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442화
Y2Y는 대찬과 윤이영이 꼭 반반씩 출자해서 세운 회사였다.
대찬은 웃으면서 사무실의 잘 보이는 곳에 금빛 찬란한 윤이영의 대상 트로피를 올려놓았다.
“역시 대상은 태부터 다르다니까. 이거 하나만 갖다 놨는데도 광채가 아주 그냥.”
“오버는.”
“오버가 아니야. 눈이 부시다, 눈이 부셔.”
윤이영도 기분이 좋은지 피식 웃기만 했다.
대찬은 윤이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악플러들 무자비하게 고소해야지.”
“회사 세우자마자 푸닥거리부터 할 순 없지.”
“그래도 1분 1초라도 빨리하고 싶어. 그 나쁜 놈의 새끼들.”
윤이영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나라고 왜 안 그러고 싶겠어. 그래도 조금만 참자구. 대상 받은 덕에 요즘은 기분이 좀 괜찮아.”
대찬은 안쓰럽게 웃으며 윤이영의 어깨를 쓸었다.
윤이영은 대찬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회사도 세웠겠다, 이제 남 눈치 안 보고 오빠 일도 도와줄 수 있겠어.”
“내 일을 도와준다니?”
“로튼 프룻츠, 이번에 올림픽 공식 서포터잖아.”
“응, 그런데?”
“이왕 판 벌인 거 확실히 벌여야지. 돈 좀 쓰자, 오빠. 올림픽 때 CF 내보내.”
“CF?”
윤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올림픽 중요한 경기들 있잖아. 중간 중간에 광고 내보내면 그래도 효과 괜찮지 않겠어?”
“효과야 있겠지. 그런데 언제나 돈이 문제지. 언제나 그렇듯이.”
“노 개런티로 해줄게. 그럼 좀 수월하지 않겠어?”
“내 애인 앵벌이 시키고 싶지는 않은데.”
“어이구, 그럼 돈 좀 팍팍 벌어서 고액 개런티 안겨주시든가요. 지금이 허세 부릴 때야?”
받아칠 말이 없어 대찬은 멋쩍게 웃기만 했다.
윤이영은 대찬을 빤히 바라봤다.
“자존심 세울 거 없어. 오빠 회사가 얼른 잘 돼야 나한테도 좋은 거니까. 이번에는 나 그냥 공짜로 갖다 써.”
“정말 그래도 돼?”
“그래도 돼. 이러려고 내 회사 차린 거거든.”
“예뻐 죽겠네.”
“예쁜 거 이제 알았나.”
대찬은 윤이영을 꼭 끌어안았다.
Y2Y의 첫 행보는 윤이영이 출연하는 로튼 프룻츠의 CF 제작이었다.
잡다한 컴퓨터 그래픽이 동원될 것도 없었다.
다만 윤이영만 수고하면 되었다.
광고는 간단했다.
광고의 목적은 로튼 프룻츠의 브랜드 인지도 제고.
하얀 눈이 내려앉은 대관령에서 소의 콧잔등을 쓰다듬으며 눈을 지그시 감는 윤이영.
그리고 번지는 미소.
화면은 점점 위로 올라가 푸른 하늘을 비추고, 하늘 위에 떠오르는 하얀 자막.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더 깨끗하고 더 건강한 비도축육, 곧 찾아뵙겠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서포터, 로튼 프룻츠.
대찬은 완성된 작품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수고 많았어, 이영아. 덕분에 그림 예쁘게 잘 뽑혔다.”
“대관령에서 잠깐 떨면서 웃은 게 단데 뭐. 찍은 쪽에서 잘 찍어줬네, 예쁘게.”
윤이영도 만족스러운지 짧은 광고를 여러 번 돌려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대찬은 제법 큰 출혈을 감수하고 올림픽 프라임 시간대에 광고를 걸기로 했다.
비도축육이 시장으로 나갈 날이 머지않았다.
그 전까지 대중에게 열심히 비도축육을 노출시켜, 어쩔 수 없는 낯설음을 해소해 주어야만 했다.
올림픽은 2월이었다.
앞으로 두 달 안 되는 기간.
올림픽에 참여하는 모든 개인과 단체가 총력을 기울일 것이었다.
다만 대찬은 뒤에서 후원하는 기업의 대표였다.
올림픽에 직접 참여하는 그들만큼 치열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투입한 노력과 재화가 적지 않은 대찬 역시 어떻게든 이 올림픽 특수를 최대한으로 누리고자 사방팔방을 누비고 다녔다.
