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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385화 (385/556)

난 할 수 있어 385화

로튼 프룻츠 임직원들은 MFG그룹의 동향을 왈가왈부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침을 내린 대찬 역시 MFG그룹의 상황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대찬은 박 이사와 나란히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면서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대화를 나눴다.

박 이사가 역시 MFG그룹의 일로 운을 뗐다.

“그래도 투자자들한테는 다행이네요. 돈 싸들고 튀기 전에 잡혀서.”

“이미 써버린 돈도 적지 않아서 전액 회수는 어렵다지만 그래도 그쯤 하기를 다행이죠.”

그렇게 시시하게 말을 주고받는 대찬에게 맹윤주가 다가왔다.

“대표님, 소회의실로 가주시면 안 될까요?”

“갑자기 왜?”

“지금 소회의실에 대형 케이크 하나가 배달 왔거든요. 대표님이 개시라도 해주셔야 저희가 먹죠.”

그러자 대찬은 싱겁게 웃었다.

“난 상관없으니까 먼저들 들어요.”

“안 돼요.”

“평소에는 대표 알기를 껌으로 아시는 분들이 갑자기 왜 챙기고들 그러실까?”

맹윤주는 멋쩍게 웃었다.

“케이크 보내주신 분이 가장 먼저 대표님이 꼭 드시라고 하셨거든요. 같이 보내주신 쪽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어요.”

“왜 나더러 꼭 먼저 먹으래? 거기다 독 탄 거 아니야?”

대찬의 말에 맹윤주는 헛웃음을 지었다.

“왜 그렇게밖에 생각을 못하세요?”

“아니면 그럴 이유가 뭐가 있어요.”

“케이크 보내주신 분이 대표님한테 하도 감사하셔서 그런 거거든요. 정 불안하시면 제가 기미상궁 해드리고요.”

맹윤주의 말에 대찬은 다소 겸연쩍어졌다.

“나한테 고마울 게 뭐 있대요?”

“일단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소회의실로 가세요.”

맹윤주는 대찬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그를 소회의실로 이끌었다.

졸지에 대화상대를 잃은 박 이사도 뒤를 따랐다.

소회의실로 가니 대형 케이크라고 했던 맹윤주의 말로는 다 하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케이크가 있었다.

괴물 케이크 혹은 거대 케이크 정도가 적당할 정도였다.

대찬은 그걸 보자마자 혀를 내둘렀다.

“이게 다 몇 층이야? 재벌집 결혼식에서도 이런 케이크는 안 쓰겠네.”

“안 보셨으면 보내신 분이 섭섭하실 뻔했어요. 그냥 케이크겠거니 하시고 넘어갔을 거 아니에요?”

대찬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여기 보내신 분이 동봉하신 쪽지예요. 대표님 앞으로 돼있어요.”

대찬은 그 쪽지를 받아서 펴보았다.

다른 직원들도 슬금슬금 대찬에게 다가와 같이 쪽지를 읽었다.

-로튼 프룻츠 조대찬 대표님께.

안녕하세요, 대표님.

저희 아버지는 MFG그룹에 집안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거금 2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어머니와 저희 형제가 극구 만류했지만 아버지께서는 가족들 몰래 2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나중에 반드시 큰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결과는 아시다시피 참담했습니다.

대표님과 고범수, 그 원수 같은 인간이 나온 좌담회를 보면서 제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버지가 전 재산을 MFG그룹에 밀어 넣은 후, 저는 일말의 근거 없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아버지가 옳기를 바랐습니다.

아버지가 나중에 몇 배의 이익으로 돌아온 투자금을 자랑하며 장난스레 저희를 질책하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대표님의 말이 한 마디, 한 마디 진행될 때마다 그 희망은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때문에 예상보다도 빨리 저희의 기대를 무너뜨린 대표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순간 너무나도 참담한 마음에 그랬던 것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내 저는 대표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만약 대표님이 방송에서 MFG그룹의 민낯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저희 가족을 비롯한 숱한 피해자들이 엄청난 돈을 잃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마 한강에 몸을 던지거나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우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겠죠.

사기꾼들의 계획이 무르익기 전에 먼저 손을 써주신 덕분으로 원금을 거의 온전하게 보전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집은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무엇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할까 고민하다가 제가 가장 자신 있는 케이크를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커다란 케이크는 저도 처음 만들어봅니다.

그래도 조대찬 대표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무리했습니다.

모쪼록 이 케이크를 첫 번째로 맛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대찬은 그 쪽지를 보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양심에 찔리기도 했다.

그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맹윤주에게 말했다.

