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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407화 (407/556)

난 할 수 있어 407화

상경을 포기한 이들 중 몇몇은 옻닭의 효험이라고 봐도 좋았다.

특히 로튼 프룻츠가 망하면 수입산 비도축육이 들어올 것이라는 논리가 주효했다.

비도축육을 먹어야 한다면 기왕지사 국산이 좋지 않겠는가.

로튼 프룻츠가 잘 되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로운 수출 동력으로 자리매김하여 국가경제에 이바지하지 않겠는가.

문제가 있다면 국내기업이 해외기업보다는 컨트롤하기에 더 수월하지 않겠는가.

그런 논리가 축산업계 관계자들에게도 일부 수용되었다.

업계 내부에서 인심을 잃던 올축사가 다시 힘을 얻었다.

국회의원 인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똑똑히 지켜보라며 호언장담하던 것이 무색하게 된 인확협 위원장의 체면은 구겨졌다.

올축사의 보스 격인 한우자조금위원장은, 이제 대찬에게 어떤 카드를 내밀지 고심했다.

시간 끌기로 일관했다가는 다시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것이고, 그렇다고 옳다구나 대찬의 편을 들며 법제화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가는 당장에 모가지가 날아갈 것이다.

자신만의 획기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걸 고심하던 중, 그는 대찬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위원장님, 따로 뵐까요. 단둘이서.”

“어, 그럽시다.”

위원장은 대찬의 제안을 덥석 받았다.

둘은 신선로나 구절판 따위로 구색이 갖춰진 한정식 식당에서 마주앉았다.

역시 밀실야합만큼 빠른 사태해결의 특효약은 없었다.

대찬은 술을 시킬 것도 없이, 젓가락을 들 것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위원장님.”

“말씀하세요, 조 대표.”

“듣는 귀 없으니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 나누실까요.”

“바라던 바요.”

“위원장님은 명석하신 분이니까, 로튼 프룻츠의 대두가 업계에 당장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아실 겁니다.”

“뭐, 어느 정도는. 아주 위협이 없다고는 못하고.”

“업계의 형편보다는 위원장님의 입장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시는 상황이잖습니까.”

“맞아요. 그 말 들으니까 목이 타는데. 술 먼저 한 잔씩 하고 마저 들을까.”

대찬은 그와 한 잔 나눠 마시고 말을 이었다.

“잘 아시겠지만 제 입장은 이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올축사의 이름으로 즉시 법제화와 법안의 부칙으로 3년의 유예기간을 설정하는 것.”

“조 대표가 앵무새처럼 반복하지 않아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지금까지 인확협이 강경하게 반대했지만, 저번 2차 집회 때의 인원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자조금 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찬의 뒷말을 이었다.

“인확협의 칼끝도 많이 뭉툭해졌지요.”

“예, 위원장님의 숨통이 좀 트였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세력이 아예 죽어버린 건 아니에요. 여기서 내가 조 대표 역성을 들어주면 꺼지던 불씨가 다시 확 타오르지. 물론 내가 조 대표 역성을 들어줄 이유도 없고요?”

“물론입니다. 그래서 나름 고심했습니다. 위원장님도 활로를 찾고, 제 활로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허허, 그런 방법이 있나.”

위원장은 별 기대가 없었다.

한 놈이 사는 방법은 있어도 둘 다 사는 방법은 없다고 봐도 좋다.

그는 하릴없이 술이나 꼴딱꼴딱 넘겼다.

대찬은 그의 심심한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자조금이 운용하는 액수가 꽤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300억쯤 되지요.”

“한돈, 양계까지 합치면 규모는 훨씬 더 커지겠죠.”

“그렇겠죠. 그런데 그 말씀은 갑자기 왜…….”

대뜸 돈 얘기를 하니 위원장의 경계가 더 심해졌다.

대찬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 돈을 저희 회사에 투자하시죠.”

“뭐, 뭐요?”

황당한 소리였다.

위원장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업계에서 운용하는 자금을 저희 회사에 투자하면, 우리는 돈으로 묶인 경제공동체이자 운명공동체가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봐요, 조 대표님.”

“예, 말씀하십시오.”

위원장은 기가 찬 듯 허 참, 허 참, 여러 번 탄식한 후에 말했다.

“자조금이 무슨 사모펀드인 줄 아십니까? 농가에게서 자율적으로 돈을 걷기도 하지만 정부보조금도 받아요. 정부보조금 그거, 세금이에요. 지금 세금 받아서 댁네 회사에 투자하라는 겁니까?”

“한우농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연구개발에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 중림대 연구실을 자조금과 공동출자를 통해 새롭게…….”

대찬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자조금 위원장은 잔뜩 불쾌감이 번진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더 들을 것도 없습니다!”

