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406화
“누군 죽을 맛인데 누군 아주 신났네, 신났어.”
“에이, 나는 걱정 하나도 안 해. 조대찬 씨가 어디 금배지 호통에 주눅 들 사람이야?”
“그 자리에서 괜한 심술 부렸다가는 네 비즈니스에도 영향 갈 수 있어.”
“걱정 한 개도 안 되네요, 한 개도.”
윤이영은 여전히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동영상을 무한정 재생했다.
대찬은 국회에 출석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장.
평소 언론의 관심에서는 한 발짝 비껴있던 위원회가 오늘만큼은 제법 조명을 받았다.
대찬은 로튼 프룻츠 소속으로 홀로 국정감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선서. 본인은 증인으로서 증언을 함에 있어 국회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 7조의 규정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서합니다.”
대찬은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증인선서를 마치고 뒷줄에 마련된 증인석에 앉았다.
국정감사에 출석한 사람들은 모두 대찬보다 지체가 높은 사람들이었다.
농협중앙회장을 포함해 농림, 축산, 식품, 해양, 수산에 관련된 요인들이 두루 포진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대찬보다 지체가 높았지만 주목도는 모두 대찬보다 낮았다.
국정감사는 국정을 감사한다는 문자 그대로의 본질이 가장 중요했지만,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국회의원들의 자기 홍보였다.
그들은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하여 언론의 관심을 받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국정감사장에서의 국회의원은 절반은 의원이고 나머지 절반은 광대나 배우가 된다.
국감장에 무슨 동물을 끌고 오질 않나.
드론을 날리질 않나.
노래를 부르질 않나.
그런 수고로운 쇼맨십이 귀찮은 의원들에게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 있었다.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는 것이다.
그냥 얌전히 얘기해도 될 걸 굳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증인을 다그치면서, 삿대질을 해가면서 난리 브루스를 춘다.
그래야 남들이 보기에 일침을 놓는 것처럼 보이고 정말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나.
대찬을 일으켜 세운 의원들은 일단 무작정 다그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국정감사의 증인은 어디까지나 증인일 뿐이다.
심문받으러 온 죄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러모로 세간의 호의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대찬이었으니, 의원들은 공연히 초장부터 그를 두들겨 패지 않았다.
“조 대표님, 요즘 아주 바쁘시죠.”
“예, 많은 분들이 성원해주신 덕에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참, 조 대표님 덕분에 평소 한가하던 우리 상임위도 오랜만에 바쁩니다. 좀 밉기도 해요.”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바쁘게 일하시는 모습을 국민들이 보시면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원래 바빠야 정상인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대찬은 마음의 소리를 간신히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어쨌든 비도축육의 법제화는 저 미덥지 못한 금배지들의 손에 달려있었다.
부당한 지적을 받으면 또박또박 응수해주는 게 맞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굳이 먼저 나서서 분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콧대 높은 양반들을 괜히 건드렸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그 말 한 마디에 로튼 프룻츠의 백년대계가 수포로 돌아가는 수가 있었다.
대찬이 고분고분 대응하자 의원은 웃음을 띠며 계속 말을 이었다.
“아주 대단한 슈퍼스타가 모처럼 국회까지 나와 주셨으니까. 거 이따가 국감 끝나면 나랑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
“사진 한 장이 뭐 어렵겠습니까. 귀인 대접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러나 분위기가 내내 부드럽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동네 후배의 민원을 듣고 대찬을 증인으로 신청한 의원 차례가 오자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그는 후배인 인확협 위원장의 얼굴을 봐서라도 몇 마디 으르렁거려주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다.
그는 날카롭게 대찬을 향해 따끔하게 쏘았다.
“조대찬 증인.”
“예, 의원님.”
“지금 축산업계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걸 증인도 알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게 다 증인 때문에 벌어진 사달이란 걸 모르진 않을 겁니다.”
“그분들을 고통스럽게 만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제 책임도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의원은 쾅, 탁자를 내리쳤다.
액션이 너무 빨랐나?
뜬금없었던 타이밍에 의원은 잠깐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그 머뭇거림을 은폐하기라도 하려는 듯,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수십 만 농가가 증인 한 사람 때문에 비탄에 젖어 있어요! 증인도 듣는 귀가 있으면 광화문에서 처절하게 울어대던 목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누차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축산업계의 고충을 경감하기 위해 대책 마련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겁니다.”
