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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477화 (477/556)

난 할 수 있어 477화

로튼 프룻츠 구내식당에서는 전혀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그 말을 듣자마자 직원들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쾌재를 불렀다.

대찬은 말없이 입 안의 음식만 씹었다.

-“제 지분은 장내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사들일 겁니다. 더 이상 조대찬 대표의 경영권을 위협할 세력은 없습니다. 정부는 더 이상 촉망 받는 회사, 기업인을 흔들지 마십시오. 잘되도록 북돋아 주지는 못할망정, 괴롭히진 마십시오.”

쵸 후쿠히로 회장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그대로 공항 입국장을 빠져나갔다.

기자들이 달라붙어 그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그의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질문은 석우룡 장관에게 하십시오.”

그 목소리를 화면을 통해 들은 석우룡 장관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곤두섰다.

“저, 저……!”

참모들은 안절부절못했다.

대찬은 입 안의 음식을 꿀꺽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같이 식사하던 한태윤 이사에게 말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이사님은 천천히 드시고 올라오세요.”

“아닙니다. 저도 다 먹었습니다.”

함께 자리에 있던 한태윤 이사, 마강국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들의 시선이 대찬에게로 향했다.

맹윤주가 같이 식사하던 오다혜에게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대표님은 겉으로는 아무 반응도 없으시네요.”

“아마 사전에 연락을 주고받으셨겠죠. 쵸 회장이랑.”

“으음, 역시.”

대찬과 한태윤 이사가 일어나자, 다른 임원들도 일어나 그 뒤를 따랐다.

오윤 전무와 은오영 소장, 다르샨 싱 전무, 그리고 진위생이 부랴부랴 뒤에 따라붙었다.

대찬은 그들과 함께 회의실에 둘러앉았다.

오윤 전무가 대찬에게 물었다.

“대표님이 쵸 회장님 불러들이신 겁니까?”

“아뇨, 바쁘신 분을 오라 가라 할 입장이 아니잖아요. 우리야 목숨이 걸린 일이지만 그쪽은 하고많은 투자처 중의 하나일 뿐이니.”

“그럼…….”

“며칠 전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원래 베이징에서 경유해 LA로 들어갈 일정인데, 일부러 서울로 바꾸셨다고. 들른 김에 기자들한테 한 마디 하고, 개인 일정 소화한다 하시더라고요.”

오윤 전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이번 발표로 일단 대응할 무기는 쥔 셈이겠네요.”

“그런 셈이죠.”

대찬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쵸 후쿠히로 회장에게 전화를 받은 건 사흘 전이었다.

쵸 후쿠히로 회장은 착잡한 목소리로 대찬에게 말했다.

“많이 힘들지.”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미안하게 됐군.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어.”

“누가 알았겠습니까. 호사다마라더니.”

“일을 저지른 사람이 해결해야지. 내가 해결하겠네.”

“회장님이… 어떻게 말입니까?”

“내 지분, 전량 매각하지.”

“회장님.”

“그럼 더 이상 나를 물고 늘어지진 못할 거야. 전량, 장내에 매각하겠네.”

“어째서 장내에서…….”

“몇 프로씩 큰 덩어리로 제3자한테 팔면 또 그 3자 물고 늘어질 거 아닌가. 깔끔하게 쪼개서 시장에다 파는 게 나아. 왜, 주가 떨어질까 봐 무섭나?”

“아뇨…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는 것 때문에 생기는 낙폭보다 회장님이 대주주 명단에서 빠지는 게 더 클 테니까요. 시장에 큰 호재로 작용할 겁니다.”

쵸 후쿠히로 회장은 웃음을 지었다.

“호재라.”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인천공항에 내려서 인터뷰하겠네. 눈물도 좀 짜주고. 아마 그렇게 되면 정부의 전기톱도 동력을 잃을 거야.”

“하지만 회장님께서 아쉽지 않으시겠습니까.”

“지금 자네 회사가 죽게 생겼는데 내 걱정해주는 건가?”

“하하…….”

