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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432화 (432/556)

난 할 수 있어 432화

“너희 덕분에 손님들이 많이 오셨다. 고맙다. 수고했어.”

그러자 헨젤이 대찬을 올려다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아저씨 왜 이렇게 배포가 작으세요?”

“으, 으응? 뭐라고?”

“한탕 더 뛰고 올게요. 이거 봉사 아닌 거 아시죠? 한 바퀴 돌 때마다 이만 원씩 받을게요. 참고로 두당이에요.”

“어? 어… 그래, 고맙다.”

헨젤은 똑 부러지게 대찬과 협상을 마치고, 동생 그레텔의 손을 잡고 ‘한탕’ 더 뛰러 박람회장의 중심으로 향했다.

다르샨 싱 전무는 혀를 내둘렀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대찬은 다르샨 싱 전무가 오해하지 않도록 즉시 정정해주었다.

“아니, 쟤네 부모가 다른 겁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대찬과 다르샨 싱 전무는 서로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아마 저 둘은 인생이 폭삭 망해도 굶어 죽진 않을 것이다.

대단한 품이 드는 건 아니더라도 미취학 아동의 노동력을 빌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속된 말로 앵벌이라는 비난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하게 자기 인건비를 챙기는 헨젤 덕분에 그런 부채의식의 일부를 덜어낼 수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박람회장 중심에서 후미진 로튼 프룻츠 부스까지 오는 데 딱 30분이 걸렸다.

그러니 시급으로 치면 4만 원.

그들은 고액 임금의 값을 아주 톡톡히 치렀다.

한 번씩 박람회장을 휩쓸고 올 때마다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다.

대찬은 헨젤과 그레텔의 뺨을 예뻐 죽겠다는 듯 매만졌다.

“고생했다.”

“더할 수도 있어요.”

“아니야. 이 정도면 충분해.”

“그럼 저희 이모한테 갈게요.”

“그래, 이모님한테도 꼭 고맙다고 말씀드려라.”

헨젤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로튼 프룻츠의 부스를 떠났다.

그들이 몰고 온 사람들은 이제 헨젤과 그레텔을 대신해서 말을 퍼트려주었다.

저 구석에도 볼 만한 것이 있더라.

한국에서 온 회사인데, 케밥이 문자 그대로 집채만 하더라.

방문객들은 모두 식품산업계 종사자들이었다.

혼자서 정보를 독식하지 않았다.

저들끼리 정보를 공유했다.

그러니 방문객들 사이에 로튼 프룻츠의 얘기가 금방 퍼져나갔다.

“우리 코테츠 키친은 단순히 고기를 많이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지 않을 겁니다. 일본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와규를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공급하여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도록… 으잉?”

그린블러드의 잭 머피의 뒤를 이어 다시 홍보에 열을 올리던 코테츠 키친 관계자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슬금슬금 사람들이 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현재 기술로 단가를 얼마까지 낮췄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렸으니 사람들이 흩어지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인파가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눈에 띄게 줄어갔다.

코테츠 키친 관계자는 자신의 스피치 능력이 부족한 까닭이라고 여겼는지, 목소리에 더 힘을 주었다.

“와규는! 일본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으려면 지갑에서 돈을 꺼낼 때 손을 벌벌 떨어야 할 정도로 값이 비싼데요! 우리 코테츠 키친은! 이런 와규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목소리를 키워도 소용이 없었다.

그린블러드와 코테츠 키친에 운집했던 인파들은 저들끼리 웅얼거리더니 하나 둘 자리를 떴다.

코테츠 키친 관계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떠나는 인파를 멍하니 바라봤다.

한바탕 연설을 마치고 부스 안에서 잠시 숨을 돌리던 잭 머피도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두부처럼 흔들리는 그의 턱살이 급박한 심정을 대변했다.

“Bloody hell! 이게 무슨 일이야!”

잭 머피는 자리를 박차고 코테츠 키친 관계자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이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저, 저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안 했는데 사람들이 왜 갑자기 사라지는 건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둘이 싸우는 동안 사람들이 더 빠르게 사라졌다.

잭 머피는 눈을 희번덕 뒤집으며 코테츠 키친 관계자의 명치를 손가락으로 쿡쿡 쑤셨다.

“모르면 가서 이유를 알아내야 할 거 아니야!”

“나는 당신 부하직원이 아니에요!”

“누가 당신이 내 부하라고 했어? 당신이 있을 때 발생한 일이니까 당신이 해결해야지!”

잭 머피의 합당한 지적에 코테츠 키친 관계자는 잔뜩 부은 얼굴로 부스를 박차고 나갔다.

