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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431화 (431/556)

난 할 수 있어 431화

대찬은 동요하지 않고 할 일을 했다.

그는 진위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제 준비한 거, 부스로 옮겨놓으세요.”

“정말 괜찮을까요?”

“안 괜찮을 건 또 뭐래.”

대찬은 웃으면서 잔말 말고 빨리하라는 손짓을 했다.

진위생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옮겼다.

대찬은 그린블러드와 코테츠 키친의 부스 앞으로 향했다.

인파가 워낙 많았다.

그 틈바구니에 섞이니 대찬의 존재는 보이지도 않았다.

어제는 코테츠 키친의 일본인 직원이 열심히 약을 팔더니, 오늘은 미국 그린블러드 본사에서 사람이 나왔다.

대찬도 잘 아는, 삼겹 턱의 잭 머피였다.

그는 회사의 투자 담당답게, 언변에 막힘이 없었다.

“그린블러드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았습니다. 신은 짐승을 죽여 고기를 취하라고 했지만, 우리는 짐승을 죽이지 않고도 고기를 취하는 법을 알아냈습니다.”

잭 머피의 목소리는 울림통이 큰 만큼 크게 울렸다.

주변 부스에서 열심히 세일즈를 하는 타 업체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정도였다.

“이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값싸고 무해한 고기를 섭취하도록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우리의 성과를 공개하겠습니다.”

최초 공개만큼 기자들이 좋아하는 단어가 있을까.

모인 사람들은 모두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찬 역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업계는 상대평가다.

아무리 로튼 프룻츠가 대단한 성취를 거뒀다 하더라도, 그린블러드가 한 발짝이라도 앞서있다면 그 성취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린블러드는 스크린을 띄웠다.

침묵으로 한껏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잭 머피는 웃으면서 말했다.

“저희 그린블러드는 현재, 가축을 죽이지 않고 고기 100그램을 생산하는데…….”

잭 머피는 의도적으로 뒤끝을 흐렸다.

대찬은 삐딱하게 팔짱을 끼고 잭 머피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스크린에 띄운 화면에 숫자가 나타났다.

화면에 나타난 숫자는 $1.0M.

백만 달러라는 뜻이었다.

그 숫자는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음과 함께 빠르게 줄어들었다.

오십만 달러.

십만 달러.

만 달러.

오천 달러.

숫자가 내려갈수록 대찬은 속으로 그만, 그만을 주문처럼 외웠다.

마구 떨어지던 숫자는 점점 그 속도가 더뎌졌다.

삼천 달러.

이천 달러.

천 달러.

오백 달러.

‘이쯤이면 됐다. 그만하자.’

대찬은 침을 꼴깍 삼켰다.

2017년 상반기 로튼 프룻츠의 비도축육 생산단가는 100그램에 7만 원 가량이었다.

2016년 말 20만 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획기적으로 감축되었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기하급수적이었다.

그렇기에 그린블러드와 로튼 프룻츠가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하려면, 오백 달러 선에서 멈춰주는 게 좋았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화면의 숫자는 오백 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대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백.

“삼백은 안 돼.”

삼백.

“이백은 진짜 안 돼.”

숫자가 떨어질 때마다 중얼거리는 대찬을 주변의 사람들이 흘끗거리면서 봤다.

“안 된다. 이백은 안 된다. 제발.”

대찬의 주문이 통했는지 삼백에서 떨어지던 숫자는 다행히 이백 선 아래로 주저앉지는 않았다.

$275.

숫자는 275에 멈췄다.

대찬은 최악은 면했다는 기분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75달러는 대략 30만 원 정도.

로튼 프룻츠의 7만 원에 비하면 4배가 넘었다.

물론 기술의 개발속도를 생각하면다면 불과 몇 개월 차이였다.

그럼에도 로튼 프룻츠는 일단 단가 면에서는 그린블러드에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되었다.

불과 몇 개월 차이라는 것은 대찬처럼 이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만 익히 알고 있었다.

대중에게는 30만 원과 7만 원의 차이는 현격해 보일 터였다.

대찬은 일말의 불안감과 안도를 동시에 지니고 부스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린블러드 부스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대찬의 뒤통수로 잭 머피의 꽥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백만 달러에 달하던 단가를 현재 275달러까지 낮췄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단가는 낮아지고 있습니다. 기대하십시오! 우리는 혁명을 이뤄낼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며 대찬은 피식 웃었다.

