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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409화 (409/556)

난 할 수 있어 409화

“손자 심원철에게 현금으로 유산을 상속하면 분명히 덜 떨어진 개짓거리로 날려먹을 게 확실하다. 그런데 로튼 프룻츠가 주식시장에 상장되면 주식가치가 폭등할 것이니, 손자 심원철도 바보천치가 아닌 이상 한동안은 로튼 프룻츠 주식을 들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이와 같은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자기를 꾸짖는 글을 자기 목소리로 읽는 심원철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또한 로튼 프룻츠의 사세가 커지면서 적절한 회사 부지가 필요할 텐데, 구태여 수고롭게 발품 팔 것 없이 이 부지를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맘에 안 들면 매각하여 현금화해도 좋다.”

심원철은 민망한 표정으로 남은 글을 마저 읽었다.

“토지 20만 평과 이웃한 토지 10만 평은 로튼 프룻츠에 무상으로 양도하니, 회사의 발전을 위해 귀하게 사용해주기를 바란다.”

“어르신! 무상으로 그럴 것까지야…….”

“여러 말 시키지 말라니까.”

심형수가 으르렁거리자 대찬은 입을 다물었다.

심형수는 한숨을 쉬고 대찬에게 말했다.

“요즘 자네 회사에 투자하려면 번호표 뽑고 기다려야 한다지만, 다 죽어가는 노인네 마지막 소원이라 생각하고 그냥 허락해줘.”

“어르신…….”

“원철이 너도 당분간은 먹고 살 정도의 재산이 있으니 로튼 프룻츠 주식은 배당이나 꿀떡꿀떡 받아먹으면서 꽉 쥐고 있어라. 알겠냐?”

“…예.”

심형수는 대찬을 한번 빤히 바라보고는 그를 등지고 누웠다.

“졸리네. 자야겠어. 바쁠 텐데 이만 가봐.”

“또 찾아뵙겠습니다.”

대찬은 입술을 살짝 악물어 울음기를 참고 심형수의 굽은 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열흘 후, 심형수는 영면에 들었다.

대찬은 상주 심원철을 도와 바쁜 일을 제쳐두고 발인까지 빈소에 머물렀다.

가볍게 들리는 오동나무관의 한 귀퉁이를 붙잡고, 심형수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지켜보았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심원철이 대찬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상주 완장을 떼고, 대찬에게 캔커피 하나를 건넸다.

대찬과 심원철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사흘 간 눈에 띄게 살이 빠질 정도였다.

그는 초췌한 눈으로 대찬을 흘끗 바라봤다.

“…고마워요. 끝까지 있어줘서.”

“어르신께 신세진 게 많은데 이렇게 안 하면 마음이 불편해서 어떻게 삽니까.”

“이제 와서 하기에 부끄러운 말이지만, 결례가 많았습니다.”

“결례 많기로 따지면 나도 만만치 않죠. 서로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줍시다.”

심원철은 대찬의 옆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래서, 그 부지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괜히 할아버지 눈치 봐서 억지로 들고 있을 필요 없어요. 할아버지도 팔아도 좋다고 누차 말씀하셨으니까.”

“아뇨, 어르신이 큰 도움 주셨어요. 이번에 연구소를 옮기면서, 본사도 옮길 계획이었거든요.”

“본사를 옮겨요?”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비싼 서울, 그것도 강남에 넓은 사무실 유지할 필요가 없어서요. 작은 사무실만 서울에 놓고, 본사는 연구소랑 같이 외곽에 둘 작정이었어요.”

“…그렇군요.”

“어르신은 어디에 모실 생각이에요?”

“글쎄요.”

심원철은 대찬의 질문이 당혹스러운지 글쎄요, 대책 없는 대답 후에 캔커피만 홀짝거렸다.

그런 종류의 걱정은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그였다.

심형수는 세상을 등지면서 자신의 육신을 태우라고 했다.

태우래서 태웠다.

그런데 태운 뼛가루를 어떻게 하라는 말이 없었다.

네 뜻대로 해라, 힘겨운 마지막 숨을 토하면서 말하고 눈을 감았다.

심형수는 실향민이었다.

삼남 일녀의 장남인데 나머지는 북에 있거나 내려오다가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으레 있는 선산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납골당이나 찾아다 맡기기에는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성의가 없었다.

어디에 모실 거냐.

당연히 준비된 대답이 있어야 할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심원철이 대찬은 딱했다.

“괜찮으면 어르신, 흥읍에 모실까요.”

“예? 흥읍에요?”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님이 저희한테 큰 은혜를 베풀었으니까요. 한적한 곳에 기념관은 너무 거창하고, 기억관쯤으로 해서 작은 공간 정도 만들어놓으면 좋을 거 같은데요.”

“그렇게까지 해주실 거야…….”

“주신 땅이 하도 넓어서 한 쪽은 공원처럼 꾸며도 괜찮겠더라고요. 아, 이건 그냥 제 의견입니다. 결정은 당연히 원철 씨가 해야죠.”

