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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457화 (457/556)

난 할 수 있어 457화

“형은 내 최후의 보루야.”

“최후의 보루라니.”

“형까지 로튼 프룻츠로 업어 가면 여기는 누가 지키나.”

“옥 전무님 있잖아.”

“전무님 혼자 내버려 두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야. 형이 든든히 받쳐줘야지.”

“…….”

대찬은 허운의 등을 다독였다.

“내가 형을 제일 믿으니까 최후의 1인으로 남겨둔 거야.”

“…….”

”거의 내 분신 같은 존재니까?”

“그래……?”

대찬이 좋은 말로 어르니 허운의 분노가 또 금세 사그라졌다.

“그리고 우리 서원웅 실장께서도 특별히 당부했어.”

“뭐라고.”

“허운만큼은 그냥 회사에 놔뒀으면 좋겠다. 허운까지 빼 가면 진짜 양심 없는 거다.”

“서 실장님이 정말 그렇게 말했어……?”

“그렇다니까. 뭉쳐서 지내던 남자 동기는 우리가 전분데, 나 나가고 그다음에 형까지 나가면 자기가 너무 외롭지 않겠냐고 그러더라고.”

“하긴 그렇긴 하겠네…….”

“나는 서원웅이랑 척지기 싫어.”

“뭐 꼭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그러니까 형하고 유채경은 남아서 비바체 든든하게 지켜달라고.”

대찬은 한 번의 거짓말로 허운의 불만을 잠재웠다.

서원웅 어쩌고 하는 말은 거짓이었지만 대찬의 마음은 진짜였다.

허운은 능력을 떠나서 최후의 최후까지 대찬의 곁에 남을 사람이었다.

대찬은 필래 비바체에 아직까지 욕심이 있었다.

허운이 있어야 대찬의 영향력이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허운은 그 존재만으로도 대찬에게 필요한 인물.

철저히 대찬의 입장에서만 보면 허운은 필래 비바체에 그대로 있어 주는 것이 최고였다.

허운의 능력은 딱히 발군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과 같은 대우로 모셔올 필요도 없었다.

마음 맞는 그림자의 역할도 이미 진위생이 수행하고 있었다.

고로 허운의 값어치는 로튼 프룻츠에 있을 땐 바닥이었다.

반면에 필래 비바체에 있을 때는 대체 불가능한 자원.

허운은 필래 비바체에 남아야만 했다.

대찬은 마지막 말로 쐐기를 박았다.

“형이 열심히만 하면 서 실장이 임원 자리 안 주겠어?”

“어? 임원?”

“만약 안 주면 나한테 말해. 내가 사외이사 자리 비워서 형한테 양보할 테니까.”

양보하겠다고 하면 서청수 회장이 불호령을 내리면서 있던 사외이사 자리도 앗아갈 것이다.

그러나 허운을 위한 임원 자리야 서원웅이 어련히 마련해줄 것이다.

만일 그렇게 안 해도 대찬이 자기 힘을 써서라도 그렇게 할 터였다.

그렇게 해야만 대찬의 영향력이 유지되니까.

그렇기에 대찬은 일단 해도 좋은 거짓말로 허운을 달랬다.

허운이라고 그의 호언장담이 완벽한 진담이라고 믿지 않았다.

다만 그 말에 담긴 대찬의 진심은 십분 이해하고 공감했다.

허운은 마침내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대찬의 옛 동료들 중 허운과 유채경은 그대로 필래 비바체에 남았다.

대찬은 원하던 인재를 산지 직송으로 로튼 프룻츠에 모셔왔다.

한태윤 부장은 이사로 삼아 대찬이 혼자 감당하던 무거운 짐을 나누어 짊어지도록 했다.

한태윤 부장은 그럴 능력과 성품이 충분했다.

홍은주는 차장 직급으로 대우하고, 김산호와 오다혜는 과장 직급으로 대우했다.

그리고 미리 약속했던 대로 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각각 0.02%, 도합 0.08%.

정확하게 계산한 로튼 프룻츠 지분이 스톡옵션으로 제공되었다.

대찬의 경영권이 흔들릴 때.

이들이 그의 뒤통수를 치고 다른 쪽에 붙을까?

그런 경우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명의는 바뀌되 그 지분이 어디 가는 게 아니었다.

여전히 대찬의 우호지분으로 남아줄 터였다.

옛 동료들을 사업부에 포진시키니 대찬의 마음이 더없이 든든했다.

대찬은 식음료사업부의 인력 역시 증원에 나섰다.

