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437화
대찬도 그렇게 하려다가 거실로 나와 휴대폰을 켰다.
트위터에 들어가니, 윤이영이 멈칫했던 그 지점으로 바로 연결되었다.
‘전채원 때문에 신경 쓰여서 그랬나? 그럴 애가 아닌데.’
대찬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윤이영이 하려던 말을 관둔 까닭을 알아냈다.
전채원의 댓글 위아래로도 다른 사람이 적은 댓글들이 있었다.
-21세기 최고의 거품 조대찬ㅎㅎ 조만간 두고 봐라. 회사 돈 싸들고 미국으로 튀고 없을 걸. 이렇게 나대는 놈 치고 제대로 된 놈 본 적이 없음.
-이 거지같은 새끼 면상 좀 그만 봤으면 좋겠다. 결과물 나온 것도 없으면서 입만 나불나불.
-제발 좀 꺼지세요. ^^ 할 줄 아는 건 쇼밖에 없는 양아치님.
대찬은 그걸 보고 멍한 얼굴로 관자놀이를 긁었다.
물론 대개가 좋은 댓글이었고 저렇듯 가슴을 후비는 악성은 더러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고른 밭에 잡초 한두 포기가 눈에 더 잘 띄는 법이었다.
‘이영이 속이 많이 상했겠네.’
대찬은 쩝, 입맛을 다셨다.
대중에 노출되면 욕을 아예 안 먹고 살 수는 없었다.
덮어놓고 욕부터 하는 사람은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저런 댓글에 대찬은 기분이 상하면서도 적당히 흘려들었다.
그런데 윤이영은 그렇지 않았을 터.
당사자의 마음이 어떻건 간에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하필 또 전채원 댓글 위아래로 이 난리라.’
대찬은 쓴웃음을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윤이영의 씁쓸한 표정이 계속 대찬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찬은 윤이영이 깊이 잠든 방문을 지그시 바라봤다.
‘내일 맛있는 거나 사줘야겠네.’
그렇게 다짐하고 일어서려던 그의 뇌리에 무슨 생각이 스쳤다.
‘이영이는 이게 일상이었을 거 아냐.’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
순수한 사랑의 관심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그럴 수가 있는가.
근거 없는 비방과 악의가 가득한 비난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윤이영은 스타덤에 오른 그 순간부터 그 이유 없는 고난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고난은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대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명색이 윤이영의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 여태 그걸 몰랐다.
그 고난을 혼자 감당하도록 방치해두었다.
자기가 당하고 나서야 윤이영도 그랬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대찬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탄식했다.
‘이 미련한 새끼야.’
대찬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다 윤이영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보고 싶지 않았지만 봐야만 하는 의무감이 대찬을 감쌌다.
촬영 도중 잠깐 휴식.
그렇게 짧은 설명이 붙은, 대단할 것도 없는 사진에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주었다.
감사한 일이지만 역시 튀는 댓글들이 많았다.
-예쁜 척은 진짜 오지게 한다 ㅋㅋㅋ 그래도 눈가 주름은 못 숨기죠?
-얘는 진짜 예쁜지 모르겠다. 촌스럽기만 하고ㅋ 근데 어디서 계속 불러준다……. 왤까? 스폰 하나 제대로 문 듯 ㅎㅎ
-윤이영 소문 사실임? 조대찬은 사실 쇼윈도고 진또배기 애인은 따로 있다던데ㅋ
└조대찬이 진짜 애인이면 여태 결혼 안 하고 버티겠냐ㅋㅋㅋ
└ㅇㄱㄹㅇ ㅋㅋㅋ 진짜 주인님은 따로 있으니까 결혼 안 하고 있는 거지. 아니 못하는 거지 ㅎ
└각도기 잘 챙겨라. 그러다 고소 먹으면 어떡하려고 그럼?
└고소하라고 해~ 그럼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겠네.
-아~~ 윤이영 좀 그만 나오라고~~~ 보기 싫다고~~
-왈라비는 윤이영 거둬줄 돈으로 전채원 가슴이나 더 키워줘라.
휴대폰을 손에 쥔 대찬의 손이 덜덜 떨렸다.
물론 저런 악성댓글에는 윤이영을 위해 대신 싸워주는 팬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팬을 가장해 은근슬쩍 윤이영의 속을 더 긁는 댓글들도 등장했다.
중립인 척, 관심 없는 척 하면서도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운운하며 못된 비방을 지지하는 댓글들도 적지 않았다.
대찬의 가슴이 찌르르 아팠다.
숨이 가쁘게 쉬어졌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폐부를 찌르고 후비는 듯 아팠다.
대찬이 감당했던 악성댓글들과는 비난의 수위 자체가 달랐다.
