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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555화 (555/556)

난 할 수 있어 555화

개성공단의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또한 초읽기에 들어갔다.

대찬은 워낭 인베스트먼트로부터 북한 내 주요 물자의 유통을 RF 비바체가 전담하는 계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숙청된 김영재 대외경제상을 대신해 김형준 국제부장이 로튼 프룻츠의 협상 파트너로 선임되었다.

단순히 외자유치 분야에서 활동한 김영재보다 북한 외교라인의 핵심인 그가 로튼 프룻츠를 맡게 되었다는 건, 그만큼 로튼 프룻츠가 북한 내 강력한 영향력을 확보했다는 증거였다.

김형준 국제부장은 대찬과 하루걸러 한 번꼴로 대찬과 통화를 하며 밀접하게 교류했다.

평양의 허운과도 하루걸러 한 번꼴로 식사를 함께한다고 했다.

“회장 선생, 워낭 인베스트먼트의 일련의 조치들은 다 회장 선생의 의사와 부합한다고 보면 되겠소?”

“네, 워낭의 뜻이 제 뜻입니다.”

“…알겠소. 모쪼록 지나치게 열정적인 개방보다는 가랑비에 옷깃 젖듯 천천히 진행하였으면 하오.”

“대북사업은 대북제재에 우선할 수 없습니다. 북한과 국제사회의 합의와 보조를 맞춰 진행할 테니 지나치게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편하오. 지름길보다는 정도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귀사와 공화국의 미래를 위해 좋을 것이오.”

“저도 동감입니다.”

대찬이 김형준 국제부장과 통화를 끝내는 걸 훤한 유리문을 통해 지켜본 진위생이 기다렸다는 듯 회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회장님, 좋은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이요?”

“WFP 있잖습니까.”

“세계식량계획이요. 네.”

“그쪽에서 매년 헝거 히어로 어워드라고, 빈곤과 기아 퇴치에 기여한 기업이나 인물에게 상을 준다고 합니다.”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요?”

“올해 수상자로 로튼 프룻츠를 선정했다고 합니다.”

“기쁜 일이네요.”

진위생은 WFP로부터 날아온 편지를 읽었다.

“로튼 프룻츠는 기아 퇴치에 전무후무한 족적을 남겼고, 그 노력과 성과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로튼 프룻츠가 비도축육을 세계에 널리 보급한 이후, 8억 명에 달하던 세계 기아인구가 5억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3억 명의 생명을 끔찍한 굶주림에서 구원하였습니다. 특히 로튼 프룻츠는 독지가의 후원이나 일시적인 기부가 아닌, 지속가능한 비즈니스의 실천으로 이런 결과를 이룩해냈으니 더욱 뜻깊습니다. 로튼 프룻츠의 조대찬 회장님께서 UN 안보리에서 말씀하셨듯, ‘지구를 위한 비즈니스’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에 로튼 프룻츠를 2022년 헝거 히어로 어워드의 수상자로 선정합니다.”

“듣기는 좋은 말이네요.”

“전부 사실이에요. 회장님이 직접 수상하실 거죠?”

대찬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껏 나만 너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잖아요. 은오영 소장님이나 다르샨 싱 전무가 아니면 꿈도 못 꿀 일이었어요. 이번에는 그 두 분이 수상하게 해요.”

진위생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이 들으면 좋아서 뒤로 넘어가시겠네요.”

“그럴 자격이 있으신 분들이에요.”

실제로 이 소식을 들은 은오영 소장과 다르샨 싱 전무는 팔짝팔짝 뛰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로튼 프룻츠의 상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노르웨이의 한 국회의원은 대찬을 2023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노벨상은 노르웨이의 국회의원 1인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후보 자격이 생기도록 돼 있었다.

통상적으로 노벨평화상 후보는 비공개가 원칙이었다.

그런데 추천자가 스스로 밝히는 경우나 기타 등등의 사유로 종종 후보들이 세간에 알려지기도 했다.

대찬을 추천한 노르웨이의 국회의원은 자기가 나서서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했다고 발언했다.

“저는 로튼 프룻츠의 조대찬 회장을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했음을 말씀드립니다. 이렇듯 미리 알려드리는 것은, 기업인의 자격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으로, 수상하였을 경우 촉발될 수 있는 크고 작은 논란으로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임을 밝힙니다.”

그가 대찬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이유는 WFP와 동일했다.

아울러 북한 비핵화의 선봉에 서서 실질적인 성과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근거가 추가되었다.

로튼 프룻츠의 영향력은 세계가 절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여기저기서 그의 수상을 지지하는 선언이 잇따랐다.

진심으로 대찬을 지지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쪽도 있었고.

혹은 단순히 로튼 프룻츠에 잘 보여 점수를 따두려는 쪽도 있었다.

그즈음.

조윤재단에 취직해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는 조은찬에게는 지상과제가 있었다.

