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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수다-1화 (1/150)

# 1

1화. 백살(百殺).

일곱 살, 나이에 이름 모를 중년인에게 팔렸다.

가난한 마을, 특히 자식이 많은 집안에서는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내 뒤로 줄줄이 딸려 나온 네 동생들.

입을 하나 줄여보고자, 끼니조차 제대로 먹여주지 못한 부모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길 바라며 아이를 팔았다.

사실 부모도 안다.

팔려간 아이가 열에 아홉은 그리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러나 그렇게라도 합리화하지 않는다면, 부모가 자식을 파는 행위가 용납될 리 없었다.

어쨌든 일곱 살의 나는 그러한 식으로 단 돈 다섯 냥에 팔렸다.

중년인을 따라 도착한 곳은 백살문.

중원의 한 살수 단체였다. 중원 이대 살수 단체인 살막과 혈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지역 내에서는 꽤나 유명한.

그곳에는 나와 같은 아이들이 많았다. 남아도 있고, 여아도 있었다. 형도 있고, 누나도 있고, 친구도 있고, 동생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하나 서로를 연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동기라는 이름에 얽매였을 뿐. 어린 나이였지만 본능적으로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을 느꼈고, 그 본능은 틀리지 않았다.

백 명의 아이들은 교관이라 불리는 어른들의 지도 아래 무공을 배우고, 살수의 기예를 배웠다. 그러나 살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공도 기예도 아니었다.

인내.

나는 인내하고 인내했다.

고통, 배고픔에, 죽음에 인내했다.

칼에 베여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배고픔에 땅바닥에서 벌레를 파먹고, 죽은 동기의 시체를 뜯어먹을지언정 내색하지 않았다. 죽음이 두려웠지만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십년.

나는 정식 살수가 되었다. 백 명이나 되었던 형, 누나, 친구, 동생들 중, 나와 같이 정식 살수가 된 이들은 고작 열셋 뿐이었다. 그중 둘은 내 손에 죽었다.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은 살수의 삶을 살게 되었지만 희망은 있었다.

백살문이라는 이름답게 문내의 규칙이 나로 하여금 이 역겨운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게 만들었다.

살수로서 백 번의 살행에 성공한 살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자유를.

때문에 나는 오로지, 백살(百殺)을 목표로 살아갔다.

첫 살행은 한 노인이었다.

두 번째 살행은 여인이었다.

젊은 시설 수십의 여인을 겁간했던 노인, 남편을 죽이고 바람이 난 여인. 그게 그들이 내 손에 죽은 이유다.

아니 그 이유가 사실인지도 모른다. 의뢰주가 지어낸 거짓일 수도 있다. 이유로는 죽어 마땅하지만 사실은 단지 의뢰가 들어왔고, 그 가격이 적당했기에 죽었을 뿐이다.

첫 살행과 두 번째 살행이었기에 약하고 힘없는 노인과 여인이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 뒤로는 나는 농부를, 건장한 사내를, 마을의 파락호를, 삼류 낭인을 차례로 죽여 나갔다.

살행에 나서는 순간, 나는 대상을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살행의 횟수만을 생각했다. 나의 자유를 위해, 나는 스스럼없이 타인의 자유를 빼앗았다.

합리화하는 이유와는 상관없이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원치 않는 살인 속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살행은 나날이 어려워졌다.

쉰일곱 번째 살행에서는 중소문파의 문주를 죽였고, 일흔여섯 번째 살행에서는 점창파 장로를 죽였다.

삼십 번째였던가, 사십 번째였던가.

백살문에서 나는 일급 살수가 되었고, 세간은 나를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여 무영살(無影殺)이라 불렀다.

그리고 구십 번째, 중원 십대 고수는 아니지만 삼십대 고수쯤에는 꼽힐 만한 사파연합의 장로 문연을 죽였을 때부터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나를 살왕(殺王)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마지막 백 번째 살행에서 중원 십대 고수 중 하나였던 살막주 여문휘를 죽인 뒤로는 모두가 나를 살왕(殺王)이라 부르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백.”

방금 나는 백 번째 살행이 끝마쳤다.

살막주 여문휘.

백살문이 중원 제일의 살수집단이 되기 위해서 살막은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이었고, 문주는 나에게 살막주를 죽이라 명했다.

처음으로 의뢰를 받지 않은 목표물이었다.

십대 고수로 손꼽히는 여문휘는 지금까지 무려 아흔아홉 번의 살행을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성공시킨 나로서도 어려운 대상이었다.