“저분들 구제하려고 이 난리굿판을 벌인 건 아닌데… 조금 부끄러워지네요.”

“에이, 좋은 게 좋은 거죠. 저희한테도 좋은 거고, 저분들한테도 좋은 거고.”

“그건 그렇지만.”

맹윤주는 여전히 멋쩍어하는 대찬의 팔을 케이크 앞으로 끌었다.

“아, 됐고요. 빨리 케이크나 드셔주세요. 지금 기다리는 사람들 안 보이세요?”

“대표로서의 권위를 좀 지켜주면 안 될까요.”

“케이크 드시면 지켜드릴게요.”

대찬은 맹윤주에게 찌릿 눈빛을 쏘고 그녀의 주문대로 했다.

준비된 일회용 숟가락으로 푹 퍼서 한 입 가득 케이크를 먹었다.

달콤한 크림의 맛이 입안에 강렬하게 퍼졌다.

그리고 이어서 푹신한 빵이 윗니와 아랫니에 닿아 부서졌다.

대찬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맛있네.”

“좋은 일 한 대가로 드시는 케이크라 더 맛있으실 거예요.”

대찬이 개시하자 로튼 프룻츠 직원들은 우르르 몰려와 저마다의 몫을 취했다.

그들 역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맹윤주의 말마따나 좋은 일의 대가라 그랬다.

지옥에서 구제받은 MFG그룹 투자자들의 반응은 단순히 케이크 하나에서 그치지 않았다.

좌담회 이후, 뜸해졌던 로튼 프룻츠로의 투자문의가 다시 왕성해졌다.

오히려 투자자를 응대하는 직원들은 그 전보다 더 바빠졌다.

투자문의를 해오는 사람들 중에서는 MFG그룹의 투자자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물론 MFG에게서 겨우 건져낸 투자금을 다시 로튼 프룻츠에 붓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MFG 투자자들 중에서 로튼 프룻츠로의 재투자를 결정한 이들은 전체 숫자를 따졌을 땐 당연히 소수였다.

대부분은 다시는 투자의 ‘투’ 자도 꺼내지 않겠다며 학을 뗀 상황이었다.

로튼 프룻츠로 다시 쌈짓돈을 싸들고 온 이들은 전체적으로는 소수였지만 로튼 프룻츠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금액으로만 따져도 족히 백억은 되었다.

대찬은 로튼 프룻츠의 문을 두드리는 그들에 대한 심경이 복잡하고 미묘했다.

“돈 싫다는 사람 어디 있겠냐마는…….”

그들의 돈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찜찜한 얼굴을 하는 그를 보고, 민승기가 웃으면서 어깨를 잡았다.

“주저할 이유가 뭐가 있냐.”

“이성적인 이유는 아니에요. 느낌이 조금 그래서.”

“그래서, 안 받으려고?”

대찬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럴 리가요.”

“그래, 받아. 그 돈 받고 더 무거운 책임감 느끼면서 열심히 하면 오히려 부담이 아니라 약이 될 거야.”

대찬은 웃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전 한복판의 고층건물에 위용 넘치게 내걸렸던 MFG그룹의 간판이 내려왔다.

고범수와 그의 일당들에게는 엄혹한 법의 심판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들 역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 항소하고 상고하여 법정공방은 지루하게 이어지긴 할 것이었다.

그건 그들이 수의를 입을 시간을 조금 줄여줄 뿐이었다.

이미 여론의 뭇매를 맞은 사건에 반전은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던져주는 콩고물을 받아먹으며 뒷배 역할을 해주었던 이들.

그들도 자연히 좌불안석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범수의 돈을 먹고 자란, 엄밀히 말하면 고범수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사람들의 돈을 먹고 자란 급조된 단체들은 모조리 유령이 되었다.

무슨 시민사회이사회.

무슨 봉사자연맹.

이름만 거창한 단체들은 자연스레 해산되었다.

MFG그룹 측의 금전적 지원을 받아 이름을 빌려주었던 카이스트도 언론의 취재에 자신들은 관계가 없다며 발뺌을 했다.

이미 완전히 맨몸을 드러낸 MFG그룹을 향해 언론들이 달려들었다.

반격의 여지가 없으니 물어뜯는 이빨과 할퀴는 발톱은 더 무자비했다.

MFG그룹을 인용하며 우회적으로 로튼 프룻츠를 공격하는 데 재미를 봤던 극동일보도 어쩔 수 없이 MFG를 공격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MFG그룹을 대대적으로 공격하는 극동일보를 읽으며 대찬은 미소를 띠었다.

