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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430화 (430/556)

난 할 수 있어 430화

그린블러드 미트의 부스는 이 박람회장에서 가장 큰 규모로 설치되어 있었다.

잠깐 휴대전화로 뭘 검색하던 다르샨 싱 전무가 대찬에게 말했다.

“대표님, 이제 보니 이 박람회 주요 스폰서 중에 하나가 코테츠 그룹이네요.”

“…그래요?”

다르샨 싱 전무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코테츠 키친과 그린블러드 미트의 부스 앞에는 사람들이 운집해있었다.

각국의 언론사에서 나온 사람들도 이쪽에 몰려들어 열띤 취재 열기를 보였다.

대찬은 다르샨 싱 전무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가 거지같은 부스를 받은 게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전무님 생각은 어떠세요.”

다르샨 싱 전무는 코테츠 키친의 부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초청부터가 굉장히 저열한 의도를 띠고 이뤄진 것 같습니다.”

대찬은 더운 콧김을 내쉬며 못마땅한 시선을 그쪽에 보냈다.

대찬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코테츠 키친에서 나온 일본인 직원은 열심히 떠들어댔다.

그 말이 또 대찬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곳에는 많은 배양육 업체들이 부스를 설치하고 자기 회사를 광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린블러드 미트와 우리 코테츠 키친만큼의 수준에 도달한 회사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주장하는 회사는 있지만 그건 사기에 가깝죠.”

그 말을 각국 언론사의 카메라가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아누가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박람회입니다. 그 박람회에서 이렇게 훌륭한 공간을 허락했습니다. 그냥 돈을 많이 낸다고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정말 향후 세계 식품산업을 이끌어갈 리더이기 때문에 이 자리를 내어준 겁니다.”

그는 더 신나서 떠들었다.

“부스가 이 중심에서 얼마나 가깝게 설치되어 있느냐. 그것이 배양육 업계의 랭킹을 나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지금 한국의 한 업체가 이 박람회에 참가했지만, 아마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그 부스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동굴 속의 골룸처럼 아주 저 깊은 곳에 숨어있거든요.”

그러자 방문객과 언론인들은 가볍게 웃음으로 호응했다.

개중에 적극적인 기자 하나가 그에게 물었다.

“코리아에서도 배양육을 만듭니까?”

“예, 그럴 만도 하지요. 배고픈 민중들이 돼지 같은 독재자를 욕하고 있답니다. 독재자 입장에서는 얼른 값싼 고기를 만들어 민중들의 배를 달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기가 돼지고기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죠.”

“코리아가 노스 코리아였습니까?”

“아, 사우스였나? 죄송합니다. 사실 별로 관심이 없어서.”

코테츠 키친의 직원은 시시덕거리며 웃었다.

코테츠 키친 직원의 말에 다르샨 싱 전무의 눈이 뒤집혔다.

“저 쌍간나 새끼가……!”

대찬은 앞으로 박차고 나가려는 그를 급히 말렸다.

“전무님, 한국 사람도 가만히 있는데 전무님이 왜 더 그러세요.”

“저걸 듣고 가만히 계실 거면 한국 국적 차라리 나 줘요.”

대찬은 난처하게 웃었다.

그래도 여기서 발끈해서 난동을 피우면 저쪽만 신나게 해주는 꼴이었다.

대찬은 억지로 다르샨 싱 전무를 끌고 구석에 자리한 로튼 프룻츠 부스로 향했다.

다르샨 싱 전무는 대찬에게 끌려가면서도 쌍간나, 쌍간나, 욕을 멈추지 않았다.

대찬은 자기 부스를 챙기면서도 그린블러드와 코테츠 키친의 사정도 직원을 꾸준히 보내 동향을 살피게 했다.

그렇게 해서 전해지는 소식들은 하나같이 대찬의 속을 뒤집어놓는 것뿐이었다.

진위생은 마뜩잖은 얼굴로 대찬에게 보고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언론사 기자들이 다 저쪽으로 가있어요. 뉴욕 타임즈며 BBC며 CCTV며. 식품산업 전문지들도 그렇고요.”

“그놈들, 아주 잔뜩 신났겠네.”

“말해 뭐하겠어요.”

“저쪽은 자기 회사 어떻게 홍보하고 있어요?”

“뻔하죠. 브로슈어 나눠주고, 비도축육으로 만든 음식 쥐똥만큼 나눠주고, 대부분은 말로 때우죠.”

“부럽네. 그런 뻔한 수법으로도 저렇게 사람들을 끌어모으니까.”

은오영 소장은 무기력한 표정으로 대찬에게 말했다.

