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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522화 (522/556)

난 할 수 있어 522화

급격히 덩치를 불린 로튼프룻츠는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덩치가 커진 만큼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하기 전에 지주회사 체제를 먼저 수립한다는 방침이었다.

이는 로튼프룻츠가 지금의 비도축육 사업과 전자상거래 사업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사업 분야로 진출할 것이라는 계획이 반영된 결과였다.

대찬은 기존의 로튼프룻츠를 인적 분할하여 지주회사인 주식회사 로튼프룻츠, 비도축육 사업을 진행할 RF 미트(Meat), 식음료 사업을 진행할 RF F&B로 나누기로 결정했다.

RF 미트의 대표에는 비도축육 사업부를 진두지휘했던 총괄기획실장 한태윤 전무가 선임되었다.

RF F&B의 대표 자리는 당연히 와인과 커피를 맡았던 RF베버리지의 오윤 대표의 몫이었다.

이 작업이 완료되면 지주회사인 로튼프룻츠는 RF미트, RF F&B, RF 시스템, RF 비바체를 거느리게 된다.

일련의 작업들이 추승호 이사의 지휘하에 진행되는 가운데.

로튼프룻츠의 중핵이 된 옥문영 대표가 대찬을 찾아왔다.

그녀는 정덕춘 이사를 대동했다.

면식이 없는 둘은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금세 쿵짝이 맞았다.

성격도 다르고 출신도 달랐지만 중늙은 여성임원이라는 점이 둘 사이를 가깝게 만든 듯했다.

둘은 대찬을 찾아와 은근히 압력을 넣었다.

“이제 회장 직함 팔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회장이요?”

옥문영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거느린 계열사가 몇 갠데 언제까지 사장 직함으로 버틸 작정이세요?”

“사장 직함이 아니라 그냥 대표이산데요?”

“그럼 비바체의 저나, F&B의 오윤 대표나, 시스템의 민승기 대표나, 미트의 한태윤 대표나, 세상에 한태윤이 나랑 동급이라니. 어쨌든 이 인간들하고 대표님하고 동격이라 이거예요?”

“면면이 다 대단하신 분들인데 동격으로 못 있을 것도 없죠.”

대찬이 퉁명스레 받아쳤다.

그러자 정덕춘 이사가 바톤을 터치하고 대찬을 쥐어짰다.

“그게 당최 무슨 말씀이십니까? 쓸데없는 고집 그만 피우고 빨리 명함에 회장 두 글자 새기세요.”

“보세요. 지금 두 분이 와서 저 못살게 구는 거 보시라고요. 동격으로 취급되면 다행인 거 아닙니까?”

“별것 아닌 거로 떼를 쓰시니까 저희 같은 아랫것들이 기어오르는 거 아니에요.”

“난 진짜 미치겠어요. 비바체 괜히 인수했나 봐. 옥 대표님 암사자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들으면 오금이 저린다구요.”

옥문영 대표는 쯧쯧 혀를 찼다.

“자꾸 고집 피우시면 윤이영 씨한테 다 이를 겁니다.”

“옥 대표님, 윤이영하고 사적으로 아세요?”

“왜 몰라요?”

“어떻게 아는데요?”

정덕춘 이사가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우리 로튼프룻츠 여우회 고정멤버신데요?”

“여우회면 여성사우회요……?”

“네.”

“윤이영은 이 회사 소속도 아닌데 무슨 자격으로 사우회에 가입을 해요?”

“무슨 자격으로긴요. 얼마 전에 로튼프룻츠가 Y2Y 공식적으로 인수한 거 모르세요? 윤이영 씨는 Y2Y 공동대표니까 당연히 사우회 자격이 있죠.”

“…….”

“그러니까 더 말씀 마시고 당장 회장 명패 파세요.”

“…알았어요.”

두 여걸의 전방위 압박에 잔뜩 기가 빨린 대찬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대찬은 로튼프룻츠의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회장이라는 호칭이 권위주의적이라며 어떻게든 대체할 낱말을 찾아보려고 했다.

회장을 대체할 호칭으로 이사회 의장이나 상임 CEO 같은 것들이 거론되었다.

그러나 대찬은 그런 것들이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곧 깨달았다.

결국 회장 직함을 수락했다.

언론은 83년생인 대찬이 40대가 되기 전에 재계 순위 ‘탑텐’에 이름을 올릴 총수가 될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대찬이 쏟은 노력의 대가로 약속받은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비바체로, 이미 대가를 취했다.

나머지 하나는 미국 내 비도축육 유통이었다.

로튼프룻츠를 한 차원 끌어올려 줄, 대찬에게는 중요한 이슈였다.

미국에서는 대선후보 선출이 한창이었다.

대찬은 그쪽의 동향을 꼬박꼬박 보고 받았다.

그의 입장에서 최선은 마이크 햇치가 성공적으로 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었다.

