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454화
“아니, 내 말이 맞다며. 가만히 놔두는 게 맞다며.”
“가만히 놔두는 게 맞다고는 안 했어요. 그렇게 하는 게 덜 날뛸 거라고 했지.”
“그 말이 그 말이잖아. 쟤네가 덜 날뛰는 게 우리한테 이롭지 않냐고.”
대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녜요. 날뛰어주면 고맙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표님.”
민승기는 기가 차다는 듯 물었다.
“알아서 광고를 해주고 있잖아요.”
“광고라니. 지금 우리가 만드는 비도축육이 사치품이라잖아.”
“그러게 얼마나 고마워요?”
“고, 고마워?”
“네, 고마워요.”
대찬의 말은 비꼰다든지 비아냥거린다든지 하는 종류가 아니었다.
그 말에는 숨은 뜻이 없었다.
말 그대로 고마웠다.
민승기는 눈을 깜빡이며 대찬에게 물었다.
“대놓고 조 대표 면전에 가래침을 뱉는데 뭐가 고마워?”
“지금까지 비도축육 다루면서 가장 껄끄럽게 생각했던 게 뭔지 아세요?”
“뭐? …아.”
민승기도 그제야 감을 잡았다.
그는 이해했지만 여전히 직원 여럿은 대찬의 말에 아리송해하기 때문에 대찬은 구태여 말로 설명했다.
“인조고기, 가짜고기. 비도축육을 무슨 유전자변형식품이나 중국 애들이 만드는 가짜 계란처럼 못 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아니, 더러가 아니라 상당수죠.”
“그렇지.”
“우리는 억울하죠. 영양소가 더 들어있지는 않을지언정, 더 무해하다고 장담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이미 이해를 마친 민승기는 의례적으로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극동일보가 나서서 이걸 사치품으로 규정해줬어요. 거기다가 우리 광고문구까지 인용하잖아요. 깨끗하고, 안전한 고기라고.”
그제야 직원들 전체가 대찬의 말에 수긍했다.
고미수가 거들었다.
“게다가 강남사람들만 먹는다는 말까지 곁들였죠.”
대찬은 웃음을 지었다.
“그게 킬링 포인트지. 우리 구본진 기자님 덕분에 비도축육이 강남사람들만 먹는 깨끗하고 안전한 사치스러운 먹거리라는 이미지가 각인이 됐어요.”
프리드리히 대왕의 혜안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관철되었다.
이게 다 구본진 기자 덕분이었다.
대찬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좋은 글을 널리 알려야죠. 강경 대응 한다고 하세요. 그럼 극동일보와 자연히 대립각이 세워질 테고, 저 훌륭한 글이 널리널리 퍼질 겁니다.”
그럼에도 민승기는 대찬의 결정에 다소 회의적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강경 대응이 마냥 좋은 선택이 아니야.”
“네, 말이 퍼지면 저에 대한 악평도 늘어나겠죠.”
“어쨌든 구본진이 쥔 패는 적어도 명분론에 있어서는 파괴력이 있어.”
“악한 명성은 철벽이고 선한 명성은 모래성이죠. 이걸로 찌르고 들어오면 제 이름도 적잖이 더럽혀지긴 할 겁니다.”
대찬은 충분히 예감하고 있었다.
구본진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꽤 생길 것이다.
그의 논리에 동의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평소에 대찬이 고까웠는데 건수를 만나 동조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었다.
민승기의 표정에는 찝찝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런 칼럼 하나로 네가 애써 쌓아 올린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진 않겠지. 그래도 얼룩 몇 방울이 하얀 도화지에는 잘 보이는 거야.”
“언제까지 얼룩 안 튀기고 장사하겠어요. 필요할 땐 튀겨야지. 그러라고 제가 대표 명패 끌어안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말하니까 대표 자리 버리고 내려간 내가 비겁해 보이는데?”
“말이 그렇다는 거죠.”
대찬은 이미 결심을 마친 듯 말에 막힘이 없었다.
그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홍보팀은 그대로 보도자료 내서 언론에 배포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대표님.”
민승기도 말리지 못했는데 홍보팀 나부랭이가 말린다고 말려질 결심이 아니었다.
홍보팀은 그대로 대찬의 뜻을 이행했다.
로튼 프룻츠는 이례적으로 극동일보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
‘인신공격.’
‘영업방해.’
‘좌시하지 않겠다.’
‘응분의 대가.’