“우리도 기자 몇 사람 다녀가긴 했어요. 그린블러드랑 비교할 사진 찍으려고 왔더라고요.”

“으음…….”

대찬은 팔짱을 낀 채 파리 날리는 부스를 둘러봤다.

이대로라면 곤란했다.

로튼 프룻츠의 부스가 열리고 한 시간이 지났다.

애초에 구석진 자리라 거기까지 발걸음이 닿는 방문객은 소수였다.

개중에서도 말이나 한번 제대로 걸어보는 방문객은 서너 사람에 불과했다.

이대로 가면 본전은커녕 독일 행 비행기 푯값도 못 뽑을 판이었다.

그때 대찬에게 익숙한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로튼 프룻츠의 커피와 와인을 중국으로 수입하는 중국의 바이어 왕핑웨이였다.

그 역시 이번 박람회에 방문객으로 참가해 들여올 만한 물건이 있는지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참이었다.

그는 대찬을 발견하고 반갑게 웃었다.

“어이고, 조 대표님.”

“아, 왕총.”

대찬은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

왕핑웨이는 부스 가까이 다가와서 빙긋 웃었다.

“어째 쉽지 않아 보이십니다.”

“네, 보시는 대롭니다.”

대찬은 구태여 몇 마디 변명으로 둘러대지 않았다.

왕핑웨이가 장님도 아니고, 둘러댄다고 둘러대질 상황도 아니긴 했다.

왕핑웨이는 슬쩍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우리 파트너가 이렇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하하, 어쩌겠습니까. 타개책을 모색해봐야지요.”

“일단 제가 교류하는 바이어들한테 입소문이라도 좀 퍼트려놓겠습니다. 그런데 비도축육이라는 큰 카테고리를 다루기에는 보따리상 수준인 양반들이라.”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으음, 초청을 했는데 이런 구석진 자리를 주다니, 확실히 누군가의 입김이 들어가긴 들어간 모양이에요.”

왕핑웨이는 혀를 끌끌 차며 제 갈 길을 갔다.

그렇게 첫날은 차라리 쾰른 시내를 관광하는 게 나았을 정도로 형편없이 끝나고 말았다.

호텔로 돌아온 대찬은 절치부심했다.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가면 소득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도리어 손해다.

그린블러드와 코테츠 키친은 서로 손을 잡고 떠들썩하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었다.

로튼 프룻츠가 체면을 구기면 저들의 들러리 신세로 전락할 뿐이었다.

그걸 생각하니 대찬은 짜증이 확 솟아 머리를 긁었다.

그는 뚱한 표정으로 호텔 방에 혼자 팔짱을 끼고 앉았다.

객실 내의 TV를 틀어놓고 그걸 가만히 응시했다.

어차피 독일어는 못 알아들으니 소리는 나오지 않게 하고 화면만 멍하니 바라봤다.

대찬은 객실에 비치된 맥주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했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해답에서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물웅덩이의 한가운데 있는 종이 돛단배를 이쪽으로 오게 하려고 손을 집어넣어 물결을 일으키면 오히려 멀어지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대찬은 아예 고개를 젖히고 맥주를 한 번에 동 냈다.

대찬의 화를 더 돋우려는 듯, 때마침 TV는 키즈 채널에 맞춰져 있었다.

바로 전에 묵었던 투숙객이 아마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였던 모양이었다.

애들 보는 프로그램은 다 똑같아서, 손가락으로 놀리는 인형이 나오고 우스꽝스럽게 분장한 배우가 과장된 연기를 했다.

기분이 나쁘면 뭐든 보기 싫어지는 법이었다.

대찬은 뚱한 얼굴로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리려고 했다.

그때 채널을 돌리려던 대찬의 손짓이 우뚝 멈췄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프로그램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동화를 들려주는 듯했다.

안데르센과 더불어 유명한 동화작가인 그림 형제의 작품.

대찬은 갑자기 그 프로그램에 빨려 들어갔다.

그는 손에 쥐었던 리모컨을 내려놓고 전화기를 들었다.

대찬이 전화를 걸자 진위생이 바로 받았다.

오전부터 시달린 탓에 바로 잠들었던 진위생은, 상사의 전화에 굼뜬 목소리로 응답했다.

“사장님, 무슨 일이세요. 잠 안 오세요? 술이라도 한잔 하시려고요?”

“아니, 우리 갖고 온 비도축육이 얼마나 되지?”

“…한 200킬로 정도 되죠.”

로튼 프룻츠는 이번 박람회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래서 생산된 비도축육을 한 짐 짊어지고 온 터였다.

생산단가를 많이 낮췄다고는 했지만 200킬로의 비도축육은 상당한 비용을 필요로 했다.

