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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503화 (503/556)

난 할 수 있어 503화

직원이 입을 떼기도 전에 대찬이 다급하게 물었다.

“나한테 말해준 거 외에 업데이트 된 거 있습니까.”

“아, 아직 없습니다, 대표님.”

“아이티 정부에 연결해줘요.”

대찬은 그렇게 말하곤 그 잠깐도 못 기다렸다.

그가 직접 수화기를 들고 아이티 대통령 관저에 전화를 걸었다.

몇 단계 거치지 않아 대통령의 비서실장과 연락이 닿았다.

연락이 닿자마자 대찬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흥분하지 마십시오, 대표님.”

“나한테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세요.”

“한국 취재진 2명에 현지 코디네이터 1명, 가드 2명으로 이뤄진 일행이 포르토프랭스 인근의 벨레 지역으로 진입했습니다. 군 병력이 통제하고 있지만 반정부 시위대와 갱들이 들끓는 우범지대입니다.”

“그래서요.”

“갱단의 타깃이 되어 한국인 한 명과 현지 코디네이터인 우리 국민 한 명이 사망했고, 한국인 한 명은 피랍되었습니다. 가드는 한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은 도주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대찬은 머리를 콱 움켜쥐었다.

“죽은 사람의 신원은 확인되었습니까.”

“아뇨. 현재 파악 중입니다.”

“이런, 씨……. 죽은 건 아는데 왜 누군지는 모르는 겁니까?”

대찬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비서실장의 잘못도 아닌데 상황이 상황이니 말이 험하게 나갔다.

비서실장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침착하게 대답했다.

“사망도 추정입니다. 총에 맞았다는 목격자 증언이 있었고요, 쏜 놈들이 그 사람도 데려갔답니다.”

“망할.”

“갱단에서 몸값을 요구한다든지 하는 정확한 입장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파악되는 대로 저한테 바로 연락주세요. 몸값은 저희가 지불할 테니까.”

“그렇게 하죠. 한국인 취재단이 조 대표님과 연관된 사람들이란 걸 우리 정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힘을 다 쏟겠습니다.”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저도 지금 당장 아이티로 가겠습니다.”

“예? 오, 오실 필요까지는…….”

“가서 뵙죠.”

대찬은 전화를 끊었다.

그는 훅, 참았던 숨을 토하고 바로 당직 중인 직원에게 말했다.

“개인 일로 바쁘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 아닙니다, 대표님.”

“저 며칠간 휴가 내고 아이티에 가 있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직원은 작은 말실수 하나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조금이라도 대찬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다.

“회사 일은 한태윤 전무님께.”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대표님은 대표님 일만 신경 쓰십시오. 항공편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걸로 결제해놓겠습니다. 저, 운전은…….”

“혼자 갈 수 있습니다. 고마워요.”

대찬은 쓸쓸한 미소를 짓고 바로 사옥을 나섰다.

그는 바로 아이티로 떠났다.

직항이 없어 미국을 경유하는 여정이었다.

아이티까지 닿는 데는 24시간이 넘게 소요되었지만, 그때까지 아무런 해결의 기미가 없었다.

대찬을 마중 나온 전담 관료인 스탠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서 유감입니다. 그놈들을 대신해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스탠리가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아직까지 사망자 신원 파악도 안 되어있습니까?”

스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에서 최대한 노력 중입니다만…….”

“수도 인근에서 벌어진 사건이 여태 오리무중일 수가 있습니까.”

“답답한 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국이 아닙니다. 동부의 산악지대로 몸을 숨기면 찾는 데 애를 먹습니다.”

“내 사비를 털어서 용병이라도 고용하겠습니다.”

스탠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티 영토에서는 아이티 군과 UN 소속 병력이 아닌 집단의 무력사용은 엄격히 금지됩니다.”

“무력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려고 이러는 거 아닙니까!”

“정부에서 가용 인원을 최대한 가동하고 있습니다. 저희를 믿고 기다려주십시오.”

대찬은 분노에 찬 눈빛을 뿌렸지만 스탠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휴, 한숨을 쉬고 대찬의 등을 어루만졌다.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기다려주세요. 반드시 조 대표님의 친구를 안전하게 돌려놓겠습니다.”

[속보]ONB 아이티 취재단, 사망 1명·피랍 1명 추정…정부, “아이티 정부와 협조 중”

최재한의 피랍 소식은 한국에도 전해졌다.

