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3화. 자유(2).
정신을 잃고 어둠 속을 유영하던 나는 의식 저편에서 나는 무수히 많은 것들을 보았다.
그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나의 손에 의해 죽은 백 명의 목표물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의뢰 대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에게 죽임을 당했다. 심지어 나의 존재, 자신의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생을 다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그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또한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조차 몰랐던 내면은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또렷이 그려냈다.
돌이켜보니 미안했다. 죄스러웠다.
자유는커녕 이따위 결말을 맞이할 것이면서 고작 돈 몇 냥에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 나의 죄를 후회했다.
이미 늦어버렸지만.
그리고 유일하게 내가 죽이지 않았음에도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7호.’
그녀는 나의 이름을 알지만 나는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유일하게 내가 죽이지 않았음에도 나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여인이었다.
그녀 또한 여든여덟 번의 살행을 수행한 만큼, 수없이 많은 살인을 행하였으니, 불쌍하다 여길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사랑이란 감정에 생을 던진 그녀를 가련하게 여겼다. 살수답지 않았던 그녀는 죽음마저도 살수와 어울리지 않았다.
‘...’
백한 명의 얼굴을 뒤로하고, 바람 앞에 꺼질듯 말듯 흔들리는 촛불처럼 오락가락 하며 어둠 속을 헤매던 의식이 제 자리를 찾아갔다.
의식은 돌아오고 있었지만 생과 사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았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육체는 물 먹은 솜 마냥 무겁고, 복날 개방의 거지들에게 쥐어터진 개 마냥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오락가락하는 정신을 먼저 가다듬어 또렷하게 만들고자 노력했고, 육체를 관조하며 상태를 살폈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아픈 것과는 달리, 의외로 육신은 멀쩡했다. 사지는 온전히 붙어있었고, 어디 하나 부러진 곳도 없었다.
운이 좋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천길 절벽 밑으로 몸을 던졌는데, 상한 곳이 하나도 없다니.
아니. 죽었기에 육신이 멀쩡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까닥. 까닥.
의문도 잠시,
지배력을 잃었던 육체가 서서히 정신의 통제 하에 들어왔다.
나는 가장 먼저 손가락을 움직였고, 발가락을 움직였다. 억지로 움직이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부서질 듯 아파왔지만 고통은 익숙했기에 무시했다.
“김태빈 환자가 뭐?!”
“그게 손가락이...”
“김 간호사. 나 바쁜 거 알아? 몰라? 김태빈 환자가 마력증후군이라는 건 알고 하는 말이야?! 확실해?! 마력증후군 환자가 움직였다는 게 확실하냐고?!”
그 순간,
소음과 함께 들이닥친 사내와 여인의 목소리가 온전치 않은 의식을 자극해 왔다.
사람? 김태빈? 마력 증후군? 이곳에 나 말고도 누군가 있는 건가? 아니 그 이전에 여긴 대체 어디지?
천길 절벽에서 투신한 뒤로 내 주위에 나타난 사람들이 뜻 모를 말들을 내뱉고 있는 상황.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선... 선생님.”
“또 왜?! 어..?! 어?!”
의식 저편에서 우물쭈물 거리던 김 간호사가 사내의 말을 잘라냈고, 거침없이 쏘아붙이던 사내 또한 하던 말을 멈추며 놀랐다.
“김태빈 환자!”
사내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급한 손길이 나의 몸에 닿았다.
기습과도 같은 신체접촉에 순간적으로 사내의 목젖을 뜯어낼 뻔했다.
다행히 사내의 손이 나의 손을 먼저 잡았고, 간신히 손가락을 까닥이는 게 전부였던 나의 손은 사내의 목젖에 닿지 못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살의는 나의 몸에 너무나도 진하게 베여있었고, 나는 원하던 자유를 얻었음에도 아직 살수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정신이 드십니까?”
아직 통제되지 않은 육체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야는 안개가 낀 듯, 흐릿했다.
그 흐릿한 시야 속에 믿기지 않는 다는 표정을 한 사내의 얼굴이 들어왔다. 나의 손에 의해 갑작스럽게 맞이한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이들의 표정과 닮은.
아니다.
