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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441화 (441/556)

난 할 수 있어 441화

“솔직히 아까 그건 좀 촌스러웠다, 그죠.”

“뭐?”

“아니, 그 키스 그거 말이에요. 미리 다 기획된 거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근데 꼭 돌발 상황인 것처럼 꾸미잖아.”

“너 지금 반말하니?”

전채원은 혀를 삐죽 내밀며 웃었다.

“에이, 이 정도는 반말이 아니구 반존대. 그리고 언니도 반말하는데 저도 말 좀 편하게 하면 안 돼요?”

“아까 일은 예상에 없던 거야. 미리 합을 맞췄으면 조대찬이 배우도 아니고 어떻게 자연스럽게 놀라니?”

“조대찬 씨 정도면 웬만한 배우 뺨치지.”

윤이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

“전에 일본 갔다 오는 길에 카메라 앞에서 애국심 마케팅 할 때 봐 봐요. 완전 배우 저리 가라지.”

윤이영은 웃음을 머금었다.

“착각은 자윤데, 당사자 앞에서 착각한 걸 사실인 양 주절대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은데?”

“혹시 기분 나쁘세요? 제가 너무 솔직하게 말했죠. 죄송해요.”

윤이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한 게 아니고 좀 치사했지. 그래도 용서해줄게. 아직 사회생활 얼마 안 해봤으니 그럴 수 있어.”

“치사하다뇨, 언니.”

“언니라고 하지 마. 너랑 이제 한솥밥 먹는 사이도 아닌데 내가 왜 네 언니야. 앞으론 선배라고 해줬으면 좋겠네.”

“지금 심술부리는 거예요?”

“심술? 내가 왜?”

“제가 직설적으로 몇 마디 했다고 꼬이셔갖고 심술부리시는 거잖아요, 지금.”

하, 윤이영은 기가 찬 듯 웃었다.

“내가 왜 너한테 심술을 부려? 내가 상 못 탔으면 모를까. 이 좋은 날에 심술을 왜 부리겠어.”

“참 좋으시겠네요, 상 타셔서.”

“좋지, 그럼. 아, 그리고 너 조대찬한테 집적거리지 좀 마.”

“집적거리다뇨? 제가 언제요?”

“이 바닥 소문 빨라. 임자 있는 남자한테 은근슬쩍 스킨십하거나 커피 먹자는 둥 작업 걸지 마.”

“참 나, 저 20대 초반이에요. 저 좋다는 남자 손 들라면 한국 남자 절반은 들 걸요? 그런데 제가 왜 다 늙어빠진 아저씨한테 꼬리를 쳐요.”

“그러게, 왜 다 늙어빠진 아저씨한테 꼬리를 쳤어.”

“안 쳤다니까?”

“넌 연기 좀 더 배워야겠다. 귀가 빨개지네.”

“안 쳤다고!”

그때 전채원의 등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뭔데 큰 소리야!”

윤이영과 전채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둘은 동시에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태영주.

올해로 75세가 되는 관록의 여배우였다.

이번 연기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이이기도 했다.

그녀는 푸른색 짙은 화장을 한 눈을 윤이영에게 한 번, 전채원에게 한 번 굴렸다.

“선생님.”

윤이영은 공손히 더 허리를 숙였다.

태영주는 푹 퍼진 엉덩이를 씰룩이며 전채원 쪽으로 다가갔다.

“얘, 너 이름이 뭐였더라?”

“저, 전채원이라고 합니다, 선생님.”

“그래, 전채원. 너 뭔데 까마득한 선배한테 언성을 높여? 이영이가 연기를 해도 너보다 십 년은 더 했고, 방금 대상 타고 내려오는 길인데 새파랗게 어린 너한테 큰소리 듣는 게 맞는 거니?”

“그, 그게…….”

전채원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윤이영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겸손한 목소리로 태영주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어쩌다 보니 언성이 좀 높아졌어요. 제가 참았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태영주는 윤이영에게는 눈빛을 날카롭게 벼리지 않았다.

“내가 이영이 널 모르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선배한테 얼마나 싹싹해. 그렇다고 후배한테 인심 잃는 스타일은 아닌 걸로 아는데.”

“그래도 아직 많이 부족하죠…….”

“채원이, 너.”

전채원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대답했다.

“네, 선생님.”

“너 왜 얌전한 이영이한테 악을 쓰고 지랄이야.”

“지, 지랄은 아니고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뒷방 늙은이 같니?”

“…아뇨.”

전채원의 목소리가 방금 전에 크레센도였던 것이 지금은 데크레센도였다.

“하루걸러 하루마다 너 싸가지 없다는 소리가 들려. 너 그거 알고 있었니?”

“아뇨, 선생님…….”

“몸가짐 조심해라. 다음 달부터 너 나랑 작품 들어가는 거 알지.”

“네…….”