미국 부통령은 존재감이 없기로는 정평이 난 자리였지만, 누가 앉느냐에 따라 권력의 크기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특히 마이크 햇치처럼 수십 년간 정계에서 관록을 쌓은 인물이라면.

충분히 부여된 권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다.

가령 아들 부시 대통령 때의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백악관의 실세로 군림했다.

정덕춘 이사는 해외영업본부장으로서 미국 시장 진출에 관한 업무도 전담하고 있었다.

그녀는 해외영업본부에서 갈무리한 자료를 갖고 매일 대찬과 독대하며 단독 브리핑을 했다.

물론 사안이 사안인 만큼 대찬과 마이크 햇치, 아이티 사이의 삼각 트레이드는 정덕춘 이사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당최 대찬이 왜 미국 대선을, 그것도 민주당 경선에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회장님, 혹시 불법 도박 사이트에 돈 거셨어요?”

“…아뇨.”

“다 품은 뜻이 있으신 거죠?”

대찬은 애매한 웃음으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허 참, 정덕춘 이사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고 대찬과 마주 앉았다.

그녀는 다리를 꼬고 찬찬히 준비한 자료를 넘기면서 말했다.

“오바마 때 부통령 지냈던 조 바이든이 대선후보로 지명될 게 확실시돼요.”

“그 양반, 초반에는 고전하더니….”

“급진 성향의 버니 샌더스가 앞서나가니 중도 후보들이 사퇴하면서 바이든을 밀어주고 있어요.”

대찬은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바이든이 대선후보가 되면 마이크 햇치가 부통령이 될 확률은 낮아지잖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너무 겹치거든요. 70대, 백인, 중도성향.”

“…흐음.”

“만약 바이든이 대선후보가 되면 부통령 후보로는 유색인종이나 여성, 젊은 인물이 거론될 거예요.”

별로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차라리 급진 성향의 샌더스가 대선후보가 되는 게 나았다.

그러면 중도표를 끌어오기 위해 마이크 햇치를 부통령으로 지명할 확률이 있었다.

하지만 조 바이든이 대선후보가 되면 그 가능성은 작아진다.

물론 의회 내에서의 일정한 영향력만 가진다면 꼭 부통령이 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목표달성에 실패한 마이크 햇치가 열성적으로 대찬을 지원해줄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힘들었다.

혼자서 끙끙 앓는 대찬을 보고 정덕춘 이사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회장님, 유학시절에 햇치 의원이랑 면식이 있는 건 알지만… 너무 목매시는 거 아니에요?”

“나중에 보시면 알 거예요. 제가 왜 이렇게 벙어리 냉가슴 앓는지.”

“하루빨리 저도 알았으면 좋겠네요. 원, 속 시원하게 말씀을 해주시면 될걸. 마니또 누군지 안 알려주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뭐예요?”

대찬은 항변하고 싶은 욕구를 겨우 참고 입을 꾹 다물었다.

마이크 햇치가 내 마니또라고!

이변 없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조 바이든이 선출되었다.

대찬은 낭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었다.

정덕춘 이사는 그때그때 소식을 챙기지 못하는 대찬을 위해 뉴스가 나오자마자 일러주었다.

“회장님,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마이크 햇치 의원이 지명됐다네요.”

“정말이에요?”

대찬의 얼굴에 확 화색이 돌았다.

정덕춘 이사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아, 아니… 조 바이든이 대선후보가 되면 햇치는 어렵다고 하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역시 이방인들의 시야에는 한계가 있나 봐요.”

“조 바이든이 햇치를 선택한 이유가 뭐죠?”

“관건은 러스트 벨트(Rust belt)라고 판단한 모양이에요.”

러스트 벨트는 오대호를 끼고 형성된 미국 중북부 지방의 산업지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석탄과 제조업으로 흥했던 이 지역의 도시들은, 자동화가 이뤄지고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함께 망가졌다.

인구가 줄고, 치안이 급격히 악화되고,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

그런 까닭에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지역으로 분류되었던 이 지역은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클린턴 대신 공화당의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러스트 벨트 지역으로 분류되는 위스콘신ㆍ미시건ㆍ펜실베이니아를 트럼프가 가져가면서 힐러리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니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러스트 벨트의 표심을 잡는 것이 급선무였다.

대찬도 이 점은 알고 있었지만, 마이크 햇치가 이 지역의 표심을 잡는 데 유리한 카드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근데 마이크 햇치는 미네소타 출신 아닙니까? 미네소타는 러스트 벨트로 분류되진 않는데…….”

“네, 그렇죠.”

“차라리 같은 대선후보로 나왔던 피트 부티지지가 인디애나 주 출신으로 좀 더 어필이 되지 않을까요?”

“부티지지는 민주당 고학력자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에요. 저학력 노동자들 위주인 러스트 벨트 표심에 어필하기는 힘든 인물이에요.”

“그렇군요.”

