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435화
부장은 자기가 응대하겠다고 나섰지만, 그 소식을 우연히 접한 조직위 사무총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조대찬하고 맞다이 뜰 체급이 돼?”
“초, 총장님.”
“당신 주제를 알아야지. 전화 이리 내. 내가 응대하겠어.”
사무총장은 대찬이 정재계에서 방귀 좀 뀐다 하는 이들과 교분이 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런 기회에 말길이라도 터두고 쿵짝이 잘 맞으면 호형호제하는 계기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런 기회를 살릴 주제조차 못 되는 부장이 가로채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직접 로튼 프룻츠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조직위 사무총장입니다.”
“아이고, 이렇게 높으신 분이 직접 전화를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대찬의 너스레에 사무총장의 광대가 위로 솟았다.
“높으신 분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조 대표님 앞에서 위세 떨 주제가 못 되지요, 저는.”
“그런 말씀 마십시오. 듣기 민망합니다.”
“후원 관련해서 문의를 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예. 저희가 생산하는 비도축육은 재래육에 비해 상당히 장점이 많습니다.”
“매스컴을 통해 저도 몇 글자 주워듣긴 했습니다마는.”
“그래서 선수촌 식단에 식자재로 납품을 하려고 입찰을 신청했는데, 보기 좋게 떨어져 버렸습니다.”
“허허, 그 양반들 장사할 줄 모르는군요. 식단을 전면 비도축육으로 꾸리라는 것도 아니고, 일부만 그렇게 하라는 취지 아니었습니까? 나름 얘깃거리도 만들고 유망한 회사 면도 살려주고 서로 좋은 일인데.”
대찬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미 끝난 마당에 이러쿵저러쿵해서 뭐 하겠습니까. 그래서 아예 무상으로 비도축육을 내놓을까 합니다.”
“그거 훌륭한 결단이십니다. 로튼 프룻츠가 홍보 효과를 누리기도 하겠습니다마는 저희도 신선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죠.”
“맞습니다.”
“재래육에 비해 분명히 탁월한 장점을 지니는 비도축육을 선수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는 이점도 누리고 말입니다. 후원이니 그것도 공짜로.”
“사무총장님과는 말씀이 수월하게 통하니 감사한 마음입니다.”
“도리어 강원도에서 귀사의 제안을 뿌리친 게 제 입장에선 고마울 지경입니다.”
대찬은 웃음을 머금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거듭 고맙습니다.”
“저희가 도리어 고맙지요. 그렇지 않아도 세금 낭비 없이 알뜰하게 올림픽을 치르라는 윗선의 지시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내려옵니다. 모든 후원사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럼 저희한테 공식 서포터 자격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실무협의를 거쳐야 확답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무총장으로서 견해를 밝히자면, 매우 긍정적입니다.”
“감사합니다. 곧 실무팀을 파견해서 조직위 측과 협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조 대표님.”
“별 말씀을요.”
사무총장은 대찬에게 매우 협조적으로 행동했다.
대찬은 로튼 프룻츠를 평창올림픽 공식 서포터 업체로 올려놓고자 했다.
이런 큰 대회의 스폰서 기업들에도 등급이 있었다.
월드와이드 파트너, 로컬 파트너, 파트너, 공급사, 서포터로 등급이 세분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등급을 결정하는 데 물론 기업의 위상도 고려되었지만, 후원 액수가 가장 큰 잣대로 작동했다.
국내외에 올림픽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자격이 있는 월드와이드 파트너는 무려 천억 원에 달하는 액수를 내놓아야만 했다.
국내에 한정되는 로컬 파트너도 오백 억이었다.
두 번째로 위상이 낮은 공급사 자격도 최소 25억 원 이상의 후원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대찬은 25억 원 이하의 후원금으로도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공식 서포터를 원했다.
실무협의는 형식적으로 진행되었다.
대찬은 진위생을 필두로 직원 세 명을 조직위 사무실로 보냈다.
사무총장의 분명한 의지를 확인한 조직위 측은 선선히 로튼 프룻츠와 공식 서포터 협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대찬과 사무총장은 잠깐의 대담을 나누고 바로 협약서에 서명을 하고 악수를 나눴다.
사무총장은 대찬과 악수를 하면서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석우룡 의원님과 친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저까짓 게 무슨……. 제가 술자리에 몇 번 모신 게 답니다.”
“하하, 혹시 다음에 그런 좋은 자리가 있거든 저도 껴주시겠습니까? 염치없지만…….”
대찬은 그를 흘끗 보며 웃기만 했다.
“하하.”
“하하…….”
