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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482화 (482/556)

난 할 수 있어 482화

그즈음, 로튼 프룻츠의 평택의 비도축육 제2목장, 부산의 제3목장이 완공되었다.

대찬은 평택에 이어 부산의 비도축육 목장 오픈식에 참석해 흰 장갑을 끼고 테이프를 잘랐다.

부산에서 태상바이오테크 노태식 사장과 환담을 나눈 대찬은 바로 흥읍으로 복귀했다.

마강국이 운전하고, 대찬은 한태윤 이사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일 얘기를 했다.

“평택에서 생산되는 비도축육은 전량 문제없이 평택항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중국 측의 수요는 어떤가요?”

한태윤 이사는 미소를 띠었다.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돼지열병의 기세가 들불 같으니.”

“네,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돼지고기 가격은 기존의 2배까지 치솟았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특히 구매력이 있는 도시지역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비도축육이 위생과 안전에 있어서는 재래육과 비교가 안 되니까요. 돈을 좀 더 지불하더라도 안전한 고기를 먹겠다는 겁니다.”

“단순히 싼 값에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보다는 중국 소비자들 입맛에 맞춘 제품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볼 법 하네요.”

“해뜰녘 쪽에 타진해보겠습니다.”

대찬은 고개를 저었다.

“해뜰녘은 중국에 판로를 제대로 확보한 회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중국시장 공략에는 필래가 더 유익한 파트너죠. 필래푸드와 미팅 잡고 추진해보세요.”

“알겠습니다.”

“서원웅 실장과 교감이 이뤄진 건이니 큰 틀에서의 문제는 없을 겁니다.”

“네. 확실히 두 분이 사이가 좋으니 밑에 사람들은 일하기가 편합니다.”

대찬은 미소를 지었다.

“이게 다 한태윤 이사님 덕입니다.”

“예? 제가 무슨…….”

“우리가 필래에 있을 때요.”

“황소개구리가 올챙이 적 말씀하시니까 당황스러운데요.”

“제 상사로 저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고달프게 굴리셨으면 서원웅하고의 관계, 제대로 못 챙겼을 거예요. 말도 험하게 나갔을 거고.”

“참, 별 걸로 다 공치사를 하십니다.”

“공치사가 아니라요.”

대찬은 미소를 지었다.

한태윤 이사도 흐뭇하게 웃었다.

“그 덕분에 저도 로튼 프룻츠에서 팔자에도 없는 이사 노릇 하면서 잘 나가지 않습니까. 고맙습니다, 대표님.”

“아유, 별 걸로 다 공치사를.”

둘은 소탈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한태윤 이사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로 금방 일 얘기로 돌아왔다.

“돼지열병의 국내유입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국내의 비도축육 수요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요.”

“중국 시장에 공을 들여야 하는 건 맞지만, 기본적으로 내수시장을 외면해선 안 됩니다.”

“예, 물론입니다. 본진은 든든히 지켜야죠.”

“그리고 한국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비도축육의 법적 지위가 인정되는 나라니까요.”

“중국은…….”

“시황제가 인정해주니 되레 그게 나으려나요?”

한태윤 이사는 피식 웃었다.

로튼 프룻츠는 일취월장이라는 말이 꼭 어울렸다.

평택 제2목장과 부산 제3목장의 오픈으로 추가적인 채용이 대규모로 이어졌다.

중소기업벤처부에서는 로튼 프룻츠를 모범 고용 창출 기업으로 지정할 정도였다.

정부는 로튼 프룻츠가 뭇 기업들의 귀감이 된다며, 대찬을 정부청사로 불러 감사패까지 수여했다.

그리고는 그 장면을 뉴스에 내보내기도 했다.

대찬과 나란히 앉아 뉴스를 보던 윤이영은 대찬의 팔짱을 끼며 웃었다.

“우리 남편, 화면발도 잘 받는다니까.”

“뭐 대단한 거라고 뉴스에까지 내보낼까.”

“좋으면서 부끄러우니까 괜히 그래.”

대찬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게 아니야. 주가에 별로 좋은 영향 안 미칠 거야.”

“갑자기 웬 주가 타령이야.”

“주주들이 보면 허튼 돈 쓰는구나, 오해할 수도 있거든. 피도 눈물도 없는 회사일수록 투자가치가 높다고 생각하니까.”

“필요 없는 자리 일부러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필요한 사람들만 뽑았잖아?”

“그렇긴 하지만 저렇게 정부가 케어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니까.”

윤이영은 가볍게 탄식했다.

