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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451화 (451/556)

난 할 수 있어 451화

“대표님은 그렇게 보고도 모르시겠어요?”

“뭘요?”

“몇 개월이면 단가가 몇 배로 싸질 수 있는 기간이라는 걸.”

“아…….”

“저희는 항상 목표를 초과달성 해왔습니다.”

“……그렇죠.”

“올해 상반기 안에 만 원 선 아래로 내릴 자신이 있어요.”

다르샨 싱 전무의 호언장담은 대찬에게 참 믿음직스러웠다.

그리고 그걸 실현해내는 다르샨 싱 전무, 그리고 은오영 소장의 솜씨가 알면 알수록 놀라웠다.

그래도 대찬의 표정은 개운해지지 않았다.

“만 원 아래로 내려간다고 해도 재래육에 비하면 여전히 비싼 건 사실이에요.”

“뭐… 그렇긴 하지만요.”

“아직은 시기상조예요. 분쇄육 형태로 생산되는 비도축육 특성상, 고가로 공급하기는 힘든 실정이에요. 일단 기간을 더 넉넉히 설정하고…….”

거기까지 말하던 대찬은 멈칫했다.

다르샨 싱 전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아니, 바로 제품화에 들어가도 될 것 같아서요.”

“…예?”

지킬 박사와 하이드도 아니고.

불과 몇 초 만에 휙휙 생각을 바꾸는 대찬이 다르샨 싱 전무는 의아했다.

“방금 전에는 시기상조라고 하셨잖아요?”

“생각이 바뀌었어요.”

“고가로 공급할 방법을 떠올리신 겁니까?”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떤…….”

“감자 좋아하세요?”

대찬의 뜬금없는 질문에 다르샨 싱 전무는 눈살을 찌푸렸다.

“예? 가끔 먹죠. 좋아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채소 아닌가요.”

“그 감자가 원산지가 남미인 거 아시죠.”

“알죠. 근데 고기 얘기하는데 뜬금없이 감자는 웬 감잡니까.”

“18세기 프로이센에서도 감자를 키우긴 했는데, 그걸 다 돼지 먹이로 줬다더라고요. 주식은 여전히 밀이었답니다.”

“근데요?”

“근데 밀 값이 폭등하니까 사람들이 막 굶어 죽어가더래요. 감자를 먹으면 되는데, 우리더러 돼지 사료 먹으라면 쉽게 먹겠어요? 안 먹지.”

다르샨 싱 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죠.”

“당대 사람들이 꺼린다는 점에서 감자와 비도축육 사이에 유사한 접점이 있다는 거예요.”

“뭐, 당시의 감자만큼 비도축육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건 아니지만요.”

“그렇죠. 그래도 여전히 찜찜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분명하죠.”

“예.”

“프리드리히 대왕은 고심을 했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감자를 먹을까. 그러다 방법을 생각해낸 거죠.”

다르샨 싱 전무는 가만히 대찬을 바라보며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어느 날 프리드리히 대왕이 칙령을 반포합니다. 앞으로 감자는 귀족만 먹어라.”

“귀족만 먹어라?”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갑자기 사람들이 동요하더라는 거죠. 왜 귀족만 먹으라고 그래? 사실 감자가 엄청 맛있는 거 아니야? 그러면서.”

“오호.”

“그래서 결국 사람들이 감자를 찾게 되더란 일화가 있어요.”

“정말입니까?”

“그럼 뭐, 내가 지어낸 건 줄 알아요? 진짜예요.”

다르샨 싱 전무는 팔짱을 끼고 대찬을 흘끗 바라봤다.

“그걸 비도축육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요?”

“갑오개혁 이후로 이 땅에선 신분제가 사라졌기 때문에 귀족만 먹어라, 그런 1차원적인 적용은 힘들어요.”

“그러니까요.”

“귀족이니 양반이니 하는 건 없어졌지만, 요즘은 돈이 곧 위상인 사회니까. 신분은 없어도 계급은 있으니까.”

“그럼…….”

“강남 사모님들을 타깃으로 삼을 겁니다.”

“강남, 강남,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만.”

“강남 부촌에 있는 매장에만 독점 공급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매장이라면…….”

대찬은 웃음을 머금었다.

“한 2년 됐나요. 필래 비바체에서 필래푸드와 합작으로 프리미엄 식자재 매장을 론칭했습니다.”

“아, 필래팜이요. 들어봤습니다.”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필래팜 서초점, 잠실점, 삼성점, 한남점에만 우리 비도축육을 공급하겠습니다. 어차피 물량이 달려서 이 점포들에도 한정적으로 공급하는 수밖에 없어요.”