“이건 지극히 나한테 유리한 판단이기도 하니 쓸데없는 휴머니즘 발휘할 거 없어.”

“예?”

대찬은 의아했다.

남들이 그다지 관심 주지 않던 초창기부터 애지중지 꽃에 물 주듯 돈을 댔던 회사다.

단칼에 포기하는 게 아까울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러다 대찬은 쵸 후쿠히로 회장의 뜻을 짐작했다.

어디선가 원숭이를 쉽게 사냥하는 방법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입구가 좁은 병이나 조롱박에 바나나를 넣어 놓는다.

입구는 원숭이의 손이 딱 드나들 정도로만.

원숭이는 다가와 바나나를 쥔다.

사냥꾼은 원숭이에 접근한다.

원숭이는 도망가야 하는데 도망가지 못한다.

바나나를 쥐면 병의 입구 밖으로 손을 빼지 못하는 까닭이다.

바나나를 놓으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결국 원숭이는 바나나 한 개를 탐하느라 자기 목숨을 잃고 만다.

쵸 후쿠히로 회장은 이런 원숭이의 우를 범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계속 로튼 프룻츠 지분을 쥐고 있으면 로튼 프룻츠와 함께 무너지고 말 뿐이다.

차라리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직접 호재를 만들고, 회복된 주가에 지분을 팔아치우는 게 능사였다.

물론 대찬으로서는 크게 반길 만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잠깐 개인 일정 하나만 소화하고 바로 LA로 갈 계획이네. 다음에 만나면 마음 편히 만나서 식사나 하지.”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제 주주는 아니지만, 여전히 조 대표를 응원하겠네.”

쵸 후쿠히로는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을 남기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는 전화에서 일러준 대로 인천공항에서 석우룡 장관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대찬은 여전히 입 안을 감도는 씁쓸한 맛을 음미하며 직원들에게 말했다.

“제가 직접 우리 회사 공식입장을 발표하겠습니다.”

한태윤 이사는 대찬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나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대표님이 직접 나서시면 저쪽에서도 약이 바짝 올라서 어떻게든 반격을 하려고 할 텐데.”

대찬은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저쪽은 반격 못합니다.”

“예?”

“당분간 제 뜻대로 움직여주세요.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엠바고(embargo·한시적으로 보도를 유예하는 것) 걸린 상태라.”

“저희가 못 믿을 사람도 아니고…….”

“저야 믿죠. 근데 그쪽에서 못 믿는다고 해서요.”

“그쪽이라면…….”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대찬은 웃으며 말을 아꼈다.

로튼 프룻츠 사람들은 궁금했지만 일단 안도의 감정이 앞섰다.

대표의 갈팡질팡하던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았다.

시종 굳어있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그것으로 되었다.

선장이 갈피를 잡았으니 금방 이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믿음이 번졌다.

대찬은 로튼 프룻츠의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쵸 후쿠히로 회장이 입장을 밝힌 지 불과 몇 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저희 로튼 프룻츠는 협박이나 다름없는 농축산부의 중재안을 전면 거부합니다.”

대찬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일말의 의심이라도 피하기 위해 2대주주였던 장복광 회장은 본인의 지분을 전량 매각했습니다. 이에, 감시와 견제라는 미명 하에 우리 회사의 지분을 잠식하려는 정부야말로 경영권을 흔들려는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자가 중간에 끼어들어 질문을 던졌다.

“비도축육이 미래 국민의 식생활을 책임질 기간산업이기 때문에 정부의 통제와 감시가 필요하다는 시각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찬은 즉답을 내놓았다.

-“비도축육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준 데는 감사드립니다. 농축산부와 식약처의 정당한 감시에는 당연히 성실히 응할 겁니다. 석우룡 장관께서 국회로 돌아가서 국정감사 때 무제한의 자료를 요구하면,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형태의 감시와 견제는 단호히 거부하겠습니다.”

