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5화. 헌터시험.
헌터가 되고자 결심했지만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병원 검진 과정에서 E급 각성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헌터가 되는 것은 각성과 별개였다.
인성, 상식, 몬스터 공략법 등을 포함한 꽤나 수준 높은 필기시험을 치러야 했고, 체력과 전투력 등을 측정하는 실기시험도 있었다.
두 시험에 합격한다 하더라도 끝이 아니다.
일주일가량 치러지는 기본적인 교육과정과 직접 던전을 공략하는 실전평가까지 거치고 나서야 헌터임을 증명하는 자격증이 발급됐다.
“다음 시험이 삼일 뒤라.”
알아보니, 한 달에 한 번 간격으로 치러지는 헌터 시험이 삼일 뒤에 예정되어 있었다.
실전평가는 E급 던전을 공략하는 것으로 이뤄지는데, 던전은 9급 몬스터 중 하나인 고블린이 서식하는 곳이었다.
고블린은 어린 아이크기만한 초록색 이족보행 몬스터로 겁이 많고, 머리도 나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마비독은 꽤나 까다로운 축에 속했다.
걱정은 없다.
비록 과거의 무위를 잃었다고는 해도, 살수의 기예를 잃은 것은 아니었으니.
체력 또한 완전히 적응해, 하루가 다르게 단련을 거듭하고 있어, E급 시험에서 떨어질 수준은 아니었다.
문제는 필기시험.
여러 분야를 두루 평가하는 까다로운 필기시험을 준비하기에 삼일의 시간은 꽤나 촉박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천하제일인은 아니었으나 과거 모든 살수들이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살왕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이다.
태생 무골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공서는 한 번 보면 잊지 않았고, 난해한 무리 또한 쉽게 이해할 정도로 뛰어난 오성을 가지고 있던 게 나였다.
무골이었던 육신은 바뀌었지만 오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필기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하루면 충분했다.
***
삼일 뒤, 나는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을 치르는 사람과 장소는 E급, D급, 그리고 C급 세 부류로 나뉘었다.
각성 등급보다 높은 등급의 시험은 애초에 치를 수 없었고, 각성 등급이 높다 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처음 헌터가 되는 이들이 받을 수 있는 등급은 C가 최고였다.
각성등급이 E등급인 나는 당연히 E급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장에 도착하니, 헌터가 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E급은 헌터가 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활동하기조차 쉽지 않은, 무의미한 등급이었지만 그래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헌터는 군면제 대상으로 던전 관리와 같은 대체 복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김태빈이다.”
“그 마력증후군에서 깨어났다는 사람?”
내가 시험장으로 들어서자, 응시생들의 호기심어린 시선과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살수로 살아왔던 삶을 영향으로 남에게 주목받는 것을 꺼려했지만 나에 대한 관심은 내가 깨어나고 열흘가까이, 퇴원한지는 삼일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식지 않았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금과 같은 시선을 보내왔고, 시험장에 기자도 몇 따라붙었을 정도였다.
“김태빈씨.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차대영이라고 합니다.”
개중에는 이렇게 다가와 친한 척을 하는 이들도 간혹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원치 않는 행동을 할 이유가 없었고, 단 한 번도 그들의 ‘척’에 반응해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차대영을 무시하고 지나쳐, 그나마 눈에 덜 띄는 자리에 앉아 시험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씨발...”
차대영이 무안을 준 나를 향해 작게 욕설을 내뱉었지만 뒤를 돌아본 나와 시선을 마주친 순간, 눈을 내리깔며 꼬리를 말았다.
나의 눈빛은 고작 군면제를 위해 E급 시험을 준비하는 애송이가 받아 넘길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욕설에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갔다면, 참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먼저 굽히기도 했고, 이 이상으로 주목 받고 싶지는 않았기에 마음을 접었다.
그 이후, 차대영에게 보인 싸늘함 때문인지, 더 이상 나에게 접근하는 이는 없었다.
시선과 수군거림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이도 시험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점차 수그러들었다.
덕분에 나는 조용히 시험을 준비하고, 치러낼 수 있었다.
필기시험의 결과는 만점.
완벽한 성적으로 통과했다.
살수는 완벽한 살행을 위해, 한 치의 오점도 용납하지 않는다.
정식 살수가 되기 전, 나는 수많은 시험을 치러왔고, 그 때도 결과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애초에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한 달을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시험을 치르지 않았을 것이다.
“합격자들은 저를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필기시험이 끝나고, 추려진 합격자들만 인솔자를 따라 실기시험장으로 향했다.
넓은 시험장 안에는 다양한 측정 도구들이 나를 비롯한 합격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앞서 실시된 체력 측정은 무난히 통과했다.
측정 종목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고, 나는 지난 삼일 간 철저히 커트라인에 맞춰 준비했다. 그 결과, 필기시험처럼 만점을 받지는 못했지만 합격선을 넘지 못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전투력 측정.
“가상의 대련이지만 너희들은 본 교관을 몬스터라 가정하고 전투에 임하면 된다.”
전투력은 D급 헌터인 교관과의 대련으로 평가됐다.
D급 헌터가 대상이니 만큼, 상대를 쓰러트려야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기본적인 전투센스와 위기 대처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었다.
“그 따위로 칼질로는, 벌레도 잡지 못하겠다! 설마 몬스터가 와서 맞아줄 거라 생각하는 거냐?!”
“네 놈은 우리 집 강아지와 싸워도 이기지 못하겠구나! 참고로 우리 집 강아지는 치와와다.”