“음, 그런데 그 지역에 거주하는 까다로운 사모님들의 선택을 받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대찬은 다르샨 싱 전무의 지적에 이견이 없었다.

“맞아요. 가격이야 큰 문제는 되지 않겠지만, 문제는 재래육에 비해 경쟁력이 있냐는 것이겠죠.”

“네, 사실 단가는 많이 낮췄지만 풍미 측면에서는 재래육만 못한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비도축육이 가진 확실한 장점이 있잖아요?”

“무슨…….”

“강남 사모님들은 우리한테만 깐깐한 게 아니에요. 우리한테 깐깐한 만큼 재래육한테도 깐깐하단 말이죠. 그걸 고려해보면 우리가 재래육에 비해 확실한 장점을 갖고 있어요.”

그제야 다르샨 싱 전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래육이 갖고 있는 수많은 위생적인 결함들. 그 영향이 미미하거나 없다고 해도 사람들이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부분들.”

“예, 항생제나 성장호르몬제… 그리고 비위생적인 사육환경 등등.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깐깐한 사람들은 아예 그 가능성조차 없애고 싶어 하죠.”

“맞습니다. 그에 반해 우리 비도축육은 세포와 전기 자극만으로 고기를 키워내니까.”

“아예 그런 가능성을 원천차단 할 수 있는 셈이죠.”

“하지만 그것만으로 승부를 걸기에는 재래육과의 가격 차이가 여전히 너무 심한 게 사실입니다.”

대찬은 웃음을 머금었다.

“전장을 잘 고르면 돼요.”

“전장이요?”

“네, 그 장점이 가장 잘 부각될 수 있는 영역을 고르면 됩니다.”

다르샨 싱 전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전장이 뭘까요?”

“이유식.”

“이유식.”

다르샨 싱 전무는 대찬의 말을 따라 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비자들은 자기들 먹을 건 가격 먼저 보고 사도, 아이들 먹일 건 그렇게 안 해요.”

“위생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죠.”

“네, 마침 이유식에 들어가는 고기는 씹기 좋게 다짐육 형태로 투입되니까 이 부분에 대한 염려도 없습니다.”

“그거 괜찮군요.”

“괜찮죠?”

“그런데 이유식에 들어가는 고기는 너무 적지 않습니까?”

“영역을 넓혀서 학생이나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제품을 만들면 되죠.”

“으음, 승산이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대찬은 미소를 지었다.

“해봅시다.”

“다만 마케팅이 확실히 돼야 할 겁니다. 비도축육이 재래육과 달리 위생과 안전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걸 확실하게 인식시켜야 해요.”

“그 부분은 직원들과 논의해보겠습니다. 싱 전무님은 출시일까지 최대한 생산단가를 낮추는 데 주력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번에 잘 되면 전무님 애인감도 한번 찾아볼게요.”

“허, 됐습니다. 사생활까지 컨트롤하시게요? 뭐 얼마나 대단한 애인감 찾아주신다고…….”

“그러다 진짜 대단한 애인감 찾아드리면 어쩔 겁니까.”

다르샨 싱 전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표실을 떠났다.

대찬은 그의 표정이 웃겨서 혼자 킥킥 웃었다.

다르샨 싱 전무를 내보낸 대찬은 바로 진위생을 불러들였다.

“부르셨어요?”

“점심 먹고 직원들 좀 모아주세요. 회의합시다.”

“네, 그러죠. 근데요.”

“응?”

“싱 전무님한테 몰래 금일봉 주셨어요?”

그러자 대찬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뇨.”

“근데 표정이 왜 저러세요?”

“표정이 왜?”

“아니, 길 가다 돈 주운 사람처럼 희희낙락이잖아요.

“그래요? 농담으로 애인 찾아준다는 얘기밖엔 안 했는데.”

대찬이 말하자 진위생은 그제야 이해됐다는 듯 편안하게 웃었다.

“그거네요.”

“응?”

“모르셨어요? 요즘 싱 전무님 외로움 엄청 타시는데.”

“그래요? 내 앞에서는 하나도 안 외롭다고 그랬는데.”

진위생은 픽 웃었다.

“주변에 본인이랑 어울리는 사람 없냐고 저한테만 해도 막 닦달하고 그러셨는데요.”

“정말요?”

“가끔 연구소로 외근 나가면 거기 연구원들도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대요.”

“근데 왜 나한테만 감춘대요? 섭섭하게.”