“꼭 자조금이 주도할 필요는 없죠. 기왕지사 올축사를 만드셨으니, 올축사에서 주도적으로 투자를 진행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위원장의 일축에도 대찬은 끝까지 자기 할 말을 마쳤다.

위원장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됩니다. 올해 들은 소리 중에 제일 허무맹랑한 소리예요.”

“그렇습니까? 민망하네요. 저는 엄청 기발하다고 생각했는데.”

“조 대표가 아직 어려서 물정이 어두운 것 같은데요, 이거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지금 쌍수를 들고 비도축육 법제화에 반대하시는 건, 비도축육의 상용화가 거의 확정적이기 때문 아닙니까?”

“확정적이라기보다는…….”

“상용화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법으로 만드나 마나 관심 가지실 이유가 없죠. 비도축육 상용화가 확정적이라면 로튼 프룻츠의 성장도 확정적인데, 그럼 땅 짚고 헤엄치기 아닙니까?”

“확정적이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되면 곤란하니까 반대를 하는 거지.”

“올축사에서 기금을 마련해 투자를 결정하면, 그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 아닙니까. 투자를 통해 창출된 수익으로 축산업계 역시 시대의 변화를 견뎌낼 체력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대찬의 말에도 위원장은 미온적인 반응이었다.

아무리 좋은 말로 말해봤자 대찬의 제안은 자기 잇속을 채우려는 장사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의 머뭇거림에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남들은 돈을 다발로 싸들고 와도 못하는 투자 기회를 위원장님께 드리겠다는데, 너무 오래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장고 끝에 악수 두는 법입니다.”

“허허, 그거야 세일즈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해괴할 뿐이라.”

대찬은 식어가는 음식을 젓가락으로 집으며 툭 던지듯 말했다.

“그럼 강 대 강으로 계속 가실 생각이십니까.”

“…….”

대찬은 위원장을 빤히 쳐다보며 음식을 우물거렸다.

“업계가 아니더라도 자금을 조달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 말을 영업쯤으로 단정하시는 건 결롑니다.”

“아, 무작정 그렇게 단정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양자 간의 문제해결을 위해 제가 제시하는 마지막 타협안입니다.”

“또 그렇게 빡빡하게 구시지 말고요.”

“이걸 거절하시면 저도 있는 힘, 없는 힘 짜내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찬이 그렇게 최후통첩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위원장은 급히 그를 붙들었다.

“조 대표, 왜 그렇게 성미가 급해요. 앉아 봐요. 차근차근 얘기를 해보자고요.”

“제가 드릴 말씀은 더 없습니다.”

“계산기 두드릴 시간은 줘야 할 거 아닙니까.”

그 말을 듣고 대찬은 다시 엉덩이를 주저앉혔다.

이렇게 급히 붙드는 걸로 봐서는, 위원장에게도 협상의 의지는 충분하다는 게 확인되었다.

대찬이 다시 착석하자 위원장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우리가 기금을 조성해서 로튼 프룻츠에 투자하면 우리한테 무엇이 이익이 될지, 그걸 제대로 알려줘야지. 그래야 나도 수긍을 하고 우리 축산농가들도 수긍을 할 거 아닙니까.”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투자 수익을 창출하여 한국 축산업이 도약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요.”

“그것만으로는 명분이 약해요.”

“유의미한 자본을 투입된다면, 축산업계는 로튼 프룻츠의 대주주로서 지분만큼의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즉, 축산업계의 이익이 심대하게 저해되는 것을 저희 회사 내부에서 막아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51퍼센트의 지분을 갖지 않는 이상 별 소용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경영진은 압박을 받습니다. 바깥에서 휘두르는 창칼보다 안에서 쏘는 화살이 더 위력적이란 건 위원장님도 익히 아실 겁니다.”

“으음, 그렇긴 하지만.”

“투자라는 낱말이 부담스러우실 수 있으니 공동으로 연구소를 설립하는 쪽을 제안 드린 겁니다. 그쪽이 명분론으로 더 낫고요.”

“…그래도.”

“저와 나란히 서서 공동서명식을 열고, 악수를 나누고, 나중에 커팅식도 같이 하시고. 그림 괜찮잖아요?”

대찬의 말에 위원장은 잠깐 달콤한 상상에 빠졌다.

그의 말마따나 그림이 괜찮았다.

축산업계 내부에서는 가타부타 논란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자신이 긍정적으로 주목받기에 이것보다 좋은 게 없었다.

그럼 주요 정당의 당선권의 비례대표 순번을 받는 것도 아주 꿈은 아닐 것이다.

위원장의 눈빛이 잠깐 마약 한 사람처럼 되는 것을 본 대찬은 몇 마디 더 얹었다.

“만일 의사가 있으시다면 위원장님께서 제안하고 저희가 받아들이는 쪽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위원장님께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하겠습니다.”