“노력만으로 되겠어!”
“아울러 말씀드리지만, 저희 회사가 추진하는 사업은 국산 재래육보다는 수입육의 지위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국산 재래육의 위상에 영향이 없다고는 못합니다. 그러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그건 증인의 예상이잖아요, 예상.”
“예상을 근거로 삼는 건 의원님도 마찬가지십니다.”
“어허, 증인! 태도가 그게 뭐예요!”
“태도가 문제가 된다면 저지른 죄도 없는 저를 윽박지르는 의원님의 태도를 먼저 문제 삼는 게 먼저 아니겠습니까.”
‘아차, 나도 모르게.’
대찬은 말을 뱉어놓고 뜨끔했다.
이놈의 성질머리는 좀체 수그러지지가 않는다.
최대한 고분고분하게 굴어서 잘 넘기기만 하자던 각오는 청문회가 시작한 지 이십 분 만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대찬이 가시를 세우자 시쳇말로 의원의 꼭지가 돌았다.
그는 탕탕, 두 번 탁자를 내리쳤다.
“지금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으로 국정을 감사하고 있는 국회의원을 모독하는 겁니까!”
“…제가 그 권력을 위임해드린 국민입니다.”
“아니, 그 말이 아니잖아요, 지금!”
“말씀하신 대로 이 자리는 국정을 감사하는 자리이지 자연인 조대찬을 감사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저는 말 그대로 증인일 뿐입니다. 의원님은 무슨 권한으로 저를 윽박지르십니까?”
“지금 국회가 우스워요!”
“아뇨.”
“허, 참!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대찬은 의원의 분노에 그냥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의원과 같은 당 출신인 위원장이 헛기침을 하며 대찬을 다독였다.
“자, 그래도 여기는 국횝니다. 증인은 예의를 갖추세요.”
대찬은 그에게도 몇 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냉수를 벌컥벌컥 마셔 속을 달랜 의원이 다시 대찬에게 쏘아댔다.
“증인은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가지길 바랍니다. 지금 증인 때문에 나라가 들썩이고 있어요.”
“책임감은 무겁게 느끼고 있습니다.”
“사업의 속도를 줄이거나 할 생각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일본의 코테츠 키친이 저희 회사의 자리를 대신할 겁니다.”
“자꾸 일본 들먹이면서 자기 변호하지 마시고!”
“사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구제불능이구만.”
의원은 그렇게 말하고 마이크를 휙 돌려버렸다.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그는 자기 차례를 그대로 넘겨버렸다.
국정감사에서 의원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그야말로 쇼 타임이다.
의원들은 보통 시간을 더 달라고 하면 더 달라고 했지, 있는 시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저 의원이 스스로 자기 시간을 포기한다는 건 더 시간을 써봤자 자기에게 손해만 된다는 뜻이었다.
그건 또 스스로 대찬의 상대가 되지 못하다는 걸 자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대찬 역시 그와 더 대거리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속으로 미소를 머금을 뿐 겉으로는 무표정을 유지했다.
동료 의원이 본전도 못 찾은 걸 본 다른 의원들은 청문회 시작처럼 대찬에게 우호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 농촌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지라, 그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제 딴에는 날카롭게 파고든다고 대찬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히려 그 질문들은 대찬이 자신의 입장을 소명할 기회가 되었다.
“증인은 필래 비바체에 재직할 때부터 쭉 일관되게 윤리경영을 주창해왔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여타 돈 아래 정을 두지 않는 기업인들과는 달리, 증인은 정을 두는 사람 같은데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그 정을 기대해도 되겠어요?”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노력이 결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만.”
“저도 그러기를 희망합니다. 아무래도 의견이 첨예하게 부딪치다 보니 정치권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필요하다면 개입을 해야지요.”
“부디 농축산위의 소속 의원님들께서 수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원의 거센 질문 공세에 대답하기 급급하던 보통의 상황과는 달리, 대찬은 도리어 의원에게 요구하기까지 했다.
의원은 왠지 말리는 느낌이 들어 안경을 고쳐 쓰며 험험, 헛기침을 했다.
“증인은 비도축육이 하루라도 빨리 법제화되는 것이 양측에게 좋다고 발언했더군요.”
“예.”
