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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403화 (403/556)

난 할 수 있어 403화

“힘으로 따지면 어디 저희가 업계에 상대나 되겠습니까. 어림없죠. 그래도 힘을 가진 업계는 버틸 여력이 있지만, 이번에 법제화가 좌절되면 힘없는 저희 회사는 그대로 고꾸라집니다.”

“그건 또 엄살이라고 밖에…….”

대찬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었다.

“엄살이 아닙니다. 저는 절박한 심정으로 위원장님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만일 외부 활동을 자제할 의사가 없으면, 우리도 올축사 밖에서 투쟁의 방법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위원장은 대찬이 제발 뜻을 꺾어주기를 바랐다.

그가 밖으로 내뱉는 말은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위원장은 절대 권력을 가진 독재자가 아니었다.

자조금은 각 농가들이 십시일반 갹출해서 만든 단체였다.

위원장은 선출된 대표일 뿐이었다.

그는 자조금 내부에서 심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조대찬이한테 이리저리 휘둘리지 말고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하라는 것이 자조금 내부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만약 조대찬이가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당장 광화문 네거리에 총집결하자고 외쳤다.

그런 그들의 분노를 억지로 무마시키고 있는 게 위원장이었다.

그러니까 따지자면 위원장은 비둘기파였다.

그는 극단적인 행동은 당장의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자신의 개인적인 진로도 고심했다.

그는 다음 총선에 비례대표 앞 번호를 받고 싶었다.

축산업계가 정치권에 압력을 넣는다지만, 그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정치권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유력가에게 줄을 대야 하는 상황에서,

그런데 대찬이 자꾸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다면, 그 역시 자조금 내부의 기류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대찬이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허락하면 모를까.

지금처럼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을 허락하지 않으면 그도 별 수 없었다.

대찬도 그의 신세를 잘 알고 있었다.

굳이 정보원을 심어 내부기류를 염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위기상황에서 강경파가 온건파를 누르고 득세한다.

그런 현상은 수뇌부의 통제력이 약한 집단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었다.

대찬은 매파와 비둘기파 중에 자신에게 더 손쉬운 상대를 고를 수 있었다.

반면에 업계는 그럴 수 없었다.

완전히 대찬이 쥐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이미 로튼 프룻츠는 대찬의 존재감이 백 퍼센트라도 해도 좋을 만큼이다.

대찬이 조금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면 비둘기 위원장를 파트너로 계속 둘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강경 드라이브로 일관하면 비둘기는 송골매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맨 처음의 대찬은 비둘기와 협상하기를 원했다.

어쨌거나 시마 회장의 일이 있기 전에는 로튼 프룻츠의 입장이 불리했다.

업계에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대화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도출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정치권과 여론이 모두 대찬의 편에 서있었다.

지금의 대찬에게 굳이 온건한 사람을 대화 파트너로 삼을 필요가 있을까?

누군가 대찬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굳이……?’

그런 애매하고 미온적인 대답이 대찬의 입 안에서 굴렀다.

온건파와의 대화가 계속되면 대찬은 때를 놓치고 만다.

저들의 온건함은 타고난 성품이 아니었다.

다분히 전략적인 온건함이었다.

대찬의 기세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지면.

그들은 다시 사나운 발톱을 내세울 것이다.

사근사근한 우계돈 과장을 치우고 다시 대찬의 앞에서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했던 예의 그 차장을 내세울 것이다.

그런 상황이 빤히 예견되는 데도 업계의 지연전술에 응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춘추시대의 송나라 양공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음에도 정정당당한 싸움을 위해 여러 번의 기회를 포기했던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었다.

대찬은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다.

유예기간 두는 것, 가능하다.

그러나 올축사 내부의 허울만 좋은 공염불이 아니라, 법안의 부칙으로 유예기간을 상정해놓자.

그리고 유예기간 후에 거쳐 비도축육에 식용 육류의 지위를 부여하는 별도의 논의를 거칠 이유가 없다.

유예기간 후, 바로 비도축육이 유통되고 판매될 수 있도록 하자.

유예기간은 최장 2년까지는 가능하다.

5년은 너무 늦다.

그때는 이미 미국이든 일본이든 이스라엘이든 네덜란드든, 법제화를 마친 상황일 것이다.

그들보다 앞서나가려면 1년이 가장 적절하고, 아무리 늦어도 2년 이상 설정해둘 수 없다.

이는 대찬이 양보하고 싶어도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었다.

이걸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올축사 내부에서의 대화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저희는 저희가 양보할 수 있는 최저를 제시했습니다. 더 이상의 에누리는 어렵습니다.”