미덥지 못한 그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잭 머피가 마이크를 쥐었을 때는, 그린블러드와 코테츠 키친의 부스 앞이 텅 비어있었다.

그 사람들은 모조리 로튼 프룻츠의 부스 앞에 장사진을 쳤다.

대찬은 웃음을 머금으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이 구석진 자리까지 와주신 여러분의 성실함에 감사드립니다.”

모여든 사람들은 가볍게 웃었다.

“저희는 한국에서 온 로튼 프룻츠입니다.”

“남쪽이에요, 북쪽이에요.”

뜬금없이 날아온 질문에 대찬은 웃으며 대답했다.

“남쪽입니다, 당연히. 저희는 비도축육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비도축육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수군댔다.

대찬이 만들어낸 말을 영어로 번역해서 말했으니, 당연히 그들에게는 생소했다.

대찬은 부연했다.

“세간에는 배양육으로 알려진 그것입니다. 아마 여러분 중 상당수는 그린블러드와 코테츠 키친의 부스를 방문하셨을 겁니다. 너무 목이 좋아서 방문하지 않더라도 오며 가며 보셨겠지요.”

방문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방문객들이 더 몰려들었다.

맨 뒷줄의 사람은 까치발을 들어야 할 정도.

커다란 크기에 식욕을 자극하는 엄청난 냄새, 시각과 촉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거대한 케밥의 덕택이었다.

그리고 헨젤과 그레텔의 덕택이었다.

모여든 인파에 대찬의 목소리에는 더 큰 자신감이 실렸다.

“그린블러드의 잭 머피 씨를 저도 잘 압니다. 그분이 오늘 대단한 선언을 하셨더라고요. 들으신 분 계신가요.”

대찬의 질문에 나서기 좋아하는 방문객이 손을 들었다.

대찬이 발언 기회를 주자 그가 말했다.

“배양육 생산단가를 300달러까지 낮췄다더군요.”

“맞습니다. 정확히는 275달러죠.”

잭 머피는 목청이 워낙 좋은 데다가 이목을 끌려고 뜸을 하도 들였다.

그러니 그린블러드의 부스를 굳이 유심히 보지 않은 사람들도 그 숫자를 알고 있었다.

대찬은 자신의 등 뒤에 우람하게 서 있는 거대한 집 모양 케밥을 흘끗 보고는 방문객들에게 말했다.

“저 케밥을 만드는 데 배양육 200킬로그램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자 방문객들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저 눈요깃거리로 갖다 놓은 줄 알았던 것이 실은 비도축육으로 만들어졌다니.

대찬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만일 그린블러드에서 생산한 배양육으로 저 케밥을 만들었다면, 55만 달러가 들어갔을 겁니다.”

“와우.”

어느새 인파 사이에 끼어든 왕핑웨이가 미국식 감탄사로 호응해주었다.

대찬은 그에게 눈짓으로 감사를 표하고 말을 이었다.

“우리 로튼 프룻츠는 자금이 그렇게 넉넉한 회사가 아닙니다. 저 거대한 케밥을 만들겠다고 55만 달러를 지출하겠다고 했으면 투자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죠.”

잔잔한 웃음.

“그럼 저희는 저 케밥을 만드는 데 얼마만큼의 돈이 들어갔을까요.”

그러자 왕핑웨이가 쿵짝을 맞춰주었다.

그린블러드가 55만 달러라고 했으니…….

“40만 달러!”

대찬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러자 역시 인파 사이에 스며든 백민하 사장이 외쳤다.

“30만 달러!”

“아닙니다.”

“25만 달러?”

“아닙니다.”

대찬이 거듭 부정하자 방문객들은 재미가 붙었다.

그들은 경매를 하듯이 숫자를 마구 발음했다.

경매와는 달리 자기 돈 나가는 것도 아니니 더 거리낄 게 없었다.

“23만!”

“아닙니다.”

“22만!”

“아닙니다.”

22만도 아니다.

22만 달러만 하더라도 이미 그린블러드의 55만하고는 몇 배나 줄어든 금액이었다.

방문객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0만?”

“아닙니다.”

대찬은 20만 달러의 선조차 가뿐히 무너뜨렸다.

표정으로만 봐도 한참은 더 내려가야 했다.

18만, 17만, 16만…….

한참 릴레이로 이어지던 숫자에서, 왕핑웨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12만!”

그러자 대찬은 웃으면서 그쪽을 가리켰다.

“맞습니다. 약간의 양파와 밀가루만 더해 만든 이 거대한 케밥을 만드는 데 12만 달러만 들어갔습니다.”

“워우.”