진위생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대표님이 평소에 신뢰를 잘 못 쌓으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아니 그건 또 뭔 소리야? 나만큼 믿음직한 사장이 또 어디 있다고.”

“원래 농담에 발끈하면 진짜랬어요.”

대찬은 달아오른 목소리를 급히 식혔다.

“발끈 안 했어요. 직원들이나 모아요.”

“네, 대표님.”

대찬은 진위생의 등 뒤를 째려봤다.

직원들이 모이자 대찬은 다르샨 싱 전무와 나눴던 얘기를 그대로 전달했다.

직원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했다.

고미수가 대찬에게 말했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단가가 단가다보니 그 방법이 아니고서는 지금 당장 비도축육을 팔아치울 방법이 없죠.”

“그렇죠.”

“대표님이 필래 측에 영향력이 있으니 그쪽 매장을 뚫어주시기만 하면, 사실 그 다음부터는 쉽죠.”

대찬은 웃으면서 말했다.

“싱 전무님도 말씀하셨지만, 관건은 마케팅입니다. 깐깐한 소비자들을 얼마나 잘 설득하느냐, 그게 관건입니다.”

민승기가 말을 보탰다.

“데뷔전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액수는 적어도 확실하게 깃발을 꽂아야겠죠.”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성적이 시원찮으면 여기저기 물어뜯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고미수가 대찬에게 말했다.

“광고 같은 고전적인 방법도 좋지만…….”

“고미수 씨는 뭐 생각해놓은 게 있어요?”

고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남 사모님들 상대로는 좀 더 심도 있는 방법이 필요해요.”

“심도 있는 방법?”

“사실 입소문이 중요하거든요.”

“중요하죠.”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인맥이잖아요. 바깥일 하는 남편들도 인맥 다지지만 사모님들이라고 가만히 안방에만 앉아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죠.”

“같은 교회 다닌다고 엮고, 출신지역이 같다고 엮고, 같은 학교 나왔다고 엮고, 애들 같은 유치원 다닌다고 엮고, 같은 아파트 산다고 엮고, 온갖 명분으로 일단 엮고 보니까.”

대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자코 고미수의 말을 들었다.

대표가 집중해서 들어주자 고미수의 입이 더 힘차게 움직였다.

“그런 모임이나 단체 같은 데서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구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수배해서 청탁을 넣기에는 효율이 좀 안 좋을 거 같은데?”

“딱 핀 포인트로 골라내야죠.”

“……흐음.”

“제 생각에는 한 사람만 붙잡으면 돼요.”

고미수의 당당한 말에 대찬은 살짝 놀랐다.

“한 사람?”

“네, 혹시 청담재라고 들어보셨어요?”

“청담재? 아뇨.”

“요리연구가 곽준정 선생은 아시죠?”

“아, 그분은 알아요. TV에도 자주 나오셔서. 이영이도 그 선생님 나오는 요리프로그램에 나갔었는데.”

“그분이 운영하는 요리강습소가 청담재예요.”

“몰랐네요.”

“여러 클래스가 있지만 진짜 잘 나가는 사모님들만 모시고 하는 프라이빗 강의가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듣는 데 한 달 삼백만 원인가 한다더라고요.”

“그분들 주머니 사정으로는 푼돈이겠지만 액수가 크긴 크네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 프라이빗 클래스가 유행의 진원지라고 해요.”

“유행의 진원지? 그럼 뭐, 거기서 배운 음식들을 강남 사모님들이 다 따라하기라도 한다는 거야?”

고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백 프로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그렇대요. 원래 제각각 다 멋진 거 같아도 유행에서 조금이라도 비켜나면 민망해 하잖아요.”

“꼭 고미수 씨 말처럼 대단한 위세는 아니더라도 일정한 영향력이 있는 건 맞겠죠.”

고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어차피 한 가지 전략으로만 일관할 것도 아니니까. 이것도 여러 방법 중 하나로 삼도록 하죠.”

고미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직원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 회의에서 개략적인 마케팅 전략이 결정되었다.

Y2Y 소속의 윤이영과 한창 주가가 절정에 달한 컬링 대표팀을 광고에 활용하는 안도 결정되었다.

결정된 일들은 대개 대찬의 손을 타야만 했다.

대찬은 필래 비바체 측에 비도축육을 공급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했다.

긴 말이 필요 없었다.

그는 오랜만에 필래 비바체 이사회에 출석했다.

그렇게 잠깐 거수기노릇을 해준 뒤, 김풍호 대표와 따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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