로튼 프룻츠 사무실의 업무 역시 올림픽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하면 올림픽의 골수까지 쪽쪽 알뜰하게 빨아먹을까, 회의가 연이었다.
대찬은 회의를 주재하면서 직원들에게 말했다.
“전 직원 브레인스토밍 방식으로 발언합시다. 허무맹랑해도 좋고, 어처구니가 없어도 좋습니다. 생각나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해보세요.”
로튼 프룻츠의 물렁한 분위기는 이런 회의에서 빛을 발했다.
상사 눈치 안 보고 되도 않는 소리, 시시껄렁한 소리를 서슴없이 뱉을 수 있었다.
물론 물렁한 분위기만으로는 불가능했다.
한 가지가 더 필요했다.
그건 대찬의 초인적인 인내심이었다.
차라리 개 짖는 소리를 듣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정도로 정말 되도 않는 소리가 이어져도 끝끝내 참아내는 초인적인 인내심.
직원들 중 하나가 말했다.
“그 미국 가수 있잖아요, 레이디 가가. 몇 년 전에 생고기로 드레스를 만들어서 화제가 됐거든요.”
“네.”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 앞에서 비도축육 드레스를 입은 모델을 세워놓는 거예요.”
“…어 좋은 생각이긴 한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좀 있겠죠. 모델이 얼어 죽는다든지 하는. 그리고 우리가 이번에 제작한 CF랑 컨셉도 어긋나니까.”
대찬은 어정쩡한 웃음으로 그 의견을 반려했다.
“그럼 이건 어떠세요? 겨울이니까, 눈싸움 대신 고기완자 싸움을 하는 거예요. 막 뭉쳐갖고 서로 던지면서…….”
“정말 참신하네.”
슬슬 대찬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고미수가 대찬에게 말했다.
“대표님, 도박 한번 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도박?”
고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올림픽에는 깜짝 스타가 나오기 마련이잖아요.”
“그렇지.”
그나마 좀 들어줄 만한 의견이 나오자 대찬의 귀가 활짝 열렸다.
“쇼트트랙이나 스피드스케이팅처럼 우리나라가 원래 강세인 종목에는 후원하는 회사들이 잔뜩 붙어있거든요.”
“그렇지, 그렇지.”
“그런데 동계올림픽에는 저런 종목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대찬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제 대찬은 아예 고미수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렇죠. 스켈레톤도 있고, 피겨도 있고, 스키도 있고…….”
“네, 그리고 기타 등등의, 한국에서는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되는 종목들이 있죠.”
“그렇지.”
고미수가 입을 열고 나서 대찬이 가장 많이 입에 담는 말은 ‘그렇지’였다.
그 말에 힘을 얻은 고미수의 목소리가 점점 더 분명해졌다.
“비인기 종목에서 잭팟이 터질지도 모르는 노릇이잖아요.”
“그렇지.”
“금메달은 어렵더라도 동메달 정도만 따줘도 스토리텔링이 되거든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로 운을 떼면서, 그렇지. 가능하지.”
고미수는 웃으면서 말했다.
“더 빨리 움직였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두 달이면 긴 시간이에요. 발 빠르게 움직이면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있어요.”
“그러니까 고미수 씨 말은, 비인기종목 중 하나를 골라서 우리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자. 그래서 성과가 있으면 우리가 주목받을 수 있다, 이거지?”
고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친구가 비인기종목 국가대표 상비군이라 처우를 익히 들었거든요. 우리 입장에선 큰돈이 아니더라도 받는 쪽에서는 엄청난 도움이 돼요.”
“……그렇겠지.”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대찬은 이에 수긍하면서 다른 직원들의 의견을 구했다.
“어떻게들 생각하세요?”
“괜찮은데요. 물론 무조건 성과가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는 게 걸리지만.”
“네, 그래도 긁어볼 만한 복권이긴 한 것 같습니다.”
대찬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뭐, 성과가 없더라도 그래도 명색이 올림픽 공식 서포터니까, 좋은 일 한 셈 치죠.”
“그럼 종목은 어떤 걸로 할지 조사를 해볼게요.”
대찬은 그렇게 하라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손을 들었다.
“잠깐만.”
“네?”
“조사 안 해도 될 것 같네요.”
“그게 무슨…….”
대찬은 어리둥절한 직원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종목은 제가 정했습니다.”
“아무 자료도 안 보시고요?”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컬링으로 합시다.”
“커… 컬링이요?”
대찬의 말에 직원들은 수군댔다.
진위생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컬링이 뭡니까?”