어떻게든 합법적으로 일을 적게 하고 월급을 타갈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노벨평화상 어쩌고 하는 소문은 좋은 건수가 되었다.

그는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종일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걸 보다 못한 옆자리의 동료가 툴툴거렸다.

“대체 하루 종일 일은 안 하고 뭐 하는 거예요?”

“허, 일을 안 하다니?”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고 있잖아요. 도대체 뭘 보는 거예요.”

조은찬은 당당하게 대꾸하며 모니터 각도를 돌려 화면을 보여주었다.

“모르는 소리 마. 봐.”

“이게 뭔데요.”

“불법 도박 사이트.”

동료는 경악해서 외쳤다.

“조 차장님!”

“사람 말 끝까지 들어. 여기서 노벨평화상 누가 받을지 돈을 걸었단 말이야.”

“근데요.”

“항상 중요한 건 배당률이지, 배당률. 여기에 우리 보스도 끼어있다는 거 아니야?”

“근데요!”

“배당률이 낮을수록 우리 보스가 노벨상 탈 확률이 높다는 건데, 이걸 실시간으로 체크해서 보고서로 만들 거야. 제목은 ‘VIP의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의 변동과 추이’.”

“그걸 왜 보고서씩이나 되는 문서로 만들어야 하는데요?”

조은찬은 쯧쯧 혀를 찼다.

“이렇게 이사장님을 몰라서야 어떻게 조윤재단 직원이라고 할 수 있겠어. 이번에 WFP에서 준 상을 직접 안 받으러 가고 밑에 연구자 둘을 보내서 받게 했잖아.”

“네.”

동료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게 다 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그런 거 아니야. WFP가 주는 상 같은 건 아랫사람 주고, 자기는 노벨상 받으려고. 지금 아주 눈에 불을 켜고 배당률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을걸?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어떻게 종일 저것만 보고 있겠어. 그러니 그럴 필요 없도록, 나 같은 아랫사람이 나서서 보고서로 만들어주겠다, 이거야.”

조은찬이 하도 확신에 차서 말하니 동료의 마음도 흔들렸다.

“정말 이런 보고서를 원하실까요?”

“당연하지. 풍양 조씨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나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지.”

그때 조은찬의 등 뒤에서 나타난 누군가의 그림자가 그의 몸을 덮었다.

대찬이었다.

그는 냅다 손을 휘둘러 조은찬의 뒤통수를 후렸다.

“악! 누구야!”

조은찬은 뒤통수를 싸쥐며 휙 뒤를 돌아 눈을 흘겼다.

“나다, 나!”

대찬은 이번엔 무방비의 목덜미를 후렸다.

“아씨, 왜 때려요!”

“에라, 이 망할 자식아. 뭐가 어쩌고 어째? 눈에 불을 켜고 배당률을 실시간으로 체크해?”

“과연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응, 아니야. 너는 어째 날이 갈수록 정신연령이 낮아지는 거 같냐.”

“제발 솔직해지세요. 공자님도 노벨상 준다고 하면 제자들 시켜서 배당률 체크 시킬걸.”

“공자님이 그럴지는 몰라도 난 아니야.”

“흐흐, 구라 치네.”

대찬은 얼굴을 확 구기며 실질적으로 재단의 일을 처리하는 재단의 사무총장에게 말했다.

“총장님, 조은찬 품위유지의 의무 위반, 상사에 대한 모욕과 폭언. 정직 3개월.”

“알겠습니다, 이사장님.”

그러자 조은찬은 펄쩍 뛰며 대찬에게 싹싹 빌었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닥칠게요.”

“한 번만 더 내가 노벨상에 목을 맨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헛소문 퍼트리고 다니면 잘릴 줄 알아.”

“…네.”

대찬은 조은찬에게 눈빛을 쏘고는 이사장실로 향했다.

그런 대찬을 향해 조은찬이 정신 못 차리고 고개를 빠끔 내밀며 다시 물었다.

“근데 진짜 노벨상 관심 없어요?”

“아오, 진짜! 총장님, 쟤 정직 1년 때려요. 농담 아닙니다.”

대찬은 신경질적으로 왁왁 소리를 지르곤 이사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사무총장의 뒤로 여러 사람들이 우르르 이사장실로 들어갔다.

이사장실에 들어간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대찬의 최측근들이었다.

로튼 프룻츠의 민승기, 옥문영, 한태윤과 진위생, 마강국.

무소속 국회의원 최재한.

극동일보의 전길재.

그리고 윤이영.

그들이 둘러앉아 나눌 대화의 화제는 노벨상이었다.

조은찬의 말처럼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정도로 환장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관심을 안 가질 수는 없었다.

최재한이 대찬에게 말했다.

“이건 조 회장이 계속 강조했던 ‘비즈니스 포 글로브’의 화룡점정이야.”

