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474화
“몇 년 동안 저를 향한 음해,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아마추어 하나를 몇 년 동안 무너뜨리지 못한 기자님은 프로십니까?”
“지금 인신공격은 누가 하고 있는 겁니까!”
“인터넷에 키워드를 구본진, 조대찬으로 넣어서 검색해보면 누구나 다 아실 겁니다.”
“이봐요!”
“저한테 아마추어 딱지를 붙이시려거든, 다음부터는 프로 기자한테 마이크를 넘기시고 기자님은 아마추어 자격으로 제 앞에 나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조 대표!”
새까만 후배들까지 모여 있는 자리에서 모욕을 당한 구본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은오영 소장은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중얼거렸다.
“남 면박 줄 때는 실실 웃으면서 잘만 하더니, 자기 면박 먹으니까 아주 입에 게거품을 무네, 물어.”
그의 옆에 앉은 다르샨 싱 전무가 그의 허벅지를 가볍게 건드렸다.
“조용히 좀 해.”
“왜! 내 입으로 말도 못 해?”
대찬은 뒷자리의 수군거림에는 귀를 닫고 구본진에게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근거 없는 모략으로 저와 회사를 그만 흔드십시오.”
대찬은 단상 위에 놓인 서류를 탁, 한 번 두드려 정리하고는 그대로 자리를 떴다.
구본진은 먹구름이 낀 눈빛으로 대찬을 노려봤다.
대찬이 회견장 뒤편으로 돌아오자, 한태윤 이사가 따라붙었다.
“대표님 마음은 알지만, 굳이 구본진을 자극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대찬은 계속 걸으면서 말했다.
“단순히 화풀이하려고 그랬던 게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지금 언론의 공격이 악감정에 의한 모략이라는 걸 드러낼 필요가 있었어요.
“아…, 그렇군요.”
“게다가 구본진은 아주 좋은 도구잖아요.”
“그렇긴 하네요. 이걸로 언론이나 석 장관 쪽에서 압박 강도를 낮출까요?”
대찬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판을 깔아놓은 이상, 그렇게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그럼…….”
“바로 이어서 다시 유상증자를 진행할 겁니다.”
그러자 한태윤 이사의 눈이 커졌다.
“예? 또요?”
“네, 이번 유상증자는 우선주로 발행하겠습니다.”
주식은 크게 보통주와 우선주로 나뉜다.
보통주와 우선주의 차이는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이 있느냐 없느냐.
보통주는 의결권이 있다.
그러니까 보통주를 추가 발행하면서 대찬이 한 주도 사들이지 않는다면, 대찬의 지분은 줄어든다.
전체 주식은 늘어나는데 대찬의 주식은 늘어나지 않으니까.
그런데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다.
배당률 등에서 조금 더 낫긴 하지만 주주총회에서 표를 행사할 자격은 없다.
그러니까 우선주를 추가발행하면 대찬의 지분은 희석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태윤 이사는 대찬의 판단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당장 돈이 급한 것도 아닌데 굳이 우선주를 발행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있습니다.”
“어떤…….”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자본을 투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자본을 투입하겠군요.”
“네, 그럼 주가가 뚝 떨어질 염려가 많죠. 사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정부의 입김이 들어가면 아무래도 그러지 못하니까요.”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주 발행으로 신규 주주들을 대거 유치할 겁니다. 그럼 그분들이 우리와 스크럼을 짜줄 겁니다.”
“효과가 있을까요?”
“자기 돈이 걸린 문제니까요. 남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자길 위해 싸울 테니까요.”
“…….”
“그런 주주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정부에서도 강행하기 어려울 겁니다.”
한태윤 이사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근데 그거… 자칫하면 주주들을…….”
대찬은 한태윤 이사를 보며 빙긋 웃었다.
“총알받이로 쓰는 게 아니냐.”
“하하…….”
“아, 총알받이라고 하시려던 거 아니었어요? 조금 더 심하게 말씀하시려고 했나? 고기방패?”
“아유, 그게 아니라요.”
한태윤 이사는 손사래를 쳤지만, 눈빛은 바로 맞췄다고 말하고 있었다.
대찬은 얕은 숨을 토하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죠. 개미들 인질로 잡고 시위하는 거 아니냐, 그럴 수 있죠.”