상대가 웃기만 하니 사무총장도 웃기만 했다.
대찬은 선수촌 납품 입찰에 실패하자 바로 조직위와 접촉해서 공식 서포터 자격으로 비도축육을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이 방법은 금전적으로는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었다.
돈을 받고 팔 비도축육을 공짜로 내놓는 셈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선수촌 납품이 결정됐어도 원가 이하로 내놓기로 했으니, 장부를 따져보면 큰 차이는 아니었다.
도리어 올림픽 마크를 달고 홍보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 비용보다는 이익이 컸다.
평창올림픽의 공식 서포터가 됐다는 건, 올림픽이 비도축육이 무해한 동시에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권위는 식약처의 인증보다는 못하지만, 파급력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나았다.
그래도 피 같은 돈이 나가는 건 사실이었다.
대찬은 단물이 빠지고 빠질 때까지 이 건을 활용하고 싶었다.
그러자 어느새 진위생과 사내커플로 발전한 고미수가 제안했다.
“대표님, 트위터 계정 하나 만드시는 게 어때요?”
“트위터?”
“네, 솔직히 우리 회사 유명세보다는 대표님 유명세가 더 크거든요.”
“아직은 그렇지.”
“그러니 우리 회사가 올림픽의 공식 서포터라는 걸 대표님 트위터로 밝히는 게 가장 확실한 홍보 방법이겠죠.”
그러자 부창부수, 진위생이 거들고 나섰다.
“고미수 씨 말이 맞아요. 대표실에서 자판만 잠깐 두드리면 기삿거리에 목마른 기자들이 옳다구나 기사로 써줄 걸요?”
그러나 대찬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유명하고 나이 많은 축구 감독님이 그러셨거든.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고.”
“그거야 요란한 빈 수레한테나 맞는 말이죠. 입 다물고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지만, 대표님은 입 벌리면 바로 짱 먹는 분이시잖아요.”
“대표한테 짱 먹는다가 뭐야.”
고미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대표님은 오히려 입 다물고 가만히 계시는 게 손해라 이 말씀이에요.”
“그런가. 사장이라고 일부러 비행기 태워주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세요?”
“…그건 아니지만.”
“빨리 만드세요. 설마 계정 하나 못 만드셔 갖고 저희가 도와드려야 하는 건 아니죠?”
“누굴 영감님취급 하고 있어!”
고미수는 흐흐 웃었다.
“그럼 만들어서 트윗으로 바로 띄우세요. 홍보팀한테는 기자들한테 슬쩍 언질을 주라고 할게요.”
어느새 대찬의 트위터 개설이 기정사실이 되었다.
대찬을 구워삶는 임무를 완수한 고미수는 바로 진위생을 데리고 대표실을 나섰다.
대찬은 별 수 없이 쩝, 입맛을 다시고 트위터 계정을 개설했다.
조대찬 @rfruitsceo
로튼 프룻츠 대표·필래 비바체 사외이사·올축사 공동상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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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찬 @rfruitsceo·1s
안녕하세요. 로튼 프룻츠 대표 조대찬입니다. 로튼 프룻츠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서포터가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첫 트윗으로 알려드립니다.
대찬이 첫 번째 트윗을 올리자마자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찐 조대찬인가요?
└조대찬 @rfruitsceo·네, 찐입니다 ㅎㅎ
그러자 바로 팔로워 수가 0에서 1로 변했다.
이어 소식을 들은 무수한 사람들이 대찬의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잘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윤이영 @yoon20·말조심 하시면서 많은 사랑 받으세요.
-석우룡(이 한 몸 흥읍시민을 위해!) @rightdragon·환영합니다! 소통과 공감^^
-Mike Hatch @senatorhatch·슈퍼스타 등장!
-Fukuhiro Cho @real_cho·올림픽 공식 서포터! 와우.
-필래 서원웅 @feelaeseo·필래는 올림픽 로컬파트너ㅋㅋ
팔로워 숫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대찬의 첫 번째 트윗에 댓글을 달고 리트윗을 한 인물들은 모두 엄청난 팔로워를 거느린 소위 셀럽이었다.
그들이 나서서 홍보를 해주니 기사가 나오기도 전에 팔로워 숫자가 급증했다.
첫 번째 트윗을 올린 지 3시간도 되지 않아 팔로워가 만 명을 돌파했다.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관심에 대찬은 눈이 핑핑 돌아갈 지경이었다.
그 어떤 홍보수단보다도 강력했다.
트위터 계정을 만들라던 고미수의 제안은 일단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고미수는 콧대가 높아져서 어깨를 으쓱했다.
