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살수다-6화 (6/150)

# 6

6화. 헌터시험(2).

“큭.”

흐트러짐은 찰나였지만 그 대가는 컸다.

충격에 한걸음 뒤로 물러난 교관이 신음을 흘렸다.

고작 주먹질이다. 전력을 다했다고는 하지만 신체능력의 차이로 고통이 크진 않았다. 하지만 고작 응시생에게, 하물며 E급에게 D급인 자신이 공격을 허용했다는 사실은 교관의 자존심에 치명상을 입혔다.

원래 같으면, 교관에게 공격을 성공시킨 순간에 대련이 끝나야 했다.

E급 헌터시험 응시생이 D급 헌터인 교관에게 한 방 먹였다는 것은 응시생의 전투능력이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나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러나 교관은 그러지 않았다.

상처 입은 자존심 탓도 있었지만 그 보다는 태빈의 일격이 오랜 교관 생활로 잠들어 있던 호승심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교관은 오랜만에 마주한 싸워봄직한 상대에 좀 더 손속을 나누고 싶어졌다.

“제법이구나.”

태빈을 인정한 교관에게 더 이상 방심은 남아있지 않았다.

교관은 더 이상 태빈을 한낱 응시생으로 보지 않았다. 생사대적을 앞에 두고 있는 듯, 전력을 다했다.

교관의 목검이 태빈을 노려왔다.

응시생의 안전을 위해 검의 형태만 띄고 있을 뿐, 날이 뭉툭하고 투박한 목검이었지만 담겨 있는 기세만은 진짜였다.

무림의 무인들과 같은 무리는 담겨 있지 않았지만 체력과 민첩 수치가 20을 훌쩍 넘는 D급 헌터의 공격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힘으로 찍어 누르는 듯 매섭게 휘둘러지는 공격이 태빈을 사방에서 옥죄여왔다.

그러나 태빈은 맞을 듯, 안 맞을 듯 아슬아슬하게 교관의 검을 모조리 피해냈고,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공격하려는 교관과 그것을 모두 피해내는 태빈.

어느새 응시생과 교관의 위치가 바뀌어 있는 듯했다.

‘육참골단.’

처음에는 방심했지만 마음먹고 나를 공격하는 교관에게 빈틈은 찾을 수 없었다.

아니 눈에 보이는 빈틈은 도처에 널려 있었지만 지금의 능력으로는 닿을 수 없는 빈틈들이었다.

나는 이대로는 끝이 없음을 깨닫고,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기 위해 교관의 공격에 그대로 몸을 던졌다.

“헉.”

교관은 더 이상 자신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마주쳐 들어오는 태빈을 보며 잊고 있던 전장의 기억이 떠올랐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태빈의 눈을 마주하니, 놈을 죽이지 않는다면, 자신이 죽을 것만 같았다.

우웅.

마력의 영향으로 푸른빛을 머금은 교관의 검이 길게 늘어지며 반월을 그려냈다.

스킬의 도움을 받은 교관의 검은 완전치는 않지만 어설프게나마 검기를 흉내 내고 있었다.

“흡!”

쏘아지는 반월의 검기를 보는 태빈이 숨을 들이켰다.

지금까지와 같이 단순한 움직임으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검격이었다. 그리고 위험했다.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태빈은 재빨리 보법을 밟았다.

과거 ‘언’을 살왕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살수의 기예 중 하나인 무영보(無影步)가 태빈의 발끝에서 펼쳐졌다.

투둑. 툭. 툭.

그림자가 신체의 움직임을 좇지 못해, 그림자가 사라질 정도로 신묘한 보법이 무영보다.

내공이 뒷받침 되지 않은 탓에, 육체가 다급히 펼치는 보법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근육이 찢어지고 터지며 울부짖었지만 그것 말고는 피할 길이 없었다.

“차경석 교관!”

지켜보고 있던 인솔자 등의 몇몇이 위험을 감지하고 소리쳤지만 반월의 검기는 막을 새도 없이 그대로 태빈의 허리춤을 갈라버렸다.

교관도 인솔자 등의 외침에 뒤늦게 자신이 고작 응시생에게 위협을 느껴 살수를 쓰다니, 후회했지만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었다.

교관이 눈을 질끈 감았다.

상체와 하체가 양단된 태빈의 시체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한순간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 응시생을 죽음으로 몰아 넣어버린 것이다.

“차경석 교관!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하지 않았습니까?!”

뒤늦게 끼어든 인솔자가 노기서린 얼굴로 교관을 다그쳤다.

고작 E급 헌터 시험에서 스킬을 사용하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음이 틀림없었다.

“뻔했다고요?”

인솔자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낸 교관이 되물었다.

큰일이 날 뻔한 게 아니라, 큰일이 났다. 응시생이 죽었을 테니.

그런데, 인솔자는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응시생이 피했기에 망정이지.”

“피했다고요? 어떻게...?”

“아니! 정말 응시생을 죽이기라도 할 생각이었습니까?!”

교관은 자신을 향해 계속해서 소리치는 인솔자를 무시한 채, 멀쩡히 살아있는 태빈을 바라봤다.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옷자락 끝이 살짝 잘려나가긴 했지만 자신의 눈 속에 태빈은 너무 멀쩡했다.

나는 교관의 시선을 느꼈지만 무시했다.

지금은 교관의 의문 따위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육체의 한계를 넘어 무리하게 보법을 펼친 탓에 온 몸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간신히 서있는 게 전부일 정도의 고통이 몰려왔다.

아니. 고통은 아무래도 좋았다.

무영보를 펼치는 순간, 체내의 마나가 반응했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미약한 양이었지만 단전이 굳어 있는 상태임에도 세맥에 흩어져 있는 마나가 움직인 것이다.

