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어지는 전쟁과 전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그들을 구제하는 방법은 단 하나.
‘전쟁을 없앤다.’
전쟁을 없애려면.
‘대륙을 통일한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하지만 전례가 없던 일은 아니다.
‘나라면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안 된다.
지난번 삶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지금 제국의 황제와 왕국의 국왕들은 대륙을 통일할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오직 미래를 알고 있는 로안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사이먼, 토미, 칼럼.
셋 중의 한 명을 보좌하여 왕위에 올릴 생각도 깨끗하게 지웠다.
다소 물렁물렁했던 마음과 목표의식이 확고해진 것.
‘내가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라인스 왕국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이먼이 왕위 계승 경쟁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로안이 파고들 틈이 없어지게 된다.
토미와 칼럼이 분발해 줘야 하는 상황.
때문에 로안은 칼럼을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도 있었던 서신을 선뜻 내놓았다.
잘 굴러가던 왕위 계승 경쟁이라는 판을 뒤흔들어 버린 것.
‘사실 처음에는 랜스필 백작령과 작위를 이어 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감정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하긴 했지만 현실적인 부분도 있었다.
‘만약 할거라도 하게 되면 우호적인 랜스필 백작령이 존재하는 게 더 유리했으니까.’
현재 테일 남작령은 랜스필 백작령의 남쪽 지역에 쏙 들어와 있는 형태.
만약 로안이 스스로 왕국의 깃발을 세우게 된다면 자신과 우호적인 랜스필 백작령이 성벽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던 와중에 칼리 오웰스의 검은 꿍꿍이를 포착하게 되었고 그 추악한 계략을 혁파하고 랜스필 백작령을 지키기 위해서 포스케인 정벌전 같은 일을 꾸미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덜컥 랜스필 백작령과 작위까지 이어 받게 된 거지.’
본래 계획과는 조금 어긋난 상황.
하지만 로안은 이를 또 다른 기회로 삼았다.
‘칼럼 왕자에게 영지와 작위 이양을 승인하라는 서신을 보냈고······.’
따로 또 서쪽으로 작은 새를 날려 보냈다.
이왕 영지전이 벌어졌으니 그 판을 크게 늘려 볼 셈이었다.
생각이 그쯤 이어졌을 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든다······. 참 좋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크리스는 침착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뒷말을 이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그 정도 일은 일개 귀족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실이었다.
여러 황제와 왕들도 하지 못했던 일을 일개 귀족, 그것도 이제 막 백작이 된 로안이 하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로안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자신의 뜻을 밝힐 때가 온 것이다.
입 밖으로 처음 꺼내는 거대한 포부.
“크리스.”
“예. 영주님.”
크리스는 괜히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로안의 기세가 바뀌었기 때문.
로안은 그런 크리스를 바라보며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군주가 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