“거 봐요. 제 말 듣길 잘하셨죠?”
“그렇네요. 고마워요, 고미수 씨.”
“앞으로 트윗 올리기 전에는 직원들하고 사전에 공유해서 올릴지 말지 결정하세요. 그거, 잘못 다루면 엄청 위험하니까요.”
“잘 알지. 손가락 잘못 놀렸다가 한 방에 훅 간 사람들.”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로튼 프룻츠가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서포터가 됐다는 소식은, 기술에 어두운 축산업계의 어른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한우 위원장은 펄쩍 뛰며 대찬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건 반칙 아닙니까!”
“위원장님, 그게 무슨 말씀…….”
“입찰에 떨어졌다고 이런 식으로 꼼수를 써요?”
“꼼수라뇨. 그럼 저희는 올림픽 특수를 아예 누리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최소한 사전에 상의는 하셨어야지.”
“저희 회사의 자체적인 결정을 왜 위원장님과 공유해야 합니까. 올림픽 공식 서포터에는 횡성한우도 포함돼 있습니다. 횡성한우는 되고, 저희는 안 됩니까? 그 이유가 뭡니까?”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올 겁니까?”
“위원장님이야말로 자꾸 이렇게 나오지 마시죠. 월권입니다.”
“월권이라니!”
“위원장님은 저와 올축사라는 느슨한 울타리로 연결된 관계일 뿐입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조 대표, 자꾸 이러면 나도 로튼 프룻츠의 상황을 더 봐줄 이유가 없어요.”
“봐주기 싫으면 더 봐주지 마십시오.”
대찬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뚝 끊었다.
그는 거칠게 내려놓은 수화기를 바라보며 툴툴거렸다.
“도대체 뭘 봐주고 있단 소리야?”
올축사의 존재이유는 오로지 비도축육의 법제화였다.
이미 법제화가 끝난 마당에 한우 위원장이 그에게 위해를 가할 패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즉, 저쪽에서 비신사적으로 나오는데도 대찬이 계속 신사적으로 대응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뜻이었다.
대찬의 거친 반응에도 한우 위원장은 어떤 수도 쓰지 못했다.
로튼 프룻츠는 올림픽 공식 서포터 자격을 얻음으로써 존재감을 한층 더 과시하고, 대중인지도를 높였다.
그날 이후, 대찬은 올축사 공동상임위원장에서 사퇴했다.
협력을 도모하지 않고 로튼 프룻츠의 앞길을 막으려고만 드는 데 대한 항의표시라는 게 명분이었다.
대찬은 진위생을 불러 말했다.
“진위생 씨.”
“네, 대표님.”
“앞으로 올축사 정기회의에는 진위생 씨가 참석하도록 하세요.”
그러자 진위생은 눈을 깜빡이며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제가 뭐라고 대표님을 대신합니까……?”
“진위생 씨가 뭐 어때서요.”
“저는 일개 과장급인데요.”
“그래요? 그럼 오늘부터 차장하세요.”
“…예?”
대찬은 뭘 그렇게 놀라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진위생 씨는 우리 회사 개국공신이나 다름없고, 지금까지 제 가까이서 수고했잖아요. 앞으로도 수고할 거고. 차장으로 올릴 때가 됐죠.”
“대표님.”
“차장급 정도 되면 올축사 영감들하고 어울리기에 부족하진 않을 거예요. 그래도 후달리면 그건 진위생 씨 개인 역량이 부족한 거지.”
진위생은 겸연쩍게 웃었다.
“제가 그 영감들 사이에서 제대로 기나 펼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그 정도로 개인 역량은 안 될 거 같은데…….”
“그래요? 그럼 회의 나가지 말고 계속 과장으로 있으세요.”
“아, 아님다. 할 수 있슴다.”
“적당히 영감님들 비위만 맞춰주다가 복귀하면 되는 거예요. 그 시간 동안 저한테서 해방도 되고 진위생 씨한테 나쁠 게 하나 없어요.”
“네, 그렇긴 하네요.”
그래도 여전히 영 찜찜한 기운이 남았는지, 진위생은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그건 진위생의 사정이었고 대찬은 자기 할 말을 다 한 상태였다.
“올축사 측에는 내가 문자로 통보해 놓을게요. 별도 절차 없이 다음 정기회의부터 참석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나가보세요.”
진위생은 멋쩍게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감사는 무슨. 진작 승진시켰어야 했는데 내가 여태 신경을 못 써줬어요.”
“헤헤…….”
대찬은 싱겁게 웃으면서 손짓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