“…….”
대찬은 한태윤 이사를 흘끗 바라봤다.
“제가 거짓말을 한다든지, 뭘 감추고 은폐한다든지, 그렇게 해서 주주를 모으면 그건 문제가 되겠습니다.”
“…….”
대찬은 손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근데요. 이미 모든 건 다 오픈돼있습니다. 거짓으로 꾸며낸 것도, 은폐한 것도 없습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일종의 사업가입니다. 주식은 돈 넣어놓으면 돈 나오는 예금이나 적금이 아닙니다. 메리트와 리스크를 잘 따져야죠. 저는 그분들이 그걸 분간해낼 충분한 분별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태윤 이사는 어깨를 으쓱이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찬은 바로 두 번째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로튼 프룻츠 내부에서는 이 두 번째 유상증자에 대해 회의감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오윤 전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란, 우선주 청약에 대한 반응이 뜨뜻미지근할 수도 있다, 그거죠?”
“맞습니다. 언론에서 연일 나팔을 불어대는 통에……. 만일 청약 미달이라도 나온다면 주가가 와르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배팅을 한 거 아닙니까.”
“네?”
“주식 다 담보로 잡아서 대출로 끌어모은 거 아닙니까. 게다가 감사하게도 전무님 이하 임직원들도 모두 동참해줬고요.”
“…….”
“어떤 미친 오너가 주가가 바닥에 처박을 게 뻔한데 이런 짓을 하겠습니까. 언론이 아무런 책임 없이 떠들어 댄다면, 저는 제 인생 걸고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오윤 전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주 공모는 대찬이 맞고 오윤이 틀렸다.
섶나무를 등에 짊어지고 뛰어드는 곳이 타오르는 들불일 리는 없다고 투자자들은 생각했다.
오히려 호재라고 생각했다.
투자자들은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려고 하지 않는다.
폭주하던 호랑이가 잠깐 멈춰서 옹달샘의 물을 할짝거리는 그때 들어가려고 한다.
로튼 프룻츠의 주가가 고개를 잠깐 떨어뜨린 그때, 이때다 하고 올라타기 시작했다.
다행히 로튼 프룻츠 우선주는 만선인 상태로 출항했다.
-“로튼 프룻츠가 우선주 공모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로써 로튼 프룻츠는 떠들썩했던 언론의 보도를 불식시키고 코스닥 왕자로서의 기세를 이어나가…….”
석우룡 장관은 TV를 껐다.
그는 혼자 서재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피식 웃었다.
“죽을 동 살 동 안간힘을 쓰는구만. 쉽게 죽어줄 의사가 없다는 거겠지.”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크게 내쉬었다.
담뱃불을 붙이고 여러 모금을 빨고 뱉은 다음, 그는 대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이얼이 여러 번 울린 뒤에야 대찬은 전화를 받았다.
“장관님.”
응대하는 목소리가 밝지만은 않았다.
석우룡 장관은 재떨이에 담배를 얌전히 올려놓고 입술을 뗐다.
“조 대표, 너무 빠릿빠릿한 거 아니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거 뭐,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만리장성을 쌓고 있으니 겁나서 죽겠어.”
“목소리는 전혀 겁 안 나신 거 같은데요, 장관님.”
“그렇게 정부 손길을 뿌리치고 싶은가?”
“돈만 준다면 왜 마다하겠습니까.”
“정부는 로튼 프룻츠를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지 일언반구 입에 올린 적이 없어요, 글쎄.”
“돈만 주면 받겠습니다.”
쯧, 석우룡 장관은 가볍게 혀를 찼다.
“로튼 프룻츠를 요리할 방법은 많아. 나는 미래의 식생활을 책임질 회사의 경영상태가 불안정한 걸 바라지 않아.”
“불안정해질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붙들어 매시죠.”
“나는 지금 선의로 언질을 주는 거야.”
“괜찮습니다.”
“지금이라도 얌전히 협조해서 한몫 단단히 챙기고 엑시트 해. 그럼 문제없잖아.”
“제 한 몸이야 띵가띵가 잘 먹고 잘 살죠. 근데 저 믿고 투자한 사람들은 모두 한강에 다이빙 하라는 소립니까?”
“허 참, 여유가 있네, 그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까지 챙기고?”