대찬의 강고한 반응에 한우 자조금위원장은 난처한 듯 뒤통수를 긁었다.

“조 대표님, 모두가 어렵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한 발짝씩 뒤로 가야 희망이 있어요.”

“죄송하지만 업계에서는 어떤 어려움을 감수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유예기간으로는 5년이 적절한데 3년까지 물러서지 않았습니까.”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말씀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조 대표, 우리 사정도 생각해줍시다. 조 대표의 회사는 조 대표의 독단으로 운영할 수 있으니 단일인격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예.”

“하지만 우리는 아니에요. 이 나라 축산농가가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한우농가만 따져도 십만 가구입니다, 십만 가구.”

“개략적인 숫자는 저도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위원장은 답답하다는 듯 깊은 시름을 토했다.

“그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나한테도 명분은 줘야 합니다. 지금 조 대표는 손톱만큼도 나한테 명분을 허락하지 않잖아요.”

“지금까지 제가 손톱만큼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신다면 섭섭합니다. 대체 위원장님 손톱은 얼마나 큰 겁니까?”

“기어코 나 갈리고 독불장군이 이 자리 앉는 꼴을 봐야 직성이 풀리겠습니까?”

“위원장님이 제게 독불장군보다 낫게 느껴지는 부분은 오로지 제가 말할 때 고개를 끄덕여준다는 것뿐입니다. 그것 말고 독불장군보다 나을 게 도대체 뭐가 있습니까.”

“허허, 사람 참. 젊은 사람이 꽉 막혔네. 이래서 무슨 대화가 되나.”

“유예기간 2년 후 비도축육 법제화. 이게 저의 최종안입니다. 그밖에 기타 부가적인 혜택을 약속드릴 수 있을 뿐, 법에 관한 문제에서는 더 이상의 양보는 불가능합니다. 제 한 보 뒤는 낭떠러집니다.”

“허허.”

결국 이 날 회의도 짜장면 두 그릇씩만 해치우고 아무 결론도 내지 못했다.

로튼 프룻츠 측도 업계가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으려 한다며 분개했지만, 그 정도는 오히려 업계 내부에서 더 심했다.

깜깜한 밤에 올축사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위원장의 앞을 몇 사람이 가로막았다.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얼굴을 가까이 가서 확인한 위원장은 무의식적으로 탄식했다.

잘 아는 얼굴들이었다.

“멀리 남쪽에서 서울까지는 뭐 하러들 오셨습니까.”

“뭐 하러들 왔는지는 위원장님이 더 잘 아실 텐데.”

“협상이 만족스럽지 않은 건 압니다. 근데 이래야 우리가 살아요.”

“언제까지 이 꼬락서니를 참고 있으란 말이요?”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이대로만 가면 우리가 게임 딴다니까.”

위원장의 앞을 가로막은 이들은 업계에서도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강경파였다.

그들은 인확협이 올축사로 이름이 바뀌자 올축사를 탈퇴, 인확협의 이름을 다시 내걸고 강력한 실력행사에 나설 것을 주장했다.

인확협의 이름도 기존의 인조고기 확산방지를 위한 ‘범국민협의체’가 아니라, ‘비상대책협의위원회’로 고쳐 불렀다.

그러니까 자조금 위원장도 위원장인데, 저쪽 역시 비상대책협의 위원장이었다.

그들은 자조금 위원장의 물에 물 탄 듯 미적거리는 태도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무리의 중심에 선 인확협 위원장은 체격이 건장하고 툭 튀어나온 아래턱은 고집스러워 보였다.

“조대찬이 저 새파란 놈이 쇼하는 꼴을 보고도 그런 한가한 말씀이 나오시오?”

“허, 거 참…….”

자조금 위원장은 자신의 전략을 이해해주지 않는 동지들이 원망스럽고 답답했다.

“당신도 쇼하라고 우리가 밀어줘서 위원장 노릇 하는 거 아뇨. 쇼를 해야 정치권이든 여론이든 반응할 거 아니냐고.”

“지금은 시기가 안 좋다고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메뚜기도 한 철입니다. 지금만 잘 넘기면 가볍게 조대찬이 고꾸라뜨릴 수 있어요.”

“그러다 정말 조대찬이가 뒷구멍으로 해먹으면 그땐 우린 어쩔 거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밖에 더 하냐고.”

“때를 기다려요, 때를.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어련히 알아서 잘 못하니까 이러는 거지! 이런 식으로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무슨 작당모의를 하는지 의심을 안 할라야 안 할 수가 없어!”

