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453화
남의 속을 알 리 없는 곽준정은 편하게 얘기했다.
“오늘은 아기들이나 치아가 약한 노인 분들 해드리면 좋은 음식을 소개해드릴 겁니다. 우리 홍승연 수강생도 잘 배워뒀다가,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꼭 해주도록 하세요.”
“그러죠.”
홍승연은 흥미가 조금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반응했다.
곽준정은 수업에 같이 들어온 정무숙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정무숙이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왔다.
지금까지 못 봤던 식재료라니.
수강생들은 궁금증이 동해 그쪽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곽준정은 웃으며 뚜껑을 열었다.
“뭔지 아시겠어요?”
그 안에는 다짐육 형태의 비도축육이 들어있었다.
물론 그걸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보면 대답이 매한가지일 수밖에 없었다.
“그냥 고기잖아요.”
“고기는 고긴데 그냥 고기가 아니에요.”
“무슨……?”
곽준정은 홍승연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본 적은 없어도 듣기는 하셨을 겁니다. 비도축육이라고.”
“비도축육…….”
그 네 글자를 발음하면서 홍승연의 얼굴이 점점 썩어 들어갔다.
조대찬, 여기까지 와서 그 스트레스 받는 이름을 떠올려야 한다니.
곽준정이야 대찬과 홍승연 사이에 얽힌 곡절을 알 리 없었다.
“뉴스에도 여러 번 소개됐으니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곽준정은 정무숙이 정리해준 원고를 완벽하게 숙달해서 그대로 수강생들에게 전달했다.
“이 비도축육은 오로지 전기 자극만을 통해 키워낸 고기로서, 일반고기를 먹었을 때 자칫 염려될 수 있는…….”
수강생들은 그걸 또 대단한 가르침으로 섬기며 열심히 받아 적었다.
곽준정은 남들 다 열심히 받아 적는데 혼자만 뚱한 표정으로 삐딱하게 서 있는 홍승연에게 눈을 흘기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이 비도축육이라는 거, 단가가 굉장히 셉니다. 이 정도 분량에 거의 돈 백이 나갔어요.”
“백만 원이요?”
곽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이건 좀 산다 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정말 산다 하시는 분들만 시도하시길 바랄게요. 그래도 그분들한테는 아이들을 위한 건강한 먹거리로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사실 애들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구요. 이 정도 투자쯤이야 당연히 해야죠.”
곽준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은 비도축육을 이용해서요, 생후 12개월 미만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이유식과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들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보도록 하죠.”
“네, 선생님.”
수강생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곽준정의 프라이빗 클라스에서 처음 소개된 비도축육 음식은 점점 입소문을 탔다.
혹시 비도축육 매대에 올라와 있냐는 문의가 슬슬 많아질 무렵.
해뜰녘과 손잡고 출시한 반조리 비도축육 식품과 로튼 프룻츠 단독으로 공급하는 비도축육 원육이 매대에 올라왔다.
공급되는 매장은 필래 비바체와 협의한 대로였다.
필래 비바체의 프리미엄 식자재 매장인 필래팜.
그것도 이름난 부촌 지역의 몇 군데 매장에만 비도축육이 선을 보였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하지만 또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고 했다.
대찬은 로튼 프룻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초도물량 ‘완판’을 목표로 했다.
대찬은 로튼 프룻츠라는 이름으로 물량을 내보내지 않았다.
모처럼 신선하고 위생적인 이미지로 나가려는데 간판이 썩은 과일들이래서야 면이 살지 않았다.
기껏 제품을 잘 만들어놨는데 포장이 믿음직하지 못하면 허사가 된다.
로튼 프룻츠의 커피와 와인이 ‘낮한잔, 밤한잔’ 브랜드로 나가듯, 비도축육을 내보내는 브랜드를 새로 만들었다.
직원들은 각기 여러 날을 고민하다가 의견을 냈다.
그 의견이 종합되어 결론이 도출되었다.
로튼 프룻츠의 비도축육 브랜드는 ‘온살림’으로 결정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어감이 순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의미야 붙이기 나름이었다.
가축을 죽이지 않고 온전히 살림.
위생이나 안전에 대한 염려 없이 사람을 온전히 살림.
훗날 저렴한 단가로 공급하여 살림살이를 온전히 살림.
훗날 비도축육 생산기술을 발전시켜 맛까지 온전히 살림.
온 세상을 살코기의 숲으로 만들자는 뜻은 어떠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괴팍하다고 해서 기각.