“일면식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이죠. 돈이 목숨인데.”
“그렇게 여유 부리다가는 진짜 골로 가, 자네.”
대찬은 미소를 지었다.
“밀월은 끝났다고 하시더니, 너무 살뜰하게 챙겨주시는 거 아닙니까.”
“시건방의 대가는 무거울 거야.”
“이게 시건방으로 보이십니까.”
“…조 대표.”
“살아남으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는 겁니다.”
“끊겠네.”
석우룡 장관은 전화를 끊었다.
그사이 담배는 다 타버렸다.
타버린 담배는 재떨이에서 떨어져 탁자 위에 담뱃재를 뿌렸다.
석우룡 장관은 잔뜩 얼굴을 구겼다.
이건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형체가 불명확했던 석우룡 장관의 공격 의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걸 대비해 자신의 지분을 대폭 늘려 저쪽의 명분을 최대한 삭제했다.
우선주로 주주들을 끌어모아 인(人)의 장막을 쳤다.
그럼에도 대찬은 불안했다.
연일 뉴스에서는 석우룡 장관의 얼굴이 끊이지 않고 등장했다.
대통령보다도 장관의 얼굴이 더 자주 나왔다.
그는 슬슬 군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로튼 프룻츠를 먹어 치울 군불.
부패한 농협 직원을 때려잡고.
무상 농기구 대여를 전폭적으로 늘리고.
불량식품을 유통했던 업자를 때려잡고.
그러면서 대단한 활약을 펼쳤던 빌어먹을 장관의 몽둥이가 로튼 프룻츠 쪽을 향했다.
-“석우룡 장관이 오늘 오후, 축산업 관계자들을 만나 업계의 고충을 듣고 축산업의 미래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대찬은 뚱한 표정으로 뉴스를 봤다.
마음 같아서는 1분도 보고 싶지 않았지만 챙겨볼 수밖에 없었다.
석우룡 장관은 업계 관계자들과 둘러앉았다.
“저 인간은 한우조합장, 저 인간은 양돈협회장, 저 인간은 양계협회장. 다 아는 얼굴들이구만.”
대찬은 소파에 앉아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대찬과 로튼 프룻츠를 성토했다.
관계가 틀어져도 한참 틀어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석우룡 장관도 그걸 노리고 저들과의 간담회를 추진했을 것이고.
-“4차 산업혁명, 미래 먹거리, 다 좋습니다. 다 좋은데, 우리 좀 제발 살려주세요. 저 인공고기 시중에 쫙 퍼지면 우리 농가들은 뭘 먹고 삽니까?”
양돈협회장의 성토에 석우룡 장관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농축산부는 국민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수급할 책임이 있는 부처 아닙니까. 그 안정적이라는 말에는 우리 축산농민들의 생계 역시 포함되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맞습니다.”
-“지금이야 그렇다 쳐도 저 인공고기가 우리 식탁을 다 점령해버리면 그땐 어떡합니까?”
-“우리 농민 여러분의 뜻을 저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업계끼리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라고 하는데, 우리는 조대찬 대표를 절대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신뢰할 수가 없다뇨.”
-“우리가 조대찬 대표와 협의하기 위해 만든 협의체를 맘대로 깨버리고 나간 게 바로 조대찬 대표입니다!”
-“허어, 이것 참.”
그걸 보면서 귤을 까먹던 윤이영이 TV를 향해 귤을 집어 던졌다.
“저 개자식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어우, 이영아, 요즘 너 과격해졌다.”
“오빠는 뭐가 그렇게 태평해?”
“릴랙스, 릴랙스.”
“저 영감쟁이들이 대놓고 거짓말을 하잖아! 깨버린 게 누군데!”
대찬은 웃으면서 화면에 묻은 귤 조각을 휴지로 닦았다.
그러면서 화면 가득 등장한 한우 위원장의 얼굴을 가볍게 주먹으로 때렸다.
석우룡 장관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민간에서 해결이 안 되면 정부가 나서야지요. 조만간 조치를 취해야겠습니다.”
비장한 석우룡 장관의 말로 기자의 리포트가 마무리되었다.
-“석우룡 장관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비도축육과 축산업계의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밝혀 향후 귀추가 주목됩니다.”
대찬은 소파를 꽉 쥐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 이 빌어먹을 장관 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