“준비 똑바로 해오는 게 좋을 거야. 선배든 후배든 스태프든 깍듯하게 대하고. 하녀처럼 굴라는 게 아니야. 사람이면 사람의 예의를 갖추라는 거야, 알겠니?”

“네, 선생님…….”

“지켜볼 거야. 그리고 이영이 너.”

태영주는 윤이영을 바라봤다.

“네, 선생님.”

“넌 애가 그렇게 순해 빠져가지고 되겠니, 어디? 후배가 바락바락 기어오르면 엄한 말로 적당히 다그칠 줄도 알아야지.”

“타고난 성격이 이래서 쉽지 않아요, 선생님.”

가증스럽게 내숭을 떠는 윤이영에게 눈빛을 쏘았다가 자기를 살피는 태영주를 보고 전채원은 다시 눈을 깔았다.

“너, 그거 마냥 좋은 게 아니야. 얘 버릇 이렇게 버려놓는 데는 너 같이 순해 빠진 선배들 책임도 있는 거라고.”

“죄송해요.”

“순둥이들 일색이니까 내가 이 나이 먹고도 우르술라 소리 들어가면서 군기반장 노릇 하잖아.”

“유념할게요.”

할 말을 마친 태영주는 이내 푸근하게 웃으며 윤이영의 등을 다독였다.

“이영아, 축하한다. 대상이 너무 늦었어. 받아도 진작 받았어야 했는데.”

“뭘요. 과분해요.”

“아까 네가 입술 훔치던 조대찬 씨는 어디 있고.”

“지금 차에서 저 기다리고 있어요.”

태영주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얼른 가봐라. 오늘 찐한 밤 보내야지.”

“아유, 몰라요.”

“나도 차 타러 가야겠다. 주차장까지 같이 걸어가자. 나도 대상 배우 기 받아서 늘그막에 대상 한번 받아보자.”

“선생님, 너무 욕심 많으신 거 아녜요? 벌써 대상 다섯 개나 받으셔놓고.”

“살이 찌니까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윤이영과 태영주는 호호 웃으면서 전채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 씨발년…….”

전채원은 윤이영의 뒤통수를 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연약하게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이, 왜 이렇게 안 와. 거 사람들 대충 좀 축하해주고 말지. 너무 붙들어두네.”

대찬은 손톱을 들여다보며 툴툴댔다.

그때 윤이영이 조수석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오래 기다렸지?”

“네, 오래 기다렸어요. 사람들 너무하네. 윤이영이 자기들 거냐고. 내 걸 너무 오래 빌려가잖아.”

“아유, 미안해요, 조대찬 씨! 이영이 너무 오래 빌려가서.”

태영주가 열린 문틈으로 고개를 쑥 내밀며 말을 걸었다.

강렬한 인상에 대찬은 흠칫 놀랐다.

“아, 태, 태영주 선생님 아니십니까.”

“어두컴컴한데 조대찬 씨가 다 알아봐 주시고 이거 영광이네요.”

초록색 눈 화장이 오징어잡이 어선 집어등처럼 너무 환해서요.

대찬은 솔직한 말은 꾹 참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태영주 선생님 모르는 한국 사람이 어디 있어요. 우리 이영이 많이 예뻐해 주십시오.”

“안 예뻐할 수가 없죠. 이영이 같은 진국, 이 바닥에 몇 없거든. 조대찬 씨는 복 받은 줄 알아요.”

“당연하죠! 매일 매일이 행복합니다.”

태영주는 호탕하게 웃으며 탕탕 차체를 두드렸다.

“자! 목적지는 호텔 스위트룸! 오라이!”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다음에 뵙겠습니다.”

“다음에 뵐게요, 선생님!”

“들어가!”

대찬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차를 몰았다.

대찬은 쉬는 손으로 윤이영의 어깨를 잡았다.

“축하해, 대상 배우.”

“고마워. 내가 너무 늦었지.”

“오늘 시끌벅적하게 회식해야 되는데 나 때문에 즐길 것도 못 즐기잖아. 축하인사라도 충분히 받아야지.”

윤이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즘 날이 갈수록 체력이 안 좋아져. 예전처럼 2차, 3차 부어라 마셔라 못하겠다니까. 벌써 시간도 한 시 가까워졌고, 오늘은 그냥 오빠랑 푹 쉬고 싶어.”

대찬은 미끄러지듯 방송국 정문을 빠져나오며 말했다.

“아까는 진짜 놀랐어. 연예인들은 어떻게 다 하나같이 그렇게 짓궂냐.”

“오빠가 그 자리에 있을 때부터 대충 예상되던 거 아니야? 솔직히 예감은 했잖아.”

“꿈에도 몰랐어.”

윤이영은 피식 웃었다.

“하긴, 입 맞추는데 입술 움찔거리는 게 진짜 놀란 거 같더라.”

“진짜 놀랐다니까.”

윤이영은 안전벨트를 매며 말했다.

“나도 처음엔 좀 놀랐어. 전 국민 보는 앞에서 키스하려니까. 연기로는 그렇게 많이 해봤는데 진짜는 처음이었거든.”