대찬이 부스로 돌아왔을 때, 로튼 프룻츠 부스의 풍경은 전날과 사뭇, 아니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거대한 물체가 안 그래도 좁은 부스를 내무반에 퍼질러진 말년 병장처럼 차지하고 있었다.

대찬은 그걸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진위생은 떨떠름하게 웃으며 대찬에게 말했다.

“이러면 되는 겁니까?”

“아주 잘했어요.”

로튼 프룻츠에 들어선 거대한 물체는 케밥이었다.

그냥 케밥이 아니었다.

로튼 프룻츠가 가져온 200킬로의 비도축육을 모두 때려 박아 만든 거대한 케밥이었다.

대찬이 식사를 했던 레스토랑의 터키인 주방장이 그 케밥을 맡았다.

다르샨 싱 전무는 우려 섞인 얼굴로 대찬에게 말했다.

“혹시 제가 파격적인 퍼포먼스가 필요하다고 해서 이런 케밥을 만드신 겁니까……?”

“네, 파격적이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만…….”

다르샨 싱 전무는 은오영 소장을 흘끗 봤다.

쓴소리를 해달라는 신호였다.

그러자 은오영 소장은 다르샨 싱 전무에게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낸 뒤, 대찬에게 말했다.

“뭐, 다 좋습니다. 이 정도면 이목을 끌 만한데요.”

“무슨 문제라도.”

“지금도 이 케밥이 실시간으로 익어가고 있잖습니까.”

“네.”

“그렇잖아도 비도축육은 지방조직이 부족해서 퍽퍽한 식감이잖습니까. 그런데 계속 저렇게 가열하면 못 먹을 지경이 될 겁니다. 그럼 사람들 이목은 좀 끌지언정…….”

“맛본 사람들은 도리어 비도축육에 부정적인 인상을 가질 것이다?”

은오영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걱정 마세요. 단기간에 소비하면 되잖습니까.”

“물론 그렇지만 그게 쉬워야 말이죠. 저게 이목을 끌긴 하지만 애초에 이 구역에 사람 자체가 드물어요.”

은오영 소장의 계속되는 우려에도 대찬은 태연했다.

“그럼 사람 많은 쪽에서 끌어오면 될 거 아닙니까.”

“말이야 쉽죠.”

“걱정하지 마세요. 저 케밥 좀 보세요.”

대찬이 말하자 직원들의 시선이 거대한 케밥으로 쏠렸다.

은오영 소장은 케밥을 봤다가 흘끗 대찬에게 곁눈질을 했다.

“봤는데요.”

“모양이 어때요.”

“…집 모양이네요.”

은오영 소장의 대답대로 케밥은 이태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원통형이 아니었다.

지붕이 있고 굴뚝까지 있는 집의 형상을 갖췄다.

밤새 레스토랑 직원들을 가장 괴롭혔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모양을 내려고 주방에 있는 모든 도구를 총동원했다.

그것들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갖은 애를 쓴 연후에 저런 집 모양의 케밥을 만들어내었다.

은오영 소장은 대수롭지 않게 대찬에게 말했다.

“그냥 이목 끌려고, 소위 어그로 끌려고 저런 모양으로 만든 거 아니에요?”

다르샨 싱 전무가 은오영 소장의 말에 첨언했다.

“학교 앞에 달고나를 동그라미 모양으로 만들면 재미없으니까 별 모양, 비행기 모양으로 만드는 것과 비슷한 거죠.”

대찬은 다르샨 싱 전무를 흘끗 봤다.

“전무님은 그걸 어떻게 아신데요.”

“가끔 연구가 막히면 산책 삼아 회사 밖에 있는 학교까지 걷고 들어오거든요. 거기 달고나 잘 뽑아갖고 저번에는 잉어도 타왔는데.”

“대단하시네요.”

“그런 단순한 의도가 아닌 겁니까?”

“그것보다는 조금 복잡하죠.”

대찬은 웃음을 머금었다.

은오영 소장은 노릇노릇 익어가는 케밥을 보고 불안한 듯 대찬에게 말했다.

“진짜 믿어도 돼요?”

“소장님이 믿든 안 믿든 관계없어요.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대찬은 그렇게 말하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걸 은오영 소장에게 건넸다.

해괴한 검은 천이었다.

은오영 소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뭡니까?”

“쓰세요. 소장님이 마녀 역할이에요.”

“마녀라니.”

“빨리 써요. 자, 그리고 이것도.”

대찬은 마녀의 매부리코가 달린 안경을 은오영 소장에게 건넸다.