그렇게 되자 로튼 프룻츠의 직원은 생산직까지 포함하여 크게 불어났다.

로튼 프룻츠의 2018년 1/4분기 마지막 채용은 대찬이 모르게 진행되었다.

대찬은 여느 때처럼 출근하여 대표실의 문을 열었다.

그는 대표실에 들어서자마자 움찔 놀랐다.

뒷걸음질로 물러나 대표실 앞에 자리를 둔 진위생을 바라봤다.

“손님이 있는데?”

“아, 네, 손님 오셨어요. 깜빡했습니다.”

“누구셔?”

진위생은 씩 웃었다.

“대표님도 아시는 분이에요. 아주 잘.”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요?”

대찬은 놀란 눈을 두 번 깜빡이고 다시 대표실 안쪽을 바라봤다.

사람보다는 로랜드 고릴라라고 하는 게 맞을 정도로 거대한 실루엣.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저 정도 덩치는 옥 전무님밖에 없는데.’

그런데 대표실에 앉아있는 사람은 남성이었다.

대찬은 몇 초간 생각을 가다듬고 나서야 그의 정체를 알아냈다.

‘아… 마강국.’

대찬의 얼굴에 쓴웃음이 돌았다.

너무 바쁘게 살았다.

공적인 영역에 시간을 할애하는 만큼 사적인 영역에는 그만큼 할애할 수 없었다.

마강국은 오래된 친구, 사적인 인연이었다.

그는 서원웅의 경호원 역할을 계속하다가 대찬이 필래 비바체의 사외이사에 취임할 때쯤 관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그간 술 한 잔 하자는 사소한 요구를 간곡하게 하던 그를, 대찬은 바쁘다는 이유로 여러 번 뿌리쳤다.

이렇게 보는 것도 얼마 만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대찬은 헛기침을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마강국은 뒤도 안 돌아보고 말했다.

“우리 조대찬이 왔는가.”

“연락이라도 주고 오지.”

마강국은 그제야 대찬을 돌아보며 웃었다.

얼굴에 나이는 들었지만 특유의 천진함은 여전했다.

“왜, 그럼 바쁘다고 다음에 오라고 했을 거잖아?”

“…그래, 내가 죄인이지.”

대찬은 직접 커피를 타다 마강국의 앞에 놓고는 그와 마주앉았다.

“무슨 일이야? 흥읍까지 길도 먼데.”

“야, 그거 되게 섭섭한 말인 거 알지? 친구가 불쑥 그냥 올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보자마자 용건부터 물어보냐.”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다. 네 친구가 이렇게 팍팍해졌다. 이해해.”

“물론 용건이 없는 건 아니야.”

대찬은 용건이 뭐냐고 또 물어보면 호되게 혼이 날까 두려웠다.

그는 커피만 홀짝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마강국은 씩 웃었다.

“나, 취직했다.”

“오, 축하한다. 아니, 딱히 축하할 일도 아닌가. 명색이 비바체 태자 마마의 수행비서를 했으면 어디든 취직이야 쉽게 할 테니까.”

“쉽게 하진 않았어.”

“어디로 취직했어.”

“로튼 프룻츠.”

“뭐?”

마강국은 흐흐 웃었다.

대찬은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내가 대푠데 나 모르게 취직이 됐다는 게…….”

“아, 진짜 오늘 조대찬 아주 섭섭 끝판왕이네, 끝판왕.”

“이게 도대체 무슨…….”

“내가 여기서 일하는 게 그렇게 싫냐?”

“아니, 싫다는 게 아니라…….”

그때 민승기가 불쑥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대학 시절, 로튼 프룻츠가 에피니키온이었을 때 선후배 사이였던 만큼 민승기와 마강국도 제법 돈독했다.

“내가 오케이 사인 내렸어.”

“선배.”

“조 대표도 이제 구질구질하게 혼자 다니고 그러지 좀 마. 강국이가 네 일정 전담할 거야. 매니저처럼.”

대찬은 기가 차다는 듯 항변했다.

“혼자 다니는 게 왜 구질구질한 거예요. 그러는 선배도 혼자 다니시면서.”

“대표랑 일개 전무랑 같아?”

“전 혼자가 편해요.”

“이젠 혼자가 불편해지는 게 맞는 거야. 그게 대표 격에 맞는 거라고.”

“로튼 프룻츠가 무슨 재벌도 아니고.”

“너, 젊다고 자신만만하다가 한 방에 훅 간다. 이제 몇 년 있음 마흔인데 그럼 마냥 젊은 것도 아니야.”

“…….”

