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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553화 (553/556)

난 할 수 있어 553화

-“조대찬 회장이 갑자기 대북 거래를 중단한 건, 세간의 여론을 의식한 조치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겠죠.”

“그렇습니까?”

-“예, 사실 조 회장이 스타 기질이 좀 있지 않습니까? 그건 반대로 말하면 남의 시선 엄청 의식한다는 거예요.”

“시선을 의식한다.”

-“자신은 무결점의 사나이가 되고 싶은 겁니다. 북한과의 이번 거래로 평화의 비둘기, 뭐 이런 게 되고 싶었던 모양인데, 생각만큼 잘 풀리질 않고 오히려 욕을 먹으니 갑자기 거래를 중단하는 것이죠.”

김풍호는 근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방송에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었다.

대찬은 코웃음을 쳤다.

“평양에 안 가면 저런 인간들 말이 사실로 굳어진단 말이야.”

“평양 가면 뭐가 달라져?”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달라지지. 저쪽이 비도축육 공급을 재개하는 대가로 다시 대화에 나서는 게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내리면, 나랑 만난 직후 다시 대화에 나설 거야.”

“그럼 그림이 오빠가 북한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끌고 나온 것처럼 된다는 거지?”

대찬은 웃으며 윤이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끌고 나온 것처럼이 아니라 끌고 나온 게 되는 거지.”

“까짓것 욕 좀 먹고 끝내면 안 돼?”

대찬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나만 욕먹고 끝나는 게 아니라 회사 평판이 떨어져. 앞으로도 우리가 일정한 영향력을 거머쥐려면 지금 확실히 해둬야 해. 이 판을 주도하는 게 누군지.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도 걱정돼.”

대찬은 윤이영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걱정 마. 내가 몇 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죽을 팔자였음 진즉 죽었지.”

“그걸 지금 위안하라고 하는 소리라고 해?”

대찬은 멋쩍게 웃었다.

평양으로 갈 테니 김정은 만나게 해달라.

김영재는 대찬으로부터 자기 주군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일을 해결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서야.

김영재는 목숨을 걸고 대찬의 제안을 김정은에게 관철시켜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김정은은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집무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내쫓은 그는, 한 시간 넘게 집무실의 집기들을 때려 부수고 나서야 겨우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숨찬 목소리로 휘하에게 지시를 내렸다.

“조대찬 평양으로 올라오라 하라.”

“예! 위원장 동지.”

“그리고 김영재, 그 반동분자는 요덕수용소로 보내라.”

“알았습니다!”

대찬은 북한으로부터 평양으로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통일부의 방북 허가를 받고, 대찬은 판문점을 넘어갔다.

윤이영은 대찬의 만류에도 기어코 판문점 남측까지 나와 대찬을 전송했다.

그녀는 대찬의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말했다.

“말투 공손히 하고. 괜히 자신감 넘쳐서 오버하지 말고, 응?”

“알았어.”

윤이영은 대찬의 목을 꽉 끌어안고 살짝 까치발을 들어 대찬에게 입을 맞췄다.

대찬도 윤이영의 등을 끌어안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렇게 대찬은 윤이영의 전송을 받으며 판문점 북측으로 넘어갔다.

훈훈한 분위기에서 초청받았던 첫 방북 때와는 달리.

자신을 바라보는 군인들의 표정이 날카로웠다.

대찬은 이번에는 윤이영과 동행하지 않았지만 상당한 인원을 대동했다.

김정은이 거느린 군대에 비하겠냐마는.

그래도 좌우로 든든한 사람들을 거느리는 쪽이 자신감을 보존하기에 좋았다.

물론 덩달아 평양으로 끌려가게 된 사람들의 마음은 잔뜩 불안했다.

특히 무사히 평양에서 탈출했다며 콧노래를 부르던 허운은 도로 평양으로 끌려가게 되자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그는 대찬의 뒤에서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시종 꿍얼거렸다.

“나 죽어서 남쪽으로 돌아오면 우리 엄마가 너 죽이겠대.”

“허운이 죽어서 돌아오면 나도 이미 죽은 상태일 텐데?”

“부관참시하겠다, 그 말이야!”

“기백 있게 자진해서 평양 가겠다고 할 땐 언제고 오늘은 왜 이렇게 약한 소리야?”

“그때랑 지금이랑 같니? 응?”