“놀란 거 치고는 너무 떳떳하게 잘만 하더만.”

“그렇게 해야 안심이 되겠더라구.”

대찬은 윤이영을 흘끗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안심?”

“응, 안심. 입술 도장 쾅쾅 찍어서 이 잘생긴 아저씨가 내 애인이라는 걸 확실히 알려야겠더라구.”

“TV 있는 집이면 나랑 너 사이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굳이 입술 도장까지 찍어 뭐해.”

윤이영은 피식 웃으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긴가민가 헷갈려하는 년이 있더라구. 집에 TV도 있고, 심지어는 TV에 나오기까지 하는 년이.”

대찬은 대충 감을 잡고 피식 웃었다.

“전채원 얘기구나.”

“그래, 지 어린 것만 믿고 얼쩡대는 게 아주 꼴사납다니까.”

“자기 좋아해주는 탱탱한 20대 만나지 뭐 하러 이런 아저씨한테 쫑알거리는지.”

“망할 년.”

“세상에, 윤이영이 질투도 다 하고.”

“질투는 무슨 질투? 감도 안 되는 게 까부니까 기가 막혀서 그렇지.”

대찬은 흐흐 웃었다.

“전채원도 전채원이지만, 오빠가 무슨 쇼윈도 애인이라느니 하는 소리도 있으니까. 그런 헛소문 퍼트리는 나쁜 놈들 보라고 한 것도 있어.”

“그래, 잘했다.”

“잘했지?”

대찬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쁜 인간들은 그만 생각해. 오늘같이 좋은 날에.”

“오늘 그냥 잠들긴 아쉽고, 호텔 바 가서 다이키리나 한 잔 하고 잘까?”

“다이키리, 좋지.”

대찬은 호텔로 핸들을 꺾었다.

둘은 호텔 바에서 한 잔 하자던 약속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파기했다.

좋은 날, 기분 좋은 만큼 둘은 얼큰하게 마셨다.

가뜩이나 늦은 시간에 적잖이 술을 먹으니 피로가 확 몰려왔다.

대찬은 대리기사를 부르고, 윤이영을 점잖게 부축해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대리기사는 둘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고급 호텔로의 부름이라 돈 많은 양반이 불렀다고는 생각했는데, 그 양반들이 생각보다 유명한 양반들이었다.

“아유, 이거 영광입니다. 이 두 분을 모시게 될 줄은 몰랐네요.”

대찬은 멋쩍게 웃고는 어느새 잠든 윤이영의 머리를 자기 어깨로 조심스레 포개며 말했다.

“영광은요. 듣기 부끄럽네요.”

“제가 대리기사 노릇 하면서 뵌 분 중에 가장 유명하신 분들인데요. 한 분도 아니고 두 분이나.”

“하하, 하긴 대상 탄 배우가 있으니 오늘만큼은 좀 으스대도 용서받을 수 있겠네요. 늦은 밤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하, 조대찬 씨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어디로 모실까요.”

“성수동으로 가주세요. 근처 가면 자세히 길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죠. 아유, 저도 아까 콜 기다리면서 연기대상 봤습니다.”

대찬은 멋쩍게 웃었다.

“하하… 보셨어요?”

“아주 열렬한 사랑이 느껴지던 걸요. 보기 좋았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아이고, 복에 겨우셨습니다.”

기사의 기분 좋은 질책을 대찬은 웃음으로 받았다.

그는 윤이영의 머리를 찬찬히 쓸었다.

윤이영은 입술을 우물거리며 대찬의 품으로 더 파고들었다.

윤이영은 본격적으로 1인 기획사를 차렸다.

이름은 간단하게 그녀의 이름을 땄다.

Yoon 2 Young, 줄여서 Y2Y로 지었다.

윤이영은 마음에 들어 했다.

“글자 생긴 게 입을 쭉 내밀고 우는 표정 같잖아. 귀여워.”

“어딜 봐서 이게 우는 표정이야?”

“상상력을 좀 발휘해 봐. 으이구.”

“난 잘 모르겠는데.”

윤이영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찬은 Y2Y의 대표이사로 로튼 프룻츠 소속의 한 직원을 내세웠다.

어차피 대표이사라고 해봤자 자질구레한 사무를 처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거기에 로튼 프룻츠는 앞으로 생명공학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직원을 더 채용할 계획이었다.

지금처럼 일가견 없는 사무직을 굳이 줄줄이 거느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비도축육 분야에는 그다지 실력을 드러낼 구석이 없되, 주어진 임무는 싹싹하게 잘 하는 직원을 Y2Y의 대표이사로 삼았다.

그렇게 대표이사 한 명, 이사 직함을 단 매니저 한 명, 그리고 소속 연예인 윤이영 한 명으로 Y2Y는 구성되었다.

Y2Y의 사무실은 로튼 프룻츠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같은 층 빈 공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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