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535화
박씨 성을 가진 플래시를 켠 녀석이 키득거렸다.
“아, 박똥훈 바로 옆에서 자야 돼. 개짜증나.”
박1이 운을 떼자 박3이 호응했다.
“미친, 박똥훈한테서 거지 똥냄새 나.”
반에서 가장 성질이 더럽기로 소문난 박1과 박3의 사이에 잠자리가 정해진 박2의 이름은 박동훈이었다.
학생들을 강자와 약자로 나눈다면 박동훈은 약자에 해당했다.
성질 더러운 강자 사이에 낀 약자.
수련회 첫째 날의 희생양이 그로 정해진 건 우연은 아닌 셈이었다.
시옷으로 시작하는 성인 까닭에 같은 방에서 자게 된 서화진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돌아누웠다.
몇 마디 말로 그치면 좋을 텐데.
그럴 리가 없었다.
박1이 박동훈의 이불을 확 젖혔다.
“야, 박똥훈. 너 왜 우리 옆에서 자는데. 짜증나.”
“…….”
박동훈은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박1과 박3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안 자는 거 다 알아. 어디서 자는 척이야.”
“…왜, 왜 그러는데…….”
“거지 똥냄새 나서 너랑 못 자겠다고.”
“그, 그럼 나보고 어디서 자라고…….”
“똥이 왜 방에 있어. 똥은 변기통에 들어가야지. 저기가 너 잘 곳이잖아.”
박3이 건들거리며 화장실을 가리켰다.
차마 화장실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라 박동훈은 가만히 몸만 웅크렸다.
몸을 웅크려 뒤로 도드라진 그의 엉덩이를 박1이 발로 툭툭 건드렸다.
“아, 똥냄새 난다고! 화장실로 꺼지라고!”
“변소에서 어떻게 잠을 자.”
그러자 박1과 박3은 자지러질 듯이 웃었다.
“변소래, 미친. 개웃겨. 할아버지냐?”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쟤 엄마랑 아빠가 학비 대려고 아침부터 밤까지 일한대. 그래서 할머니가 키워준대잖아.”
“아, 그래서 늙은이 말 쓰는구나. 박똥훈 몸에서 나는 게 할머니 거지 똥냄새였구나.”
“…….”
박동훈은 변변한 반박 한 번 하지 못하고 모욕을 당했다.
박3은 흐흐 웃었다.
“화장실에서 왜 못 자? 너는 저기가 더 편하잖아?”
“못 자…….”
“못 자? 그럼 자게 해줄까?”
박3은 흐흐 웃으면서 박동훈에게 다가갔다.
박1은 웃음을 흘리면서 박3에게 물었다.
“어떻게 자게 하려고?”
“우리 형이 알려준 건데, 이렇게 목 양쪽을 살짝 누르면…….”
박1은 박동훈의 울대 양옆에 엄지를 갖다 댔다.
박동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 뭐 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 안 죽어. 이게 기절놀이라는 거래. 잠 안 온다며? 자게 해준다니까.”
박1은 박동훈의 목에 갖다 댄 손가락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박3은 개구리 해부를 구경하는 듯 신기해했다.
“오, 이렇게 하면 진짜 기절한대?”
“응, 우리 형 6학년이잖아.”
2학년의 아이들에게 6학년이라는 건 그 이름만으로도 반박할 수 없는 권위를 부여하기 마련이었다.
박1은 겁에 질린 박동훈의 얼굴을 직시하며 흐흐 웃었다.
박동훈의 눈에 비친 박1의 얼굴은 순수한 악마 그 자체였다.
“내가 금방 잠들게 해줄게…….”
박1의 손가락이 박동훈의 목살을 살짝 파고들었다.
“아, 진짜 못 봐주겠네.”
꾹 참고 잠을 자려던 서화진은 더 참지 못했다.
그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순간 박1의 손가락에 힘이 풀렸다.
그는 서화진을 쏘아봤다.
“서화진, 뭔데.”
“적당히 해. 그러다 박동훈 죽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그러자 박3이 서화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야, 6학년 형이 안 죽는대잖아. 네가 뭔데 죽는다 만다야.”
“지랄하지 마. 내가 박동훈이랑 자리 바꿔줄 테니까 그냥 얌전히 잠이나 자.”
그러자 박1과 박3은 서로를 바라보며 낄낄 웃었다.
박1은 박동훈을 놔주고 서화진을 향해 몸을 일으켰다.
“너 지금 지랄이라고 했냐?”
“그래, 너희가 하는 게 지랄 아니면 뭔데?”