대찬은 차마 더 보지 못하고 휴대폰 액정을 꺼버렸다.
웬만해선 건조한 상태를 유지하는 대찬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이런 짐을 윤이영은 몇 년째 혼자 감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찬은 스스로에게도 방조의 책임이 있다고 느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저 일상의 풍경이라 여기고 인식조차 못하고 있던 것들이 보였다.
윤이영의 화장대 위에 작은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었다.
대찬이 건성으로 물었을 때 비타민이라고 대답했던 것은 실은 신경안정제였다.
윤이영이 집 안에 1년 365일, 하루 24시간 피워놓는 디퓨저를 그렇게 집착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가 잘 때마다 꼭 바르는, 대찬이 냄새가 안 좋다고 안 바르면 안 되냐고 하는 데도 기어코 고집하던 아로마 오일도 아마 같은 이유일 터.
대찬은 머리를 싸쥐었다.
그는 동이 트도록 잠이 들지 못했다.
윤이영은 6시가 되기 전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부스스 뜬 눈을 비비며 천천히 방에서 걸어 나왔다.
“뭐야, 거실에서 잤어?”
“어? 어…….”
“잔 눈이 아닌데? 밤 샜어?”
대찬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좀 잤어.”
“좀 자긴. 내가 오빠를 몰라? 오빠 다크서클은 나한테 해시계랑 똑같아.”
대찬은 피식 웃었다.
“뭐? 해시계?”
“그래. 다크서클 길이를 보면 딱 알아. 오빠가 몇 시간 잤는지. 이 정도 그림자는 그냥 날밤 꼴딱 샜다는 거거든.”
“귀신은 속여도 윤이영이는 못 속이겠다.”
윤이영은 대찬의 옆에 바싹 달라붙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별 일 아니야. 내가 그렇잖아. 사소한 것도 신경 쓰여서 종일 끙끙 앓기도 하고.”
“그렇게 어물쩍 넘기지 말고 뭔지 얘기해.”
“별 거 아니라니깐.”
“말 안 해주면 나 내내 신경 쓰인다고. 내가 그랬으면 좋겠어? 별 것도 아닌데 왜 말을 못해?”
이렇게 되니 대찬도 마냥 우물거리고만 있을 순 없었다.
대찬은 고민했다.
사실대로 털어놓을지, 아니면 그럴듯한 거짓으로 둘러댈지.
어줍잖은 동정이나 관심을 보였다가 그녀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 때문에 대찬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대충 둘러댄다고 해서 대충 넘어갈 윤이영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짐을 함께 나눠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대찬은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했다.
“내가 넘겨짚는 걸 수도 있고, 오버하는 거일 수도 있는데. 그리고 오지랖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말해도 보통 오빠 촉이 맞아떨어졌지.”
“그… 화장대 위에 약통 말이야.”
윤이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도 맞았네, 촉.”
“내가 생각하는 이유 말고 다른 게 있을까?”
윤이영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암튼 이 여우 앞에서는 손톱만 한 힌트도 주면 안 된다니까. 오빠가 생각하는 이유가 그거 맞지, 악플.”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이영은 부스스한 머리를 뒤로 질끈 묶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직업병 같은 거야. 관심을 박스로 먹어야 사는 직업인데 개중 썩은 거 몇 개 들어있다고 안 먹을 순 없으니까.”
“그래도 너도 이제 뜰 만큼 떴고, 단호할 때는 단호할 필요가 있어.”
윤이영은 쓸쓸하게 웃었다.
“그렇긴 하지.”
“사실 네가 수고할 일도 아니야. 소속사가 할 일이지. 네가 번 돈을 왜 그쪽에 뭉텅 잘라 내주는데. 이런 일 처리하라고 내주는 거 아니야.”
“오빠 애인도 이제 한물간 거지.”
“천하의 윤이영이 한물가긴 뭘 한물가?”
“나이도 나이고, 공개연애 한 지도 한참이라 만인의 연인 같은 타이틀도 가당찮고. 또 좋은 대체재도 생겼잖아?”
“전채원?”
윤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잘나봤자 어린 녀석은 못 당한다니까.”
“그럼 한철 쪽 잘 빨아먹었으니 나 몰라라 하시겠다?”
“나쁘게 말하면 그런 거고, 좋게 말하면 선택과 집중.”
“선택과 집중은 돈이나 물건한테 쓰는 말이지 사람한테 쓰는 말은 아니지.”
대찬의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불쾌감이 들어 있었다.
윤이영의 소속사인 왈라비 엔터에 대찬은 줄곧 좋은 감정이 아니었다.