“그렇게만 해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감사하다는 말도 할 줄 알고, 많이 컸네.

대찬은 씩 웃었다.

그는 심원철을 향해 악수를 청했다.

“상주로 상 치르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르신 기일마다 뵈었으면 좋겠네요. 이제 어엿한 주주가 되셨으니 정기주주총회에서 자주 뵈면 더 좋고요.”

심원철 역시 대찬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면서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물었다.

“비상장회사도 주주총회를 해요?”

“…어쨌든 주식회사니까요. 심원철 씨는 이제 로튼 프룻츠의 대주주입니다. 틈틈이 관련된 지식 공부해두시면 좋겠네요.”

“…예.”

“저는 찜질방에서 쪽잠 자고 출근해야 돼서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대찬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심원철이 따라 일어났다.

심원철은 대찬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했습니다.”

“받은 것만큼도 도리를 다 못했는데요, 뭐. 또 뵐게요.”

대찬은 미소를 짓고 심원철의 곁을 떠났다.

30만 평.

매번 20평, 30평, 아파트 크기 따질 때만 쓰던 단위를 광활한 대지를 따질 때 쓰려니 감이 잘 오지 않았다.

30평 아파트가 만 개 있다고 생각해도 대찬의 두뇌로는 여전히 천문학적인 규모였다.

누군가 당신 나온 고원대학교 캠퍼스가 딱 그 크기라고 하니 그제야 아, 할 수 있었다.

대찬은 주말에 윤이영을 조수석에 태우고 심형수가 남긴 토지로 차를 몰았다.

대찬이 심형수의 빈소를 지키는 내내, 윤이영도 성수동 집과 빈소를 여러 번 오가며 수고했다.

필드업 개장식 때 심형수와도 안면을 튼 사이였다.

그러니 심형수가 남긴 땅을 보러 가는 윤이영의 표정 역시, 복부인의 그것처럼 희희낙락할 수 없었다.

흥읍시는 경기도에서도 끝자락에 있는 도시였다.

시로 승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도시라고 하기도 뭣한 소도시였다.

필래마트가 존폐의 기로에 몰렸을 때, 유일하게 점포 한 곳을 보유하던 지역이었다.

그렇기에 대찬에게도 의미가 있다면 있는 지역이었다.

필래마트 흥읍점이 있던 곳은 그래도 번화한 축에 속했다.

로튼 프룻츠에 넘어간 곳은 아파트의 숲을 지나, 드문드문 있는 오래된 시골집들을 지나, 가로등 몇 개만 외롭게 어둠을 물리치는 외진 곳에 있었다.

산그늘이 짙어 한낮인데도 어째 으스스하고 어두컴컴했다.

윤이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만 으스스한 거 아니지?”

“응…….”

그녀의 쓴웃음이 대찬에게도 옮았다.

심형수가 현물로 로튼 프룻츠에 투자한 30만 평의 대지는 대부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영역이 수풀 우거진 임야였다.

개발도 불가능해서 숫제 내버려둬야 하는 땅이었다.

대찬은 처음에 심형수의 유언 아닌 유언을 들었을 때, 심장이 덜컥했다.

30만 평이면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아 평당 십만 원만 쳐도 얼마인가.

300억이다.

300억이면 쵸 후쿠히로 회장이 로튼 프룻츠에 투자한 금액의 3배였다.

기탁한 10만 평을 제하더라도, 남은 20만 평만 따져도 200억이었다.

이걸 고스란히 로튼 프룻츠에 투자하고 그만큼의 주식을 취하면.

심원철이 로튼 프룻츠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대뜸 등장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서 심형수에게는 일단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서는 계산기를 두드려볼 심산이었다.

당장 급하지도 않은 땅을 받는 대가로 갱생했다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심원철에게 1대주주의 신분을 허락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대찬은 직접 30만 평의 대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 정도면 심원철이 대주주는 되어도 1대주주는 안 되겠다.’

쓸 만한 영역은 30만 평이라는 천문학적인 넓이보다는 그래도 문과의 셈으로도 어림짐작하기 수월한 규모였다.

그나마 쓸 만한 땅의 절반 이상은 투자된 20만 평이 아니라, 기탁된 10만 평에 속해 있었다.

그 땅은 심형수의 숙원사업을 위해 마련된 곳이었다.

그는 인생 말년에 전 재산을 투입해서 대안학교를 세우려고 했다.

몸 뉘일 집 없고, 몸 기댈 가족 없는 청소년들이 의식주를 포함한 어떤 걱정 없이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는 대안학교를 세우려고 했다.

일생을 바쳐 준비한 숙원사업인 만큼 제법 계획도 꼼꼼했다.

그러나 으레 그렇듯 계획이 얼마나 꼼꼼한가는 계획의 실현 가능성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었다.

도리어 계획이 꼼꼼할수록 실현될 가능성이 떨어지기 마련.