교관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연신 독설을 쏟아내며 응시생들을 쓰러트렸다.
합격은 고사하고, 교관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성공시키거나 그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막거나 피해낸 응시생이 없을 정도였다.
“이번 달은 머저리들만 모였군.”
일곱 번째 응시생의 얼굴에 주먹을 꽃아 넣은 교관이 투덜거렸다.
아무리 E급이라 해도 쓸 만한 인재가 없었다. 죄다 9급 몬스터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런 놈까지 시험을 보러 오다니. 2년 만에 깨어났다고 해서 봐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라.”
몇 명의 응시생들이 교관의 무자비한 손속에 탈락의 고배를 마신 후, 내 차례가 됐다.
교관은 대련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가뜩이나 수준미달의 응시생들로 인해 심기가 불편했는데, 고작 며칠 전에 마력증후군에서 깨어났다고 알려진 나까지 보게 되자, 한숨부터 흘러나왔다. 정말 개나 소나 다 헌터가 되려 한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시작하시죠.”
말 몇 마디에 흔들릴 내가 아니었다.
나는 교관의 말을 무시한 채,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뭐 눈빛은 제법 마음에 드는 군.”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내 눈빛에 교관의 얼굴에서 불만스러운 표정이 사라지고 진지함만이 남았다.
실력의 고하를 떠나서 김태빈이라는 응시생의 눈빛만은 진짜였다. 김태빈은 과거 동료들이었던 1세대 헌터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생사의 고비를 헤치고 살아남은 전사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무기를 들어라.”
교관이 나무로 된 검, 도, 창 등 수십 가지 대련용 무기들을 가리켰다.
몬스터를 상대함에 있어, E급에게 무기는 필수다.
이는 더 높은 등급인 D급도 마찬가지였다.
무기의 도움 없이, 질긴 가죽 등으로 상당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몬스터와 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교관의 행동에 나는 내 두 손을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생사결이 아닌, 단순한 대련에 무기까지는 필요 없었다.
“지금 장난 하는 건가?”
“...”
나는 뭐라 말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내가 무기를 들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사실대로 말한다면 교관의 화만 돋울 테고, 그렇다고 구구절절하게 변명을 늘어놓기도 귀찮았다.
그렇기에 입을 다물고 두 손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네 놈 마음대로 해라.”
교관은 오랜만에 마주한 전사의 눈빛에 만족스러웠던 기분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헌터 가운데, 무기를 쓰지 않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능력이 떨어지는 E급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경우였다.
자신을 얕잡아보는 것은 아닐 테지만 진심으로 임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교관에서도 은퇴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젊은이의 치기어린 눈을 보고 전사의 눈을 가졌다 착각하다니.
“와라.”
무기를 들지 않은 내 행동으로 인해 교관의 심기가 불편해지긴 했지만 엄연히 전투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대련이다.
교관이 선공을 양보하지 않을 경우, 응시생은 공격을 시도조차 못하고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대련은 내 선공으로 시작됐다.
나는 교관에게 독설을 들었던 응시생들과 달리, 무턱대고 달려들지 않았다.
E급과 D급.
등급은 고작 한 단계 차이에 불과하지만 가진 바 능력은 천지차이다. 섣불리 시도한 공격은 독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높았다.
태빈은 침착하게 교관을 살피며 약자가 강자를 이겨낼 수 있는 기회를 노렸다.
교관의 능력은 앞서 치러진 대련을 지켜보며 일부 파악했다.
응시생들의 수준이 낮아 전력을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확실히 D급 헌터는 응시생들보다 몇 배는 수준이 높았다. 괜히 헌터를 선발하는 교관의 자리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다.
대련이 아닌, 실제 전투였다면, 상대를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면 더욱 수월했겠지만 대련이라 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겁먹었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무기를 들지 그래?”
교관이 쉬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나를 도발해왔다.
마냥 시간을 끈다고 느껴졌다면, 다른 식으로 제재를 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태빈은 구차하게 시간을 끄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객기가 아니었군.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제법이야.’
교관은 도발하고 있는 입과 달리, 내심 태빈의 차분함에 감탄하고 있었다.
지금 태빈에게선 무기를 들라는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던 객기어린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월등히 강한 상대에 움츠러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기세가 느껴졌다.
분명 능력만 따져보자면, 태빈이 약자이건만, 그는 맹수가 되어 강자의 위치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순히 공격을 성공시키고 점수를 따내는데 그치지 않고, 진심으로 자신을 이길 생각까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타앗.
태빈이 줄곧 노리던 것은 한순간의 흐트러짐이었고, 교관이 딴생각을 품은 그 한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교관이 태빈의 모습에 감탄을 자아내며 한 눈을 파는 순간, 나는 눈빛이 번뜩이며 교관을 향해 쇄도했다.
“헛!”
잠시 딴 생각을 하던 교관은 쏜살과도 같은 빠르기로 쏘아진 태빈을 보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맹수와 같은 기세를 흘리고 있다고는 하나, 고작해야 E급. 언제고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방심했다.
퍼억.
교관이 뒤늦게 검을 들어 올렸지만 태빈의 주먹이 더 빨랐다. 무형의 살기가 교관의 움직임을 찰나나마 억제한 덕분이었다.
태빈은 일격에 끝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역량을 이번 한 번의 공격에 집중했고, 태빈의 주먹은 정확히 교관의 심장어림에 꽂혔다.
무기를 들지 않은 이유?
시험을 보러왔지, 사람을 죽이러 온 것이 아니었다.
지금과 같은 공격이 무기로 행해졌다면, 교관은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