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433화
방문객들도 웅성거리며 그녀의 말에 동요되기 시작했다.
하긴, 구워놓으면 똑같은 고깃덩이다.
일반 고기를 갖다가 케밥을 만들어놓고 배양육이라고 사기를 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그리고 듣도 보도 못한 업체가 떠들어대는 말이니 더 신뢰하기 어렵다.
대찬은 그들의 동요에 가만히 미소만 띠었다.
“맥과이어 씨, 저게 배양육이라면 저한테 쏟아내셨던 근거 없는 비방과 인신공격은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근거 없는 비방이 아닌데요. 말 돌리지 말고 빨리 증거부터 내놓는 게 순서일 겁니다.”
“먼저 약속하시죠. 제가 증명해내면, 맥과이어 씨는 당신의 잘난 블로그에 우리 광고를 좀 해주셔야겠는데요.”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예요. 그러니 말 더 길게 할 것도 없어요.”
“좋습니다.”
여전히 우스꽝스러운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던 은오영 소장은 눈을 깜빡이며 대찬에게 속닥거렸다.
“이 자리에서 증명을 어떻게 해요?”
“어? 나는 소장님한테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러자 은오영 소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검은 망토에 대비되어 더 창백하게 보였다.
그러자 대찬은 흐흐 웃었다.
“농담이에요.”
대찬은 케밥을 향해 걸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대찬의 걸음을 따라 움직였다.
대찬은 케밥을 지탱하는 원형 판을 붙잡고 휙 돌렸다.
그러자 익지 않은 생고기 상태의 케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꺼번에 익히면 너무 익어 쓰지 못하게 될까봐, 앞면은 부지런히 익히고 뒷면은 게으르게 익히도록 된 장치였다.
대찬은 물티슈로 쓱쓱 자기 손을 닦고는 케밥에 가까이 다가갔다.
뭘 하려는 거지.
방문객들이 의아해하는 순간.
대찬은 양손으로 케밥 고기를 훑듯이 긁었다.
‘아이고, 저 아까운 걸!’
은오영 소장은 아찔한 듯 어깨를 움츠렸다.
익지 않은 비도축육이 대찬의 양손 가득 들렸다.
줄리 맥과이어는 미간을 찌푸렸다.
대찬은 그걸 든 채로 방문객들을 향해 몸을 틀었다.
“일반 고기와 배양육의 가장 큰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
“일반 고기는 지방과 혈액이 포함되어 있는 반면에, 저희가 만들어낸 배양육에는 이게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근육세포로 이뤄졌다는 겁니다.”
줄리 맥과이어는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그런데요?”
“이걸 쥐어짠다고 해봅시다. 이게 일반 고기라면, 핏물이 주르륵 흘러야겠죠.”
“…그러겠죠.”
대찬은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대찬은 양손 가득 들린 배양육을 꽉 움켜쥐었다.
웃으며 고기를 쥐어짜는 모습이 괴이했다.
인파에 섞인 기자들은 이 순간을 포착해 마구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줄리 맥과이어의 등 뒤에서 플래시가 연거푸 터졌다.
대찬은 있는 힘껏 쥐어짰지만 핏물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대찬은 그걸 탁자 위에 올려놓고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미처 떨어지지 않은 몇 점의 고기 조각을 제외하고는 깨끗했다.
대찬은 웃으면서 말했다.
“제 손에 피가 묻어 있나요?”
“…….”
말 없는 줄리 맥과이어를 대신해 대찬은 왕핑웨이 쪽으로 몸을 틀었다.
“피가 묻어있습니까?”
“아니요! 안 묻어있습니다!”
왕핑웨이는 부러 큰 목소리로 외쳤다.
대찬은 줄리 맥과이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 묻어 있다는군요. 맥과이어 씨는 혹시 이의가 있으십니까?”
“…없어요.”
“네, 그럼 이건 배양육이네요.”
“그렇겠죠.”
“사과하실래요?”
줄리 맥과이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하, 한숨을 쉬고 대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고 세상에서 가장 쿨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잘못 짚었네요.”
“맥과이어 씨의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블로그에서 확실히 광고해주시길 바랄게요.”
“…그러죠.”
천하의 줄리 맥과이어가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그것만큼 확실한 인증서는 없었다.
대찬은 고기를 만졌던 손을 닦으며 방문객들에게 말했다.
“여러분께 잘 익은 케밥 하나씩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드셔보십시오. 가축을 죽이지 않고 얻어낸 고기의 풍미가 어떤지 느껴보십시오.”
대찬은 그렇게 말하고 터키인 요리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터키인 요리사는 푸근한 미소로 응답하고는, 칼을 들어 거대한 집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다르샨 싱이 방문객들을 향해 외쳤다.
