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7화. 실전평가.
나는 응시생들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검들을 하나씩 휘둘러 보다, 검신이 보통 검에 비해 절반가량밖에 되지 않은 짧은 검 두 자루와 투척용으로 사용할 단검 몇 자루를 허리춤에 꽃아 넣었다.
살행의 횟수를 거듭해, 백살(百殺)에 가까워진 뒤로는 장검을 애용했지만 그 이전에는 지금 고른 짧은 검을 사용할 때가 많았다.
작고 날쌘 고블린을 상대해야 하고, 그들의 서식지가 숲임을 고려하면 짧은 검을 드는 게 나았다.
“응시생 여러분. 개인의 합격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합격을 위해서는 아시다시피 던전을 공략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선 각자 역할을 나누고, 공략대의 장을 선발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각자 무기를 챙기고 공략을 준비하는 와중에, 한 응시생이 나서 나머지 응시생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9급으로, 몬스터들 가운데 최약체로 꼽히는 고블린이지만 기본적으로 수십씩 몰려다니며 무리 생활을 하고, 어느 정도 지능까지 가지고 있는 놈들이다.
사냥을 위해 함정을 파고, 기습을 하는 등, 영악한 몬스터이니 만큼, 마구잡이로 무작정 맞부딪쳤다가는 역으로 당할 우려가 있었다.
때문에 일원화된 지휘계통을 확립해, 공략을 해나가는 게 옳았다.
“역할은 기본적으로 탱커와 딜러로 나누면 되지만 공략대장은 누가 맡습니까?”
응시생들도 고블린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역할을 나누자는 말에는 반대가 없었다. 하지만 공략대장을 정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였다.
스무 명이 동시에 던전을 공략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개인평가다.
정확히 제시된 것은 아니지만 평가에 있어 가산점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공략대장의 자리이니 만큼, 욕심을 내지 않는 응시생은 없었다.
“간단하게 공략대장이 되길 원하는 사람들 중에 다수결로 정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처음 의견을 제시한 응시생이 망설임 없이 방법을 제시했다.
다수결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공평한 방법이다. 주어진 시간도 얼마 없는데, 논쟁을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응시생들은 빠르게 수긍했다.
“그럼 공략대장이 되길 원하는 응시생은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가산점을 받을 지도 모르는 공략대장의 자리였지만 의외로 나서는 응시생은 별로 없었다.
나 또한 공략대장 자리에 관심이 없었고, 누가 되든 상관도 없었다. 때문에 뒤에서 그들이 하는 양을 조용히 지켜봤다.
애초에 혼자 움직이는 게 더 편한 나다. 스무 명이 우르르 몰려다녀야 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들을 책임지고 싶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공략대장 선발을 제안했던 차대영을 포함해, 세 명이 앞으로 나섰다.
먼저, 차대영.
처음 나에게 아는 체를 했다 무시당하는 수모를 겪긴 했지만 두꺼운 낯짝으로 교육을 받는 일주일 동안 응시생들 사이에서 제법 영향력을 확보했다. 사람을 다루는데, 익숙한 놈이다.
그리고 장만식.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힘이 좋다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히 내세울 건 없는 응시생이다. 단순히 공략대장으로서 얻게 될, 이익 때문에 지원을 한.
마지막으로 김시연.
나를 제외하고 응시생들 중, 각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여자다.
기준점만 넘으면 크게 중요치 않은 필기시험도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고, 체력도 손에 꼽힐 정도에, 교관과의 대련에서 가장 오래 버티기도 했다.
다수결의 결과에 이변은 없었다. 내가 봤을 때는 김시연이 더 어울렸지만 공략대장은 직접 제안을 할 만큼, 자신의 영향력에 자신이 있었던 차대영으로 결정됐다.
“그럼 응시생 여러분들은 차례대로 던전에 진입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공략대장을 결정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던전 공략을 위한 준비가 끝났다.
시험관의 말과 함께 응시생들이 차례로 던전에 발을 들였다.
나 또한 응시생들 사이에 섞여 던전에 입장했다.
순간, 몸이 한 없이 늘어지며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무의식 세계에서 경험했던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고 짙은 어둠이 한순간 스쳐지나갔다.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나는 완전히 뒤바뀐 환경 속에 놓여 있었다.
***
던전에 들어선 내가 가장 처음 느낀 것은 충만한 기운이었다.
언의 육체를 잃으며 사라진 내공을 되찾고자 했다. 하지만 지구는 평생을 수련해야 간신히 반의 반 갑자도 쌓지 못할 정도로 기운이 희박했다.
그런데, 던전 안은 아니었다.
지구에서는 존재만 간신히 느껴질 뿐, 너무나도 미약했던 기운이 과하다 느껴질 정도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과거의 무공을 되찾을 실마리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무감정한 나를 웃게 만들었다.
김태빈의 몸으로 깨어난 나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놀래라...”
“와아...!”
던전을 처음 경험하는 응시생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갔다.
놀람도 잠시, 몇몇은 날카로운 눈으로 사방을 살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충만한 기운을 느끼면서도, 우선적으로 주위를 살펴 안전을 확인했다.
실전평가라고 하지만 매번 반복되는 시험 장소이니 만큼, 고블린들이 기습을 해오는 장소와 주거지까지 낱낱이 알려져 있는 던전이다.
함정의 위치와 기습 포인트 등 꽤나 많은 정보가 공개되어 있었고, 알려진 대로 입장한 순간에는 위험요소가 없었다.
몇 개의 시선이 응시생들을 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뿐이었다.