“그런 게 있어요. 협회 측에 의사 타진해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아니, 그 전에 컬링 대표팀에 지원하는 기업이 있는지부터 검토하는 게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직원들이 다 빠져나가고, 민승기만 남았다.
“뒤도 안 돌아보고 컬링으로 정한 이유가 있어?”
“네, 있어요.”
“뭔데?”
민승기의 질문에 대찬은 곧이곧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첫 번째 삶,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종목이라고 한다면 단연 컬링이었다.
비록 은메달에 그치긴 했지만, 개막 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컬링 대표팀의 활약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물론 이번에도 첫 번째 삶과 같은 기막힌 성과가 나올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대찬은 그 기억이 없다 하더라도 컬링을 선택할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민승기에게 말해줄 수 있었다.
“종목 별로 편차가 있잖아요. 진짜 무슨 짓을 해도 차이를 극복할 수 없는 종목이 있고, 어, 어쩌면 해볼 만할지도 모르겠는데 하는 종목이 있고.”
“그렇긴 하지? 축구랑 야구만 봐도 그렇잖아.”
“그렇죠.”
“리그에서 축구는 꼴찌가 1등을 이길 확률이 엄청 희박하지만 야구는 10번 붙으면 그래도 두세 번은 꼴찌가 이기기도 하니까?”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봤을 때 동계올림픽 종목에서 가장 야구 같은 종목이 컬링이에요.”
민승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컬링에 일가견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도 같네. 피지컬로 압도하는 종목이 아니니까.”
“네, 또 한국 사람이 덩치는 아담해도 머리 굴려서 판 짜는 데는 또 기가 막히잖아요?”
“그러니까.”
“고미수 씨 말대로, 컬링 말고 다른 종목에 거는 건 정말 도박이에요. 근데 컬링은 도박까진 아니고 노려봄직하다는 거죠.”
대찬의 말을 듣고 민승기는 수긍했다.
그렇게 말한 대찬은 자신의 말에서 뭔가 석연치 않은 지점을 발견했다.
‘잠깐만, 그럼 그만큼 변수가 많으면 이번에 메달 못 딸 확률도 꽤 된다는 거 아니야?’
대찬은 초점 흐린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그래도 컬링이 나아. 다른 종목은 너무 확률이 희박해.’
컬링으로 종목이 정해졌다.
로튼 프룻츠 직원들은 컬링 대표팀에 후원하는 기업이 있는지 조사했다.
“생각보다 굵직한 곳에서 밀어주던데요?”
“…그래요?”
“네, 새천년그룹이 백억 원, 민국은행도 적잖이 지원하더라구요…….”
그렇게 보고하는 직원은 자기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배, 백억……?”
“네, 백억…….”
대찬은 당황스러웠다.
물론 컬링이라고 그런 거액을 후원받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돈의 단위가 대찬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갔다.
‘이상하다.’
직원들이 조사하는 사이, 대찬도 자료를 안 뒤져본 건 아니었다.
그런데 며칠 전 대표팀을 인터뷰 한 기사는 직원의 보고와는 사뭇 결이 달랐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환경이 열악한 건 사실입니다.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에요. 소중한 후원이 여러 곳에서 들어온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솔직히 체감은 안 됩니다.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로라하는 기업, 은행에서 후원자를 자처하고 나선 마당이다.
그런데도 환경이 열악하다니.
지원이 절실하다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100억이라는 거금이 물론 국가대표팀에만 집중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금액이 전국대회를 개최하는 데 사용되었다.
홍보를 하는 데도 사용되었고, 아마 협회의 높으신 양반들의 술값으로도 적잖이 쓰였을 것이다.
그렇게 눈먼 돈이 여러 구멍으로 빠져나간다고 치자.
그럼에도 100억이라는 돈은 적어도 상황을 열악하지 않게 만들기엔 부족함이 없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선수들의 인터뷰는 활자임에도 간곡한 호소로 들릴 만큼 절박했다.
대찬은 이를 올림픽 조직위원회 측에 문의했다.
그에게 호의적인 사무총장의 입김을 타고, 대찬은 분야의 사정에 해박한 관계자와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대찬에게 속사정을 말해주었다.
“지금 컬링은 완전히 공황상탭니다.”
“공황상태라뇨? 올림픽이 두 달도 안 남았는데.”
“협회 회장이 이런저런 문제로 자격이 정지된 상태거든요. 게다가 내부적으로는 파벌도 형성이 돼있어서…….”
“…그렇습니까.”
“네, 참 딱한 상황이죠.”
자세히 묻지 않아도 상황을 알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