이제 저 워우는 왕핑웨이의 대찬을 응원하는 사적인 마음이 다분한 감탄사가 아니었다.

그린블러드, 그리고 그들의 기술을 탑재한 코테츠 키친이 당연히 업계 선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편견이 깨지면서 나오는 자연적인 감탄사였다.

대찬은 웃으며 곁들였다.

“물론 저 터키인 주방장의 인건비를 포함하면 12만 달러에 몇 백 달러 정도는 더 늘어나겠죠.”

방문객들은 웅성거렸다.

개중 한 사람은 절망했다.

줄리 맥과이어.

그녀는 식품산업 전반에 관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다.

단순한 블로그가 아니었다.

식품산업에 관한 기사라면 가장 탁월한 식견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유수의 언론에서도 식품산업에 관한 견해는 대개 그녀의 것을 인용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대찬 역시 줄리 맥과이어의 존재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줄리 맥과이어는 방금 전에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 그린블러드!’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던 참.

그 글이 가치를 지니려면 대찬의 저 주장이 새빨간 거짓이어야만 했다.

그녀는 손을 들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신뢰하기 어렵네요.”

줄리 맥과이어가 당차게 말했다.

사람들은 침묵한 채 그녀에게 충분한 발언권을 허용했다.

이 인파에서 가장 날카로운 식견을 지니고 있는 존재가 그녀였다.

구태여 자기들이 한두 마디 얹어봤자 그건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었다.

줄리 맥과이어의 지적이 대찬은 반가웠다.

“신뢰하기 어려우시겠죠. 지금까지 그린블러드가 업계의 선두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어왔으니까요.”

“막연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겁니다.”

“알고 있었다? 잘못 알고 계셨군요.”

대찬이 줄리 맥과이어의 성질을 긁자, 그녀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줄리 맥과이어의 목소리는 한층 격앙되었다.

“투입된 자본으로 보나 규모로 보나, 그린블러드가 선두라고 인지하는 건 지극히 상식적이에요.”

“저는 투입된 자본이나 규모에서 그린블러드의 우위에 있다고 말씀드린 적 없습니다. 저는 생산단가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셨듯, 생산단가는 저희가 그린블러드를 한참 앞서있죠.”

“그러니 그걸 신뢰할 수 없다는 겁니다.”

“왜 신뢰할 수 없죠?”

“투입된 자본도 적고, 규모도 작은데 어떻게 그린블러드보다 기술 진척에 있어 앞설 수 있다는 거죠?”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모든 일이 자본과 규모만으로 이뤄진다면 이 세상이 너무 팍팍하지 않겠습니까? 자본과 규모보다 더 중요한 건 회사 구성원의 실력과 노력입니다.”

“대개 그 실력은 자본에 비례하고, 노력의 총량은 규모에 비례하는 법이죠.”

“네, 맥과이어 씨의 그 편견을 저희가 깨뜨린 셈이군요. 보람 있네요.”

줄리 맥과이어는 대찬을 향해 눈총을 쐈다.

“저게 배양육이 아니라 일반 고기일 수도 있죠.”

“그럼 제가 지금 이 많은 사람들, 그것도 대개가 업계 종사자로 이뤄진 사람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까?”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죠.”

“하하…….”

“중국의 많은 업체들이 식품 산업에서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저지른 게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니까요.”

“아니 저 여자가!”

느닷없이 자기 조국이 공격당한 왕핑웨이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거칠게 반응했다.

“저는 직간접적인 경험을 갖고 의혹을 제기하는 거예요.”

줄리 맥과이어는 그쪽에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대찬은 웃으며 받아쳤다.

“아, 근거 없는 의혹 제기에 이어 이제는 인종차별까지 하시는군요.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저희 회사는 한국 회사지, 중국 회사가 아닙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뭐가 다르죠? 동양 회사들은 대개 그래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당신은 그 빌어먹을 오리엔탈리즘을 여태 붙들고 계시군요. 혹시 19세기에서 오셨습니까?”

“논점 흐리지 말고 저게 배양육이라는 증거를 내놔요.”

줄리 맥과이어는 대찬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확신했다.

적어도 식품산업에 관한 한, 자기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그녀였다.

즉, 그녀가 들어보지 못한 주장은 거짓일 확률이 농후하다고 믿었다.

그린블러드는 모든 기술을 맨 앞에서 이끄는 실리콘밸리에 세워진 회사다.

그리고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를 마치고 공수된 우수한 인력이 막대한 자금을 갖고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런 그린블러드와 호각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아득히 앞서나가는 회사가 있다?

말이 안 됐다.

줄리 맥과이어가 확신에 차서 대찬에게 날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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