정부는 사태 파악을 위해 아이티에 외교관을 파견했다.

딱히 그들이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수색이야 아이티 정부에서 전담하고 있고, 몸값을 지불할 주체는 대찬이었다.

그렇다 보니 외교관 역시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아이티 정부와 로튼 프룻츠를 번갈아 기웃거리며 상부에 보고할 정보만 수집할 뿐이었다.

나바사 섬 사태로 대지진 이후 오랜만에 한국 매스컴에 등장했던 아이티는, 취재단 피랍 사건으로 더 활발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으레 해외에서 피랍된 사람들에 대한 여론은 냉정하기 마련이었다.

위험한 곳에 뭐 하러 자청해서 갔느냐, 가지 말라고 하면 제발 좀 가지 마라.

이는 신분이 기자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종군기자를 하다가 총 맞아 죽었으면 직업정신이 투철하다, 저널리즘의 표본이었다는 찬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죽지 않고 잡혀가 몸값을 요구당하고 있는 신세.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쓸데없이 혈세를 축낼 한 마리 기생충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평가를 들어도 일견 할 말이 없었다.

별 가치도 없는 기사를 위해 우범지대에 자진해서 들어가 갱단과 접촉했으니.

피랍된 기자가 실은 조대찬이랑 절친한 사이라더라.

그 사실은 정치권에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특히 대찬과 척을 진 석우룡 장관에게는 코알라의 유칼립투스 잎처럼, 판다의 대나무처럼 안성맞춤인 먹이였다.

여전히 농축산부 장관직을 유지하던 석우룡 장관은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피랍된 국민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변하는 대통령의 앞에서 어깃장을 놓았다.

“국민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일단 구하고 봐야죠. 그런데 아이티는 철수 권고지역이고, 피랍된 기자는 심지어 갱단과 접촉했습니다. 위험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그 기자에게 있습니다. 살려서 데려와서,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석우룡 장관은 연타석 따가운 말을 쏟아냈다.

“기자가 피랍된 아이티는 로튼 프룻츠가 얼마 전에 무상으로 곡물 지원을 약속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공교롭게 그 기자는 로튼 프룻츠 조대찬 대표와 아주 절친한 사이라더군요.”

석우룡 장관은 자신과 성향이 다른 대통령 이하 국무위원들의 따가운 시선을 즐겼다.

그는 볼펜으로 탁자를 콕콕 건드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모종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출을 위한 몸값으로는 혈세가 아니라 조대찬 대표의 사재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그게 정황상, 그리고 도의적으로도 맞는 일입니다.”

석우룡 장관의 발언은 냉혹하지만 맞는 말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불똥은 대찬에게 튀었다.

‘기자가 하필이면 아이티로 향한 까닭은 로튼 프룻츠의 선행을 광고해주기 위함이 아니냐.’

‘극동일보를 꿀꺽하더니 이제는 ONB마저 자신의 홍보수단으로 전락시키려 했느냐.’

대찬을 욕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석우룡 장관은 정부 안에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흐려지던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각인시켰다.

이대로 대찬이 치명상을 입으면 더 이상 선거에 있어 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그와 싸움을 벌일수록 인기가 올라가진 않아도 51 대 49의 승리를 거두기에는 더 유리해질 것이다.

석우룡 장관이 소속된 야당에서도 그의 의견에 따라 대찬과 최재한에게 냉소적인 논평을 내놓았다.

대통령을 따라가 중국과의 정상회담에 기여하고.

자신들의 든든한 우군이었던 극동일보를 해부 수준으로 망가뜨리고.

그런 대찬이 내심 눈엣가시였던 차였다.

그런 그들의 악다구니를 대찬은 알지 못했다.

대찬의 신경은 온통 최재한에게 쏠려 있었다.

그는 밤마다 죽은 한국인이 최재한이 아니기를 바랐다.

가장 좋은 건 총 맞은 한국인이 죽지 않았다는 소식이겠지만, 꼭 누가 죽어야 한다면 최재한이 아니라 PD여야만 했다.

그 역시 팔이 바깥으로 굽는 기형은 아닌 까닭이었다.

아이티 정부는 성심성의껏 움직였다.

피랍 한국인 구출을 위한 태스크포스(task force)를 조직해서 수색에 총력을 다했다.

그러나 대찬에게는 그들의 움직임이 답답하기만 했다.