“이미 북으로 넘어왔으니 대범하게 있으시라요. 그런 소리가 다 무슨 소용이람.”

자기는 죽을 맛인데 태연자약한 대찬을 보니 허운은 바짝 약이 올랐다.

대찬 일행은 첫 번째 방북처럼 백화원 영빈관에서 영접을 받지 않았다.

김정은을 만나기 전, 북측 실무자와 먼저 만난 식사 자리는 대동강 수산물식당에 마련되었다.

백화원 영빈관보다 급이 떨어지는 시설이었다.

그때만큼 호락호락하게 협상에 나설 뜻이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아울러 수족관에 가득 들어찬 생선들을 대찬에게 내보이며 자신들의 식량 상황이 로튼 프룻츠 없이도 충분히 괜찮다는 걸 과시하려는 의도 역시 있었다.

대찬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든 으르렁대는 그들을 보며, 대찬은 점점 자신의 조치가 제대로 먹혀들어 갔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룻강아지일수록 크게 짖는 법이다.

대찬은 식사를 대접받고, 김정은과의 회담을 위해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대찬의 일행은 집무실이 있는 조선로동당 본부 청사까지 가지도 못하고, 그대로 호텔에 억류되었다.

결국 대찬은 홀몸으로 김정은의 집무실에 가야만 했다.

대찬을 그곳까지 에스코트하는 실무자의 태도는 무뚝뚝했다.

끝까지 대찬의 기를 죽이려는 의도였다.

“들어가서 기다리면 위원장 동지가 나오실 것이오.”

“알겠습니다.”

대찬은 김정은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덩그러니 투박한 의자가 놓여 있었다.

벽에 걸린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 초상화가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였다.

대찬은 차 한 잔 대접받지 못한 채 김정은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길 30분.

김정은이 안쪽에서 어기적어기적 걸어왔다.

얼굴에는 불쾌감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대찬은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위원장.”

김정은은 대찬을 흘끗 보기만 할 뿐 말로는 대답하지 않은 채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대찬은 선 채로 가만히 기다렸다.

김정은은 마지못해 손을 뻗어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라우.”

“네.”

대찬은 자리에 앉아 김정은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김정은은 외투 앞섶에 한쪽 손을 찌르고 대찬에게 말했다.

“회장 선생은 자기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일개 자본가의 주제로 우리 공화국을 주무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냔 말이오.”

“북한을 주무르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이 없는데 왜 이런 해괴망측한 일을 저지른단 말이오? 물량이 늘어났다느니 하는 뻔한 거짓말은 늘어놓지 않기를 바라오.”

“로튼 프룻츠가 대북사업에 영향을 받는 주체는 총 두 군데입니다.”

“하나는 공화국일 것이고.”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하나는 UN과 미국 등 국제사회입니다.”

“기런데.”

“북한이 대화 노력을 지속하지 않으면, 우리도 북한과 거래할 최소한의 논리적 근거가 사라집니다.”

김정은은 콧방귀를 뀌었다.

“대화 노력을 지속해야 하는 건 회장 선생이 말하는 국제사회도 마찬가지요. 왜 우리한테만 노력을 강요하오?”

“북한은 저한테 불이익을 끼칠 수단이 없으나, 국제사회는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듣기 거북하구만 기래.”

“현실이 그렇습니다.”

“기래서.”

“저희는 북한 바깥의 세계 각국과 거래를 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돈을 벌기 때문에 북한에 원가에 가까운 저렴한 가격에 비도축육을 제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회장 선생이 그쪽 눈치를 보느라 공화국을 분열시키려는 책동에 가담했다, 이 말이오?”

“그게 북한을 분열시키려는 책동인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비즈니스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익과 손해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기거 참 부패한 자본주의자다운 말씀이오.”

“제가 부패한 자본주의자인 덕분에 이렇게 위원장과 마주 앉아 북한 주민들을 먹여 살릴 사업을 구상할 수 있는 겁니다.”

“기래서 영영 살림고기를 공화국에 공급하지 않겠다?”

대찬은 고개를 저었다.

“위원장께서 다시 대화 테이블에 나서서 평화무드를 만들면 저희가 그럴 이유가 있겠습니까.”

“결국 살림고기를 미끼로 하여 나를 끌어내겠다는 것 아니오?”

“미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세계평화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고육책을 썼다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질 때마다 이런 참담한 짓을 저지를 거요?”

대찬은 웃으며 대답했다.

