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478화
청와대는 석우룡을 장관에 지명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얌전하고 온건한 줄 알았던 이가 이렇게 나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된 이상,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그의 기세를 누를 필요가 있었다.
대놓고 석우룡 장관을 경질하면 청와대도 타격을 크게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러던 차에 석우룡 장관이 로튼 프룻츠를 건드렸다.
청와대는 대찬을 카드로 활용하기로 했다.
중국과의 정상회담에 대찬을 내세우고 비도축육이 하나의 외교 카드로 활용되면.
자연히 로튼 프룻츠를 탄압하는 석우룡 장관의 평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젊은 기업가를 잡지 못해 안달이니까.
적의 적은 동지라고 했다.
석우룡이라는 공공의 적을 맞이한 청와대와 대찬은 제휴 관계를 맺었다.
대찬이 농축산부의 중재안을 거부하자마자 한중 정상회담의 수행원 명단이 발표되었다.
대찬의 엄포에 대응 사격을 준비하던 석우룡 장관은 뽑은 칼을 도로 집어넣어야 했다.
쵸 후쿠히로 회장의 지분매각 선언으로 석우룡 장관의 논리는 크게 힘을 잃었다.
게다가 대통령이 대찬을 직접 수행원으로 지목한 마당.
여기서 독한 말들을 쏟아내면 오롯이 그 해악은 자신에게 미칠 것이 뻔했다.
석우룡 장관은 입술을 악물었다.
중국으로 출국하기 전날.
대찬은 직원들에게 특별한 당부를 남겼다.
“중국에서 얘기가 잘 되면 바로 비도축육을 수출하게 될 겁니다. 중국의 상황이 급한 만큼 통관절차는 간소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큽니다. 많은 물량을 조달하긴 어렵지만, 최소한의 성의 표시는 되도록 설비는 풀가동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저 없는 동안 한태윤 이사님이 회사 전반적인 사무를 처리해주세요.”
한태윤 이사는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집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모처럼 쥐구멍이 볕 들었으니 다들 활기차게 일해주세요.”
“대표님도 중국 잘 다녀오십시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잔뜩 들뜬 김산호는 히죽 웃었다.
“우리 대표님 진핑이 형이랑 형, 동생 하고 막 그러는 겁니까, 이제?”
“김산호,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이나 잘하고 있어.”
“필래에 있을 때는 원래 제가 대표님 출장 메이트였는데 말이죠.”
“그러게. 가끔 그때가 그립다.”
김산호는 피식 웃었다.
“에이, 그립긴 뭐가 그리워요. 지금 이렇게 번듯한 회사 사장 노릇 하는 게 백 번 천 번 낫지.”
“됐어. 아, 그리고 은 소장님 또 저 없다고 다른 데 새고 그러면 안 돼요.”
“예?”
“고수혁이 제 CCTV인 거 아시죠? 중국에서도 감시할 겁니다.”
은오영 소장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유, 왜 모르겠습니까.”
대찬은 씩 웃으며 손뼉을 쳤다.
“자, 그럼 다들 얼른 일하러들 가세요.”
“네!”
직원들은 웃으면서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대찬은 캐리어 하나만을 끌고 대통령 전용기가 이륙할 성남 서울공항으로 향했다.
서울공항 운항실을 지나 대통령전용기를 향해 걸어갔다.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수행원들이 많았다.
‘전부 뉴스에서 보던 양반들이네.’
대찬은 그 뉴스에서 보던 양반들보다 자신이 더 뉴스에 많이 나왔다는 사실은 잠시 망각했다.
뉴스에서 봐서 얼굴은 알았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전무.
대찬은 묵묵히 혼자서 전용기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대찬의 옆에 누군가 따라붙었다.
“아, 조 대표님, 이런 데서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의원님.”
중국통으로 불리는 여당 의원이었다.
소탈한 성격으로 제법 인기 있는 정치인이었다.
소탈한 성격보다는 이미지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
그는 웃으면서 대찬에게 악수를 건넸다.
대찬도 웃음으로 화답하면서 악수에 응했다.