이내 안개가 걷힌 시야로 바라보니, 사내의 표정에는 놀람과 함께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환희의 흥분이 담겨있었다.
“아... 아...”
“무리하게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언가를 말해 보려 입을 벌려 보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흙덩어리가 목구멍 전체를 막아 놓은 듯 거친 감각만이 느껴졌다.
사내는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사내의 얼굴에 놀람은 사라지고 흥분만이 남았다.
“김 간호사. 김태빈 환자 지켜보고 있어. 원장님 모셔올 테니까.”
“네..네!”
사내가 들이닥친 것만큼이나 다급히 떠나가고, 나는 김 간호사의 시선을 느끼며 회복에 집중했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까닥이는 게 전부였던 육체는 고작 몇 분 사이에 온전히 내 의식의 지배 하로 돌아왔다.
흔들리던 의식 또한 또렷해졌다.
조각나 부서져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빠르게 맞춰졌다. 그리고 맞춰진 기억의 퍼즐은 내가 떠올렸던 의문을 해소해주었다.
‘김태빈...’
돌아온 정신 속의 기억은 살수 ‘언’과 사내가 칭했던 ‘김태빈’에 대한 기억이 혼재된 상태였다.
아니 ‘언’이었던 나의 정신이 본래 김태빈의 육체가 가지고 있던 정신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에 가까웠다.
김태빈이 가지고 있는 기억은 자신의 삶과는 완전히 달랐다.
살아온 삶은 물론이고 살아가는 세계 또한.
김태빈의 세계는 던전이라 불리는 모종의 통로로 인해 괴물들이 창궐하고, 그들을 막는 헌터들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 세계에서 김태빈은 헌터로 각성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마력을 몸이 감당하지 못해 가사상태에 빠지게 되는 마력증후군 환자였다.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김태빈’의 기억 덕분에.
간혹 헌터로 각성하는 과정에서 나처럼 기억의 혼재를 겪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김태빈’은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기억의 혼재를 겪은 이들 가운데서도 타 정신이 육체의 주인이었던 정신을 밀어내는, 나와 같은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드물 뿐, 전무한 일은 아니었다.
미국의 유명한 헌터 반스가 그랬고, 유럽 어딘가의 피아체라는 헌터도 그랬다. 적어도 내가, 김태빈의 기억이 알기론 그렇다.
기억의 혼재와 달리, 마력증후군 환자가 깨어난 일은 지금까지 전무했지만 세상의 모든 최초는 그 이전에 전무였고, 나의 경우 또한 그럴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김태빈’인가 ‘언’인가?
중요치 않았다.
나의 정신은 언에 가까웠고, 그렇기에 나는 나를 언이라 여겼다.
어쨌든, 천길 절벽에 몸을 던지고 정신을 잃었던 내가 다시 깨어난 곳은 무림이 아닌, 지구라 불리는 김태빈의 세계였다.
김태빈의 기억 속에도 무림은 있었지만 이는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환상에 불과했다.
복수를 하지 못함은 아쉬웠으나 지옥 같은 무림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겼다.
그리고,
‘이런...’
몸 상태를 확인한 나는 두 개의 기억이 혼재되어 있다는 사실보다 큰 문제를 마주했다.
평생 무공을 익히며 쌓아왔던 내공이 한줌도 느껴지지 않았다. 돌처럼 굳어있는 단전만을 느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완전히 정신의 지배 아래 놓은 육체는 내가 알던 육체가 아니었다.
얼굴은 전생에 내가 기억하는 얼굴이었지만 탄탄하기 그지없던, 무인으로서 완벽한 육체가 사라지고, 근육이라고는 일체 없는 몸뚱이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토록 발버둥 쳤음에도 닿지 못했던 자유에 대한 대가라면 싸다 할 수 있겠지.’
내공과 평생을 단련해온 육체까지.
일평생 쌓아온 모든 것을 잃어버렸음에도 나는 현실에 수긍했다.
어차피 살수의 삶을 원하지 않았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이름 모를 중년인에게 고작 다섯 냥에 팔리지 않았다면, 평범한 농부의 삶을 살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살수 ‘언’이 아닌, ‘김태빈’이라는 새로이 주어진 육체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생각을 마치고 나니, 오히려 기뻤다. 진정으로 살수의 삶을 떨쳐버리고 평범한 자유를 맞이한 듯했기에.