“비도축육의 대두로 축산업이 몰락할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자유무역협정으로 쓰나미처럼 들어온 수입육의 영향에 비하면 단연코 미미할 것입니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역할은 축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비도축육업계를 사장시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정부가 중재안을 거부하면 더 큰 제재를 가해오겠다고 밝혔는데, 만약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대찬은 잠깐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그건 적절한 판단이 아닙니다. 석우룡 장관의 독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나 총리께서 제지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청와대나 정부가 그런 대표님의 바람에 응하리라 믿으십니까?”

그렇게 묻는 기자의 목소리에는 다소 조롱의 의미가 섞여 있었다.

그게 되겠냐?

아마 사석이라면 그렇게 물었을 것이다.

대찬은 동요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상식선에서 처리되리라 믿습니다.”

“그다음으로…….”

기자는 계속 대찬과 일문일답을 나누려고 했다.

대찬은 손을 들어 그를 가볍게 제지하고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로튼 프룻츠는 비도축육의 대량생산 체제에 돌입했습니다. 앞으로 재래육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비도축육을 공급할 것입니다.”

기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찬은 이어 말했다.

-“비도축육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양과 질 측면에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저희 로튼 프룻츠는 앞으로도 더 노력하고 정진하겠습니다.”

아직 농축산부와의 기 싸움이 끝나지도 않았다.

농축산부에서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

대찬은 그들을 자극이라도 하듯 입장발표에 이어 로튼 프룻츠의 성과까지 자랑을 하고 나섰다.

아예 막 나가기로 결정한 건가.

그런 어리둥절한 기자들의 표정을 대찬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기만 했다.

대찬이 망연자실하던 그때 받았던 전화 두 통.

쵸 후쿠히로 회장의 전화를 끊자마자 두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아, 여기 청와대 국가안보실입니다.”

“아, 예, 무슨 일로.”

대찬이 전화를 받고 있는 와중에 대표실에 비치된 TV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최근 중국에서…….”

대찬은 통화에 방해가 되는 TV 소리를 껐다.

소리를 꺼버린 TV 화면에는 자막이 전시되었다.

‘中, 돼지열병 극심…돼지고기 값 천정부지’

‘돼지 1억 마리 폐사, 中 정부 대책 마련에 고심’

대찬은 화면에 시선을 주지 않고 통화에만 집중했다.

청와대에서 전화가 걸려온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시국이 비상했다.

대찬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리기로 돼 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그렇습니까. 몰랐습니다.”

“이번 방중에 조 대표님도 참여해주셨으면 합니다.”

대찬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저를요?”

“예, 대통령께서 직접 지명하셨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이번 돼지열병 사태 때문에 중국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건 대표님도 잘 아실 겁니다.”

그제야 대찬은 TV 화면에 흘끗 시선이 갔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육류 수급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일정분의 협조를 부탁했습니다.”

“그 일정분을 비도축육으로…….”

“맞습니다. 비싼 한우는 저쪽에서 단가를 못 맞춰줄 거고, 돼지고기는 이쪽에서도 아껴야 합니다. 하지만 비도축육은 생산도 빨리 이뤄지고, 내다 팔아도 국민들 밥상 물가에는 지장이 없으니.”

“저희는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네, 자연스럽게 중국 측 판로도 개척될 테니까요. 우리도 이걸 카드로 활용해 미세먼지 같은 외교 의제를 더 쉽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저희가 대단한 물량을 소화하기에는…….”

“괜찮습니다. 중국 정부도 비도축육 하나로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없으니까.”

“법적인 문제도 결부돼 있습니다.”

“중국공산당의 존재가 모든 걸 해결해줄 겁니다.”

“아…….”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대찬으로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었다.

굳이 대통령의 행렬에 동참시키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협조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대통령은 대찬을 굳이 지명해서 수행원 명단에 포함시켰는가.

청와대 안보실은 이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대통령께서 조 대표님을 수행원에 포함시킨 건, 국제정치적인 측면도 있지만 국내정치적인 측면도 다분히 고려하신 결과입니다.”

“국내정치… 아.”

“이유는 굳이 설명 안 드려도 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일정 공유해드리겠습니다.”

대통령의 판단은 석우룡 장관을 의식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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