“우리 구본진 기자님 빠드득 이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자신의 이름을 도용당한 청와대와 여당 역시 MFG그룹을 무참히 해체하는 움직임에 동참했다.

그들에게는 대단한 노력이 요구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저 말 한 마디 얹으면 그만일 뿐이었다.

그마저도 귀찮으면 불쾌한 듯 콧잔등만 한번 씰룩였다.

그러자 임기 막바지라지만 여전히 그들의 눈치를 살살 살피는 세력이 날카로운 칼끝으로 MFG그룹과 관계자들을 무참히 다스렸다.

로튼 프룻츠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던 MFG그룹은 세상에 버섯떡갈비 제조기술만 남기고 허망하게 사라졌다.

로튼 프룻츠는 MFG그룹의 멸망을 딱히 자축하고 싶지도 않았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듯, 물 먹은 씨앗이 발아하는 걸 지켜보듯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이번 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건 로튼 프룻츠의 외부인들이었다.

허운과 송희근, 필래에서 인연을 맺은 대찬의 동료들.

대찬은 그들에게 논란이 되지 않는 선에서, 물의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하게 보답했다.

대찬은 특히 평일이고 주말이고 밤낮 안 가리고 수고해준 허운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이번 일은 형의 거의 8할은 해낸 셈이야. 고마워.”

“난 살면서 1인분 이상 해낸 적이 없는 인간인데 이번만큼은 내가 너무 자랑스럽다. 사랑스럽다.”

“그래, 인정, 이번만큼은.”

허운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로튼 프룻츠가 MFG그룹을 좌담회 한 번으로 침몰시키자, 로튼 프룻츠의 주가는 더 올랐다.

대중의 관심을 받을 만한 토양이 완벽하게 갖춰졌다.

배양육이니 비도축육이니 하는 신사업부터가 언론에서 다루기에 매력적이었다.

같은 덩치였어도 계속 커피 원두, 포도주만 취급했다면 언론에게는 그다지 어필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비도축육은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기사거리를 던져줄 수밖에 없는 분야였다.

자연히 기자들이 악어의 벌린 입에 달려드는 악어새처럼 로튼 프룻츠에 밀착했다.

비도축육도 비도축육이지만, 로튼 프룻츠는 이제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회사이기도 했다.

여러 방면으로 호사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그런 데에는 오너인 대찬의 요인도 막대했다.

그에게는 오만가지 수식어가 따랐다.

필래에서의 족적도 그렇거니와 쵸 후쿠히로의 선택을 받은 일, 좌담회에서의 모습도 대중 인지도를 늘리는 데 효과적이었다.

물론 윤이영의 남자라는 점도 톡톡히 한몫했다.

이제는 윤이영이 자기보다 유명해지는 것 아니냐며 장난 섞인 견제를 할 정도가 되었다.

이즈음 돼서야 대찬은 겨우 커피남이라는 별명을 버리고 조대찬이라는 이름 석 자로 제대로 불리게 되었다.

로튼 프룻츠가 점점 그럴 듯한 면모를 갖춰가는 사이.

필래그룹 측에서도 지각변동이 관측되었다.

서청수 회장은 김왕장, 최측근 3인방을 한자리에 불러들였다.

그는 그 앞에서 목소리에 무게를 실어 말했다.

“나도 이제 환갑이 훌쩍 넘었어. 봐봐, 염색 안 하면 검은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다고.”

그러자 왕윤수 사장이 미소를 머금었다.

“세월에 장사 없죠. 회장님도 늙고, 저희도 늙어가고 있습니다.”

“아까워 죽겠어. 이 많은 돈,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을까봐.”

“하하, 그렇다고 은퇴하실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수만 명의 밥줄이 회장님 손에 달렸는데.”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면 무섭다니까.”

“그것 역시 회장님이 감당하셔야 할 일이죠. 누가 대신 감당하겠습니까.”

서청수 회장은 푸흐흐,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대신 감당해줄 사람, 딱 하나 있지.”

“예? 아…….”

눈치 빠른 왕윤수 사장은 서청수 회장의 뜻을 짐작했다.

그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서청수 회장을 바라봤다.

“서원웅 사장 말씀이십니까.”

“그래.”

김태준 사장도 서청수 회장을 흘끔 바라보며 물었다.

“서 사장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제 센터로 불러들일까 하는데.”

그 말에 가장 눈치가 밝은 왕윤수의 귀가 쫑긋했다.

“그룹 전체의 일을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맡긴다기보다는 가르친다는 말이 맞겠지.”

“예, 아직 갈 길이 구만 리니까요.”

서청수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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