윤이영과 맺어지게 된 계기인 원두표와의 일 때도 왈라비 엔터는 이름값을 하려는지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왈라비는 캥거루의 작은 종을 일컫는 말이었다.
‘왈라비는 귀엽기라도 하지. 귀엽지도 않은 게.’
대찬의 얼굴에 심술이 덕지덕지 붙었다.
세간의 평가대로 윤이영이라는 로또를 맞았으면서도 그만 한 역할을 못해준다는 게 대찬의 생각이었다.
대찬이 열을 내는 와중에도 정작 당사자인 윤이영은 무던했다.
“됐어. 이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이제는 무덤덤해.”
“그런 거짓말, 약이라도 안 먹어야 믿어주든 말든 하지.”
윤이영은 대찬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래도 내 남자가 이렇게 대신 화내주니까 기분은 좀 좋다?”
“속도 좋다.”
“나도 점점 오빠 닮아가나 봐. 나 원래 굳이 따지면 예민한 성격이었잖아.”
대찬은 안쓰럽게 웃었다.
“네가 나서기 뭐 하면 내가 대신 왈라비 쪽에 푸쉬 좀 해?”
“하면 내가 했지. 오빠는 제3자잖아, 엄연히.”
“근데 안 할 거잖아.”
윤이영은 배시시 웃기만 했다.
대찬은 영 못마땅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이것만 딱 말해. 왈라비 쪽에서 나서줬음 좋겠어, 안 좋겠어.”
“말이라도 한 마디 시원하게 거들어줬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대찬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바로 외출 준비를 했다.
“나 나갔다 올게.”
“잠깐만……!”
윤이영은 대찬을 말리려다가 도로 주저앉았다.
‘한 번쯤은 기대도 괜찮겠지.’
그녀는 구두를 구겨 신고 밖으로 나가는 대찬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대찬은 차에 올라타 바로 왈라비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첫 번째 전화는 받지 않던 그는 대찬이 두 번째 전화를 거니 그제야 받았다.
“조 대표님, 웬일로 전화를 다.”
“뵙고 싶은데, 뵐 수 있을까요.”
“사무실로 오시렵니까. 외출하기엔 일이 바빠서요.”
“가죠.”
대찬은 전화를 끊고 거칠게 핸즈프리를 집어던졌다.
왈라비 엔터의 사무실은 몇 년 전과 달리 환골탈태했다.
윤이영이 열심히 벌어다 준 돈, 그리고 전채원이 스타덤에 오르면서 쓸어 담은 돈으로 서울 중심가의 빌딩 2개 층을 통으로 사용했다.
대찬은 안내데스크의 직원에게 꾸벅 목례를 하고 제지 없이 왈라비 엔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얼굴이 도장이었다.
왈라비 엔터의 대표는 제대로 태가 나는 정장을 입고 대찬을 맞이했다.
“조 대표님, 오랜만이네요.”
“네, 잘 지내셨습니까. 그간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피차 바쁜 상황에 그게 결례가 되겠습니까.”
대찬은 대표실 벽에 걸린 액자를 흘끗 보고 왈라비 사장에게 말했다.
“전채원 씨가 대단하긴 하군요. 작년만 하더라도 저기 윤이영 사진이 있었던 거 같은데.”
“세월은 흐르고, 트렌드도 흐르고. 내내 윤이영이 윤이영일 수 있겠습니까, 하하. 불쾌하세요?”
“불쾌는요. 대표실 인테리어는 전적으로 대표님 소관인데.”
왈라비 엔터 사장은 빙긋 웃으며 차를 후루룩 마셨다.
그간 회사가 큰 만큼 왈라비 사장의 자신감도 커진 듯했다.
대찬을 대할 때 은근히 어려워하던 그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대찬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당당했다.
“그래, 조 대표님도 공사가 다망하신데 굳이 여기까지 오신 걸 보면 용건이 있는 듯한데.”
“아, 예. 있습니다.”
“이영이가 민원 넣던가요? 자길 좀 홀대하는 거 같으니 가서 한 마디 하고 오라고.”
대찬은 미소를 지었다.
“아뇨, 이영이가 그럴 애가 아니잖아요.”
“그렇죠. 대범하죠.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지도 않고. 훌륭한 배우예요.”
대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개인적으로 부탁이 좀 있어서 뵙자고 했습니다.”
“부탁이요.”
“네, 부탁.”
“별 일이 다 있네요. 아쉬울 거 하나 없는 조 대표님이 변변한 거 하나 없는 저한테 웬 부탁을.”
대찬은 에두르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영이가 악플 때문에 많이 힘들어해요.”
“…악플이요?”
“네.”
그러자 왈라비 사장의 얼굴에는 언뜻 웃음마저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