“어이가 없네. 네가 박동훈하고 자리 바꿔준다고 했지? 어차피 거지 똥냄새 나는 건 똑같은데 바꿔봤자 무슨 상관?”
“잠 안 오고 심심하면 너희끼리 놀아.”
“우리끼리 놀면 재미없잖아. 그래서 박똥훈이랑 같이 놀려고 그러는데 네가 방해하잖아.”
“목 조르는 게 노는 거면 내가 놀아줄까? 목 한번 졸라줘?”
서화진이 사납게 받아치자 박1과 박3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이 새끼가 공부 좀 잘한다고 몇 번 받아줬더니 말을 이상하게 하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쟤네 엄마가 도서관에서 책 빌려주는 사람이라 돈은 없는데 책만 많이 읽는데. 그래서 그런가 보네.”
대찬의 불같은 성질을 물려받았는지, 서화진도 한번 불이 붙으니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목 졸리기 싫으면 그냥 너희끼리 놀아라.”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자는 척을 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같은 방 학생들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감히 자기들한테 대적하는 서화진을 박1과 박3은 가만두지 않았다.
기어오르는 놈은 꼭 그 대가를 치르게 하라고 부모에게 귀한 가르침을 받은 그들이었다.
“너 같은 놈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대.”
박3은 이를 악물고 서화진의 명치를 걷어찼다.
서화진은 불의의 일격에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려는 그를 박1의 발길질이 다시 주저앉혔다.
서화진은 내동댕이쳐졌다.
박1은 엎어진 서화진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왜 우리가 목이 졸려. 목 조르는 건 우리고, 졸리는 건 너네 장난감들이지.”
“이게……!”
“또 기어오르네.”
박1과 박3은 동시에 달려들어 서화진을 제압했다.
박3은 서화진의 목을 누른 채 박동훈에게 말했다.
“야, 박똥훈.”
“어, 어어?”
“너 목 졸리기 싫지.”
“어…….”
“그럼 네가 서화진 목 졸라.”
“뭐?”
“싫어? 그럼 네가 졸리든가.”
박동훈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의 시선이 박1, 박3과 서화진을 여러 번 오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마음이야 당연히 서화진에게 있었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할 순 없었다.
당장 여기서 서화진의 목을 조르지 않으면 자기의 목이 졸리게 될 테니까.
박동훈이 망설이자 박3이 그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럼 네 목 졸라줄까?”
박동훈은 방금 전까지 자기 목을 조르던 박1의 아귀힘을 기억했다.
눈이 절로 질끈 감겼다.
9살의 마음에는 양심보다 당장의 고통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박동훈의 떨리는 손가락이 서화진의 목을 졸랐다.
서화진의 눈동자도 덩달아 떨렸다.
의식을 잃는 데는 몇 초면 충분했다.
무기력하게 쓰러진 서화진을 보고, 박1과 박3의 짐승 같은 야성이 완전히 눈을 떴다.
다만 그들처럼 남에게 고통을 안기는 데 익숙하지 않은 박동훈을 위해 얇은 홑이불을 서화진의 몸 위에 덮었다.
박1은 박동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 밟아.”
“…뭐?”
“밟으라고. 아, 얼굴은 피해서 밟아. 티 나니까.”
박동훈이 망설이자 박3이 박동훈의 목덜미를 꽉 쥐었다.
“밟으라고.”
박동훈은 눈물을 삼키며 서화진의 몸에 발길질을 시작했다.
뒤이어 박1과 박3도 그렇게 했다.
다음날.
조은찬은 서화진의 표정이 어제처럼 밝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영악한 녀석들이 밖에 보이는 부위에는 멍이 들지 않게 했다.
그 탓에 조은찬은 간밤에 무슨 곡절이 있는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게다가 어제까지만 해도 잘만 어울리던 녀석들이 서화진을 슬금슬금 피하기까지 한다.
조은찬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그는 점심 도시락을 서화진에게 주면서 슬쩍 물었다.
“야, 무슨 일 있어?”
“…….”
원래 같으면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아무 일도 없다고 했을 서화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조은찬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말해.”
“아냐, 삼촌.”
외당숙이니 엄연히 삼촌은 아니지만 서화진은 조은찬도 삼촌이라고 했다.
조은찬은 서화진의 팔을 붙들고 말했다.
“너, 언제가 됐든 꼭 말해줘야 된다, 알았지.”
“알았어요.”
힘없이 도시락을 받아 멀어지는 조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조은찬의 뒷맛이 찝찝했다.