“놈들의 기습 포인트와 주거지까지는 대략 삼십분 정도 걸리니, 진형을 정비한 후에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호명하시는 분들은 정찰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다수결로 공략대를 이끌게 된, 차대영이 새로운 경험에 정신이 팔려있는 응시생들을 통솔해 전열을 갖춰나갔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이 정찰 임무를 부여 받았고, 나머지 열일곱이 본대가 됐다.
함정과 기습에 능한 고블린이기에 정찰은 가장 위험한 임무다.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수풀 사이에서 숨겨진 함정을 찾아 해체해야했고, 동시에 어딘가에 매복해 기습을 준비하고 있을 고블린들까지 찾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티내지 않으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차대영이 내 이름을 호명하며 살짝 입 꼬리를 올린 것으로 보아, 일전의 수모에 대한 악감정이 남아 있는 듯했다.
정찰조로 뽑힌 다른 두 명도 장만식과 김시연으로 차대영이 공략대장이 되는데, 방해했던 이들이었다.
“알겠습니다.”
차대영이 나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말던 상관없다.
정찰 또한 상대적으로 위험하다는 거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다.
미리 숙지한 정보에 따르면, 고블린이 설치한 조악한 함정 따위는 어린 아이 장난질 보다 못했고, 응시생들을 관찰하고 있는 교관들의 기척까지 감지해낸 자신에게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않은 고블린의 매복이 통하리라 생각되지도 않았다.
끄덕.
“그러죠.”
다소 불만스럽다고 해도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장만식이 고개를 끄덕였고, 김시연은 짧은 대답으로 차대영의 지시에 수긍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차대영의 눈 밖에 난 세 명의 정찰조가 편성됐다.
***
실전평가라고는 하지만 응시생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C급 헌터가 다섯이나 투입됐다.
건식은 응시생들의 안전을 위해 투입된, 다섯의 헌터 중 하나였다. 그의 임무는 응시생들이 공략을 시작하기 전, 함정의 위치와 고블린들의 매복 장소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함정 수가 대폭 늘었습니다. 놈들의 매복 장소도 전혀 다른 곳으로 바뀌었고요. 공략법을 숙지하고 있을 응시생들이 위험하지 않을까요?”
정찰 결과, 항상 같은 장소에 설치되던 함정이 대폭 늘어났고, 매복 장소도 바뀌었다. 이미 알려진 공략법에 따라 공략을 진행할 응시생들이 위험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일단 진행하도록 하지.”
그러나 상관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래봐야 E급 던전에 고블린들이다. 응시생들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고, 배운 대로 한다면 크게 위험할 것은 없다 판단했다.
“알겠습니다.”
상관의 결정으로 보고를 마친 건식은 응시생들을 살피기 위해 몸을 숨겼다.
드러내놓고 따라다니며 지켜볼 경우, 응시생들은 최악의 사태에 교관들이 도와줄 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테고, 실전평가라는 말이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훗.”
얼마 지나지 않아 응시생들이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변한 환경에 어리바리 하는 게 귀여워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과거 건식 또한 헌터 시험에 응시했던 때가 있었기에 그들의 반응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음?!”
그도 잠시, 건식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고, 한 응시생이 굳어진 그의 시선 속으로 들어왔다.
둘 사이의 거리는 약 200m.
평범한 사람은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거리에서 건식은 응시생의 눈을 똑똑히 보고 있었고, 응시생의 시선 또한 정확히 건식을 향해있었다.
“설마...”
건식은 순간 놀랐지만 이내 자신의 착각이라 치부해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다 우연히 자신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을 뿐이라 여겼다.
고작 E급이 C급 헌터인 자신의 은신을, 무려 200m 거리에서 꿰뚫어 볼 리는 없으니 말이다.
***
나는 양손에 든 검으로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헐크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덩치의 장만식은 그에 걸맞게 커다란 도끼를 쥐고, 김시연은 제법 날이 서있는 검 한 자루를 들고 나를 뒤따랐다.
“아무래도 우리는 공략대장에게 밉보였나 보네요.”
본대와 떨어져 나온 뒤, 김시연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와 차대영 사이에 있었던 일은 응시생 모두가 알고 있었고, 나와 함께 공략대장 자리에 지원했던 둘이 딱 정찰조에 포함됐으니, 셋 모두가 차대영에게 밉보였다는 사실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보기보다 옹졸한 사람인가봅니다. 이렇게 대놓고 저희를 정찰조로 편성하다니.”
장만식이 말을 보탰다.
많은 응시생들의 중심에 있기에 대범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하는 행동을 보니 전혀 아니었다. 이렇게 보복성 인사를 해올 줄은 몰랐다.
“적진입니다. 말을 삼가는 게 좋겠습니다만.”
경각심 없이 말을 내뱉는 두 사람을 보며 한 마디 내뱉은 나는 대답도 듣지 않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못하더니, 이제와 불평을 토로하는 꼴이라니.
내가 보기에는 두 사람도 차대영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봐요!”
김시연이 제 할 말만 하고 자신들을 무시한 채,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나를 붙잡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는 당신은 함정이 있다는 것도 몰라요?! 게다가 고블린들이 매복해 있을 수도 있다고요!”
그녀가 나를 쏘아붙였다.
나를 바라보는 장만식의 얼굴에도 불만이 가득했다.
적진에서 시끄럽게 떠든 자신들도 잘한 것은 없지만 그보다는 무모한 내 행동이 더 잘못됐다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툭. 툭.
나는 발끝을 툭툭 치며 둘의 시선을 돌렸다.
내 발 밑에는 어느새 해체된 덫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다.
과거의 나는 제갈세가의 기관진식도 막지 못했다. 고블린의 함정 따위를 찾아내 해체하는 것은 숨 쉬는 것보다 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