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4화. 자유(3).
퇴원 수속을 밟으며 나는 내가 겪은 마지막 변화에 대해 생각했다.
각성.
각성은 지구의 의지, 신의 구원 등으로 불리는, 평범한 인간들에게 몬스터라 불리는 괴물들에게 맞설 힘을 가져다준 미지의 힘이다.
내가 겪은 기억의 혼재는 본래 몸의 주인이었던 김태빈이 각성 과정에서 겪게 된 것.
나 또한 그 영향을 받아 헌터로 각성했다.
‘E등급이라...’
등급은 E.
나는 헌터의 강함을 나누는 기준인 S등급부터 E등급까지의 등급 중, 가장 낮은 E등급을 기록했다.
등급은 체내에 있는 마나를 바탕으로 신체 능력 등을 고려해 정해지는데, 나는 신체 능력은 물론이고, 측정된 마력이 미미했기에 나온 결과였다.
헌터로 각성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마력을 몸이 감당하지 못해 발생하는 마력증후군을 겪은 것치고는 불가사의한 일이었지만 의사들은 체내의 마나가 어떠한 계기로 인해 사라지면서 마력증후군에서 깨어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추측일뿐, 이러한 설명을 해준 의사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뭐.. 상관없겠지. 헌터가 될 것도 아니고.”
E등급은 헌터의 삶을 바라던 이들이라면 신을 원망할 정도로 보잘 것 없는 등급이다.
그러나 각성했다고 해서 모두 헌터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이 E급으로 각성한 이들은 능력이 일반인과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약간의 이점이 있을 뿐, 괴물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무리였다.
지구상의 사자나 호랑이와 비슷한, 몬스터들 가운데 가장 약한 9급 몬스터 정도나 사냥이 가능한 수준.
이 조차도 E급 헌터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몬스터를 잡는 다고 그 이상의 등급으로 강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몬스터 몇 마리 잡는다고 갑자기 세지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개인에 따라 다르다.
그렇기에 E급 대부분은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저 그들보다 조금 더 체력이 좋고 민첩할 뿐이다.
물론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들이 짐꾼이 되거나 무리하게 몬스터 사냥을 나가곤 하지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일단 집으로.”
병원을 나선 나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가족이 있는 곳이었고, 김태빈의 기억이 조금이나마 어색함을 지워주었다.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익숙해져야 하는 어색함이기도 했다.
***
병원 정문을 나서는 순간, 어떻게 알았는지, 수십 대의 카메라가 나에게로 향했고, 그 만큼의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김태빈씨. 마력증후군을 극복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분들과 그의 가족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혹시 가사상태에 빠져있던 동안 기억나는 게 있었습니까?]
[각성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혹시 헌터로 활동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수십의 기자들이 중구난방으로 질문들을 쏟아냈다.
가장 많은 질문은 단연 마력증후군에 대한 것이었다.
전무에서 최초가 된 사례가 김태빈이다.
한국에만 수천, 전 세계적으로 총 십만이 넘는 환자들이 가사상태에 빠져있는 만큼,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각성에 대한 질문도 간혹 있었지만 E급 각성자인 태빈에게 특별한 대답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마력증후군을 극복해내고 각성까지 한 특별한 존재에게 한 마디라도 얻어내고자 마구잡이로 내뱉는 것에 불과했다.
“....”
위협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기자들의 질문세례에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입 안에 집어넣을 듯 들이밀어져 있는 마이크와 기자들의 무례한 신체접촉에 불쾌함이 몰려왔다.
살수가 된 이후로 자신의 간격 안에 의도하지 않은 이를 허용한 적이 없었는데, 태빈의 몸으로는 반응할 수가 없었다.
움찔.
그들의 접근을 피하지 못한 대신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살기에 들러붙은 기자들이 순간 움찔하며 물러났다.
그러나 기자들은 생각 이상으로 집요했다. 특종에 대한 열망은 은연중에 느낀 살기를 이겨낼 만큼 강했다.
[김태빈씨! 답변 좀 부탁드립니다.]
[김태빈님! 한 말씀만!]
수십이 쉴 새 없이 외쳐대는 통에 머리가 울려댔다. 없던 두통마저 생겨날 정도.
불쾌함은 짜증을 불렀고, 짜증은 이내 분노로 변했다.
인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구태여 인내할 이유를 찾지도 못했다.
“꺼져.”
김태빈의 기억은 언론의 무서움을 경고했지만 나는 김태빈이 아니라, 언이다.
물론 과거의 언이라면, 이런 사소한 일에 감정을 변화를 일으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과거의 언이 아니다. ‘언’이라는 정체성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은 살수로서 억지로 감정을 억누를 이유는 없었다.