그렇기에 무리한 움직임에도 근육이 뒤틀리고 파열되는 것만은 간신히 면할 수 있었다.

“사정상 잠시 쉬었다가 평가를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생각을 정리해나가는 와중에 상황을 수습한 인솔자의 말이 들려왔다.

다행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교관이 응시생을 죽일 뻔했다. 평가를 이어나갈 수 있을 리가 없었고, 1시간가량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대기하고 있던 응시생들에게는 기다림이 길어진 만큼, 불만스러운 일이겠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곧이어 마력을 이용해 나를 공격했던 차경석 교관은 징계를 받게 됐고, 새로운 교관이 남은 응시생들을 평가했다.

엄격한 기준으로 앞서 많은 응시생들이 떨어트린 차경석 교관과 달리, 새로운 교관의 평가는 제법 후했다.

일반인과 큰 차이 없는 E급 헌터시험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교관은 건성건성 평가했고, 덕분에 백 명가량의 응시생들 가운데 스무 명이 실기시험까지 합격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D급 교관이 전력을 다해야 할 정도의 상대였고, 이는 E급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수준은 확실히 넘어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필기시험에 이어 실기시험도 합격했다.

이제 일주일의 교육과정과 실전평가만이 남았다.

“합격자 여러분은 내일부터 일주일간 헌터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게 될 겁니다.”

스무 명의 합격자들은 다음 날부터 일주일 동안 교육과정에 참여해야했다.

사실 진정한 시험은 지금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론이 주가 되는 교육과정은 차치하더라도, 직접 던전을 공략해야 하는 실전평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전은 항상 다를 수밖에 없었고, 몬스터를 처음 마주하는 응시생 대부분이 몸이 굳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해 떨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러한 실전평가까지 잘 치러내고 나서야 온전한 헌터가 될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합격한 스무 명도 온전한 합격생이라 할 수 없었다.

***

다음날,

나를 포함해, 필기와 실기시험에 합격한 스무 명의 응시생들이 교육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교육장으로 향했다.

교육장에는 이미 인원수에 맞춰 각종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었고, 응시생들이 일주일 동안 지낼 숙소 또한 마련되어 있었다.

숙소는 2인 1실로, 나와 같은 방을 쓰게 된 응시생이 눈에 띄게 불편해 했지만 나는 딱히 불편할 게 없었다.

“헌터로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책임감과 마음가짐...”

“헌터가 된 여러분이 주로 상대하게 될, 각 몬스터의 습성과 생리 등에 대해...”

교육 내용은 특별할 게 없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도덕교육을 하듯, 헌터는 일반인들 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약자를 보호하고, 헌터로서 위험에 빠진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것들을 누차 강조했다.

그리고 응시생들이 헌터가 됐을 경우에 상대하게 될, 9~8급 몬스터들에 대한 지식 전달이 주를 이뤘다.

전부 이미 필기시험을 준비하며 한 번쯤 숙지했던 내용이었다.

게다가 E급에 응시한 응시생 대부분이 실제로 헌터로 활동할 생각보다는, 헌터가 됐을 경우에 받게 될 혜택 등을 노리고 헌터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교육열은 낮았다. 대부분이 지루해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나마 응시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듣는 교육은 마법과 검술 등의 과목이었다.

하지만 마법과 검술 등을 심도 있게 배우기에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짧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사실 가르치는 쪽에서도 E급 헌터에게 심도 있는 수준의 마법과 검술 이해를 바라지도 않았다.

“다들 알다시피, 오늘은 응시생여러분들이 그간 교육받은 내용을 토대로 직접 던전을 공략하는 실전평가가 있는 날입니다. 모두 안전에 유의하시고, 좋은 결과 얻으시길 바랍니다.”

모두가 교육과정의 지루함 속에 애타게 기다리던 실전평가 날을 맞이했다.

스무 명의 응시생들의 눈에 앞에 놓인 던전의 모습이 들어왔다.

E급 실기시험 장인 < 심약한 고블린 던전 >.

실제로 본 던전은 평가를 준비하기 위해 영상으로 확인했을 때와는 전해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검붉은 빛을 띠고 있는 던전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쁜 어두운 기운이 느껴졌다.

“응시생 여러분은 하나의 공대가 되어 앞의 던전을 공략하시면 됩니다.”

보통 E급 던전은 E급 헌터 열 명이면, 충분히 공략 가능한 수준이다.

이는 E급 헌터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스무 명의 응시생들이 제 역할만 제대로 해낸다면, 어렵지 않게 공략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 공략을 진행하기에 앞서 한 시간의 준비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응시생 여러분들은 무기부터 필요한 물품을 직접 선택, 각자 필요한 준비를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자신이 할 말을 마친 교관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앞으로 한 시간 동안은 알아서 공략에 필요한 준비를 하라는 듯, 방관자적 입장을 취했다.

이에 응시생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각자 공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응시생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것은 바로 무기였다.

스무 명의 응시생들 모두, 교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갖가지 무기들이 놓여 있는 진열대로 향했다.

아직 헌터가 아니기에 개인무기가 아닌, 시험장 측에서 준비한 무기를 사용해야 했고, 검을 두고 벌이는 경쟁이 가장 치열했다.

다들 몬스터와 싸우는 헌터가 되고자 하는 만큼, 기본적인 무기술에 대해서는 학원이든, 지인을 통해서든 배운 바가 있다.

검은 기본적으로 베든, 찌르든 어떤 공격을 하더라도 살상력을 갖추고 있기에 많은 헌터들이 선호하는 무기 중 하나였고, 응시생들도 열 명 이상이 검을 택했다.

그 외에 몇몇은 활 등의 원거리 무기를 골랐고, 창이나 부 등 흔치 않은 무기를 드는 이들도 소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