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468화
대찬은 원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오늘 봉사는 제가 도와드리고 싶은 방식으로 도와드려도 될까요?”
“조 대표님은 사회복지사업엔 문외한이시니 가급적 시설의 부탁대로 움직여주시는 게 더 효율적이겠죠?”
“사회복지사업 같은 거창한 일에는 문외한입니다만, 불편한 사람들 편하게 만드는 일에는 딱히 문외한도 아니에요.”
“…그럼 그러세요.”
“여기 직원은 저기 부엌에 계신 저 분 뿐인가요?”
“네, 영세한 시설이라 직원을 많이 부리긴 어려워요.”
“하나뿐인 직원 분도 여성, 원장님도 여성. 입소자 분들 중에는 남자 입소자 분들도 계시고 스스로 목욕하기 어려우신 분들도 계실 텐데. 그 부분은 어떻게 하고 계시죠?”
전혜정 원장은 웃으며 대꾸했다.
“조 대표님처럼 훌륭한 분들이 봉사를 와주시거든요. 그분들이.”
“저처럼 이따금 찾는 사람들만 믿을 수 있나요.”
“정기적으로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가요.”
대찬은 허겁지겁 도넛을 해치우는 사람들의 몰골을 가만히 봤다.
여자 입소자들은 비교적 멀끔했지만, 남자 입소자들은 대부분 머리에 기름기가 엉겨 붙어 떡 져 있었다.
피부 역시 육안으로만 봐도 거친 질감이 느껴졌다.
대찬은 얕은 한숨을 쉬었다.
“정기 봉사자 분들이 요즘은 좀 뜸하셨나 보네요.”
“…….”
“오늘은 목욕 봉사 좀 해드려야겠습니다.”
“꼭 그렇게 씻기고 싶으시다면 세족식 봉사는 어떠세요?”
“세족은 원장님도 충분히 해드릴 수 있잖아요.”
대찬은 전혜정 원장의 속내를 훤히 내다봤다.
비루한 입소자들의 발을 찬찬히 씻기는 대찬.
그리고 그 옆에서 성모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마찬가지로 발을 닦아주는 원장.
그 자체로 쓸 만한 그림이었다.
대찬은 입소자들이 배불리 도넛을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했다.
“자, 오늘 저랑 같이 목욕하시는 겁니다. 전부 목욕탕으로 직행!”
남자 입소자들은 대찬의 말을 헤헤 웃으며 따라 했다.
“직행!”
대찬은 남자 입소자들을 목욕탕으로 들여보내고, 자기도 그렇게 하려고 했다.
그러자 전혜정 원장이 경악스럽다는 듯 물었다.
“조 대표님!”
“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목욕 봉사요.”
“아잇, 참……!”
전혜정 원장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차고, 대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대찬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목욕을 하시면 기자들이 사진을 못 찍잖아요!”
“목욕하는 사진을 찍다니요. 그 정도는 양해를 해주셔야죠.”
“네?”
“저는 사진 찍히러 온 거 아닙니다. 봉사하러 온 거지.”
“아니, 진짜 이렇게 꽉 막히게 구실 거예요?”
“원장님, 원장님과 대화할수록 불쾌해지네요.”
“전 아닌 줄 아세요? 지금 이 상황이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설마?”
“최소한 제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요.”
“사진, 사진이 중요하다고요. 사, 진!”
전혜정 원장은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커진 걸 보고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다스렸다.
“사진은 이따 어깨동무하고 찍어 드릴게요. 그럼 되잖습니까.”
대찬이 그렇게 말하고 목욕탕 안으로 쑥 들어가려고 했다.
전혜정 원장은 약이 바짝 올라 얼굴이 빨개진 채로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그녀는 기자들을 돌아보며 크게 외쳤다.
“기자님들! 사진 몇 장만 찍고 가실게요.”
“에? 목욕탕인데 어떻게 찍어요.”
기자들 역시 당혹한 표정이었다.
대찬도 날카로운 눈빛을 그녀에게 쏘았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아, 제가 알아서 그림 만들 테니까 가만히 좀 계세요.”
전혜정 원장은 날카롭게 대꾸하고 목욕탕으로 쑥 들어갔다.
대찬이 미처 막을 새도 없이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 거기가 어디라고 들어갑니까!”
“어차피 얘들 부끄러운 것도 잘 몰라요. 있어 봐요, 좀.”
전혜정은 초식동물을 노리는 사자처럼 두리번거리다가, 옷을 벗고 욕탕 안으로 들어가려던 가장 젊은 남자 입소자의 손목을 거칠게 잡았다.
한 스물하나, 둘쯤 됐을까 싶은, 체격은 그에 한참 못 미치는 이였다.