“그러나 내부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로튼 프룻츠 쪽도 우리 쪽에 당근을 줘야 돼요. 그래야 거래가 성립될 수 있어요.”

“로튼 프룻츠는 순이익의 1퍼센트를 축산업 발전기금으로 기탁할 용의가 있습니다.”

당장의 액수 자체로 보면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러나 잠재력이 충분했고, 저 정도라면 로튼 프룻츠가 문제해결에 노력하고 있다며 역성을 들어줄 근거가 될 수 있었다.

위원장은 대찬이 당근 한 개를 건네자 혹시 당근 몇 개까지 뜯어낼 수 있을까 싶어 조심스레 입술을 떼었다.

“그것 외에 별도의…….”

“이것 외에 별도로 염두에 둔 건 없습니다.”

위원장은 아쉬운 듯 입맛을 쩝 다셨다.

이미 순이익의 1퍼센트를 기탁금으로 내겠다는 것 자체도 대찬으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부담을 감수한 건, 법제화가 그만큼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이상 당근을 내놓으라니.

남의 속을 뒤집어놓아도 유분수였다.

위원장은 콧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조 대표의 제안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그럴지는 자신할 수 없어요.”

“그건 이제 위원장님의 정치력에 달려있습니다. 정치하고 싶으시다면서요. 이 정도 정치력은 발휘하셔야 자격이 있으신 것 아니겠습니까.”

대찬은 그것으로 위원장과의 대화를 종결했다.

이제는 순전히 위원장의 기술에 달려 있었다.

그가 업계 사람들을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대찬도 이제 물불 가릴 입장이 아니었다.

음으로 양으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실력을 동원해서, 대찬이 여론의 지지를 받는 한정된 시간 안에 일을 해치울 작정이었다.

대찬이 위원장과 독대를 하던 밀실에서 나오자, 홀의 테이블에서 혼자 식사를 하던 진위생이 몸을 일으켰다.

대찬은 그를 흘끗 보며 물었다.

“다 먹었어요?”

“네, 다 먹었슴다.”

“에이, 비싼 거 먹으라니까 갈비탕 먹고 있었어? 여기 소갈비도 1인 정식으로 잘 나오는데.”

진위생은 머쓱하게 웃었다.

“비싼 거 먹으란다고 진짜 비싼 거 먹으면 속으로 욕하실 거 아닙니까.”

“우리가 어디 알아서 기는 문화였어요? 평소에는 잘만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있으면서 오늘은 웬 내숭이람.”

대찬은 쯧, 혀를 한 번 걷어차고 뒤따라 나오는 위원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게 평화로운 마무리가 될지, 혈전의 시작이 될지는 순전히 위원장님의 수완에 달렸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위원장은 조심스레 대찬의 손을 맞잡았다.

“최선을 다해볼게요.”

대찬은 웃음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진위생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

운전을 하면서, 진위생이 백미러로 대찬의 피곤한 얼굴을 살폈다.

“얘기는 잘 되셨슴까.”

“잘 됐어요. 저쪽에서는 우리 쪽 지분에 투자하든지, 연구소를 공동 설립하든지 돈을 집어넣는 걸로, 그리고 우리 쪽에서는 순이익 1퍼센트를 축산업 발전기금으로 기탁하는 걸로.”

“1퍼센트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뭐, 공연히 저 양반들 막걸리 값으로 쓰도록 놔둘 생각은 없어요.”

“그거야 돈 건네주고 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잖슴까. 쓰는 놈 마음대로지.”

“그 돈, 주고 나서도 정확히 5분의 1은 나한테 지분이 있어.”

“으잉?”

“올축사에 기탁할 거거든. 나도 올축사 상임공동대표예요. 이사회는 공동대표 다섯 명으로 돌아가니까. 나도 5분의 1의 결정권이 있는 거지.”

“그럼 뭐 합니까. 나머지 5분의 4가 한통속일 텐데.”

“이사회에서 그 돈을 축산농민 복리증진과 연구소 연구개발자금으로 쓰자고 할 거예요.”

“그 치들은 자기들끼리 뚝딱 나눠먹고 싶을 텐데.”

“그렇게 밀어붙이라지. 그럼 그 건수 터트려서 이사회 싹 갈아엎고 최대한 입김 후후 불어서 우리 쪽에 든든한 사람으로 앉힐 거예요.”

“그 다음에는 연구개발 명목으로 연구소에 도로 돈 집어넣고요?”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 길 돌아서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오는 거지. 올축사 이사회에 정말 올바른 축산업인들이 포진하는 건 보너스고.”

“참 간사하세요.”

“칭찬이죠?”

“당연하죠. 근데 위원장이 잘 해낼 수 있을까요?”

대찬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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