그는 자신이 목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자신을 노리는 살수가 나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살수이기에 내가 어떤 식으로 노려올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나의 백살을 실패로 돌리기 위한 문주의 계략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결과는 나의 앞선 아흔아홉 번의 살행과 달라지지 않았다.

여문휘는 죽었고, 나는 살았다.

지금까지 죽여 왔던 아흔아홉 명과 같이 더없이 억울한 표정으로 죽어 있는 백 번째 시신을 바라봤다.

드디어 원하고 원하던 자유를 얻어낼 수 있는 백살(百殺)을 끝마쳤음에도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죽어있는 여문휘와 살아있는 나의 얼굴이 짓고 있는 표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삐이이익!!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여문휘의 죽음을 알아차린 살막 살수들의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

나는 일격에 숨통을 끊어 놓지 못했고, 그를 죽이기까지 소란이 작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기척만 봐도 살막의 살수들이 쫙 깔렸다. 기껏 백살(百殺)이 끝마쳤는데,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수로서 십대 고수 중 하나인 여문휘를 죽일 정도의 강자지만 중원 제일의 살수단체인 살막의 살수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막주를 잃었음에도 침착하게 포위망을 형성해 나를 옥죄여 왔다.

살행 전에 봐두었던 도주로는 폐기다. 살막에 침입하기 위해 뚫어 놓았던 길은 진즉에 발견됐을 터였다.

물론 그렇다 한들, 가만히 앉아서 잡히거나 죽어줄 수는 없다.

나는 곧장 도주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문휘의 시신을 뒤로 하고 지붕위로 올라가 사방을 살폈다.

여문휘의 거처를 포위해오는 살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늘어갔다.

뒤늦게 도착하는 자들은 변화를 늦게 눈치 챈 만큼, 수준이 떨어지기에 실질적으로 나를 막아설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거치적거릴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도주로가 없다면 만들면 그만. 피해갈 수 없을 경우, 뚫고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살행에 나설 때, 가장 먼저 손에 쥔 단검은 버린 지 오래였다. 첫 일격이 실패했을 때, 나는 곧장 검을 들었고, 여문휘를 베었던 검은 여전히 내 손에 들려있었다.

내 마지막 백살(百殺)을 장식했던 검이 백 번째를 넘어 백한 번째, 백두 번째 생을 머금었다.

***

수십 살수들의 생을 머금은 검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는 끈질기게 들러붙는 살막의 살수들을 떨쳐내는 것으로 마지막 살행의 종지부를 찍었다.

여문휘의 죽음으로 무림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살막의 모든 살수들이 흉수를 찾기 위해 무림 전체를 이 잡듯 뒤지고 나섰지만 그 흉수는 무사히 자신의 문파로 돌아왔다.

“1호. 백살(百殺)을 끝마친 것을 축하한다.”

백살문의 문주가 살행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돌아온 나를 반겼다.

백살문에서 나의 이름은 무영살도 살왕도 아닌 그저 1호였다. 문 제일의 살수. 그게 백살문에서 나의 자리였다.

“감사합니다.”

“자유를 원한다고 했었나?”

백살(百殺)을 끝마친 살수는 지금까지와 같이 살수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자유 가운데 선택할 수 있었기에 문주가 나에게 물었다.

아흔 번째 살행 이후로 공공연하게 얘기를 해왔기 때문에 문주도 내가 자유를 선택할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예.”

나의 결심은 변함이 없었다.

십년.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오로지 자유만을 위해 살아왔다. 막상 그때가 되니, 별 감흥은 없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렇군.”

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에서는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살왕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살수였으니, 그의 아쉬움은 당연했다.

아니 단순한 아쉬움만은 아니었으나, 마침내 얻은 자유에 평소의 냉철함을 잃은 나는 그 속에 묻어 있는 감정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은퇴식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며칠 더 머물도록 하게.”

문주는 곧장 나를 떠나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백번의 살행, 십년 간 문파를 위해 헌신한 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주고자 했다.

“...”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살수의 기예를 익히는데, 십년.

백 번의 살행을 완수하는데, 십년.

정식으로 살수가 되고, 살행에 나서기 시작한 뒤로는 며칠 이상 머문 적이 없었지만 어찌됐건 이십년의 세월을 보낸 곳이다.

그럼에도 마지막을 함께 할 동료는 없었다. 문주와 이렇게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처음이다.

특급 살수가 되기 전에는 일방적인 지시만 받았을 뿐이고, 이후에도 임무에 대한 얘기만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은퇴식이란 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그럼 사흘 뒤로 준비하도록 하지.”

문주는 내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지금껏 보인 적 없던 표정을 지으며 등을 돌렸다.

아니. 본 적이 있었나. 뭐 중요한 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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