“이유가 뭡니까. 빠른 법제화는 증인에게는 이롭겠지만 축산업계에는 고통일 텐데.”
“유수의 연구기관과 업계 관계자들은 비도축육이 5년 내에 본격적인 유통과 판매가 이뤄지고, 15년 내에 주요한 먹거리 수단으로 자리 잡는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는 법적인 기반만 마련이 된다면 빠르면 2년, 늦어도 4년 내에는 시중에 유통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만일 법제화가 더디게 진행된다면 저희는 해외 기업에 발목이 잡힐 겁니다.”
“으음.”
“저희가 만들든 해외의 다른 회사가 만들든, 비도축육은 반드시 국민들의 식탁 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척화비 세울 것도 아니고 영영 빗장을 걸어둘 건 아닐 테니까요.”
“그렇겠죠.”
“그때가 되면 저희 회사는 폐업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저희가 가진 건 기술뿐인데 그걸 따라잡혔으니 무슨 수로 살아남겠습니까. 그럼 해외에서 개발된 비도축육이 식탁을 점령할 겁니다.”
“귀사의 비도축육이 해외의 비도축육보다 우위에 있는 점은 무엇입니까?”
“저희는 우리나라에 뿌리를 두었으니 국민감정과 여론, 그리고 정치권의 제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겠죠.”
“그러나 해외기업은 의원님의 말씀대로 돈 아래 정을 두지 않습니다. 눈치도 없고 염치도 없이 그저 밀고 들어올 겁니다.”
“으음…….”
“이미 예정된 미래를 그들에게 약속하느니, 저희에게 약속하는 게 국익을 위해서도 옳고, 축산업계를 위해서도 옳습니다.”
“알겠습니다. 잘 들었어요.”
나머지 시간도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마무리되었다.
다행히 국회방송으로 생중계되는 대찬의 모습이 염소처럼 골골대던 대학교수 2탄으로 전락하지는 않았다.
시간을 마치고, 농축산위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이 대찬에게 다가와 저마다 한 번씩 악수를 건넸다.
대찬에게 필요 이상의 역정을 내던 그 의원만을 제외하고.
대찬은 그들의 악수에 성심껏 응했다.
“우리가 카메라 앞이라고 좀 까칠하게 대했다면 너그럽게 이해해요.”
“아닙니다. 오히려 잘 대해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물론 축산업계의 고충이야 이해하지만 은근히 조 대표가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말씀대로 로튼 프룻츠가 아니라도 해외발 비도축육이 이 땅에 발 들이는 건 시간문제이니까.”
“제 말씀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일로 공사가 다망하신 줄은 알지만 모쪼록 업계와 저희 사이를 정치권에서 잘 중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력하나마 성심껏 돕도록 하지요. 우리 의원실에서도 관련한 문제를 갖고 토론회를 개최할까 해요. 패널로 참석해주시면 좋겠어요.”
“불러만 주시면 참석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 이번에 윤이영 씨가 새로 영화를 찍었다던데.”
“예? 아, 예.”
“우리 아들이 윤이영 씨 굉장한 팬이거든.”
“그랬습니까.”
“예. 그, 기억하시나 몰라. 연예계 소식 전하는 프로그램에서 윤이영 씨한테 한 번 안아주면 안 되겠다고 했던.”
대찬은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네, 기억하죠. 덕분에 이영이가 연애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했죠.”
“하하, 사실 그 녀석이 제 아들놈이에요.”
“그랬습니까.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네요.”
“그래서 그런데, 이번에 윤이영 씨 촬영한 영화 VIP시사회 티켓이 있으면 한 장 얻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어렵지 않죠. 이영이한테 말해놓겠습니다.”
“하하하, 조 대표는 참 시원시원해서 좋아요.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건은 대찬에게 이득이 되었다.
대찬이 나와서 당당하게 했던 말들이 편집되어 뉴스에 방영되었다.
특히 자신을 공격하던 의원에게 떳떳하게 맞서는 모습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걸로 대찬은 더 든든해진 여론의 힘을 등에 업었다.
자기 입장을 피력하면서도 시종 업계의 형편을 생각하는 모습은 인확협의 강경 일변도의 대응을 멋쩍게 만들었다.
그 다음 주에 벌어진 인확협의 2차 집회는 참가자가 절반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