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405화
대찬은 직원의 어깨를 얌전히 잡고 뒤로 물러서게 했다.
“됐으니까 그만해요.”
“대표님, 오냐오냐 해서 될 일이 아니에요!”
“알았으니까.”
대찬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니 직원도 더 나서지 못하고 분을 삼켰다.
대찬은 진위생에게 말했다.
“직원들 데리고 식사하러 가세요.”
“예? 이 상황에 무슨…….”
“법카 진위생 씨한테 있지? 그거 들고 가서 비싼 밥 먹어요. 어차피 당신들 여기 있어봤자 도움 안 돼.”
“대표님…….”
“얼른 가세요. 두말하기 싫으니까.”
대찬이 말에 무게를 실으니 진위생도 더 만류하지 못했다.
진위생은 직원들을 데리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대찬은 이제 막걸리 냄새를 풀풀 풍기는 흥분한 사람들을 홀로 상대해야 했다.
대찬은 그들 중 선두에 서 있는 덩치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그가 저들을 충동질한 장본인인 듯했다.
“선생님들 심정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찾아오셔서 소란을 피우는 건 부적절해 보입니다만.”
“부적절? 그래, 부적절하지. 그런데 네가 치는 깽판도 부적절하지 않냐?”
“…….”
대찬은 입을 닫은 채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영양가 없는 말일 테지만, 지금 그의 말문을 막아봤자 이로울 게 없었다.
대찬이 침묵하니 그는 멋대로 떠들었다.
“부적절하기로 따지면 지금 우리 밥줄 끊으려는 네놈 새끼가 백 곱절은 부적절하지. 그래서 우리가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생각했지. 작은 부적절로 큰 부적절을 교정해주자고.”
“어떻게 하실 셈입니까.”
“이 자리에서 당장 원래 하던 대로 커피, 와인이나 취급하겠다고 약속해. 가짜 고기 팔아서 사람 여럿 잡지 말고.”
“가짜 고기도 아니고 사람 여럿 잡을 일도 없습니다. 물론 지금 하는 일을 포기할 생각도 없습니다.”
대찬의 단호한 말에 덩치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역시 너 같은 놈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여기서 절 때리시게요?”
“왜, 못 때릴 거 같냐?”
“때려주시면 선생님한테 오히려 안 좋을 텐데요.”
“뭐?”
“이 와중에 제가 얻어터지기라도 하면 여론 완전 기울어버릴 텐데.”
“우리가 네놈처럼 일일이 앞뒤 따져가면서 일 벌이는 사람으로 보이냐?”
“예, 그 정도 인지능력은 갖추신 듯합니다만, 아뇨, 갖춰야죠, 사람이라면.”
“이 새끼가……!”
“칠 테면 치세요. 선생님만 고달파지실 겁니다. 가짜 고기 장사 못하게 하겠다는 선생님 목적도 달성 못하거니와 형사에 민사에 법정 들락거리실 일 잦아질 겁니다.”
“이익……!”
현실적인 협박에 술에 취해있던 이성이 점점 돌아왔다.
더 자극해서 정말 한 대 맞아주기라도 할까.
대찬은 잠깐 고민했다.
치아 한두 개가 나가는 한이 있어도, 그래만 준다면 여론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대찬 쪽으로 기울 것이었다.
그러다가 대찬은 관두기로 했다.
그들의 한을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쇼맨십은 지금까지 부린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여겼다.
폭행까지 유도하면 스스로 여기기에 어째 정말 껍데기만 남은 사람이 되는 듯했다.
대찬은 차분하게 말했다.
“선생님들이 주말에 왜 상경해서 이렇게까지 수고하시는지 아주 잘 압니다. 그걸 아니까 충정으로 말씀드립니다. 여기서 더 선을 넘으시면 정말 곤란해지십니다.”
“…….”
대찬의 목소리가 누그러지자, 당장에라도 그를 잡아먹을 듯하던 그들의 기세 역시 적잖이 누그러졌다.
여기서 더 꽥꽥거리기에는 어째 면이 살지 않았다.
대찬은 옅은 웃음을 띠며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선생님들 속이 얼마나 문드러지셨겠습니까. 그래도 저희 쪽에서도 드릴 말씀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이왕 이렇게 여기까지 오셨으니, 저랑 술이나 한잔 하시겠습니까.”
“수, 술을 마시자고?”
“왜요, 막걸리 몇 병에 벌써 주량이 다하신 겁니까? 소주 한 짝은 거뜬하실 거 같으신데.”
“사,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양조장 서너 군데는 먹여 살린 사람이야!”
“그럼 오늘 선생님께 주도 한번 제대로 배워볼까요. 미운 놈 앞에 두고서는 술맛 떨어진다고 물리치지 마시고 눈 딱 감고 저랑 한 잔만 하시죠. 사내대장부답게.”
“…….”
대장 노릇을 하던 사람의 눈동자가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동서남북으로 굴렀다.