“이봐요! 당장 그 말 취소해요. 작당모의가 뭐야, 작당모의가!”

인확협 측이 뱃살을 튕기니 자조금 위원장도 언성을 높였다.

자조금 위원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니 인확협 측은 그를 더 맹렬히 공격했다.

“지금 댁이 정치권에 비례 앞 순번 받으려고 기웃거리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 집 암송아지 튼튼이 25호도 알아요.”

“지금 댁이라고 했어요?”

“그것만 시비 거는 걸 보니 정치권 기웃거리는 건 사실인가 보네.”

인확협 위원장이 이죽거리자 주변의 동료들이 역시, 그럼 그렇지 따위의 추임새를 넣었다.

자조금 위원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거 명예훼손이야, 명예훼손!”

“아유, 그럼 고소하시든가요. 암튼 우리는 댁 믿고 우리 미래 못 맡깁니다.”

“나 못 믿으면 어쩔 건데요.”

“우리 단독 행동에 들어갈 겁니다. 말리지 말아요.”

그러자 자조금 위원장의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었다.

“진짜 무식들 하네, 무식들 해. 단일대오 흐트러지는 거야 말로 조대찬이 입에 꿀 떠먹이는 일인 줄 알고나 그런 소리를 해요?”

“남이사 꿀을 떠먹이든 부루펜을 떠먹이든 알 바요? 단일대오를 원하면 그쪽이 위원장 직함 내려놓고 우리한테 맡겨요.”

“당신들한테 맡겼다가는 진짜 시장 할머니까지 저 가짜고기 팔게 생겼다니까!”

“이젠 더 이상 프락치에 안 속아요. 우릴 아주 멍청이 상병신으로 아는 모양이네. 우리가 어떻게 해내나 보쇼, 이 답답한 양반아.”

인확협 관계자들은 침을 뱉듯 그렇게 말을 뱉어놓고 자조금 위원장에게서 등을 돌렸다.

자조금 위원장은 그들의 뒤를 쫓아 아서라, 제발 그러지 말라고 자존심 다 버리고 간곡하게 요청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인확협은 올축사와 다른 투쟁노선을 선언하고 개별행동에 돌입했다.

그들은 미적지근한 올축사보다 일반 농가들에 더 잘 먹혔다.

적어도 그들의 행동은 눈에 보이고 논리가 간단했다.

무작정 시간만 끌면 이긴다는 자조금 위원장의 주장보다, 화끈하게 한 판 대거리를 하자는 인확협의 주장이 더 그럴듯하게 다가왔다.

여러분, 서울은 안전합니다. 안심하시고 생업에 종사하십시오.

그 말은 임진왜란과 6.25를 거쳐 못 믿을 말이었다.

그들은 꾸역꾸역 상경하는 쪽을 택했다.

인확협은 보유한 채널을 최대한 가동하여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뜻을 전파했다.

전단지 같은 아날로그 방식부터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디지털 방식까지 모두 사용되었다.

국민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농가에게는 안정적인 소득을!

투쟁! 투쟁! 투쟁!

농가들은 그들의 주장에 호응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상경을 선택했다.

자꾸 ‘테레비’에서는 비도축육이다 뭐다, 축산업계가 반발한다 뭐다 말은 많은데 단체에서는 침묵과 기다림으로 일관하니 그들도 몸이 달아있던 참이었다.

대찬이 환하게 웃으며 여야 정치인들과 악수를 나누고 환담을 나눌 때, 도대체 위원장이란 양반과 간부란 양반들은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대표자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그건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토요일 광화문 광장, 예상인원은 2만 명.”

진위생은 입수한 정보를 대찬에게 전달했다.

대찬의 표정은 묘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2만 명. 많이들 올라오시네. 수고스럽게.”

“괜찮을까요.”

대찬은 검지로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숨죽이고 예의주시합시다.”

“설마 우리 회사까지 밀고 들어오는 건 아니겠죠? 광화문에서 강남까지 도보로 올 거리는 아니니까…….”

대찬은 진위생을 흘끗 보고 말했다.

“설마가 사람 한두 번 잡나. 모든 가능성은 열어둬야 해.”

“…설마.”

토요일.

광화문 앞에는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모였다.

어림짐작으로 만 명쯤 되었다.

정작 당일이 되니 생업에 치여 쉽게 서울까지 올라오지 못한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예상보다 적다지만 절대적으로는 결코 적은 인원이 아니었다.

게다가 열의가 낮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았으니, 모인 사람들은 정예부대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야말로 ‘엑기스’였다.

그들은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가지각색의 깃발을 나부끼며 광화문 앞에 포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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