이런저런 현실적인 장벽에 치여 심형수의 계획은 무위로 돌아갔다.

심형수는 자신이 죽더라도 이 계획이 완수되었으면 했지만, 손자인 심원철이 그런 막중한 책임을 다해 주리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의 계획을 접는 대신 젊고 붙임성 좋은 기업가의 계획에라도 보탬이 되라고 로튼 프룻츠에 기탁에 가까운 투자를 했다.

그런 그의 계획이 남긴 건 30만 평의 토지, 그리고 그 광활한 산과 들이 홀로 선 건물 하나뿐이었다.

대찬은 그 건물 앞에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섰다.

그의 감상은 간단했다.

“폐가 같네.”

“같은 게 아니라 폐가지, 뭐.”

“폐가는 죽은 건물인데 이건 태어나지도 않은 상태잖아. 듣는 건물 섭섭하게 바로 폐가 딱지를 붙이고 그래.”

“아이고, 이제는 애인 놔두고 무생물 편을 들어주세요?”

대찬은 장난 섞인 윤이영의 투정에 가벼운 입맞춤으로 변명하고, 천천히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건물은 3층이었다.

아마 심형수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다면 학교 본관으로 쓰였을, 그리고 늙은 이사장의 한 칸 사무실이 들어설 건물이었다.

디자인은 요새 유행하는 것처럼 세련되고 개성 있지는 않았지만, 튼튼하게는 지어져 있었다.

하기야 그 꼼꼼한 계획의 첫걸음이자 마지막 걸음이었을 테니 튼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찬은 웃으면서 윤이영에게 말했다.

“연구소하고 연구원들 숙소 들어가면 딱 알맞겠어.”

“에, 본사도 옮긴다더니?”

“아직 어렵지, 본사까지 옮기기에는.”

윤이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무리 수도권이라고 해도 사외이사 일도 있고… 성수동 집에서도 한참이고……. 여러모로 비효율적이니까.”

“다른 직원들도 갑자기 옮기려면 당황스럽겠지. 대부분 서울하고 경기도에 집이 있으니까.”

“연구하는 양반들은 안 당황스럽대?”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중림대가 어디에 있었는데. 경북 오지 촌구석에 콕 박혀 있었잖아. 이 정도면 대만족이지. 도시보다 시골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 아니면.”

“도시보다 시골을 더 좋아하면 어쩔 거야.”

“글쎄, 그런 양반들이 사장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영상편지까지 보내왔을까.”

“아부 떠는 건 줄 누가 알겠어.”

“아, 그 정도로 회사에서 내 권위가 탄탄한 줄 알아?”

“하긴 그건 그러네.”

“바로 수긍하니까 또 기분이 좀 그러네.”

“그럼 어쩌라고?”

대찬은 윤이영에게 찌릿 눈총을 쐈다.

회사에서 세워지지 않는 권위가 연인 사이에 세워질까.

윤이영은 가볍게 무시했다.

중림대 연구실에서 은오영 교수와 다르샨 싱 전무의 연구를 돕던 연구원들도 연구실을 옮긴다는 소식에 모두 기뻐했다.

그들은 전인미답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다.

갓 학사학위를 딴 사람들은 없었다.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준비하는 인원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그들도 은오영 교수에게서 구구단 배우는 초등학생처럼 하나하나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받아 연구를 수행했다.

그들은 대부분 학기를 마치면서 박사학위를 수여받을 예정이었다.

중림대 측에서는 훼방을 놓으려고 했다.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리자는 심산이었다.

대찬의 입장에서는 정해진 시한이 종료된 후, 새롭게 업무협약을 체결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쪽에서는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여길 터.

심술을 부리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대찬은 중림대로 직접 찾아가 총장과 담판을 지어 이를 무위로 돌려놨다.

학위의 대가로 두둑한 기여금으로 당근을 주었다.

안 놔주면 학생들 인질로 잡고 농성하는 악덕 사학으로 언론에 대서특필 될 줄 알라는 말로 채찍도 가했다.

대찬은 그들에게 숙식을 해결하고, 서울로 오고가는 통근버스로 여가를 자유롭게 즐기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몇 푼 아쉬운 용돈벌이밖에 안 되는 대학원생의 수입이었다.

그러던 것이 로튼 프룻츠의 정규직으로 채용되어 두둑한 연봉을 보장받았다.

그러니 그들로서는 사장님 사랑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좁은 중림대 연구실을 가득 메웠던 장비와 살림살이들이 트럭 몇 대에 실려 흥읍의 연구소로 옮겨졌다.

로튼 프룻츠와 올축사는 이 연구소를 공동으로 출자하여 설립했다.

연구소 이름은 문자 그대로 육산업연구소가 되었다.

자기 알리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위원장은 굳이 청하지 않았는데도, 자기 취미가 서예라며 굳이 자기 필체로 현판을 만들어 연구소의 간판으로 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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