***
태빈의 몸으로 깨어난 지, 일주일.
변해버린 육체에 대한 적응은 주변 모두가 놀랄 정도로 빨랐다.
깨어난 지 불과 몇 분 만에 거동을 시작한 태빈은 잃어버린 육체를 단련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지난 삶을 버렸다고 하지만 보잘것없는 육체마저 용납 되는 것은 아니다.
살수로서의 삶은 원치 않았지만 무인으로서의 삶은 버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닿지 못한, 더 높은 경지를 원했다.
“김태빈 환자. 정말 괜찮은 건가요?”
재활이라는 이름아래, 몸을 혹사에 가깝게 몰아붙이는 태빈을 이제 그의 전담 간호사가 된 김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정신과 육체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기 위해 가만히 있었던 첫날을 제외하고 일주일 내내 같은 나날을 반복하고 있음에도 그녀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하긴 마력증후군으로 가사상태에 빠진 이후 2년 만에 깨어난 내가 전문적인 선수들이나 할법한 훈련을 소화해내고 있으니, 그녀의 걱정은 무리도 아니었다.
일주일 새에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세상을 다 가진 얼굴로 부모님과 형이 찾아왔다.
2년 간, 가사상태에 빠진 나의 생명 유지를 위해 부모님은 밤낮없이 일하셨고, 형은 번듯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던전에서 헌터들이 사냥한 몬스터의 부산물을 수거하는 짐꾼이 되었다고 했다.
내가 깨어난 날에도 곧바로 찾아오지 못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낸 가족들이다.
그 때문인지, 고작 2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부모님은 태빈의 기억보다 훨씬 늙어있었고, 형 또한 얼굴이 상해 있었다.
그러나 태빈을 마주한 세 사람의 얼굴은 기억 속 여느 때보다 밝게 웃고 있었다.
그들을 웃음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한 방울 흘러 내렸다.
언에게는 오로지 기억 속에만 있는 가족이었다. 하지만 언의 정신이 아닌, 태빈의 기억이, 몸이 슬퍼하고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다.
생소한 감정에 언은 놀랐지만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지 않았다.
“곧 검진가실 시간이에요.”
한창 상념에 빠져있는 나를 간호사가 불렀다.
시계를 보니, 세 시. 운동을 시작한지 벌써 세 시간이 지났다.
나는 단련을 마무리하고 샤워로 한껏 상기된 몸을 진정시키고 검진 실로 향했다.
“모두 정상 수치를 되찾았군요. 아니, 이제는 오히려 정상보다 나은 수준입니다. 정말 놀랍군요.”
검진은 쉼 없이 이어졌고, 나의 하루 일과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일이었다.
의료진은 나를 귀신 보듯 바라보며 매일 같이 수십 가지가 넘는 각종 검사들을 해댔다.
그리고 검사 결과, 첫날 정상에 조금 못 미치던 수치들은 며칠 사이에 정상 범위를 되찾았고, 이내 그보다 월등한 수치를 기록했다.
마력증후군으로 인해 가사상태에 빠져있던 환자가 깨어난 최초의 사례이니 만큼, 수많은 의사가 달라붙어 원인을 밝히고자 했지만 누구 하나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만족하지 못했는지, 매일 같이 같은 검사를 반복하고, 새로운 검사들을 해댔다.
“이제... 퇴원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일주일 째, 검진 결과를 확인한 의사는 나의 서늘한 눈빛에 마지못해 답했다.
병원 측에서는 마력증후군에서 깨어난 최초의 사례인 나에 대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연구하기 바랐다. 윤리적으로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내심 해부를 하고자하는 욕망도 보였다.
그러나 병원의 바람일 뿐, 내 의지는 아니다.
내 앞에 있는 의사는 수백의 목숨을 짓밟고 살아온 내 눈빛을 받아 넘기며 거짓을 고할 담력이 없었고, 병원의 뜻을 수행하지 못했다.
사실 갖가지 검사들을 핑계로 일주일 동안 잡아 놓은 것이 한계였다. 검사 방법은 오늘로써 다 떨어졌고, 더 이상 나를 붙잡아 둘 명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