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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448화 (448/556)

난 할 수 있어 448화

총리는 유성은 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이면서 물었다.

“어째서 변화가 없는 겁니까?”

“저도 그게 궁금했습니다.”

“후원이 오지 않은 겁니까?”

“……후원이 오긴 온 모양이더라고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후원이 왔는데 어째서 변화가 없는 것인지.”

유성은은 어깨를 으쓱이며 예의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행정적인 부분은 협회에서 일괄적으로 처리해서요.”

유성은은 총리 앞에 먹잇감을 툭 던졌다.

대찬을 저격하려던 총리의 총구를 슬쩍 협회 쪽으로 돌렸다.

“음, 협회 쪽 얘기를 들어봐야겠는데요.”

“운동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물론, 물론 그렇게 돼야겠지요.”

총리는 자기를 지근거리로 보좌하는 비서실장 쪽을 돌아봤다.

“이 부분, 관련 부처에 지시해서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도록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총리님.”

총리는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유성은에게 말했다.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 건은 신속하게 처리하겠습니다.”

* * *

“나이스, 총리님.”

대찬은 쾌재를 불렀다.

총리의 말 한 마디는 백 사람, 천 사람의 공무원을 움직이게 할 것이다.

진상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함재기가 멋대로 자금을 유용한 것이 들통나면, 함재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총리는 유성은에게 거듭 조속한 처리를 약속하고 다음 일정으로 옮겨갔다.

유성은은 뛸 듯이 기뻤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다시 정위치로 돌아가려는 그녀를 함재기가 씩씩거리며 막아섰다.

“야, 너 뭐야?”

“…예?”

“너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사람 난처하게 만들고 있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함재기는 적잖이 화가 치민 듯, 허리춤에 손을 얹고 유성은을 아래로 내려다봤다.

“뭐? 행정적인 부분은 협회에서 처리하고 있어서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제가 거짓말을 했나요?”

“허, 이것 봐라. 눈 동그랗게 뜨고 대들어?”

그러자 함재기의 딸인 대표팀 감독이 그녀를 나무랐다.

“야, 유성은. 너 예의 안 갖출래?”

“제가 틀린 말씀 드린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유성은!”

유성은은 그저 함재기와 감독을 번갈아 보고는 그대로 스쳐 지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함재기의 얕은 인내심이 동나버렸다.

“이게 근데 진짜……!”

함재기는 당장이라도 유성은의 뺨을 올려붙일 듯 눈을 뒤집고 배를 튕겼다.

함재기는 씩씩거리며 악을 썼다.

“이 개만도 못한……! 별 볼 일 없는 여고생 거둬다가 국가대표 만들어줬더니, 목을 조르려고 들어?”

그러자 선수들이 경악하며 함재기에게 단체로 항의하려고 했다.

그러나 유성은은 그들을 손으로 제지했다.

어떤 경우에서도 선수들이 단체로 항명을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건 저들에게 정당한 지도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을 핍박할 명분을 제공할 뿐이었다.

유성은은 꿋꿋이 혼자서 함재기에 맞섰다.

“제가 협회장님 목을 언제 졸랐어요?”

“이게 그래도……!”

유성은은 함재기를 똑바로 올려다봤다.

“조대찬 씨한테서 들어온 후원금이 저희한테 쓰이지 않은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뭐?”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봐 달라는 게 협회장님 목을 조르는 일인가요?”

“허! 목소리에 힘 싣는 거 봐라?”

“그 돈이 협회장님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협회장님 목이 졸릴 일도 없어요. 만일 그랬다 하더라도 목을 조른 건 제가 아니라 협회장님 본인이고요.”

“이, 이게 돌았나……!”

그러자 코치들까지 나서서 그녀를 윽박질렀다.

“야! 너 미쳤어? 협회장님한테 그게 무슨 말본새야!”

유성은은 경멸에 찬 시선으로 함재기, 감독, 코치를 번갈아 본 뒤 휙 그들의 앞을 떠났다.

코치가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야! 거기 안 서!”

유성은은 서지 않았다.

대찬은 공무원들의 일처리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윤이영과 함께 훈련원을 방문했던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PD님, 이번에 총리가 선수촌 가서 컬링팀하고 얘기 나눴던데, 보셨어요?”