전길재 역시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조 회장님의 기쁨이고, 로튼 프룻츠의 기쁨이고, 나라의 기쁨이고, 민족의 기쁨이에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극동일보도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협조하겠습니다.”

마강국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지,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다.

“내 친구가 노벨평화상이라니… 상 받으러 갈 땐 무조건 내가 같이 가는 거죠?”

그러자 마찬가지로 대찬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진위생이 견제구를 던졌다.

“외부일정을 함께 소화하시긴 하지만… 저런 큰 자리에는 오래 모셨던 사람이 가는 게 맞지 않을까요?”

“진위생 씨, 업무분장 제대로 합시다. 평양 갈 땐 입 꾹 다물더니 노벨상 받으러 갈 때는 욕심을 내네?”

“아니, 뭐, 그냥 의견 개진입니다.”

대찬은 마강국과 진위생의 귀여운 알력 다툼을 웃음으로 넘기고 옥문영에게 물었다.

“옥 대표님, 만약에요. 제가 진짜 만약에 수상자가 된다면요.”

“그렇게 만약에, 만약에 하실 거 없어요. 배당률 보셨어요?”

“대충 듣긴 했는데.”

“1.17예요, 1.17. 이 정도면 이자놀이 한다고 하거든요. 이변이 없는 이상 확정이고, 거금 확 때려 박아서 이자나 건지자 이런 거거든요?”

“도박 좀 하셨나 봐요?”

“나도 어디서 들은 거예요, 들은 거. 누굴 또 도박사로 만들고 계세요, 참.”

대찬은 미소를 지었다.

한태윤 역시 옥문영 대표의 말에 동의했다.

“수상소감 미리 적어 두세요. 노벨상 소감은 영어로 발표해야 되나?”

민승기도 히죽 웃으면서 장단을 맞췄다.

“스웨덴에서 받으니까 스웨덴 말로 하는 거 아니에요?”

“평화상은 스웨덴이 아니라 노르웨이에서 받는대요. 노르웨이랑 스웨덴이랑 같은 말 쓰나?”

“그래요? 그럼 그냥 한국말로 해도 될 거 같은데.”

대찬은 가만히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잔뜩 들떠서 점잖던 이들까지 난리였다.

그들의 소란이 잠잠해질 때 즈음 대찬이 다시 입술을 뗐다.

“만약에 제가 수상자가 되면, 이거 받아야 돼요?”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모인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대꾸했다.

“당연한 말씀을 하세요!”

갑자기 일동 한목소리를 내니 대찬은 당황해서 주춤했다.

“말 그대로 이구동성이네요.”

“무슨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해요?”

옥문영 대표의 말에 대찬은 난감하게 웃었다.

“아니, 뭐… 이게 평화상 받을 일인가 싶기도 하고.”

그 말에 전길재가 되도 않는 개소리라는 듯 피식 비웃었다.

“천하의 위선자가 따로 없구만요.”

“뭐, 뭐라고요?”

“사양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지. 겸손도 그 정도면 병이에요, 병.”

“아니, 그래도…….”

“노벨상을 차요? 회장님이 뭔데 차요. 이게 무슨 학교 개근상인 줄 알아요?”

노골적인 비난에도 자리에 앉은 그 누구 하나 전길재의 말을 가로막지 않았다.

똑같은 마음이라는 뜻이었다.

대찬은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평화상 이런 건 진짜 평화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 받아야지. 나 같은 장사치가 받으면 상의 격이 떨어진다니까요.”

“그건 또 노르웨이 국회의원 엿 먹이는 발언이구만요. 그 인간 눈깔이 동태눈깔이래요? 자격도 없는 사람 들어다 후보로 앉히게?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 본인도 이유를 모르지 않으실 텐데?”

“압니다, 아는데요.”

전길재는 대찬의 말을 막고 막무가내로 우겼다.

“받아요. 받으세요. 안 받으면, 진짜 죽을 때까지 후회하십니다.”

자꾸 자신의 말이 막히자 대찬도 슬슬 열이 받았다.

언성이 덩달아 높아졌다.

“안 받습니다!”

“아니, 진짜 이 양반이 왜 이럴까!”

“안 받아요, 안 받아!”

“아, 그럼 받지 마세요!”

전길재는 빽 소리를 지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찬은 푹 한숨을 쉬고 다른 이들에게도 말했다.

“전 국장님한테 심신안정에 좋은 캐모마일 차 한 잔 내드리고요, 나머지 분들도 잠깐 나가 계세요.”

그러자 다른 이들 역시 군말 없이 일어나 나갔다.

그런데 최재한만큼은 자리를 지켰다.

대찬은 그를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나머지 분들은 나가 계시라니까요. 당신도 나머지에 포함이야.”

“내가 했어.”

“뭐?”

“노르웨이로 출장 갔을 때. 너한테 관심 보이는 의원 몇몇이 있어서 로비를 좀 했지. 평화상에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마음은 고마운데.”

최재한은 대찬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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