오래지 않아 확신으로 바뀌었다.

자신도 식별하기 어려운 거리에 매복해 있는 고블린 무리를 태빈이 정확히 찾아낸 것이다.

***

거침없이 나아가던 정찰조의 움직임은 내 걸음이 멈춤과 동시에 멈춰 섰다.

“뭐죠?”

김시연은 갑작스레 멈춰 선 내 행동에 의문을 표하는 동시에 경계심을 높였다.

그녀가 잠깐이나마 같이 행동하며 살펴본 김태빈이라는 사내는 불필요한 행동은 결코 하지 않는 사람이다.

지금 멈춰선 것도 틀림없이 그에 따른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매복입니다.”

내 말에 그녀가 놀란 눈으로 나와 전방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우거진 수풀 뿐, 고블린의 ‘고’자도 보이지 않았다.

“전방 150보. 수는 약 서른.”

내가 간략한 설명을 덧붙였다.

애초에 삼류 무인에도 미치지 못하는 능력을 지닌 응시생들에게 기대는 없었다.

지능이 떨어지는 몬스터 치고 제법 잘 은신해 있으니 발견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안 보이는데...”

위치를 말해줬음에도 김시연이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여전히 고블린은 보이지 않았다.

눈 뜬 장님이 된 기분이었다.

“알겠어요.”

위치를 말해줬음에도 여전히 보이진 않았지만 김시연은 태빈의 말을 믿었다.

처음에는 불만만 가득했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태빈의 능력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수십 개의 함정을 당연한 듯 찾아내고 해체해내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오히려 같은 E급이 맞긴 한 건지, C급 혹은 B급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비수로 찌르는 듯 차가운 말투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되지만 그의 능력은 진짜였고, 매복 또한 확실할 것이다.

“어떻게 할 겁니까?”

여전히 놈들의 매복을 발견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둘을 향해 물었다.

“일단 본대에 알리고, 기다리죠. 본대엔 제가 다녀올게요.”

고작 셋이서 서른 마리나 되는 고블린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때문에 김시연은 본대를 기다릴 것을 제안했다.

“알겠습니다.”

나 또한 그녀의 제안에 수긍했다.

고블린 서른 마리는 나에게도 꽤나 위협적인 숫자다. 하물며 짐도 두 개나 달려있는 상태다. 둘의 안위를 책임질 것도 아닌데,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김시연은 왔던 길을 되짚어 본대로 향했고, 나는 장만식과 자리에 남아 놈들의 동태를 살폈다.

장만식은 여전히 놈들을 찾지 못해 멀뚱멀뚱 서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

본대는 태빈이 함정을 해체해 잘 닦아 놓은 길을 편히 따라왔다.

편하게 이동하고 있음에도 공략대장인 차대영의 심기는 불편했다.

태빈과 시연, 그리고 장만식까지.

자신에게 거슬린 셋이 죽기를 바랄 정도로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위험한 상황에 빠지고, 이왕이면 불합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는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로 셋을 가장 위험한 정찰조로 묶어 편성했는데, 그들이 임무를 너무 잘 수행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이대로라면, 그들이 앞으로 있을 전투에서 딱히 활약을 하지 않더라도 합격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그리고 이는 자신이 포함된 본대가 아직 합격하기 위한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했음을 의미했다.

상황을 반전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앞에 고블린 서른 마리정도가 매복해있어요.”

그리고 때마침 김시연이 고블린의 매복을 알려왔다.

차대영의 머리가 맹렬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

“어디에 고블린 무리가 있단 말입니까?”

곧 본대가 태빈과 장만식이 기다리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들 역시, 김시연과 장만식과 마찬가지로 위치를 알려줬음에도 놈들의 매복을 발견하지 못했다.

고블린은 초록 피부를 가진 몬스터다. 수풀에 몸을 숨긴 그들을 발견한 태빈이 이상한 것이지, 다른 응시생들이 이상한 게 아니었다.

“전방 150보 앞에 스무 마리에서 서른 마리 사이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태빈은 아까 김시연에게 했던 것과 같은 말을 반복했다.

뭐 말해준다고 해서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전방에 매복이 있다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역시.

응시생들 중, 단 한 명도 매복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게다가 매복이 있다고 말했음에도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으며 주변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함정 하나 없이 숲을 산책하듯 여기까지 왔으니, 처음 가졌던 경계심이 사라진 탓이었다.

“놈들의 매복지와 주거지가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 정찰조원 분들이 끝까지 임무를 수행해주시기 바랍니다.”

공략대장인 차대영 또한 태빈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태빈을 비롯한 정찰조원들이 매복지에 좀 더 접근해 확실히 해줄 것을 원했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내 입에서 본심이 흘러나왔다.

놈은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매복지에 다가간 자신이 고블린에게 당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 따위 말을 내뱉고 있을 뿐이다.

자신을 정찰조로 편성한 것부터 시작해, 계속되는 뻔히 보이는 수작에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지금껏 모른 체 했지만 이렇게 계속 장난질을 해댄다면, 당해줄 생각도 없었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속을 꿰뚫어보는 듯, 바라보는 눈빛에 뜨끔한 차대영이 언성을 높였다.

사실 차대영은 태빈의 생각대로 긴가민가하는 다른 응시생들과 달리, 매복을 확신했다.

지금까지 지켜본 태빈은 허언을 할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정찰조를 매복지로 밀어 넣으려 하는 것이다.

아무리 놈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본대가 합류할 수초의 시간동안 서른 마리에 달하는 고블린들의 공격에서 무사할 리는 없었다.

만약 정찰을 거부하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좋다.

불합리한 명령이라면 모를까, 방금 전의 명령은 지극히 합당하다.

공략대장의 합당한 명령에 반하는 공략대원?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헌터가 될 수 있을 리 없었다.

“머저리 같은 놈.”

가까이에 적들이 매복해있다고 말해준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았다.

공략대장이란 놈이 떠드는 응시생들을 조용히 시킬 생각은 안하고, 자신이 고작 한 마디 했다고, 곧바로 발끈해서 소리를 지르다니, 멍청해도 이렇게 멍청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자신들의 매복이 들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멍청한 고블린들도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으드득.

차대영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이번에는 확실히 본인의 잘못이었지만 또 한 번 나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차대영이 부서질 듯 이빨을 갈아대며 나를 노려봤다.

그래도 멍청한 놈의 머리가 완전히 장식은 아니었는지, 이번에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공략대장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반복된 경고로 목소리를 잔뜩 죽이긴 했지만 그 안에는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전에는 수모를 당하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은 공략대장이었고, 응시생들에게 명령을 내릴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속으로 더러운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해도, 이를 태빈이 알아차렸다 해도, 겉으로 보이기에 합당한 명령이니 만큼, 태빈에게는 거절할 명분은 없었다.

“봐주는 건 이번까지 만이다.”

온갖 권모술수를 경험해온 나다. 속내가 훤히 드러나는 차대영의 적의는 귀여운 축에 속했다. 적의는 있을지언정, 살의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두 번까지는 참아주기로 했다.

뭐 따지고 보면, 옹졸한 놈에게 대놓고 무안을 준 내 잘못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참겠다는 거지, 당해주겠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검을 든 손에 힘을 주며 고블린들이 매복해있는 곳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