“어렴풋하게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상황이 제법 무르익은 거 같은데, 방송 내보내실 생각 없으신가요?”

“아… 뭐, 저도 해볼 만하다고는 생각하긴 하는데 글쎄요. 어디 제가 그런 걸 하고 말고 결정할 위치가 돼야 말이죠.”

대찬은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렇죠. 데스크 판단은 어떨 것 같습니까.”

“봉황의 뜻을 참새가 어찌 알겠습니까. 까라면 까고, 말라면 말고, 아랫것들 인생이 다 똑같죠.”

PD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총리의 지시로 모종의 결과가 밝혀진 다음 움직여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훈련원에서 직접 촬영한 자극적인 영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한 발짝 늦어도 시청률을 확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찬도 그에게 무리하게 재촉할 생각은 없었다.

재촉한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언론사와 먼저 접촉해도 양해해주십시오.”

“다, 다른 언론사요?”

“네, 저는 이 건 오래 들고 있기 싫거든요. 모쪼록 생각 바뀌시면 연락 주십시오.”

대찬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찬은 일요서울의 전길재와 인터뷰를 했다.

노동력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간단한 인터뷰 기사이니 전길재도 염치없이 인건비 운운하지는 않았다.

컬링대표팀 후원금 증발사태, 조대찬 대표 “그 많던 후원은 누가 다 먹었나”

기사의 내용은 간단했다.

나는 차질 없이 돈 보냈다.

선수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면, 중간에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전길재는 인터뷰를 마치고 볼펜을 딸깍거리면서 웃었다.

“이런 허드렛일은 나 말고 최재한이 시켜도 되잖아요?”

“재한이는 제 기사 하도 많이 내보내갖고 한동안 서로 휴식기를 갖도록 했어요.”

전길재는 대찬을 흘끔 보며 피식 웃었다.

“보통 휴식기라고 하면 권태기를 의미하던데.”

“그건 연인 사이에나 그렇고요. 저도 나름대로 이름값을 얻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제 신상을 캐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재한이랑 같은 고교, 같은 대학 나온 거 알 사람은 다 알더라고요.”

“그럼 필요 이상으로 캔 게 아니구만요. 한 개인이 언론을 사유화하는 걸 예방하게 됐으니 필요한 신상 털기였구만요.”

대찬은 전길재와 입씨름할 생각이 없었다.

“예, 그럼 그렇다고 칩시다.”

“따지고 보면 이건 조 대표님 입장에서는 별 영양가 없는 이슈인데. 필요 이상으로 힘 빼는 거 아닙니까?”

“이게 다 전 기자님 덕분 아니겠어요?”

“허, 갑자기 뒤집어씌우시기는.”

“저번에 뭐 나더러 진탕에 내린 연근이라느니 뭐니 순 음험한 인간으로 깔아뭉개니까.”

전길재는 어깨를 으쓱였다.

“틀린 평가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요.”

“나한테도 불의를 용납 못하는 선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이거예요.”

“나중에 컬링팀 성적 좋으면 나한테 삼겹살이나 한 턱 내라고 해야겠네요. 따지고 보면 내 덕에 이런 푸닥거리도 해내는 거니까?”

“암튼 펜대들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비틀고 짜깁기하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당연하죠, 그걸로 밥벌이하는데. 그러니까 조 대표도 나 같이 퀴퀴한 인간을 상대해주는 거 아닙니까?”

대찬은 질려버려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으로 전길재와의 대화를 종결했다.

대찬의 인터뷰 기사가 나가자, 컬링팀 후원금 증발 사건은 한 층 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일이 처음 터지고 나서 가장 먼저 의심을 받았던 건 대찬이었다.

역시 조대찬은 요란한 빈 수레가 아니었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위선자, 사기꾼 등등 모욕적인 낱말을 대찬의 트위터 계정에 배설해놓는 이들이 더러 생겼다.

그러다가 대찬이 이를 전면 부인하니, 시선은 이제 협회 쪽으로 향했다.

그 관심에 부응하여 언론들도 나팔을 불었다.