“케밥을 드실 분들은 줄을 서주십시오. 양은 넉넉하니 서두르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자 방문객들은 말 잘 듣는 유치원생처럼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인심도 좋게 큼지막하게 썰어내는 케밥을 보고, 방문객들은 줄을 서면서 수군거렸다.
“그린블러드는 참새도 쪼아 먹을 만큼만 줬는데, 여기는 아예 한 끼 식사를 내주네.”
“그러게요. 그린블러드보다 한참 앞서있다고 한 게 허언은 아닌가 봐요.”
비도축육으로 만든 아다나 케밥은 얇게 구운 빵과 요거트 소스, 그리고 생양파, 양상추 등의 채소와 함께 제공되었다.
그건 그들의 말마따나 괜찮은 한 끼 식사였다.
출출했던 그들은 단 몇 입 만에 케밥 한 개를 금방 먹어 치웠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사이, 언론인들은 케밥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방문객들이 줄을 서는 동안 그들은 대찬에게로 달려들었다.
“조 대표님! 저랑 인터뷰 좀 하시죠!”
“식품 매거진 사베르입니다! 잠깐 인터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블룸버그에서 나왔습니다. 조 대표님, 시간 좀 내주시죠.”
“ONB예요! 한국 방송이에요! 조 대표님이랑 친한 최재한 기자님 있는 방송국이에요! 우리랑 먼저 해요!”
갑자기 몰려드는 인터뷰 요청에 대찬은 잠깐 당혹스러워 하다가, 이내 교통정리에 들어갔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요청에 응해드릴 테니 천천히 하십시오. 바쁘신 분들은 먼저 다른 곳에 들렀다 오셔도 됩니다.”
줄리 맥과이어도 뚱한 표정으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글을 올리려면 인터뷰를 해야겠죠.”
“물론입니다, 맥과이어 씨.”
“줄리라고 해요.”
“그래요, 줄리.”
대찬은 웃음을 띠었다.
그 다음날.
아누가 2017에 취재진을 파견했던 모든 매체는 로튼 프룻츠에 관한 기사, 그리고 대찬과의 인터뷰를 제법 큰 비중을 할애하여 실었다.
그들 대부분의 언론사는 대표 사진으로 양손 가득 고기를 움켜쥐고 해괴한 웃음을 짓는 대찬의 모습을 채택했다.
대찬은 공식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고 온갖 폼을 잡아가며 잘생긴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그런 사진은 몇 군데 실리지 않았다.
“무슨 조커처럼 나온 사진을 죄다 실어놨어.”
대찬은 못내 불만이었지만 그게 가장 파급력 있는 사진이기는 했다.
“이래도 진짜 고기로 보이니?” 줄리 맥과이어, 한 방 제대로 맞았다. –뉴욕타임즈
식량혁명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한국, 아누가 2017에서 목격하다. -블룸버그 통신
배양육, 새로운 바람은 동쪽에서…로튼 프룻츠 집중 취재기 –가디언
韓 60달러 vs 日·米 275달러…배양육 패권, 한국으로 넘어가나? -산케이신문
그린블러드가 여유로웠던 이유, 왜? 멍청하고 오만하니까! -데일리 메일
공개적으로 굴욕당한 줄리 맥과이어의 앙다문 입술! 섹시함 혹은 멍청함 -더 선
패기 혹은 ‘똘끼’, 국제박람회장에서 보인 조대찬 대표의 진면목…‘앵벌이’부터 ‘맨손 케밥’까지 –극동일보
아누가 2017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대찬은 한국으로 돌아갈 짐을 쌌다.
귀국편의 짐은 상당히 가벼워져 있었다.
200킬로에 달하는 비도축육을 현지에서 모두 소진한 덕택이었다.
대찬은 백민하 사장, 왕핑웨이와 함께 귀국 전날 한 레스토랑에서 뒤풀이를 겸한 식사 자리를 가졌다.
물론 그 레스토랑은 대찬을 위해 거대한 케밥을 만들어준 식당이었다.
백민하 사장은 건배를 하고 말했다.
“아주 대단한 수확이었어요, 조 대표.”
“낙제는 면한 것 같아 다행입니다.”
진위생은 왕핑웨이의 옆에 붙어 열심히 한국어를 중국어로 통역해주었다.
덕분에 입에 잘 안 붙는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왕핑웨이는 픽 웃으며 대찬에게 쏘아붙였다.
“낙제는 면했다니, 조 대표는 다 좋은데 겸손이 재수 없을 정도로 심해요.”
그 말을 진위생이 거칠게 통역했다.
“아주 재수 똥이랍니다.”