“말씀드렸듯 제 기준은 이익과 손해입니다. 미국 측에도 압박할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할 겁니다. 미국 정치인들에게도 북한은 매력적이니까요.”

“말은 누가 못하오.”

“저도 위원장의 말만 신뢰하지 않고, 위원장도 제 말만 신뢰하지 마십시오. 상황을 분석하면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정답이 쉽게 그려집니다.”

김정은은 대찬을 빤히 바라봤다.

분노를 꾹 억누르는 것이 보였다.

자기를 농락하는 것도 모자라, 당당히 평양에 입성해서 뻔뻔하게 공손한 협박을 늘어놓는 저 작자를 어떻게든 손봐주고 싶었다.

하지만 손볼 상황이 아니라는 건, 대찬의 평양행을 허락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미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김정은은 한숨을 팍 쉬고 말했다.

“회장 선생, 나는 당신이 국제사회라고 말하는 쪽에 수없이 뒤통수를 맞았소. 사람들은 날 욕하지만 나도 못지않게 시달린 사람이란 말이오.”

“발을 잘못 내디디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으니, 염려하시는 부분은 충분히 짐작합니다.”

김정은은 쓴웃음을 지었다.

“잘못 발 들였다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온 장본인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대찬 역시 쓴웃음으로 응수할 뿐이었다.

김정은은 주먹으로 탁자를 쿵쿵 약하게 두드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찬도 따라서 일어났다.

“미국과의 실무회담은 연기된 일정으로 진행하겠소.”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살림고기의 공급은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오.”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장 선생, 기렇다고 뿌듯한 승리의 미소를 지을 건 없소.”

“…….”

“이번 같은 수작이 다음에도 쉽사리 통하리란 생각은 마오. 나도 머리가 있는 사람이오. 다시는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도록 단단히 방비해놓을 것이라, 이 말이오.”

“저희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판단을 내리겠습니다.”

김정은은 입술을 우물거리고 대찬에게 말했다.

“민족을 위한 대승적 판단을 우선해주기 바라오.”

“민족의 이익 또한 제 손익계산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충실히 감안하겠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 연회를 베풀지 못하는 점은 양해를 해주오.”

“물론입니다. 이미 첫 방북 때 백화원 영빈관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기케 생각해준다면 고마운 일이오.”

“차후 위원장께서 파주 설비나 흥읍 본사에 들르신다면 그때 받은 대접을 배로 돌려드리겠습니다.”

김정은은 어정쩡한 웃음으로만 화답했다.

대찬은 북한이 다시 대화에 나선다면 비도축육 공급을 재개하기로 약속했다.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던 평양 사무실도 다시 원상복구 되었다.

대찬은 그곳에 허운을 두고 돌아와야 했다.

그래도 못내 신경이 쓰여 대찬은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었다.

“…지금이라도 책임자 바꿔 달라면 바꿔줄게.”

“됐습니다요…….”

“정말 괜찮아?”

“안 괜찮은데, 이런 일 한 번 더 터졌다고 서울로 내빼면 내 체면이 뭐가 됩니까, 예?”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

“다음에는 제발 이런 불상사가 나지 않게 꼭 좀 부탁드려요.”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나. 김정은 마음이지.”

“하아…….”

“그래도 한번 호되게 당했으니 이번처럼 함부로 굴기는 쉽지 않을 거야. 게다가 비도축육이 더 유통되면 이렇게 하기 더 힘들어지지.”

“제발 회장님 예상대로 됐으면 좋겠네요.”

“분위기 이상해지면 바로 서울로 불러들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예, 예…….”

허운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대찬이 다시 판문점 남쪽으로 내려왔을 때에는 언론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이건 로튼 프룻츠 홍보팀에서 대찬의 지시를 받아 꾸민 일이었다.

대찬이 위험을 무릅쓰고 평양에 다녀온 건 순전히 자신을 위해서였다.

북한을 다시 양지로 끌어당긴 건 너희 정치가들의 노력 덕분이 아니라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목숨 걸고 김정은의 멱살을 챈 자기 덕분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대찬은 없는 공을 자랑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있는 공을 굳이 감추려 들지는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분석 내지는 속사정을 전격 공개한답시고 자기를 향해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자신의 공로를 자랑해야만 했다.

대찬은 북측 판문점을 배경으로 두고 자신을 향해 몰려든 언론들과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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