어수선한 와중이라 대충 악수하고 비행기에 오르려는데, 의원은 대찬의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대찬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날씨 정말 좋죠?”
“네, 하늘이 깨끗하네요.”
“제가 취미로 경비행기를 몰거든요.”
“그러십니까.”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날은 대통령전용기 기장도 오토파일럿 끄고 자기가 직접 비행기 몰고 싶을 겁니다.”
“아, 예…….”
“오늘 만찬에 시진핑이 각별히 신경 썼다는 후문입니다. 제비집 요리도 내놓는다던데. 조 대표는 그거 드셔봤어요?
“아뇨…….”
대찬은 도대체 그가 왜 비행기 엔진 소리가 시끄러운 이곳에서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의원은 순진한 대찬의 표정을 보고 씩 웃었다.
“웃으세요.”
“예?”
“기자들 있잖아요. 활짝 웃으세요.”
“아…….”
대찬은 그제야 그가 이러는 까닭을 이해했다.
대찬이 수행원에 포함된 건 국제정치적이면서 국내정치적인 판단.
사진을 많이 찍혀줄 의무가 대찬에게도 있는 것이었다.
대찬은 그 의원과 몇 분간 서서 환담을 나누다가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는 베이징으로 향했다.
정상회담 일정 내내 대찬의 역할은 딱히 없었다.
고위관료도 아니고 일개 기업인인 대찬이 회담에서 할 일은 딱히 없었다.
정상회담 일정 중에도 대찬은 베이징 맛집이나 들쑤시고 다녔다.
대찬의 오랜 중국 측 파트너인 정봉무역의 왕핑웨이가 그의 말벗이 되어주었다.
왕핑웨이야말로 대찬의 중국행을 가장 반겼다.
중국 당국이 로튼 프룻츠로부터 비도축육을 대량으로 수입하겠다고 결정하면,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째, 만두가 입에 좀 맞으십니까?”
“네, 맛있습니다.”
“다행이네요. 한국 분들 중에 중국 만두는 피가 너무 두껍다고 싫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저는 피가 두꺼운 게 되레 좋습니다. 피가 얇을수록 좋으면 차라리 미트볼을 먹고 말죠.”
“역시 드실 줄 아는군요.”
“그냥 제 취향이에요.”
대찬은 웃으면서 긴 젓가락으로 만두를 식초를 많이 탄 간장에 찍어 먹었다.
왕핑웨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공산당에서도 이번 회담에서 대표님의 비도축육을 대량으로 들여온다는 사실을 비중 있게 알리고 있습니다.”
“네, 저희로서는 희소식입니다.”
“대표님이 의지만 갖고 잘 말씀해주시면 우리 정봉무역에서 에이전트 역할을 확실히 해드릴 수 있는데…….”
대찬은 웃음을 머금었다.
그 역시 정봉무역과 손잡고 일을 진행하는 쪽이 좋았다.
“대신 마진율 너무 많이 붙이시면 곤란합니다.”
“아유, 물론입니다. 이런 국가적 재난상황에 돈을 너무 밝혔다가는 저부터 공안에 끌려갈 겁니다.”
“이런 탁 트인 식당에서 그런 말씀 하셔도 괜찮습니까?”
왕핑웨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영어로 얘기하고 있잖습니까.”
시진핑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비도축육 수입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
그 역시 한국의 작은 기업에서 생산하는 인공 고기가 당장의 식량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그걸 알고도 그렇게 하는 건 다분히 선전의 의도가 강했다.
정부도 이렇게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으니 그 노력을 알고 제발 좀 입 닥치고 참으라.
“조 대표님, 저녁에 일정은 어떻게 되십니까?”
“아, 저녁이요?…”
“괜찮으시면 이런 만두집 말고, 더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왕핑웨이는 대찬에게 시종 저자세로 나왔다.
대찬은 껄끄러웠던 그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곤 빙긋 웃었다.
관계가 이렇게 역전될 줄이야.
그때는 몰랐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저녁에는 한중 간 만찬에 참석해야 해서요.”
“아아, 그렇죠. 제가 하루 종일 붙들고 있을 분이 아니었죠.”
“아유, 그렇게 공치사할 건 또 아니고요.”