그걸 옮기는 운송비만 해도 상당했다.

대찬의 질문에 대답한 진위생은 다시 속이 쓰려졌다.

그린블러드와 코테츠 키친은 하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준비한 비도축육을 새알만큼 나눠주는데, 이대로 가면 로튼 프룻츠가 갖고 온 물량은 그대로 음식물쓰레기가 될 판이었다.

대찬은 진위생에게 말했다.

“지금 직원들 깨워서 그거 짊어지고 밖으로 나오라고 해요.”

“예? 갑자기…….”

“내 말대로 해요. 스탠바이 하고 있다고 내가 부르면 바로 나올 수 있도록, 알겠습니까?”

대찬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다 그만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진위생은 더 토 달지 않고 절도 있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대찬은 바로 옷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 멈칫, 걸음을 멈추고 과장된 연기의 배우와 인형이 한바탕 놀고 있는 화면을 응시했다.

대찬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는 리모컨을 들어 꺼놓았던 소리를 다시 틀었다.

매부리코를 한 마녀 인형이 독일어로 말했다.

“Knupper, knupper, knupper, Kneischen, Wer knuppert an meinem Häuschen?”

야금, 야금, 야금, 누가 쥐새끼처럼 내 집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거야?

대찬은 밤중의 쾰른을 질주했다.

그는 환하게 조명을 비춘 쾰른 대성당을 등지고, 라인 강을 건너도록 놓은 호엔촐레른 다리를 전력 질주했다.

강 건너편으로 온 대찬은 문 닫힌 레스토랑의 문을 쾅쾅 두드렸다.

대찬이 직원들을 데리고 식사를 했던 식당이었다.

문은 닫혀있되 마감을 하는지 아직 불이 켜진 채로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대찬이 문을 두드리자 밖으로 나온 직원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독일어로 말하는 걸 대찬이 못 알아듣자, 직원은 짧은 영어로 바꿔 말했다.

“영업 끝났습니다.”

“식사하러 온 게 아닙니다. 사장님을 좀 뵙고 싶은데요.”

“무슨 일이죠?”

직원의 말은 가시가 돋쳐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어도 안 되는 이 동양인이 갑자기 사장님을 보자고 하는 이유가 그리 거창한 이유는 아닐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어제 먹은 음식에 머리카락이 있었던 게 이제 기억났어요! 환불해주세요!’

그런 시시껄렁하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올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다.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대찬은 말 대신 돈을 꺼냈다.

한화로 오백만 원 가량의 금액이었다.

돈을 보고 직원의 눈이 살짝 커졌다.

“뭡니까?”

“사장님과 급히 의논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말씀 좀 전해주시죠.”

대찬은 돈 중에서 20만 원 정도를 뽑아 직원에게 찔러주었다.

그러자 직원은 바로 길을 터주었다.

“들어오시죠. 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잠깐 기다리자, 콧수염을 기른 사장이 대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직원보다 영어에 능숙했다.

“무슨 일이시죠?”

“이 레스토랑의 주방장님은 솜씨가 좋으시겠죠.”

“물론이죠.”

“간밤에 긴급하게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무례를 무릅쓰고 뵙자고 했습니다.”

“긴급하게 부탁할 일이요?”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오전까지 완성해주셨으면 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그럼 밤을 새라는 말씀이신데.”

“맞습니다.”

“직원들이 흔쾌히 해주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내일 영업에도 지장이 있으니.”

“내일 정기휴무일인 것 확인했습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직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입니다.”

대찬은 사백팔십만 원 어치의 돈을 탁자에 올려놨다.

“이 정도라면 철야 근무에 대한 대가로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음, 글쎄요. 한 천 유로 정도 더 내시면 가능하겠습니다.”

“역시 독일 분들은 계산에 철저하시군요.”

대찬은 천이백 유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러자 사장은 콧수염을 당기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부탁하실 일이 뭡니까?”

대찬은 말 대신 글로 적어 사장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한 뒤, 바로 진위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바로 준비된 고기 갖고 나와요.”

“어디로 나갑니까?”

“우리 어제 저녁 먹었던 식당으로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아닌 밤중에 로튼 프룻츠의 직원들과, 파견된 요산테크닉스의 직원들은 고기를 등에 짊어지고 라인 강을 건넜다.

짊어지고 온 고기들은 대찬이 섭외한 레스토랑의 주방으로 열심히 옮겨졌다.

다음날 아침.

둘째 날의 박람회장의 분위기는 첫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린블러드와 코테츠 키친은 역시 만선이었고, 로튼 프룻츠는 파리만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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