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끄끄그.”
사이먼은 버둥거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것은 어린 아이의 발버둥이나 마찬가지.
로안은 천천히 오른팔을 들었다.
사이먼의 두 다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목줄기를 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린 꼴.
로안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꽈드드득.
손가락이 사이먼의 묵을 파고들었다.
로안은 그 모습을 보고 히죽 미소를 지었다.
“네 녀석이 완전체가 되었을 때 싸워보고 싶지만······.”
그는 살짝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쳐다봤다.
“그건 이 몸의 원래 주인한테 할 짓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로안은 다시 사이먼을 쳐다봤다.
“그만 죽어라.”
가볍게 툭 내뱉은 말.
동시에.
화르르르륵!
로안의 손을 타고 불길이 번졌다.
핏빛 불길은 이내 사이먼을 집어삼켰다.
“끼에에에!”
사이먼은 흉성을 터트리며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중과부적.
그는 여전히 로안의 손아귀에 잡힌 채 하나의 불덩이가 되었다.
화르르르륵!
엄청난 열기.
퍼엉!
순간 불길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불똥이 튀고 불꽃이 피었다.
동시에 알 수 없는 희뿌연 먼지, 아니 잿가루가 바람을 타고 퍼졌다.
로안은 여전히 오른팔을 들고 있는 모습.
하지만 그 끝에 잡혀 있어야 할 사이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다.
“후우.”
로안은 긴 숨을 내뱉으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미소였다.
“자! 그럼 이걸로 끝난 건가?”
홀가분한 표정과 목소리.
짝!
그는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럼 이제 뭘 하지? 몸을 얻어 본 게 몇 년 만이더라······. 700년? 800년? 에이, 몰라.”
로안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다시 미소를 지었다.
“일단 술부터 한 잔 할까? 아니야, 여자부터? 아니지, 아니야. 복수부터 해야지. 그게 맞아. 그게 맞는 순서지.”
그는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좋아! 그럼 일단 에스티아 제국으로 가볼까?”
스스로에게 묻는 말.
얼굴에는 짙은 환희가 떠올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환희는 오래가지 못했다.
“음?”
북쪽을 향해 당찬 걸음을 내딛던 로안이 흠칫하며 석상처럼 굳었다.
이내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이것 봐라.”
재미있다는 표정.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짜증이 묻어있는 표정이었다.
“소멸 당한 게 아니었단 말이지.”
로안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이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좋아. 나도 너무 쉬워서 재미가 없긴 했어.”
그는 두 눈을 감으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어디 한 번 제대로 놀아볼까?”
여전히 알 수 없는 말.
파앗!
순간 로안의 몸에서 붉은 빛이 번쩍였다.
뒤이어 아주 흐릿한 갈색 빛이 온몸을 따라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