“운전이나 기타 등등 남한테 맡길 수 있는 건 남한테 맡겨야 해. 그게 회사를 위해서 맞는 일이야. 불편해도 참아.”

“하, 참…….”

민승기의 말에는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너도 이제 유명인사라고 불려도 하나도 안 부끄러운 정도까지 됐어. 누가 갑자기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할래. 강국이가 적임이야.”

“…….”

“그리고 진위생 씨 혼자 네 일정 커버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그건 그렇지만…….”

“이건 널 위한 일이기 이전에 진위생 씨랑 회사를 위한 일이야.”

그런 명분을 들이대니 대찬도 더 거부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마강국이 곁눈질로 대찬을 압박했다.

“설마 나 안 쓴다고 할 건 아니지?”

대찬은 쓴웃음을 지으며 마강국을 한 번, 민승기를 한 번 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 말씀이 맞네요.”

그렇게 마강국까지 해서 로튼 프룻츠의 새로운 진용이 완성되었다.

마강국은 로튼 프룻츠의 차장급으로 채용되었다.

진위생이 주로 사내에서 대찬을 보좌했다면, 마강국은 사외에서 대찬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다.

대찬은 마강국의 듬직한 덩치를 보고, 민승기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바야흐로 확장의 계절이었다.

비도축육이 시장에서 먹힌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대찬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조금씩 아껴먹던 투자금을 이제 거침없이 풀기 시작했다.

연구에 치중되었던 투자금은 이제 설비와 건물 등에 큰 덩어리의 지출이 계획되었다.

당연히 투자금의 소진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대찬의 급선회에 민승기가 우려를 표했다.

“괜찮겠어? 세워놓은 계획이 착수되면 감당하기 쉽지 않을 텐데.”

“이대로라면 안 괜찮겠죠. 금방 바닥날 거예요.”

“그러니까…….”

민승기의 복잡한 얼굴을 보고 대찬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때가 온 거 같네요.”

“때가 오다니.”

“IPO 들어가죠. 코스닥에.”

이제는 빗장을 걸어둘 이유가 없었다.

이전에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었다.

로튼 프룻츠의 강점은 쵸 후쿠히로 회장의 예지력과 사업의 유망함밖에 없었다.

그게 투자자를 유치하는 데는 주효했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리고 코스닥에 상장하려면 최소한 당기순이익이 10억 원 이상은 되어야 했다.

로튼 프룻츠는 커피와 와인 쪽에서는 제법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그쪽을 전담하는 민승기의 수완이 괜찮았다.

파푸아뉴기니 커피와 조지아 와인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데 수요가 꾸준히 증가세에 있었다.

수익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로튼 프룻츠는 커피와 와인이 선전하는 와중에도 연일 적자행진이었다.

비도축육에 들어가는 지출은 벌어들이는 돈과 단위부터가 달랐으니까.

그러니 애초에 상장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비도축육이 없어서 못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이상 상장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대찬은 코스닥 상장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상장까지 이르는 데 장애물은 없었다.

로튼 프룻츠는 화려한 외양과 옹골찬 내실을 갖추고 있었다.

걸리는 것 없이 상장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절차는 불과 육 개월 만에 완수되었다.

그리고 2018년 8월 이른 아침.

한국거래소.

대찬을 비롯한 로튼 프룻츠의 전 직원들이 그곳에 있었다.

대찬은 주가 상승을 의미하는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지금부터 주식회사 로튼 프룻츠의 상장기념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로튼 프룻츠의 상장기념식이 시작되었다.

코스닥 상장의 시작은 언제나 타북 행사였다.

상장식에서 북을 치는 건 당연히 대표였다.

대찬은 상장하는 회사들의 대표 중에서는 단연 젊은 축에 속했다.

그렇기에 북을 치는 힘부터가 달랐다.

멀찍이서 바라보던 민승기는 흐뭇하게 웃었다.

“스윙부터가 다르네.”

다르샨 싱 전무와 은오영 소장도 빙긋 웃으며 박수를 쳤다.

둥, 둥, 둥, 둥.

대찬은 있는 힘껏 북을 때렸다.

대찬에게는 북을 때리는 진동보다도 자기 가슴 속의 심장박동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렇게 타북행사가 한창이던 때.

여의도 거래소 근처의 꽉 막힌 도로 위 검은 벤츠 차량.

그 안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터졌다.

“젠장, 5분만 일찍 출발할 걸.”

“…….”

뒷좌석의 상사에게서 터져 나오는 짜증에 운전석의 비서는 꼭 자신의 잘못 때문에 그렇게 된 듯 좌불안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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