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419화
요정은 밀실정치가 횡행하던 5공화국 때 전성기를 누렸다.
지금은 엄연히 말하자면 쇠퇴기에 들어서 있었다.
숱하게 들어섰던 소위 기생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높으신 양반들이 어린 여자들의 젖가슴을 주무르며 나랏일을 결정하던 공간.
그 공간은 잘 보존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소시민의 산책로나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쓰였다.
이런 쇠퇴기에 오히려 규원은 호황을 맞았다.
경쟁자들이 다 스러졌으니, 이런 케케묵은 취향을 가진 영감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까닭이었다.
흥읍시를 지역구로 둔 석우룡 의원 역시 단골에 준하는 손님이었다.
그는 주인인 이선주와도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의 친분이 있었다.
석우룡이 동년배의 영감들과 규원을 찾아오자, 이선주가 쪼르르 달려 나가 그들을 맞이했다.
이런 고급 요정에서도 금배지들은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고객이었다.
“어서 오세요, 의원님.”
“어. 마담은 어째 날이 갈수록 젊어지는 거 같아? 여기 드나드는 노친네들 얼마 남지도 않은 양기를 빼다 취하는지.”
“아유, 저도 밖에서 할머니 소리 들어요. 그런 말씀 누가 들으면 욕해요.”
석우룡 의원은 피식 웃었다.
그가 서론이 긴 편이 아니라는 걸, 바로 본론에 들어가는 걸 선호하는 고객임을 이선주는 잘 알고 있었다.
진부하게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지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웃으면서 그의 앞을 물러나오려는데, 석우룡 의원이 그녀에게 말했다.
“마담, 잠깐 얘기 좀 할까.”
“오늘따라 웬일로 늙은 여자한테 관심을 주세요?”
“어, 요즘 성가신 일이 좀 있어서.”
“성가시다뇨.”
“그 자네 아들 말이야, 춘모라고 했나?”
“기왕이면 알렉스라고 해줘요. 다들 그렇게 불러요.”
“그래 뭐든. 최근에 크게 다쳤다며?”
“맞고 다닐 나이는 지났는데 누구한테 맞았다나 봐요. 누구냐고 묻는데도 대답이 없어. 근데 의원님이 그런 얘기까지 다 아세요?”
이선주는 다 큰 자식을 안타까워하며 낯빛을 흐렸다.
“왜 그런 얘기까지 다 알겠어. 나한테 중요한 사람한테 민원이 들어왔더라고.”
“웬 민원?”
“때린 놈이 적반하장으로 그 사람한테 뒤집어씌우려나봐.”
“때린 놈? 때린 놈이 누구예요, 도대체?”
“자네도 알 걸? 제이슨 리라고, 자네 아드님하고 어울리는 패거리 중에 하나일 텐데.”
석우룡 의원의 말에 이선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 애비가 이두희라고, 여기 자주 들락거리잖아요. 부전자전인지 그놈도 더럽게 논다는 후문은 들었어요. 저도 그놈을 의심하던 참이었는데.”
“그래, 그래서 마담한테 일러두려고. 혹여나 생사람 안 잡게 말이야.”
이선주는 제이슨 리에게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면서도, 석우룡 의원의 은근한 말에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유, 근데 이게 참…….”
“얽힌 게 많지?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지?”
“예, 아무래도요. 뭐, 의원님 체면도 있으니 최대한 감안하겠지마는…….”
“마담 똑똑한 여자잖아. 길고 짧은 것 정도는 바로 때려 맞출 수 있을 텐데.”
“물론 긴 거야 의원님이 길죠. 근데 직접적으로 얽힌 건 그쪽이라구요.”
“그럼 우리도 직접적으로 얽히면 되겠구만.”
“…네?”
“자네, 한양클럽 들어오고 싶어 했지?”
한양클럽은 고종 황제가 만들었다고 하는,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사교클럽이었다.
그 말에 이선주의 눈이 빛났다.
“네, 그럼요.”
“다음번 지방선거에 최 지사가 공천을 못 받을 게 거의 확실시된다는구만.”
“그래요?”
“아예 가산 정리하고 겨울에도 따뜻한 곳으로 가서 산대.”
“…그래요?”
석우룡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내가 힘 좀 쓰지. 마담 들어오게.”
“물장사나 하는 저 같은 게 들어갈 수 있겠어요?”
“아무렴. 무슨 분야든 정상에 오르면 들어올 자격이 충분하지. 내가 힘 좀 쓰면 어렵지도 않아.”
“그럼 원이 없겠어요.”
“자네 들어오면 아들내미도 자동으로 가입되는 거 알지? 소꿉장난이나 하는 애들 놀이터 말고 큰물에서 놀아야지.”
“말씀만 들어도 가슴이 뛰네요.”
“현실이 될 거야. 그럼 그 제이슨인가 뭔가 하는 놈 눈치 볼 것도 없어.”
이선주는 석우룡 의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님 말씀대로 할게요. 그럼 제이슨 리를 경찰에 신고하면 되겠어요?”
“아니. 그럼 그쪽에서도 살겠다고 내 사람을 찌르고 들어올 게 아닌가. 일이 커지는 걸 원치 않아.”