“따라 나와.”
전혜정 원장은 그에게 팬티만 입혀서 목욕탕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의 손목에는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났다.
대찬의 표정은 이제 통제 불능 상태에 가까워졌다.
“뭐 하시는 겁니까.”
“여기서 시늉이라도 해요.”
대찬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라고요?”
“1분이면 되잖아요. 사진만 찍고 들어가서 그렇게 하시고 싶은 목욕 봉사, 하시라고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마세요.”
대찬은 읏차, 아이처럼 가벼운 그를 안고 목욕탕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전혜정 원장은 신경질적으로 닫힌 욕실 문을 보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기가 막혀서, 진짜! 무슨 저런 또라이가 다 있어.”
주말에 출근하게 된 신혜원의 직원은, 그렇게 허 참, 허 참 하는 전혜정 원장과 대찬이 들어간 목욕탕을 번갈아 바라봤다.
전혜정은 그녀를 돌아보며 다시 일갈했다.
“야, 뭐해! 우유 마신 컵이나 빨리 치워. 더러워.”
“네…….”
직원은 목욕탕 문을 다시 흘끔 보고 잔을 치웠다.
대찬은 닫힌 욕실을 신경질적으로 노려보고, 아이의 손목을 매만졌다.
“안 아파?”
“아파.”
대찬은 얕은 한숨을 쉬고 그를 은근한 김이 올라오는 탕에 다시 앉혔다.
“자, 차례대로 목욕할 거니까, 제가 부르는 분 빼고는 다 욕실에서 대기해주세요, 알았죠!”
말귀를 알아듣는 입소자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찬은 그들을 바로 파악하고 중간관리자 역할로 삼았다.
“아저씨, 아저씨가 여기 사람들 욕탕 밖으로 안 나오게 잘 지켜주세요. 미끄러워서 넘어져요.”
“응.”
“잘 따라주시면 끝나고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뭐 좋아하세요?”
“통닭 좋아하는데.”
“두 마리 살게요.”
“와앙.”
대찬은 빙긋 웃고 다시 욕실 문을 잠깐 열었다.
전혜정 원장은 또라이의 마음이 혹시 바뀌었나 싶어 그쪽을 돌아봤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대찬은 바깥에 있던 마강국을 향해 외쳤다.
“마강국 씨! 빨리 들어와서 좀 도와주시죠.”
“아, 예, 갑니다.”
마강국은 심드렁하게 대꾸하고 목욕탕을 향했다.
대찬은 마강국에게 그렇게 말해놓고 문을 닫으려는데, 갑자기 자기를 향해 쏟아지는 플래시에 눈이 따가웠다.
‘뭐야, 왜 갑자기 찍고 난리…….’
당황하던 대찬은 그제야 김 나는 목욕탕을 배경으로 자기가 벗은 웃통을 빠끔 내밀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차라리 가릴 곳은 가린 하체까지 내보이면 나았을 것이다.
당황한 대찬은 마강국이 들어오기도 전에 쾅, 목욕탕 문을 닫아버렸다.
대찬과 마강국은 열심히 입소자들의 묵은 때를 벗겼다.
나무를 대패로 밀면 톱밥이 밀려 나오는 것처럼.
탕에 푹 불린 입소자들의 몸에서는 묵은 때가 끊임없이 나왔다.
대찬은 열심히 때를 밀면서 투덜거렸다.
“뭐? 정기적으로 봉사자들이 목욕을 시킨다고? 개도 안 믿을 소리 하네.”
대찬은 때를 북북 밀면서 이건 최소한 1년은 넘게 묵은 때라는 걸 직감했다.
대찬은 거동이 어려운 입소자들의 몸에 비누칠을 하고, 다시 때를 밀면서 비지땀을 흘렸다.
“어르신, 시원하세요?”
“응, 응.”
“제가 자주는 못 와도 가끔 들를게요. 제가 못 오면 다른 사람 보내서 이렇게 때 밀어드릴게요. 알았죠?”
“응, 자주 좀 왔음 좋겠네.”
“가족 분들이 좀 오셔서 목욕도 시켜드리고 그러면 좋을 건데.”
그러자 늙은 입소자는 대찬을 멍한 시선으로 보다가 다시 고개를 아래로 향했다.
“가족, 그런 말 쓰면 안 되는데.”
“…네?”
“그게 제일 기분 나쁜 말인데.”
“어째서…….”
“날 버린 사람들이니까.”
“…….”
대찬은 그 이후로 더 말하지 않고 열심히 때만 벗겼다.
대찬과 마강국은 장장 두 시간을 목욕탕에 틀어박혀 있었다.
이마에 흐르는 게 땀인지, 아니면 튀긴 물인지 분간이 안 됐다.