은오영 소장은 궁싯거리면서도 검은 천을 뒤집어쓰고 매부리코 안경을 걸쳤다.

대찬은 웃으면서 은오영 소장에게 말했다.

“오늘의 이야기, 헨젤과 그레텔.”

“…헨젤과 그레텔?”

진위생이 은오영 소장을 바라보고는 대찬에게 물었다.

“마녀는 여기 있는데, 정작 중요한 헨젤과 그레텔은 어디 있습니까?”

“헨젤과 그레텔이 여기까지 어떻게 오는지 아시죠.”

“거 바닥에 떨어진 빵 쪼가리 주워 먹으면서 오잖아요.”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멀리서 오고 있어요, 헨젤과 그레텔이.”

그 시각.

가장 분주한 쾰른메세의 한복판.

정장을 갖춘 방문객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오가는 가운데, 가장 이질적인 존재가 등장했다.

그 존재를 발견한 사람들은 바쁜 발걸음이 본능적으로 멎었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뭐라고 수군거렸다.

한복판에 서 있는 존재는 남매였다.

남매는 중세 유럽 아이들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동양 아이들이 중세 유럽의 복장을 하고 있으니 이목을 끌기에 좋았다.

은오영 소장의 마녀 분장보다 훨씬 완벽한 코스튬이었다.

그 남매는 백민하 해뜰녘 사장의 조카들이었다.

대찬은 괜찮을까, 걱정하는 백민하 사장을 설득해 그 남매를 헨젤과 그레텔로 만들었다.

어른의 무릎께에 겨우 이르는 작은 남매를,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들이 너무나도 이질적인 까닭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냥 지나치기에 그들은 너무 귀여웠다.

사람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웅성거리는 사이.

개중 친절한 바이어 하나가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헨젤과 그레텔에게 말을 걸었다.

“얘들아, 여긴 어떻게 왔니.”

영어유치원을 다닌 적이 없는 남매는 당연히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순진한 눈망울로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러다 헨젤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얘야!”

친절한 바이어가 그들의 걸음을 붙들려고 했다.

그때 헨젤이 걷기 시작했다.

그레텔도 따라 걸었다.

난데없이 등장한 남매에 점점 그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헨젤과 그레텔은 그들더러 따라오라는 듯, 부러 천천히 걸어갔다.

그들이 얼마 안 가 시선을 거두려고 하자, 헨젤은 작은 손으로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리고 그들이 꽁무니에 따라붙고 나서야 걸음을 옮겼다.

헨젤과 그레텔은 피리 부는 사나이도 겸업하는 듯, 꽁무니에 사람들을 줄줄이 매달았다.

그런 채로 로튼 프룻츠의 부스로 이끌었다.

그들 덕분에 구석진 로튼 프룻츠의 부스에 올 운명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그쪽으로 이끌렸다.

이끌린 사람들을 붙들어놓을 무기가 부스에 마련되어 있었다.

거대한 집 모양의 케밥이었다.

이 케밥의 종류를 굳이 따지자면 아다나 케밥(Adana kebabı)이었다.

남부 터키에서 즐겨 먹는 방식의 케밥이었다.

고기를 완자 형태로 만들어 불에 구운 것.

비도축육은 일반 고기처럼 통으로 준비할 수 없다.

이처럼 완자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다.

200킬로의 비도축육에, 고기가 형태를 잘 유지하도록 양파와 밀가루, 계란 노른자 따위를 더 섞어 만들었다.

그러니 실제 투입된 재료는 200킬로 이상이었다.

그 거대한 크기가, 좁은 부스에 들어서니 더 커 보였다.

그 거대함만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머무르게 하기에 족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 거대한 고깃덩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소한 냄새가 그들의 식욕을 자극하며 걸음을 더 오래 붙들어두었다.

은오영 소장이 떨떠름한 얼굴을 하며 대찬에게 물었다.

“쟤네가 대표님이 말씀하신 비장의 무기예요?”

“네.”

“애들을 이용하다니, 비열해요.”

“양심에 좀 찔리기는 하는데 그래도 어떡해요. 애들이 박람회장 한 번만 돌고 와주니까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몰렸잖아요.”

“아니, 오다가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서 직원 한 분한테 멀찍이 지켜보라고 했어요. 아무렴 그 정도 안전장치도 안 하고 애들을 물가에 내놓을까.”

“…….”

“자, 헨젤과 그레텔이 왔으니 소장님도 어서 마녀의 직분에 충실하세요.”

대찬은 웃으며 헨젤과 그레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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