“그럼 제이슨에게 협조만 안 하면 된다는 거죠.”
“역시 마담은 말을 잘 알아듣는구만. 그 편이 마담한테도 부담이 덜하지 않나?”
“훨씬 낫죠.”
석우룡 의원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이선주와의 대화를 종결했다.
석우룡 의원은 대찬에게 그 소식을 들려주었다.
대찬은 짧은 감사를 표할 뿐, 덧붙이는 말이 없었다.
알렉스 배 쪽의 일이 마무리되자 대찬은 전길재 기자와 만났다.
전길재는 볼펜 끄트머리를 잘근잘근 씹으며 말했다.
물론 한 손에는 여지없이 담배가 꽂혀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대찬도 전길재의 찌든 담배 냄새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대찬은 자신의 녹취를 전길재와 공유했다.
전길재는 피식 웃었다.
“이야, 조 대표님쯤 되면 나 같은 사냥개가 물어다 주기만을 기다리는데. 보통 성실하신 게 아니시구만요.”
“제가 알아낸 것 이외에 밝혀낸 정보가 있으십니까?”
전길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슨 리의 아버지인 이두희가 고문으로 있는 회사가 JL인베스트먼트와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했거든요.”
“네.”
“그런데 굳이 그 회사 단독으로 진행해도 될 일을 합작 프로젝트로 진행해서 JL인베스트먼트 측에 인건비를 지급했습니다.”
“결국 눈먼 돈이 이두희, 제이슨 일가 주머니로 들어간 셈이네요.”
“네, 그리고 JL인베스트먼트에서 파견한 인력이 이두희의 조카예요. 그러니까 제이슨 리의 사촌이죠.”
“일가끼리 아주 알뜰살뜰 발라먹었네요.”
“그밖에도 여타 이런저런 부정은 여기 철해놨으니까 천천히 보세요.”
대찬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듣던 대로 솜씨가 발군이시네요.”
“낙지 숨구멍만 찾으면 낙지 잡는 건 어렵지 않아요. 손만 쑥 집어넣으면 되거든요. 숨구멍 찾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조 대표님 말을 딱 들으니까 아, 이건 세발낙지가 다발로 걸려 나오겠구나 직감이 들더군요. 그래서 인건비는 좀 싸게 책정돼도 품이 크게 들 것 같진 않으니까 제안을 수락했던 겁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뭐, 이 건에서 저는 탐정 역할만 하면 되는 거겠죠?”
“탐정 역할이라뇨.”
전길재는 담배 연기를 힘껏 빨아들이고 고개를 살짝 돌려 훅, 내뱉고는 말했다.
“캐내는 것까지는 탐정이나 기자나 매한가지죠. 그걸 대외적으로 터트리면 기자가 되는 거고, 그대로 숨기면 탐정에서 끝나는 거고. 이거, 제이슨 약점 잡으려고 캐내신 거 아닙니까? 그럼 못 터뜨리잖아요.”
대찬은 팔짱을 끼며 웃었다.
“터뜨리게 해드리면 값을 좀 깎아주시렵니까?”
전길재는 메마른 눈빛으로 대찬을 보다가 싱겁게 웃었다.
“아뇨. 지금 보니까 터뜨리는 쪽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계신 거 같은데.”
“안 깎아주시면 다른 기자한테 넘길래요. 어차피 사건의 크기가 중요하지 누가 보도하느냐는 별로 안 중요하잖습니까? 화염병이 불만 붙으면 되지, 병이 소주병이냐 와인병이냐 따지진 않으니까.”
그런 되도 않는 투정이 전길재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굳이 화염병에 비기시니 말씀드리면, 소주병과 와인병의 차이가 아니에요. 조 대표님 화염병 세대는 아니죠?”
“네.”
“저는 몇 번 던져봤습니다만, 기름만 채우면 불이 잘 안 붙어요. 시너를 섞어야 팍, 하고 터지거든요.”
“아, 그런가요.”
“저는 시너가 들어있는 화염병이에요. 야마도 섹시하게 뽑고 문장도 흡입력이 있거든요?”
“최재한도 그 정도는 해요.”
“그 친구는 다 좋은데 너무 점잔을 빼서 기사가 재미없어요. 그리고 TV뉴스에서는 표현력의 한계도 있고.”
“그럼 기자님은 뭐 다른가요.”
“우리, 일요한국이에요. 다른 신문사에서는 가위표로 처리하는 비속어도 우린 그대로 내보낸다고.”
대찬은 웃으면서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기자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근데 이거 터뜨려서 어떡하게요? 제이슨인가 하는 놈이 약이 바짝 올라서 역공할 텐데?”
“손을 써놨습니다.”
“허, 딱히 떳떳한 방법은 아니겠구만요. 비열한 힘을 더 큰 비열한 힘으로 눌렀겠구만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그것만큼 솔직한 긍정은 없죠. 이야, 조 대표님, 물 위에 핀 연꽃처럼 구시더니! 역시 연근은 진탕에 뻗치는 법이에요.”
대찬은 미간을 찡긋 좁혔다.