한 마디 한 마디 까칠함이 깃든 반응이었다.
그 뒤에는 물론 논리적인 반박도 첨부되어 있었다.
‘아직 생산단가를 충분히 낮추지 못해 물량도 부족하고,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없다.
그래서 구매력 있는 고객층을 겨냥할 수밖에 없으므로 부득이한 측면이 있다.
기술개발에 매진하여 전국적으로 비도축육을 공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로튼 프룻츠 측에서 일부러 부각시키지 않았다.
그런 자질구레한 말들은 옳을지라도 구차하게 들릴 뿐이었다.
게다가 구본진이 친히 비도축육에 사치품이라는 왕관을 씌워준 마당이다.
괜한 논리 대결로 이 왕관을 걷어찰 용의가 로튼 프룻츠는 없었다.
로튼 프룻츠의 거친 반응에 세간에 구본진의 주장이 널리 퍼졌다.
그 결과는 두 가지 현상으로 압축되었다.
하나는, 대찬의 트위터에 부쩍 악플이 늘어났다는 것.
서민의 뒤통수를 후렸다.
뭔가 다른 척했지만 결국 장사치에 불과했다.
기득권의 나팔수.
강남의 시녀.
온갖 창의적인 욕설들이 대찬의 트위터에 도배되었다.
대찬은 당분간 트위터 계정에 접속하지 않았다.
윤이영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두 번째 현상은 그것과 결이 달랐다.
진위생이 대찬에게 보고했다.
“2차 물량, 사흘 만에 완판 됐습니다.”
“잘됐네요.”
초도물량 500kg의 완판.
2차 물량은 그것의 2배인 1톤으로 잡혔다.
물량은 두 배로 늘어났는데 소진되는 기간은 두 배로 줄었다.
그러니 하루에 팔린 양으로만 따지자면
네 배가 늘어난 셈이었다.
대찬은 차트를 보고 진위생에게 말했다.
“강남 사람들만 와서 사간 건 아니지 싶은데.”
“네, 수도권 각지에서 손님들이 몰려들고 심지어는 지방에서 이거 사려고 올라온 사람들도 있다던데요. 몇몇 사람들은 돌잔치 선물로 돌 반지보다 이게 낫다고 하더라고요.”
“돌잔치 선물이라, 암튼 참 머리 좋은 사람들 많아요.”
대찬은 흡족하게 웃었다.
“강남육이니 명품육이니 하는 별명도 붙었대요.”
대찬은 이어지는 진위생의 말을 기분 좋은 음악을 듣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본진의 시비, 그리고 의도적인 과잉반응.
그것으로 인해 비도축육은 일약 무등산 수박에 버금가는 명품 먹거리로 등극했다.
진위생도 모처럼의 호재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걸로 당분간 비도축육 사업부도 흑자행진을 하겠네요.”
대찬은 연신 흡족한 얼굴이었다.
지금껏 비도축육 사업부는 로튼 프룻츠가 각광을 받게 하는 데는 일등 공신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거대한 재정적 부담을 안기고 있었다.
빗장을 풀고 들어오는 투자를 모두 품는다면 그 정도 적자쯤이야 괜찮았다.
하지만 대찬이 지분을 방어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투자를 수용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비도축육 사업을 개시한 이후 로튼 프룻츠는 장부 상 매년 부담스러운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던 비도축육이 이제는 흑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걸 바라보는 대찬의 심정은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없는 살림에 어화둥둥 키운 자식이 잘 자라 큰절 올리면서 주는 빨간 내복을 선물 받은 부모의 것 이상이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영역에 발을 들이밀어 그 성과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하니 자신감도 충족되었다.
한번 물꼬가 트이니 다음은 쉬웠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에서 내놓고 저격을 해줬다.
이것보다 파급력 있는 광고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더군다나 그 신문의 주요 독자층은 이래저래 돈 나갈 일 많은 젊은이들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여유가 있는 연장자들이었다.
돈은 벌 만큼 벌었겠다.
집도 장만했겠다, 자식들도 장성했겠다.
인생사는 템포를 느릿하게 가져가니 젊은 사람들보다는 곳간에 돈이 쌓여 있었다.
그들은 앞에서는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얘기하지 않았느냐며 신랄하게 로튼 프룻츠의 장삿속을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뒤로는 충실한 고객들이 되어주었다.
로튼 프룻츠는 요산테크닉스가 주도하여 구축한 설비를 거의 24시간 가동하기 시작했다.