여전히 대찬이 미운 놈인 건 당연했지만, 모처럼 저쪽에서 굽히고 들어오는데 물리치는 건 좀생이 같았다.
대찬의 말마따나 사내대장부답지 못했다.
그렇다고 덥석 좋다고 하기에는 또 실없어 보이는 터.
덩치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입술을 오므렸다 펴기만 했다.
그런 그에게 대찬은 가까이 다가가 등을 슬쩍 떠밀며 건물 밖으로 인도했다.
“선생님, 아니, 형님.”
“혀, 형님?”
“술이 왜 있겠습니까. 공연히 분란 일으키라고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허심탄회 툭 터놓고 얘기하라고 있는 거잖습니까.”
“…….”
“저희도 요 며칠 사이 마음고생 많았습니다. 저희도 고충이 있다고요. 당사자끼리 툭 터놓고 이쪽 말 들어주고, 그 다음에는 저쪽 말 들어주고 하자고요. 한우 어떠세요. 아, 직접 기르시니까 자주 드시려나. 아님 옻닭 좋아하세요? 요 앞에 기가 막히게 하는 집 있는데.”
“옻닭 좋지…….”
“그리로 모시겠습니다. 술은 제가 한정 없이 대접할 테니까 양껏 드십시오.”
“어? 어어…….”
어어 하는 사이에 그들의 발걸음은 어느새 옻닭집 앞에 멈췄다.
대찬은 대장노릇을 하는 이의 옆에 착 달라붙어서 열심히 술을 돌렸다.
형님, 형님, 호칭은 벌써 배 다른 아우였다.
대찬은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새로울 건 없었다.
지겹도록 들은 레퍼토리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중요한 건 태도였다.
대찬은 마치 처음 듣는다는 듯이 맞장구도 치고 좋은 말로 받아치기도 하면서 그들의 말을 성의껏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고충도 충분히 어필했다.
“저희가 만드는 고기가 형님들이 직접 기르셔서 내는 고기랑은 게임이 안 된다니까요. 아마 그렇게 만들려면 오십 년도 모자라요.”
“오십 년이 뭐야! 백 년도 모자르다!”
“당연하죠. 저희가 만드는 고기는 생긴 거로 치자면 완자예요. 전자레인지에 3분 돌려서 먹는 미트볼 있죠? 그런 거라니까요.”
“…그래?”
“네! 그래서 당장 5년, 10년 후에 기술이 무르익어서 시중에 내놓는다고 해도 햄버거 패티나 만들고 싸구려 떡갈비나 만들 정도라니까요.”
“으음…….”
“햄버거 가게에나 어울리는 고기다, 이 말씀이에요. 햄버거 가게에서 형님들 기르는 비싼 한우 가져다가 써요? 미국산, 호주산 쓰지.”
“그렇지…….”
“그러니까 저희 경쟁자는 한우가 아니라 코쟁이 소예요. 형님들 모두 그것들 때문에 손해가 막심했잖아요.”
“말도 못하지!”
“저희 타깃은 그놈들이라니까요. 고급시장은 형님들이 먹고, 저급시장은 저희가 먹고, 한국 사람들 먹는 고기를 전부 국산화하는 거예요.”
“…말이 그렇게 되나.”
대찬은 꼴꼴꼴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나중에 저희 회사 한 번 더 놀러 오세요. 저희가 만든, 형님들 말마따나 가짜 고기 맛보여드릴게요. 그럼 확실히 아실 거예요.”
“그러자고…….”
대찬은 활짝 웃으며 건배를 제의했다.
“그건 그렇고, 그래도 제가 시마 회장 콧잔등 푹 눌러줬을 때는 그래도 속이 좀 안 시원하시던가요?”
“시원이야 했지! 쌍놈의 새끼, 어디서 주제 모르고 나불거려, 나불거리기는.”
“그러니까요. 저희가 여기서 풀썩 주저앉으면 일본 놈들이 만든 가짜 고기가 밀고 들어온다니까요.”
“그건 더 안 될 말이지!”
“그렇죠? 그러니까 너무 밉게만 보지 말아주세요. 저희 도와달라는 말씀은 안 드릴게요. 같이 부대끼고 살자구요.”
“…그건 생각해보고.”
어느새 자리의 분위기는 많이 물렁해져 있었다.
잔뜩 술을 마시고, 대찬은 그들을 좋은 호텔에서 재워주었다.
푹신한 침대에 누운 그들은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그놈이 제법 싹싹해요? 요즘 젊은 애들 같지 않게.”
“…그렇긴 해.”
그들은 쩝, 입맛을 다시고 몸을 모로 누여 잠이 들었다.
대찬은 이날의 위기를 소주 몇 병과 옻닭 몇 마리, 하룻밤 숙박으로 잘 때웠다.
하지만 본질적인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성에 차지 않는다는 평가를 들은 인확협 위원장은 바로 내주에 2차 집회를 예고했다.
인확협 위원장은 집회만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정치권에 닿은 연줄을 최대한 가동했다.