“그런 놈한테는 그런 방법으로 응수해주는 게 맞죠.”
“뭐, 그렇긴 합니다. 다만, 그런 방법을 쓴 순간 조 대표님도 그런 놈이 되신 거 알죠?”
“…그런 막돼먹은 놈하고 한 가지로 묶이고 싶지 않은데요. 이건 정당방위예요.”
전길재는 피식 웃었다.
“이유 없는 선행은 있지만 이유 없는 악행은 없답니다. 조 대표님도 그렇게 젖어들어 가는 거예요.”
“기자님.”
대찬의 언성이 저도 모르게 높아졌다.
“그게 틀렸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정당방위도 맞고요.”
“…….”
“내가 조 대표님이라도 그렇게 합니다. 백 번도 더 하죠. 이런 세상에 고결하다는 건 멍청이를 위한 예쁜 포장지니까요. 근데 이제 어디 가서 스스로 고결한 척하지 마세요. 그건 역겨운 겁니다.”
“…….”
전길재는 푸석푸석한 자신의 산발머리를 벅벅 긁으며 난처한 얼굴을 했다.
“참 나, 나도 나이가 드니까 혓바닥이 길어지지 뭡니까. 젠장, 돈이나 받고 뜨면 될 걸 주저리주저리 뭐 하는 짓인지. 감히 피고용인이 고용인한테 대들었네요. 미안해요. 나도 꼰대가 됐나 봅니다.”
전길재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에게 대찬이 말했다.
“잠깐 앉아보세요.”
“왜요, 더 시키실 일 남았어요?”
“담배 한 대만 빌려주세요. 같이 한 대 피우고 일어나시죠.”
전길재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대찬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그리고는 불까지 붙여주고, 자신에게도 그렇게 했다.
대찬은 전길재와 맞담배를 피우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담배 연기가 머릿속을 뿌옇게 메우는 기분이었다.
침묵의 흡연 뒤에 둘은 각자 제 갈 길을 갔다.
전길재 기자는 약속대로 기사를 실어주었다.
-금수저 검머외, 도둑질한 특허로 흥청망청…역외탈세·배임 혐의 ‘뚜렷’
검머외, 검은머리 외국인의 준말로 한국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일부 교포들을 비하하는 낱말이었다.
최재한이 재직 중인 ONB에서는 함부로 쓸 수 없는 낱말이었다.
그런 말을 전길재는 조자룡 헌 창 쓰듯 마음대로 썼다.
그는 이두희가 강서대학 산학협력단에서 특허를 빼돌린 경위는 ‘도둑질했다’, 다섯 글자로 갈음했다.
복잡한 사건개요에는 대중이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알짜배기 특허가 어떻게 해외로 빼돌려졌고, 어떤 방식으로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사건의 곁가지에 불과한 그의 사치스런 행각에 돋보기를 들이댔다.
무슨 차를 타고 다니고, 그 차가 얼마짜리고, 하루에 술값으로 얼마만큼 탕진했고, 그가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과 어울리는지 구구절절 써 내려갔다.
기사는 그 자체로 반향이 있었다.
거기에 대찬의 녹취록이 힘을 더했다.
대찬의 목소리는 삭제되고 자랑스레 제 부정을 떠벌리는 제이슨 리의 목소리만 녹취록으로 작성되었다.
튀어 오르는 목소리는 소리 없는 글로 이뤄진 기사에 힘을 더해주었다.
석우룡 의원은 기사와 녹취록이 만들어낸 잔잔한 반향을 몇 십 배, 몇 백 배로 튀겨냈다.
그다지 국정에 남다른 열의를 보이지 않던 그는, 오랜만에 대정부 질문 자리에 등판했다.
석우룡 의원은 콧잔등 위에 안경을 걸치고 말했다.
“경제부총리 나오세요.”
경제부총리를 앞에 세워둔 석우룡 의원은 준비한 대본을 읊었다.
“일요한국이라는 매체에서, 국내 대학이 취득한 알짜배기 특허가 이상한 경위로 외국회사에 헐값으로 넘어간 사례를 보도했는데, 부총리는 이 사실 알고 계세요?”
“간략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가 몇 건이나 더 있을지 모릅니다.”
“예.”
“정부의 방관 하에 우리나라 연구진이 피땀 흘려 개발한 기술이 홀라당 해외로 도둑맞은 겁니다. 책임을 느끼십니까?”
“앞으로 좀 더 면밀히 살피겠습니다.”
“앞으로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미 벌어진 부정에 대해서 엄정히 대처해야 할 겁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떻게 할 겁니까.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세요.”
대본을 다 읽은 석우룡 의원은 안경을 벗어 연단 위에 올려놓았다.
“국세청에서 관련 사례를 추려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돌입하겠습니다.”
“이 건에 대해서는 내가 관심 있게 지켜보겠습니다. 방금 하신 말씀, 명확하게 이행을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중진 국회의원이 공론화하고 경제부총리가 다짐한 일이었다.
그 아래의 공무원들은 비상하게 움직였다.
국세청은 부리나케 비정기 세무조사에 돌입하는 동시에, 제기된 갖가지 의혹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 역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