기분 좋은 날에 대찬은 여유롭게 웃어넘겼다.
“두 분이 도와주신 덕분에 큰 고비를 넘겼습니다.”
“우리 덕분이겠어요? 인사치레를 하려면 우리 조카들한테 하셔야지.”
대찬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손님들이 아주 차고 넘쳤습니다. 조카님들의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조 대표가 안 잊어도 쟤들은 금방 까먹어버릴 거예요. 그냥 입에 사탕 하나씩만 물려주기나 해요.”
“사탕 갖고 될 리가요. 백 사장님은 아직 조카님들을 잘 모르시네요.”
“잘 모르다니?”
“건 당 2만 원, 그것도 두당으로 쳐서 뜯어간 참입니다. 아마 커서 뭐가 될진 몰라도 대성할 겁니다.”
“어머나, 애들이 벌써 그렇게 발칙해졌어요?”
백민하 사장은 호호 웃었다.
왕핑웨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중국에 진출하려면 현지 법인과 손을 잡아야 하는 거, 알고 계시죠? 그날이 오면 꼭 우리 정봉무역을 택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무렴요. 우리 왕총 만한 파트너가 있으려고요.”
“하오, 하오.”
왕핑웨이는 크게 흡족해했다.
백민하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여러 언론에 대서특필 됐더라고요.”
“1면 장식한 것도 아닌데 대서특필까지야…….”
“1면은 트럼프나 중범죄자의 몫인데 어딜 끼어들어요. 박람회에서 퍼포먼스 한 것 치고는 아주 최고로 대서특필된 거죠.”
“하하, 그건 그렇습니다.”
한껏 들뜬 은오영 소장이 말했다.
“이번에 우리 로튼 프룻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습니다.”
“네, 그건 아주 확실한 것 같네요.”
“지금쯤 그린블러드랑 코테츠 키친은 아주 울상이 돼서 짐을 싸고 있겠죠.”
대찬은 그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린블러드 포함해서, 경쟁사들 동향은 어때요?”
“상당히 당황하던 걸요. 네덜란드나 이스라엘 업체들도 그래요. 그린블러드만 목표로 삼고 연구에 매진했는데, 갑자기 터무니없는 허들이 새로 등장한 격이니까요.”
“이번 성과는 양날의 검이에요.”
다르샨 싱 전무는 대찬의 말을 잘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가치를 세계에 알렸지만, 그만큼 경쟁사들의 각오 역시 남달라지겠죠.”
“네, 우리도 더 격차를 벌리도록 노력해야 해요. 특히 소장님과 전무님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어요.”
은오영 소장도 사뭇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희도 더 열심히 칼을 갈겠습니다.”
“돌아가면 인력 확충부터 들어갈 계획이에요. 숨겨둔 쌈짓돈까지 탈탈 털어서 확실히 도움 될 만한 인재들로 공수해오겠습니다.”
그러자 은오영 소장은 휘휘 손을 내저었다.
“아, 그건 한국 돌아가면 말씀하시죠. 오늘은 더 이상 일 얘기 하고 싶지 않으니까.”
“아유, 알겠습니다. 상전이니 제가 알아 모셔야죠. 뭐 더 시켜드릴까요? 케밥 더 드려요?”
“케밥이라면 이제 냄새만 맡아도 질려요! 다른 거, 비싼 걸로 부탁해요.”
“예예, 그렇게 하죠.”
즐거운 식사 자리는 밤늦게까지 지속되었다.
대찬은 큰 성과를 거두고 귀국했다.
이제 로튼 프룻츠는 명실공히 자타공인 국내외에서 인정하는 비도축육 업계의 선봉이 되었다.
줄리 맥과이어는 대찬과 마찰은 있었지만 뒤끝은 없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과오를 포함한 가감 없는 사실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했다.
대찬은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내 감사를 표했다.
로튼 프룻츠 내부적으로도 상당히 고무되었다.
시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주식시장에 상장시켜야 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대찬은 그들과 기쁨을 함께하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붕 뜨는 것은 경계했다.
“너무 좋아할 거 없어요. 싸움은 끝난 게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에요. 우리가 헤실헤실 웃는 동안 절치부심한 그린블러드가 따라잡을지도 모릅니다.”
대찬의 말에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여 공감했다.
대찬은 다르샨 싱 전무와 은오영 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 분이 좀 더 힘내주세요. 연구 인력은 조만간 확충하겠습니다. 국내 인력도 추가 채용하고, 싱 전무님은 저랑 실리콘밸리로 가서 해외인력도 산지직송으로 공수해옵시다.”
“예, 언제든지 말씀만 해주십시오.”
대찬은 흐뭇하게 웃었다.
은오영 소장은 쩝,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