대찬은 웃음을 머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왕핑웨이는 거듭 허리를 굽혔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비도축육 건, 저희가 전담할 수 있도록…….”
“결정은 높으신 분들이 하겠지만 저도 왕총을 파트너로 삼을 수 있게끔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네, 아무쪼록, 아무쪼록…….”
대찬은 힘 있게 왕핑웨이와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날 저녁.
대찬은 한국과 중국의 이름난 사람들이 모이는 만찬장의 구석에 자기 자리를 얻었다.
대찬의 테이블에는 한국과 중국의 기업가들이 번갈아 빙 둘러앉아 있었다.
대찬 말고도 한국의 회장님들 몇몇이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대찬처럼 여유롭지 못했다.
그들이 굳이 대통령의 방중에 동참한 건, 절실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드(THAAD)를 한국에 배치하는 문제로 대대적인 한한령이 내려진 지 여러 해였다.
한국 기업, 특히 중국에 진출하여 소비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어느 정도 느슨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상황.
그들로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물꼬를 터야 하는 입장이었다.
대찬은 저쪽의 요청을 받는 입장.
저들은 저쪽에 요청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대찬은 같은 테이블에 앉은 한국과 중국의 기업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양국 정상의 건배사가 이뤄졌다.
대통령은 이러쿵저러쿵 건배사를 하다가, 대찬 쪽을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우리나라의 젊은 기업인이 만들어낸 비도축육이 중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리고 우리나라의 새로운 가치창출에 기여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 회담이 물 흐르듯 진행된 것도 이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모두 저기 있는 조대찬 대표를 위해 박수를 한번 쳐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의 요구에 좌중은 박수를 쳤다.
그 좌중에는 중국 주석 시진핑도 포함돼있었다.
그는 고개를 기울인 채 뚱한 얼굴이었지만, 대통령의 요구에 두툼한 손으로 박수를 쳐주었다.
대찬에게는 그저 신기한 경험.
‘와, 시진핑이 날 보고 박수를 다 치네.’
대찬은 겸손하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은 단지 대찬을 띄워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한정된 언어에 허투루 인심을 퍼줄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오늘 이 일을 계기로, 한중 간의 자유로운 무역에 조금이라도 남은 장애물이 모두 제거되기를 희망합니다. 시 주석님, 그렇게 믿어도 되겠지요?”
사드 배치로 인한 무역 보복을 완전히 철회하라는 의사표시였다.
시진핑은 떨떠름한 얼굴이었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은 그걸 보고 대찬에게 눈웃음을 보였다.
덕분에 한 건 했다는 뜻이었다.
정상회담이 마무리되고 며칠간 대찬은 중국에 체류해야 했다.
그는 중국 당국의 몇몇과 만나 필요한 실무를 진행했다.
이를 위해 은오영 소장과 한태윤 이사도 중국 땅을 밟았다.
대찬은 왕핑웨이의 요구대로 정봉무역을 통해 비도축육을 공급하겠다고 제안했다.
중국 측은 이를 수용했다.
“최대한 많은 물량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공급받았으면 합니다.”
“예, 준비된 물량 전량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설비도 120% 가동 중입니다.”
“초도물량은 항공편으로 빠르게 공수했으면 합니다.”
“물류비는 중국 당국에서 보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예.”
중국과의 얘기는 쉽게 진행되었다.
이는 대찬에게도 호재였지만 중국 당국에서도 필요한 조치였다.
보통의 경우 자질구레한 이슈로 태클을 걸기가 일쑤였지만, 이번만큼은 이례적으로 일사천리였다.
중국 당국 측도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대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차질 없이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쌍방 모두 차질 없이.”
대찬은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대찬은 성과를 거두고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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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반응은 그동안과 사뭇 달랐다.
쵸 후쿠히로 회장이 지분을 전량 포기하면서 외국인 자본에 의한 경영권 잠식 가능성은 제로가 되었다.
또, 비도축육을 전량 수출하게 되었다.
그러니 축산업이 몰락한다느니 경영진이 아마추어 같다느니 하는 소리도 못하게 되었다.
석우룡 장관의 논리가 모두 무력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