“햇치 의원의 기반인 미네소타는 러스트 벨트는 아니어도 일단 지리적으로 가깝고요.”

“앞뒷집으로 붙어있긴 하죠.”

“미네소타 중에서도 마이크 햇치의 핵심지지 도시인 덜루스는 러스트 벨트와 상당히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거든요.”

한때 미네소타 물 좀 먹었다고 대찬도 그런 사실을 알긴 알았다.

“덜루스를 포함한 미네소타 동북부는 대규모 철광 지대니까요.”

“네, 햇치 의원이 주지사를 지내고 상원의원으로 있으면서 이 지역에 상당히 공을 들였나 봐요. 자기 이름을 따서 햇치 모델이라고 하는 도시재건사업을 실시했는데, 제법 성과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런 수완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주지사에 재선 상원의원을 고스톱 해서 따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대찬은 빙긋 웃음을 머금었다.

“하긴. 그렇겠죠.”

“이제 좀 미간에 주름 좀 푸시겠네요. 마이크 햇치, 마이크 햇치 그렇게 노래를 부르시더니.”

“하하… 본선에서도 이겨야 주름이 완전히 풀릴 거 같아요.”

정덕춘 이사는 궁금해하면서도 그런 대찬의 반응에 미소를 지었다.

“햇치가 당선 턱을 얼마나 크게 내기로 했길래 이러시는지, 원.”

“어마무시하게 내기로 했죠.”

대찬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일단 첫 번째 고비는 넘겼다.

이제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이 트럼프를 무찔러야 계획이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대찬이 할 일은 많지 않았다.

미국 선거는 돈 싸움이라고 하니 후원금을 좀 보태볼까 하다가 관뒀다.

후원금 몇 푼 보탠다고 해서 싸움이 완전히 뒤집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자신과 마이크 햇치 사이의 유착관계를 철저하게 땅 아래로 숨겨야만 했다.

대찬은 선거일까지 예의주시하며 조 바이든, 정확히는 마이크 햇치의 승리를 기원했다.

대찬은 마이크 햇치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부통령 후보 토론회를 편집된 동영상으로 지켜봤다.

마이크 햇치는 아직 대찬과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는 듯, 둘만 아는 은밀한 신호를 보냈다.

마이크 햇치는 토론회에서 상대편인 공화당의 현직 부통령 마이크 펜스를 몰아붙였다.

“쇠퇴한 산업 때문에 쇠퇴한 도시. 그냥 둘 수 없습니다! 그곳의 시민들을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요. 저와 토론을 하는 펜스 씨는 세금을 깎아주고 이민자를 안 받으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그것만으로 됩니까?”

‘넉살 좋은 백인 아저씨’ 이미지인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은 말투를 날카롭게 벼리지 않았다.

때문에 신랄한 말싸움은 부통령 후보인 마이크 햇치의 몫이었다.

이에 마이크 햇치는 부통령 후보치고는 제법 큰 관심을 받고 있던 차였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마이크 햇치의 첨예한 대립각을 언론에서는 마이크 대 마이크라며 관심을 가졌다.

“러스트 벨트의 시민들에게 필요한 건 세금 깎아주는 게 아닙니다. 세금 낼 돈부터 벌어야 깎아주는 게 의미가 있죠. 이민자요? 일자리 자체가 없는데 경쟁자만 없애면 무슨 소용입니까.”

날 선 마이크 햇치의 말에 마이크 펜스는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그럼 당신의 방법은 뭡니까? 비난만 하지 말고 대안을 내놔야죠.”

그의 질문에 미리 준비라도 한 듯, 마이크 햇치는 즉각 답을 내놓았다.

“새로운 동력을 러스트 벨트에 선사해야 됩니다! 쇠퇴한 산업 대신에 떠오르는 산업을 유치해야 합니다. 실리콘밸리의 아이디어를 실리콘밸리에서만 구현하란 법이 있습니까?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러스트 벨트에도 실리콘밸리의 신산업을 얼마든지 유치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중공업을 되살리겠다는 생각만으로는 어렵습니다.”

마이크 펜스는 화살을 바이든 쪽으로 겨냥했다.

그는 조 바이든을 오바마와 비교해가며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오바마 정부 8년 간 그걸 해내지 못해 지난 대선에서 심판받은 거 아닙니까. 말은 누가 못해요? 바이든 씨는 오바마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이력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인물인데, 오바마보다 낫겠습니까?”

그러나 마이크 햇치는 유치한 기 싸움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강단 있는 모습으로 준비한 연설을 토씨 하나 빠짐없이 쏟아냈다.

“제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건 러스트 벨트의 어려움을 해결하겠다는 민주당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미네소타 주지사로 재임하던 시절 ‘햇치 모델’이라고 하는 도시재건사업을 실시해 러스트 벨트와 유사한, 덜루스 일대의 산업구조를 극적으로 바꿔냈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니 공화당에서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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