두 시간의 중노동은 보람이 있었다.
검은 땟국을 벗은 사람들은 모두 신수가 훤해졌다.
대찬의 얼굴에도 보람이 깃들었다.
다 마치고 나니 팔이 저릿저릿 아파왔다.
대찬은 팔을 주무르며 마강국에게 물었다.
“안 힘드냐?”
“힘들어 죽겠다. 근데 좀 뿌듯하기도 하고.”
“그래, 너무 나만 잘나려고 살아왔나 싶네. 주변도 좀 돌보고 살걸.”
대찬은 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웃음을 지었다.
대찬과 마강국이 욕탕에서 나오자, 한참 기다리느라 중뿔이 난 전혜정이 그쪽으로 눈빛을 벼렸다.
“참 오래도 하셨네요, 봉사를.”
“네, 얼마나 오래 못 씻으셨는지 때 불리는 데만 한 시간 넘게 걸렸거든요.”
“아주 훌륭하십니다. 그럼 이제 사진이나 좀 찍어주실래요? 발 닦을 물 받아놨는데.”
대찬은 전혜정 원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네?”
“싫다고요. 이 시설을 제 얼굴 팔아서 띄워줬다가는 저한테 독으로 돌아올 거 같아서요.”
“그게 도대체…….”
대찬은 전혜정 원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부부는 일심동체인데, 김민재 후보님도 원장님하고 비슷한 부류일까요?”
“뭐? 부류?”
“간곡히 부탁드리는데, 그런 입으로 제발 사회복지 운운하지 말아 주세요.”
“…뭐라고요?”
“토악질이 쏠려서.”
“뭐, 뭐라고? 토악질?”
대찬은 그렇게 쏘아대고는 주저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자기를 겨누는 카메라의 숲을 헤치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전혜정 원장은 그런 대찬의 뒤통수를 향해 빽 소리를 질렀다.
“나더러 토악질 쏠린다고 했지! 여기 기자들한테 다 말할 거야! 너 이제 매장이야, 매장! 알아!”
대찬은 악에 받친 외침은 왼쪽 귀로 듣고 오른쪽 귀로 흘려보냈다.
마강국은 전혜정 원장을 흘끔 바라보고는 황급히 대찬의 뒤를 따랐다.
그는 조수석 쪽 문을 열어주면서 대찬에게 말했다.
“기자들 앞에서 말 너무 독하게 한 거 아니야?”
“기자들 앞이니까 이만큼 한 거야. 마음 같아서는 면전에다 오바이트 해주고 싶었어.”
대찬이 툴툴거리고 차에 몸을 실으려는 찰나.
시설에서 누군가 황급히 나왔다.
입소자들에게 우유를 주었던 직원이었다.
대찬은 그녀를 흘끔 보고 이쪽으로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조대찬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
“저… 왜 그렇게 까칠하게 나오셨어요?”
질문이 이상해서 대찬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네?”
“아니, 그냥 물 흐르듯이, 그냥 남들 대충하듯이 사진이나 몇 장 찍어주면 얼굴 붉힐 일도 없잖아요. 어차피 다시 오지도 않으실 거…….”
“그쪽은 왜 초면에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그래요?”
대찬의 까칠한 반응에 직원은 어깨를 움츠렸다.
“죄, 죄송합니다.”
“나도 까칠하긴 한데, 그쪽도 한 까칠 하나 봐요?”
“…네?”
“어차피 다시 보지도 않을 사람, 굳이 붙들고 까칠하다고 쏘아대니 말이에요.”
“죄송합니다!”
직원은 대찬에게 머리를 푹 조아렸다.
대찬은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왜. 왜 물어봤어요?”
“그게…….”
“딱히 용건 없으시면 저 갑니다.”
“있어요! 용건.”
“말씀하세요.”
“여기, 이름이 신혜원이에요.”
“알아요. 신의 은혜, 은총이라는 뜻이라면서요.”
“네, 근데 실상은 신의 저주 같은 곳이에요.”
대찬은 왜 그렇냐고 굳이 묻지 않았다.
“그래서요?”
“도와주세요.”
“뭘 도와요?”
“조 대표님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조 대표님 같은 분이면 충분히 여기 내막을 고발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대찬은 웃음을 머금었다.
“그쪽은 유명하지 않아서 여태 참고 계셨던 거예요?”
“…제가 말한다고 들어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문이 안 좋게 번지면 다시 취업하기는 어려워지거든요.”
“제 힘을 빌리면 들어줄 사람이 좀 더 많아지긴 할 거예요. 그렇다고 소문이 안 좋게 번져서 재취업 어려워지는 건 저도 어쩔 도리가 없는데요?”
직원은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