고향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 지역구 국회의원을 만나 민원을 넣었다.
“형님, 진짜 요즘 너무 정치권에 배신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아우님 기분은 알겠는데, 쉽지가 않아. 당 지도부에서 조대찬이 밀어주기로 작정을 했으니 내 말은 씨알도 안 먹힌다니까.”
“진짜 이럴 겁니까? 섭섭합니다, 섭섭해. 내가 형님 선거 때 발 벗고 뛰었는데.”
“알지, 내가 왜 몰라.”
“그럼 말이라도 편을 좀 들어주면 어디가 덧납니까? 지도부 분위기야 알 게 뭐예요. 어차피 공천 못 받아도 되잖아요. 공천 못 받아도 우리가 밀어주기만 하면 무소속으로 나와도 뱃지 다는 건 일도 아닌데.”
“이거 참.”
“우리 평생 가기로 했잖아요. 도와주세요, 좀.”
형님 의원은 들었던 술잔을 탁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알았어. 내 힘 좀 써볼게.”
형님 의원은 아우의 청을 아주 물리칠 수 없었다.
인간적인 정 때문이 아니라, 그가 등을 돌리면 다음 선거 때 자신의 재선이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까닭이었다.
지도부의 눈치도 봐야 하고, 동네 후배의 눈치도 봐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한스러웠다.
그는 지도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동네 후배의 인심도 잃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국정감사가 한창이었다.
그는 대찬을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신청했다.
지도부에는 대찬에게 트집을 잡으려는 게 아니고, 한창 뜨거운 감자인 논쟁을 국회에서도 다뤄야 하니 증인으로 국회에 출석시키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고 완곡하게 이유를 말했다.
당 지도부 역시 이를 거부하진 않았다.
축산업계의 표 역시 중요한 마당이었다.
괜히 거부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니 모르는 척 증인으로 채택하도록 눈감아주었다.
반대편 당에서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대찬의 증인채택에 반대하지 않았다.
대찬의 성수동 집으로 증인출석요구서가 도착했다.
“나 참, 이제는 국회 나들이까지 가게 생겼네.”
대찬은 출석요구서를 저만치 미뤄두고 한숨을 쉬었다.
영화 한 편을 마치고 잠깐의 휴식기에 들어간 윤이영은, 대찬의 성수동 집을 거의 자기 집으로 삼았다.
대찬이 눈코 뜰 새가 없으니 자진해서 그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나섰다.
대찬이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했지만 윤이영은 한사코 휴식기에 집안일을 고수했다.
자신이 바쁠 때 너도 이런저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똑같이 해주는 게 순리 아니겠냐.
그때 하도 잔소리를 많이 들어서 이골이 났으니 너도 한번 당해보라고 윤이영은 응수했다.
국회 증인출석요구서가 등기로 전달된 이날도, 윤이영은 편한 차림으로 성수동 집에 있었다.
그녀는 그걸 보자마자 배를 잡고 웃었다.
“이야, 조대찬, 드디어 국회까지 진출하는 거야?”
“웃을 일이야?”
“안 웃을 건 또 뭐야. 그만큼 핫한 인물이란 뜻인데.”
“좋은 일로 부르면 또 몰라. 딱 봐도 공개적으로 조인트 까려고 부르는 거 아니야.”
대찬은 인터넷으로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갖은 수모를 당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여주었다.
재벌 회장이든 사학 이사장이든 저명한 학자든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유권자를 의식해 오버해서 내지르는 금배지의 고성에 그야말로 일망타진.
달달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그것보다 더 떨리는 목소리로 소심하게 대답하다가 혼쭐이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대찬은 머리를 싸쥐었다.
“나도 저 꼴 날 텐데.”
“과연 그럴까?”
“안 그러면 어떡해. 금배지한테 딱 찍히는데.”
“너는 그럴 성질머리가 못 돼. 따박따박 말대꾸해야 직성이 풀리잖아.”
윤이영의 말에 대찬이 눈을 흘겼다.
“너 언젠가부터 오빠라고 안 하고 너라고 한다?”
“아유, 우리 사귄 지 몇 년짼데 여태 오빠 소리가 듣고 싶어?”
“얼씨구.”
윤이영은 배시시 웃으면서 대찬이 틀어놓은 동영상을 반복했다.
몇 년 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불려 나와 국회의원의 불호령에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며 염소 목소리를 내던 한 대학 교수의 동영상을 틀어놓았다.
“의… 원… 님… 그, 그건… 죄송합니다……. 기, 기, 기, 기, 긴장을 해, 해, 해서…….”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눈동자는 정처 없이 흰자위 안에서 굴러다니고.
그걸 또 풍자와 해학에 능하고 성질이 짓궂은 한국 사람들이 가만 놔두지 않았다.
염소교수 리믹스 버전이라든지 EDM 염소라든지 하는 가혹한 편집으로 실컷 그 교수를 능멸했다.
윤이영이 그걸 틀어놓고 낄낄거리고 있으니 대찬이 툴툴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