공식 홈페이지에는 실리지 않은, 그 괴팍한 직원의 마음속에만 남은 의미가 되었다.
필래 비바체에서도 온살림 비도축육을 제법 잘 보이는 진열대에 비치했다.
꼭 대찬의 눈치를 살핀 결과라고만 할 수는 없었다.
대형마트 업계야말로 한 끗 차이에 목을 매기 마련이었다.
어떻게든 차별화를 하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그 업계였다.
한때 그 업계를 둥지로 삼았던 대찬도 그 아등바등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판에 비도축육을 독점적으로 공급받았으니 일단 전면에 내세워 차별화를 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것의 성패가 어떻게 결판날지는 그 다음의 문제였다.
윤이영은 비도축육이 깔린 필래팜 매장에서의 팬 사인회를 자청했다.
여배우들 중에서 손꼽히는 위상을 고려해서 대찬은 그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듯한 홀도 아니고, 아무리 프리미엄이라지만 식자재 매장에서의 팬 사인회라니.
대단한 여배우의 자존심에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윤이영은 자진해서 발 벗고 나서서 대찬의 사업에 기여했다.
윤이영이 팬 사인회에 등장하자, 웬만해서는 여기가 무슨 무대라도 되느냐, 난잡스럽게 굴지 말고 썩 꺼지라고 했을 강남 사모님들도 고개를 기웃거리며 구경하기에 바빴다.
윤이영은 쏟아지는 사인 요청에 금세 팔이 저려왔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줄의 맨 끝에 선 사람에게까지 모두 사인을 해주었다.
“나, 다섯 장 해줘요, 다섯 장.”
“대신 비도축육 다섯 팩 사주셔야 돼요?”
“아유, 그러기엔 너무 비싼데.”
“제 사인도 싸진 않단 말이에요.”
윤이영은 내내 유쾌한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어주었다.
비도축육이 매장에 깔리고 며칠간.
대찬은 집에서 가까운 필래팜 잠실점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멀찍이 팔짱을 끼고 바라보며 비도축육이 얼마나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손님들은 목 좋은 곳에 놓인 비도축육에 한 번씩 관심을 가지긴 했다.
그러나 선뜻 손을 뻗어 장바구니에 담지는 않았다.
아무리 돈 많은 집안이라지만 한우보다 비싼 비도축육을 덜컥 사기에는 고민이 되는 모양.
‘사, 사, 사, 사.’
대찬은 그쪽을 쏘아보며 속으로 주문을 걸었다.
함께 장을 보러온 사모님 둘이 얘기를 나누는 데 대찬의 귀가 쫑긋 섰다.
“이거 괜찮대? 그래도 너무 비싼데.”
“재준이 엄마 있잖아. 곽 선생 요리교실 다니는데 거기서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더래.”
“곽 선생, 조대찬이한테 뒷돈 받았나?”
“커넥션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냥 소고기보다는 인체에 무해하대.”
“어머, 그래?”
“여기에도 쓰여 있잖아. 우리 아이,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제에서 구해주세요.”
“그 유전자조작식품 그런 비슷한 거 아니야? 어떻게 이게 더 무해해.”
“그거랑은 아예 다르대. 재준이 엄마도 꼭 이거 사다 먹인다던데. 그러면서 뭐라는 줄 알아?”
“뭐라는데.”
“없는 집 아니면 애들한테 이 정도 투자도 못하냐고.”
“참 나, 웃기지도 않아. 자기네는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러게 말이야. 누가 못 살아서 못 사는 줄 아나? 그 아줌마는 말을 해도 꼭 무식하게 해, 응?”
“어이없어, 정말. 우리니까 모임에 껴주지 그런 교양 없는 여자를 누가 받아줘.”
“그러니까. 우리니까 받아준다, 우리니까. 우리 너무 착하게 사는 것도 병이다?”
두 아줌마는 콧소리로 재준 엄마를 한참 씹어대고 나서 비도축육을 한 팩씩 장바구니에 담았다.
잔고 12kg 0kg.
로튼 프룻츠 사무실에 놓인 화이트보드의 숫자 12에 진위생이 호쾌하게 취소선을 그었다.
완판.
가공식품과 원육을 합쳐 500kg가량 내보낸 초도물량이 완전히 팔렸다.
진위생이 취소선을 그음과 동시에 로튼 프룻츠 전 직원은 기립박수를 쳤다.
대찬은 활기차게 웃었다.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출발이 산뜻했어요.”