조은찬은 이걸 대찬에게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조카의 행동거지가 심상치 않다는 건, 사소하게 생각하면 얼마든지 사소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미국부터 방글라데시까지 신경 써야 하는 대찬에게 바로 보고를 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았다.
조은찬은 진위생에게 이를 알리고 일단 서화진의 동향을 예의주시했다.
수련회의 2박 3일 일정이 끝나도록 서화진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학생들을 실은 전세버스가 학교에 도착한 이후.
조은찬은 서화진을 데리고 식당으로 데려갔다.
“더 못 참겠다. 지금은 얘기를 들어야겠어.”
“왜 이렇게 집요해요? 삼촌답지 않게.”
“조대찬한테 옮았다. 자, 빨리 말해. 숨기는 거 하나 없이.”
“나 진짜 말해요?”
“그래, 말해.”
조은찬의 거듭된 요구에 서화진은 무거운 입술을 뗐다.
서화진의 말이 이어질수록 조은찬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조은찬은 밥 한술도 뜨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식은 바로 대찬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런 찢어 죽일 놈들이…….”
대찬은 그 말을 듣자마자 문자 그대로 격노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선을 넘었다.
대찬은 더 이상 속 편히 관망만 하지 않았다.
이미 그럴 수 없는 단계였다.
대찬은 조은찬에게 말했다.
“조은찬.”
살벌한 목소리에 조은찬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대답했다.
“으응.”
“이번 일은 내가 직접 개입 좀 해야겠다.”
“그래야지.”
“너도 다른 일 다 제쳐두고 이 일에 좀 몰두해줘야겠어.”
조은찬 역시 서화진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은 이상 이의가 없었다.
그는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든지 시켜만 줘.”
“일단 화진이가 가해자로 지목한 학생들 정보 좀 알아와 줬으면 하는데.”
“오케이. 다른 건?”
“일단 그거면 돼.”
가해자가 아홉 살짜리라고 대찬은 연민을 느끼지 않았다.
대악마든 소악마든 악마는 악마다.
하지만 책임의 크기를 따진다면.
아무래도 아홉 살 무지렁이보다는 애들을 터무니없이 비열하게 키운 그 부모 쪽이 더 클 것이다.
대찬의 칼날은 그 부모들을 겨눴다.
그러려면 도대체 뭐 하는 인간들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조은찬은 정수보다는 꼼수에 능통했다.
즉, 이런 자잘한 뒷조사에는 번듯한 직원들보다는 낫다는 뜻이었다.
조은찬은 금세 가해자 박1, 박3, 박동훈의 부모 신상을 소상하게 털어 대찬에게 바쳤다.
대찬은 조은찬과 회장실에 앉아 그 면면을 들여다보았다.
“가해자 1. 이름 박성훈. 애비는 정도식품 사장, 어미는 가정주부. 정도식품?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대찬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탁자에 놓인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우리 허운 씨, 일 잘하고 있어요?”
“회장님이 전화를 다 주시고요, 이 시간에. 안 바쁘세요?”
“바빠요. 뭣 좀 물어보려고.”
“하문하시지요.”
“비바체 납품업체 중에 정도식품 있나 한번 확인해줘요.”
허운은 따로 자료를 들추지 않고 바로 대꾸했다.
“정도식품 우리 PB 브랜드 물건 생산하는 업첸데요?”
“그래요? 우리가 발주한 PB 제품이 그쪽 매출 얼마나 차지할 거 같아요.”
“어마무시하죠. 그러니까 아니꼬와도 대형마트한테 빌빌 기는 거 아니겠어요. 정확한 수치는… 잠시만요.”
허운은 잠깐 파일 몇 개를 뒤적이더니 바로 대찬이 원하는 답을 내놓았다.
“우리가 저쪽에 지급하는 대금이 연간 80억쯤 되고요. 정도식품 매출이 연 340억쯤 되니까 우리 쪽에 의존이 심하죠.”
“네, 알겠습니다. 계속 일 열심히 하세요.”
“아, 예, 덕담 고오맙습니다.”
대찬은 전화를 끊고 조은찬에게 말했다.
“가해자 1은 대충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고. 2번 프로필 줘봐.”
조은찬은 대찬의 말대로 했다.
대찬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쪽 집안은 좀 결이 다르네. 평범한 맞벌이 부부잖아. 화진이는 기껏 자기들 두 번, 세 번 생각해서 행동하는데…….”
“아, 그쪽은 1번하고 3번이 등 떠밀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것 같더라고. 화진이가 그렇게 얘기했어.”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