“조대찬도 이제 아주 뼛속까지 자본주의자가 됐구나.”

“왜? 내가 뭐.”

“원래였으면 은근히 우쭐해 하면서 기분 좋아했을 텐데.”

“부정은 못 하겠다.”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윤이영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는 대찬에게 한바탕 더 쏘아주려다가 전화를 받았다.

“어머, 이 시간에 전활 다 하시고.”

“누구야?”

대찬이 묻자 윤이영은 입 모양으로 대답했다.

Y2Y.

대답을 들은 대찬은 피식 웃었다.

“열심히 일하는 티라도 내려고 그러나. 지금 시간이 아홉 시가 넘었는데.”

윤이영도 옅은 웃음으로 그 말에 동의하고, 전화에 집중했다.

“네? 이런 건 제가 아니라 조대찬 대표한테 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

윤이영은 미간을 좁히고 대찬을 흘끗 본 뒤, 한참 그쪽에서 말하는 걸 들었다.

다 들은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았어요. 중요한 분이니까 거절은 못하겠네요. 일정 잡아주세요. 늦은 시간에 고생하셨어요.”

윤이영은 전화를 끊고 다시 대찬의 팔짱을 꼈다.

대찬이 그녀에게 물었다.

“뭐야? 무슨 전환데?”

“외교부에서 급히 협조요청이 들어왔대.”

“내가 아니라 이영이 너한테?”

“내 말이.”

대찬은 잠깐 멍하니 딴 곳을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외교부에서 왜?”

“사우디 왕세자가 이번에 정상회담 하러 한국 오는데.”

“응.”

“그 전에 사우디 실무단이 들어오는데, 힘을 좀 보태 달라고 그러던데. 사우디 측에서 요청이 있었대.”

대찬은 인상을 찌푸렸다.

“왕세자한테 미인계라도 쓰라는 거야, 뭐야.”

“공식만찬에 참석해줬으면 한대.”

“…그래?”

윤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우디에도 한류가 열풍이라고, 내가 참석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거야.”

“한류 따질 거면 차라리 아이돌이 낫지. 이영이 너 나온 드라마나 영화는 중동 쪽에서 크게 수요는 없을 텐데.”

대찬이 의문을 표하자 윤이영은 눈을 흘겼다.

“그냥 마누라 출세했네, 한 마디면 될 걸 시시콜콜 따지고 들어?”

“아니, 그건 그런데…….”

“설마 오빠 안 불렀다고 삐친 건 아니지?”

“내, 내가 그렇게 쪼잔한 인간으로 보여? 아니야.”

“말은 왜 더듬을까.”

윤이영은 배시시 웃었다.

대찬은 피식 가벼운 웃음으로 답했다. 그러나 속은 복잡했다.

윤이영을 단순히 자리나 채우려고 부르진 않았을 것이다.

대찬의 직관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직관과 직감은 다르다.

직감은 동물의 것이고, 직관은 사람의 것이다.

동물의 직감에는 논리가 없지만 사람의 직관은 논리의 산물이다.

겪어온 경험, 습득한 지식, 축적한 관점, 즉 인간이 살아오면서 온몸으로 터득한 총체.

그것이 여러 단계의 논리를 단번에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되어준다.

인간으로 하여금 즉각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게 내 앞으로 훅 뛰어드는 판단이 직관이며, 직관은 차근차근 논리를 밟아 도달한 결론과 대개 같거나 종종 그보다 더 낫다.

물론 모든 사람의 직관이 맞는 판단을 내려주는 건 아니다.

형편없는 사람의 직관은 주인을 따라 형편없다.

그럼에도 대찬은 자신의 직관을 꽤 신뢰하는 편이었다.

직관을 행동으로 옮기기를 여러 번이었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 직관은 맞아떨어졌다.

신뢰할 수밖에.

그러나 대찬의 직관은 완벽하지 않은 듯, 꺼림칙하다는 뉘앙스만 건넬 뿐 그 전모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구태여 윤이영의 불안감을 부채질할 이유는 없었다.

윤이영은 드레스를 차려입고 만찬에 참석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무단은 중동 특유의 차림만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연예계가 아니라 이런 묵직한 분위기의 자리에 대찬 없이 홀로 참석하는 것이 윤이영은 영 적응되지 않았다.

그녀를 제외하고는 한국 측과 사우디아라비아 측 전부 케케묵은, 그러나 한가락씩 하는 영감들이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윤이영은 말 한마디 붙일 상대도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오가는 말은 영어, 이따금 아랍어.