직원들도 서로 수고하셨다, 고생했다 말을 나누며 자축했다.
500kg의 물량은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금전적 이익으로 따져도 그렇게 호들갑을 떨 금액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고작 몇 개 매장에서 며칠 간 판매된 양이라고 한다면 얘기가 달랐다.
스스로 고무되기에, 자축하기에는 충분했다.
대찬은 거하게 회식을 하라고 법인카드를 진위생에게 넘겨주었다.
그렇게 한동안 자축 무드에 돌입하려는 찰나.
진위생이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대찬에게 보고했다.
“호사다마라더니, 딱 맞네요.”
“무슨 일이에요?”
“극동일보에서 저격 칼럼 냈어요.”
대찬은 피식 웃으면서 진위생을 바라봤다.
“나 그거 누가 썼는지 알아요. 우리 구 본 자 진 자 기자님이시죠?”
“네.”
“줘 봐요. 또 뭐라고 썼나 읽어 드려야지.”
대찬이 손을 내밀자 진위생은 그날 자 극동일보를 건네주었다.
대찬은 익숙한 듯 끄트머리에 있는 오피니언 면으로 향했다.
그는 고갯짓으로 진위생을 내보내고 차분히 구본진의 칼럼을 읽었다.
“제목, 가난한 사람은 먹지도 말라. 미래고기의 잔인한 명령.”
대찬은 피식 웃었다.
공장에서 열심히 찍어내는 고기 알갱이를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T-800쯤으로 둔갑시키다니.
“암튼 이 아저씨 글발 거창한 건 알아줘야 해.”
대찬은 참을성 있게 자기를 쫓는 자베르 경감의 글을 읽어주었다.
-…비도축육을 생산하는 A사의 마케팅은 잔혹하다.
깨끗하고 안전한 고기를 먹으라면서 강남에서만 판매한단다.
단가도 어마무시하다.
비도축육 함박스테이크 하나라도 해먹으려고 하면 서민들은 그 달 생활비를 탕진해야 한다.
“과장이 좀 심하네.”
대찬은 덤덤한 얼굴로 툴툴댔다.
비싸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A사의 조대찬 대표는 대중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선한 영향력’으로 명성을 얻은 그의 비즈니스 스타일은 선하지 않다.
신산업을 선도한다던 그는 그저 기득권을 위한 새로운 사치품 하나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바람 빠진 명성을 목격하는 게 한두 번은 아니라지만, 적잖이 기대를 걸었던 만큼 무기력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참 나, 자기가 나한테 언제 기대를 걸었다고.”
대찬은 탁, 신경질적으로 신문을 덮었다.
기득권의 수호자인 극동일보가 이런 말을 운운하는 것부터가 불쾌했다.
대표실의 바깥에서도 직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터넷판으로 칼럼을 접한 직원들 역시 분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찬은 웃으면서 대표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직원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일으켜 대찬을 바라봤다.
“구본진 선 넘는데요, 대표님.”
“고소하면 안 돼요?”
직원들이 아우성치는 가운데, 그래도 그들보다는 점잖은 민승기가 침착하게 말했다.
“구본진 글이 열 받긴 하지만 정면 대응 안 하는 게 좋지.”
그러자 직원들은 민승기에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민 전무님, 그래도 그건 아니죠. 이런 애들은 가만히 있으면 더 날뛴다니까요.”
“가만히 안 놔두면 그것보다 더 날뛰어.”
직원들은 선비가 따로 없는 민승기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대신 그래도 자기들 구미에 더 맞는 대찬을 흔들기 시작했다.
“대표님?”
“어, 근데 우리 민 전무님 말씀이 맞기는 맞지. 가만히 안 놔두면 더 날뛰지.”
“아…….”
직원들은 김빠졌다는 듯 시무룩한 얼굴들을 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대찬의 말은 예상과 달랐다.
“그러니까 강경 대응 해야지.”
“?”
직원들이 얼떨떨해 하는 와중에 대찬은 홍보팀 쪽을 바라봤다.
“홍보팀.”
“네, 대표님.”
“보도자료 배포하세요. 극동일보 구본진 기자의 칼럼은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와 인신공격에 해당된다. 언론을 이용한 더 이상의 영업방해는 좌시하지 않겠다.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그러자 강경 대응을 주문했던 직원들도 살짝 당황했다.
“응분의 대가…는 너무 말이 세지 않아요?”
“그렇게 하세요.”
민승기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대찬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