내가 갈망하던 자유는 누군가의 의지에 억압되지 않고, 내 뜻을 오롯이 행하는 것이다.
내가 무수히 죽여 왔던 진정한 무림인들과도 같은 삶.
무림이라는 큰 틀에서 살수와 무림인은 공존하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존재였고, 나는 내가 죽이는 그들의 삶을 동경했다.
“....”
도떼기시장 같았던 주변이 한순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가 나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석상마냥 굳어버렸다.
김태빈의 기억으로 ‘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례한 기자들에게까지 억지로 지킬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은연중에 흘러나오던 살기가 이제는 완연한 기세가 되어 기자들을 짓눌렀다.
십 수 년 경험에 깃들어 있는 살기를 평범한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하물며 나는 각성을 한 헌터였고, 기자들은 일반인에 불과했다. E급이라고는 하나, 나는 그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기 충분한 존재였다.
“이제 좀 조용하네.”
오로지 나만이 편하게 입을 열고 자유로이 행동했다.
내가 걸음을 옮기자, 앞을 가로막고 있던 기자가 주춤 거리며 길을 열었다.
더 이상 기자들은 나를 막아서지 않았고, 질문을 쏟아내지 않았다.
한기가 일정도로 지독한 살기에 특종에 미쳐있던 기자들은 마른침만을 삼켜댈 뿐이었다.
***
인터뷰를 따내지 못한 죄로 위에서 대차게 까이게 될 기자들에게는 아니겠지만 무척이나 사소했던 일을 뒤로 하고, 나는 김태빈의 기억을 되짚어 집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모님이나 형을 불렀다면 좀 더 편했겠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기에 굳이 그들에게 퇴원사실을 알리진 않았다.
2년 간 나를 위해 고생한 이들이다. 어차피 집에 가면 만나게 될 것이니, 그들을 번거롭게 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은 그들 중, 누구도 오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2년 간, 병원에만 누워있던 자식이, 동생이 퇴원하는 날에 와보지도 못했다는 것은 그들의 삶이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위태로울 정도로 힘겹다는 의미였다.
“가족...”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해도, 전생의 가족은 자신을 버렸다. 그로 인해 평생 자신을 고통 속에서 살게 했다.
그러나 지금의 가족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자신들이 대신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지언정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
나의 퇴원을 기념해,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했다. 집안에서 이루어진 조촐한 행사였다.
부모님과 형의 얼굴은 병원에서보다 훨씬 더 밝아졌다.
깨어났음에도 행여나 다시 잘못될까 노심초사했는데, 확실히 퇴원을 하고 나니 안심이 된 것이다.
“몸은 어떠냐?”
“예. 괜찮습니다.”
다소 무뚝뚝한 아버지의 물음에 내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필요치 않다면 예를 차리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부모님에게만큼은 쉽지 않았다. 김태빈의 기억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듯했다.
“괜찮다니 다행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는 생각은 해봤느냐?”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심사숙고해서 생각해봐라.”
“...헌터를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나는 꽤나 고민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지구는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사람이 어딘가에 얽매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계였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며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던전과 관련된, 헌터가 그나마 가장 자유로운 직업군에 속했다.
일인군단이라 불리는 일부 헌터는 실제로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홀로 활동하기도 했고.
가족들의 고생도 염두 해 두었다. 헌터는 가족들의 고생을 덜어 줄 수 있을 만큼, 고소득군의 직업이었다.
“네가 각성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도 위험하지 않겠냐.”
“절대 안 된다.”
헌터라는 말에 무뚝뚝하게만 보였던 아버지의 표정에 변화가 일었다.
묵묵히 부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어머니는 대경실색하며 소리쳤다.
표정으로 보아 형도 반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낱 돌부리에 넘어져도 죽을 위험은 존재합니다. 위험하다고 피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 의사와 상관없이 2년을 잃어버렸습니다. 닥치지 않은 미래의 위험을 걱정하기보다는 현재 제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대부분 홀로 활동하는 살수였던 탓에 말을 길게 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걱정하는 부모님을 안심시키려 자연히 말이 길어졌다.
“하긴. 사람의 일은 모르는 것이긴 하지. 네 뜻이 그러하다면, 더는 반대치 않으마.”
“여보!”
“나는 태빈이를 믿소.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깨어나 우리의 걱정을 지워준 것처럼, 앞으로도 그리 할 거라. 당신은 아들을 믿지 않는 거요?”
“그건 아니지만...”
아버지의 지지로 반대하던 어머니도 뜻을 굽혔다.
부모님의 동의에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나는 태빈이 짐꾼이나 하면 되겠네. 형인데. 더 신경 써서 지켜주겠지.”
다소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농담을 한 마디 내뱉었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헌터가 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