-함재기 컬링협회장, 알고 보니 ‘자격 정지’ 상태

-컬링계 주무르는 함氏 일가, 후원금도 ‘꿀꺽’?

-컬링협회장, 알고 보니 컬링‘혐’회장?…“협회장은 그 세계의 王이었다.”

기사들이 쏟아지자 MBS 측도 급히 프로그램 제작에 나섰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완성되기 전에, 총리실의 압박을 받은 문체부 측에서 선제적으로 이 건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결과가 나오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대찬이 바람잡이를 자처한 덕분에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기자들이 많이 몰렸다.

문화부 관계자는 결과를 건조하게 읊조렸다.

“주식회사 로튼 프룻츠 측으로부터 전달 받은 후원금 1억 원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감사 결과, 주식회사 로튼 프룻츠 측으로부터 전달된 1억 원이 선수들의 기량 발전과 훈련 여건 향상에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건 함재기 왕국의 몰락을 의미했다.

“또한 현재 자격 정지 중인 컬링협회장 함재기 이하 컬링 대표팀 지도자들이 유용한 혐의가 매우 뚜렷하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와르르 무너지는 일인데, 문체부 관계자는 시종 덤덤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불어 감사 과정에서 함재기 협회장 이하 지도자들이 선수들에게 폭언과 욕설, 폭행, 불필요한 심부름 등 다수의 인격모독적 행위를 자행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혐의점에 대한 것을 모두 발표한 그는 이제 처분에 관한 것을 말했다.

“이에 함재기 협회장을 해임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며, 이것이 준수되지 않을 시 정부 차원에서의 대처에 착수할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아울러 함재기 협회장의 훈련원 및 선수촌, 경기장 출입을 엄격히 금지할 것입니다. 이번에 밝혀진 모든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여 법적인 책임을 다하도록 할 것입니다.”

관계자는 거기까지 말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기자들이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그는 짧게 질의응답은 받지 않겠습니다, 대답하고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컬링팀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

우물에 핵폭탄이 떨어진 격이었다.

함재기는 어떻게 손을 써볼 틈도 없이 선수촌에서 축출되다시피 했다.

여전히 감독이며 코치의 직함을 갖고 있는 이들도 빈사 상태나 다름없었다.

이어 방영된 MBS의 탐사취재 프로그램은 결정타를 먹였다.

공무원의 건조한 읊조림보다, 녹화된 화면과 녹음된 소리가 생생하게 현장을 알리는 프로그램이 충격이 훨씬 컸다.

‘네놈이 주는 거 필요 없어! 당장 꺼져!’

대찬이 진위생을 시켜 촬영했던 것도 MBS로 넘어가 그대로 전파를 탔다.

대찬은 감자칩에 맥주를 먹으면서 그 프로그램을 봤다.

윤이영 역시 대찬의 옆에 착 달라붙어 대찬의 과자 봉지에 손을 집어넣었다.

대찬은 와작와작 과자를 씹으며 중얼거렸다.

“으음, 저쪽에서 어떻게 나오려나?”

“응? 저쪽이라니?”

대찬은 윤이영 쪽을 흘끗 보며 말했다.

“완전히 코너에 몰렸잖아.”

“응.”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니까.”

“저 정도면 고양이 물 이빨도 다 뽑힌 수준 아니야?”

“그렇긴 하지만, 모르지.”

대찬은 묵묵히 화면을 바라보며 와작, 와작 과자를 먹었다.

함재기가 빠진 컬링대표팀 지도부는 갈팡질팡했다.

컬링은 비인기종목이다.

그 말인즉슨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저런 매스컴의 폭발적인 관심에 대처할 어떤 경험도 지식도 없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정신적 지주이자 실질적인 수장인 함재기가 전열에서 이탈했다.

아버지를 잃은 함씨 일가족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당장 훈련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마주친 어마어마한 수의 취재진만으로도 그들은 완전히 얼이 나가버렸다.

함재기의 딸인 대표팀 감독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어, 어떡해……?”

그들은 내부에서 호응한 선수들을 다그치거나 야단칠 생각조차 못했다.

자신들이 숨을 쥐구멍을 찾는 데만 급급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 아빠다.”

감독은 얼른 함재기의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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