모국어에만 능통한 윤이영은 입맛만 쩝쩝 다셨다.

외교부는 윤이영을 불러놓고는 통역관 하나 붙여주질 않았다.

‘아예 대놓고 마네킹 취급을 하는구나.’

윤이영의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이런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차라리 낫다 싶었다.

자신을 초대한 저의가 찜찜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대찬을 생각하면 이렇게 아무 일도 없이 끝나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그때 콧수염을 기른 한 사우디 관료가 윤이영에게 접근했다.

“안녕하십니까.”

“예? 아, 예… 안녕하세요.”

“사우디 상공부에서 일하는 마지드라고 합니다. 윤이영 씨 맞으시죠?”

윤이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한국어가 능숙하시네요.”

“통상업무를 담당하려면 영어는 기본이고 추가적으로 언어 몇 개 정도는 능숙하게 해야죠. 저는 한국어, 일본어에 그래도 좀 능통합니다.”

“네, 그런데 무슨 일로…….”

마지드는 싱긋 웃었다.

“굉장히 따분해 보이시는군요.”

“네… 조금.”

“본인이 왜 여기 와있는가, 의문이실 겁니다. 실은, 제가 특별히 요청했습니다.”

“마지드 씨가요?”

마지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왕세자 전하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제가 요청했죠.”

“…….”

“잠깐 걸을까요? 안은 공기가 갑갑하네요.”

“…그러시죠.”

둘은 한옥 형태로 된 만찬장을 벗어나 주변 정원을 거닐었다.

마지드는 느릿느릿 걸으면서 윤이영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왜 윤이영 씨를 밖으로 불렀을까요?”

“왜죠?”

“저는 왕세자 전하의 비밀지시를 받았습니다.”

비밀지시?

일개 연예인한테 비밀지시라는 말은 거창했다.

무자비한 통치자로 알려져 있던 그가 알고 보니 한류의 광팬이라든가…….

혹시 그런 반전이라도 있는 것인가.

윤이영은 눈을 깜빡였다.

“비밀지시라뇨? 저한테요?”

“정확히는 윤이영 씨의 남편인 조대찬 대표께.”

“그럼 남편한테 직접 말씀하시면 될 텐데요…….”

마지드는 웃으면서 들고나온 샴페인을 가볍게 머금었다.

“그럼 비밀지시가 아니겠죠. 윤이영 씨가 조대찬 대표께 전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부부의 침대 위가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니까.”

“그 정도로 비밀스러운 일인가요?”

“한국은 이해 못 할 일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저희 남편이 그런 중요한 일을 할 입장이…….”

“됩니다. 전 세계에서 오직 조대찬 대표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윤이영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조대찬 직관은 무시 못 할 거였네…….’

와인 잔을 쥔 윤이영의 손가락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무슨 일이죠?”

“왕세자 전하께서는 로튼 프룻츠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해주기를 원하십니다.”

“그게 비밀스러울 필요까지야 있을까요?”

마지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실과 합작으로 사우디에 설비를 갖추고, 비도축육을 생산해주셨으면 합니다.”

“아…….”

“돼지고기 비도축육을요.”

“돼, 돼지고기요?”

이슬람은 돼지고기의 섭취를 엄격히 금지한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교에서도 가장 근본주의적이고 수구적인 수니파 와하브파를 신봉한다.

그런 왕실에서 돼지고기 비도축육 설비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니.

윤이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지드는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사우디아라비아는 준 내전 상태입니다. 총칼로 싸우는 내전이 아니라 교리와 경전으로 싸우고 있죠.”

“교리와 경전…….”

종교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윤이영에게는 그야말로 먼 나라 얘기였다.

“왕세자 전하는 우리나라의 근본을 뿌리째 바꾸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성직자들은 변화를 싫어하죠. 죽을 만큼.”

“가뜩이나 내전상태인데 굳이 그런 일을 벌이시는 이유가…….”

“명분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고집 센 성직자들을 한 번에 짓누를 명분.”

“그 명분이 이 비도축육이란 뜻인가요?”

마지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돼지고기는 엄격히 금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도축육이라면 얘기가 다르죠.”

“그게 가능할 지…….”

“꾸란 2장 173절. 죽은 고기의 피와 돼지고기를 먹지 마라. 이 두 가지만 지키라고 돼 있습니다.”

“네, 저도 그건 알아요.”

“달리 말하면, 두 가지만 지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뜻이죠.”

“하지만 비도축육이라도 돼지고기는 돼지고기이지 않나요?”

윤이영은 마지드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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