“아직까지 그놈들한테서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습니까?”

“…예, 수색 중입니다만.”

태스크포스를 지휘하는 공무원은 대찬에게 수색 중이라는 말만 거푸 반복했다.

“놈들이 그런 짓을 저지른 건 돈 때문인 거 아닙니까?”

“돈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납치범들입니다. 일단 수색해서 잡고 봐야죠.”

“일단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할 거 아닙니까? 협상부터 시작해야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린 이런 쪽에 전문갑니다. 우리가 숙이고 들어가면 저쪽에서 오만하게 나옵니다.”

대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부 앞에 일개 갱단은 약자라고 해도 좋다.

인질범과는 절대 교섭하지 않는다는 말라비틀어진 원칙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대찬이든 아이티 정부든 한국 외교관이든 일단 목표는 피랍된 국민의 무사 생환이었다.

그럼 지금 이런 알량한 자존심 싸움을 할 때가 아니었다.

대찬의 심기가 어지러운 것을 모를 리 없는 공무원은 좋은 말로 그를 타일렀다.

“한동안 외국인을 납치해서 몸값을 요구하는 범죄가 잦아들었던 차입니다. 만일 저들에게 지나치게 끌려가면 안 좋은 선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놈들이 해코지라도 하면…….”

“그럴 일은 절대, 절대 없을 겁니다. 안심하십시오.”

안심하라는 말이 오히려 대찬의 불안감을 더 키웠다.

“놈들의 소재는 파악되었습니까?”

대찬의 거듭되는 추궁에 공무원도 그를 안심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정보공유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예, 말씀드렸듯 동부의 산악지대 쪽에…….”

“놈들이 소재하는 지역의 범위를 지도에 표기해서 나한테 공유해주세요.”

“그렇게 해서 조 대표님의 불안감이 조금 가신다면야, 예,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공무원은 영 내키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찬이 물러나고, 공무원의 부하가 그에게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외국인이고 민간인인데 정보를 함부로 공유해도 될까요?”

“이것도 안 알려주면 난리를 칠 텐데. 뭐 별일이야 있으려고.”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죠.”

“개한테 뼈다귀 하나 물려주고 조용히 만들면 그걸로 됐지, 뭐.”

그러나 공무원의 안일한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공무원의 부하는 급히 상관을 찾아와 외쳤다.

“큰일 났습니다!”

“뭐야.”

“조, 조대찬 대표가…….”

“조대찬이 뭐?”

타타타타타타타—

헬기의 프로펠러가 요란하게 돌아갔다.

대찬은 회사의 아이티 해외영업본부 직원과 함께 헬기에 올라타 있었다.

그의 손에는 아이티 정부에서 제공한 지도가 들려 있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지도에 표시된 범위를 파악했다.

“범위가 반경 1킬로 지점이라 이거지…….”

대찬은 입술을 악물었다.

헬기는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찬은 쓴웃음을 지으며 직원에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이런 일에 손을 빌리게 돼서.”

“예? 뭐라고요?”

직원은 요란한 헬기 소리 때문에 대찬의 말을 듣지 못했다.

대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대찬이 고용한 헬기 조종사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예요. 지도에 표시된 부분이.”

“좋습니다. 이 일대를 원을 그리면서 돌아주세요.”

“라저.”

헬기는 대찬의 말대로 지도에 표시된 반경 1km 범위의 지역을 천천히 선회했다.

대찬은 직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준비됐어요?”

직원은 입모양으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됐습니다.”

“좋아요.”

대찬은 헬기 조종사와 안전요원을 한꺼번에 일일 고용했다.

대찬이 안전요원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안전요원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헬기의 문을 개방했다.

그러자 흡, 일시적으로 호흡을 차단할 만큼 거센 공기가 안으로 유입되었다.

대찬의 머리칼이 훅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마구 나부꼈다.

대찬은 고글을 쓴 채로 직원에게서 한 뭉치의 종이를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살포했다.

종이들이 지도에 표시된 범위에 마구 뿌려졌다.

또 시비 걸기 좋아하는 언론의 눈에 띌까봐 자연스럽게 금방 분해되는 재질의 종이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한국인 몸값 지불하겠음. 연락처 34-XXX-XXXX.

그렇게 쓰인 종이들이 반경 1km 범위에 꼼꼼하게 뿌려졌다.

대찬은 지는 벚꽃처럼 흩날리는 전단지를 보고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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