판매하는 매장 역시 늘렸다.
필래팜 목동점, 노원점, 서대문점 등으로 이제 지역을 안배했다.
그리고 위마트 일부 매장에도 물량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극동일보가 포문을 연 이상, 필래팜과의 거래만 고집한다면 분명히 대찬이 필래 비바체 사외이사라는 점을 파고들 것이었다.
그런 비판을 원천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사정을 익히 이해하는 김풍호 대표나 서원웅도 유감을 표하지 않았다.
물량은 내보내는 족족 품절되었다.
그 무렵, 흥읍의 연구소에서 연구에 매진하던 인력들은 큰 고민거리 하나를 해결했다.
한동안 흥읍의 넓디넓은 로튼 프룻츠 사옥 부지에서는 공사 소음이 끊이질 않았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연구원들은 6개월쯤 지나니 어느 정도 초연해졌다.
1년쯤 지나니 슬슬 공사소음이 백색소음으로 들렸다.
1년 6개월 뒤에는 소음을 거의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대찬은 그들의 청력에 이상이 없는지 진단을 받도록 했는데, 다행히 그런 인력은 없었다.
그렇게 소음과 동거한 지 한참이 지나 그들은 마침내 해방되었다.
로튼 프룻츠의 본사 사옥, 통칭 과일바구니가 완공되었다.
그리고 차차 늘어날 직원들을 위한 기숙사와 복지시설 등이 완공되었다.
물론 아직도 건물이 들어선 땅보다는 공터가 많았다.
그럼에도 변화는 많았다.
이제 캠퍼스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더라도 저 산맥을 병풍처럼 두른 곳에도 회사가 있구나.
멀리서 인지할 정도는 되었다.
준공되자마자 로튼 프룻츠는 본사를 흥읍으로 이전했다.
서울 사무실의 규모는 3분의 1로 축소하고 식음료사업부만 남겼다.
당연히 서울 사무실의 책임자는 민승기가 되었다.
대찬은 웃으면서 민승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선배, 서울 사무실 잘 부탁드려요. 옆집도 가끔 챙겨주시고요.”
옆집은 Y2Y를 의미했다.
민승기는 대찬의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너도 서울 올 일 많을 거 아니야.”
“그렇기야 하죠. 출퇴근도 서울에서 할 거예요.”
“그래, 그럴 거면서 아예 가는 사람처럼 굴기는.”
민승기는 피식 웃었다.
로튼 프룻츠 전 직원은 흥읍 사옥으로 이전하는 데 꼬박 사흘을 쏟았다.
사흘 동안 이사에만 매진했는데도 처리하지 못한 짐들이 산적해 있었다.
그것들은 서울과 흥읍을 오가면서 차차 옮기기로 했다.
로튼 프룻츠의 흥읍 본사에는 일곱 채 건물이 들어섰다.
본사 사옥, 신축 연구소, 복지동과 기숙사, 기혼자를 위한 사택, 요산테크닉스의 주도로 건립한 생산설비, 그리고 신축 연구소가 완공될 때까지 연구소로 사용되던 구 연구소까지 일곱 곳이었다.
이 건물들은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대찬의 구상에는 허허벌판인 공터 위에 언젠가 세워질 건물들이 벌써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복지동에는 기본적인 생활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여건들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슈퍼마켓부터 카페, 식당, 잡화점, 목욕탕, 어린이 놀이방, 오락실, 피트니스 클럽까지.
물론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기업만큼 휘황찬란한 규모와 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찬은 복지동에 연구소 버금가는 정성을 기울였다.
대찬은 직원들이 캠퍼스 안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주기를 바랐다.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가 짧을수록 피로가 덜 쌓일 것이다.
캠퍼스 안에 최대한 머물러야 직원 간에 소통도 원활해질 것이란 계산이었다.
물론 상하의 구별이 뚜렷하고 고압적인 사내분위기라면 도리어 역효과가 나겠지만, 대찬은 최소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로튼 프룻츠가 단연 선진적이라고 여겼다.
복지동에서 쓰인 직원들의 월급이 다시 회사의 자산이 될 것이란 계산도 손톱만큼이지만 없지는 않았다.
복지동과 기숙사와는 제법 떨어진 곳에 본사 사옥이 들어서 있었다.
흥읍에 새로 마련된 사옥은 과일바구니라는 이칭다운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가장자리가 높고 아래로 들어갈수록 움푹 파인 바구니를 닮은 형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