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할 수 있어-384화 (384/556)

난 할 수 있어 384화

“이놈의 새끼, 당장 서울로 올라가서 물고를 내야지!”

“우리 사위가 이 근처에서 학원 크게 해요. 지금 놀고 있는 버스 있으니까 그걸로 움직입시다! 내가 운전할게!”

“우리 집에도 봉고차 있어요. 이거 탈 사람은 타세요!”

“숙박들은 걱정 마세요! 여관 단칸방이라도 내가 쏠 테니까!”

“아유, 김 사장 무리하는 거 아니야?”

“어차피 이 빌어먹을 회사에 10억 부었어요, 10억! 여러분들 하룻밤 재워봤자 돈 천이나 나오겠어요? 10억 날리나, 10억 천 날리나 그게 그거지.”

그렇게 교통편부터 해서 잠잘 곳, 서울까지 올라가는 동안 허기를 달랠 간식거리까지 착착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성난 투자자들이 송희근에게 재차 확인했다.

“고범수 그 새끼 거기 있는 거 맞지?”

“네, 지금 거기 있는 건 확실합니다. 서두르세요. 언제 튈지 모르잖아요.”

“그렇지, 얼른 갑시다!”

투자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서울로 상경했다.

대전용맥학원이라고 큼지막하게 써 붙인 노란 버스를 위시해, 승합차 두 대와 여러 대의 세단이 뒤따랐다.

마치 영화 매드맥스에 나오는 미친 군단처럼 그들은 북쪽을 향해 질주했다.

송희근의 작은 승용차가 선두에서 그들의 길라잡이 역할을 했다.

쏭과장TV의 시청자들은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철저한 제3자로서 그 위용을 보고 팝콘을 씹으며 키득거렸다.

이해당사자인 로튼 프룻츠 임직원들은 팔짱을 낀 채 자못 심각한 얼굴로 상황을 시시각각 파악했다.

대찬은 고범수의 은신처 앞에서 잠복하는 허운을 통해 고범수의 행방을 계속 귀띔 받았다.

그리고 그 정보는 다시 송희근에게 넘겨졌고, 이어 자연스레 투자자들에게도 전해졌다.

이제 고범수는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였다.

한편 방송에서 민낯이 완전히 드러난 고범수는 측근들과 함께 긴급작전회의에 돌입했다.

그들에게 남은 건 36계 줄행랑뿐이었다.

고범수는 심각한 얼굴로 측근들에게 말했다.

“전쟁에서 싸움을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질서 있는 퇴각이다. 이제 우린 그걸 생각할 때야.”

“참 통탄스럽습니다. 그 망할 어린놈의 새끼 때문에 하루아침에…….”

울분을 토하는 측근을 고범수는 착잡한 목소리로 달랬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인생이 맘대로 풀리기만 하는 건 아니니까.”

“맘 같아서는 확 아는 놈들 시켜서 칼침이라도 놔주고 싶다니까요.”

“아서라. 내가 방금 뭐라고 했냐. 질서 있는 퇴각을 할 때라니까.”

측근은 한숨을 팍 쉬었다.

“회장님의 도량은 따를 수가 없네요. 이 상황에서도 냉정하시네요.”

“큰일을 하려면 모름지기 범사에 냉정해야 하는 법이야. 만족함을 알고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하고. 이만하면 그래도 성공이야.”

“예, 일단 이 돈을 잘 빼돌려야죠.”

“그래, 믿을 만한 놈한테 맡겨서 빨리 현금화를 해야지. 우리는 그 전에 한국 떠야 된다. 방송에서 때렸으니 검찰도 미적거리지 않고 바로 출국금지 때릴 테니까.”

“회장님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필리핀에 아는 놈들이 있어. 돈만 주면 일처리는 확실한 편이야. 마닐라 가는 가장 빠른 티켓으로 끊어놔.”

“예, 회장님.”

“이승만이는 한강철교 끊고 도망가는 순간에도 서울은 안전하다고 라디오 방송을 했다. 우리도 이승만을 본받아야 돼.”

“투자자들은 안심시켜야 된다는 말씀이시죠?”

고범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질서가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임원들 중에 적합한 사람을 찾아보겠습니다. 돈 좀 두둑이 쥐여 주면 대신 매 맞아줄 사람이야 넘치니까요.”

“계획대로만 하면 우린 안전해. 차분하게 가자, 우리.”

“예, 회장님. 회장님만 믿습니다.”

차분하게 가자던 고범수의 주문은 채 3분을 가지 못했다.

“담배를 안 피웠더니 목이 텁텁하다. 디스 한 갑만 사와라.”

“예.”

고범수의 심부름을 하러 측근이 현관문을 열어젖힌 순간.

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수십 개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헉!

소리도 내지 못하고 측근은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현관문이 열리기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투자자들은 그 찰나의 동요를 놓치지 않았다.

“이 새끼들, 여기 숨어 있었구나.”

소매를 걷어붙인 투자자들이 물밀듯 그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송희근 역시 그 틈바구니에 껴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그 덕분에 로튼 프룻츠의 임직원들도 생생한 현장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구석에 웅크리고 화면에 집중하는 대찬을 향해, 맹윤주가 말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꼭 그거 같지 않아요?”

“그거라니.”

“빈 라덴 사살 작전 지켜보는 오바마랑 백악관 사람들이요. 대표님이 오바마 하세요.”

대찬은 맹윤주를 흘끔 올려다보고 말했다.

“그럼 맹윤주 씨가 힐러리네. 홍일점이니까.”

“어머, 그렇게 되나요.”

“고범수가 빈 라덴이면 지금 저 자리에서 사살당하는 건가?”

그 말에 박 이사가 반응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마음 같아서는 아주 피떡이 돼서 맞아 죽었으면 좋겠어.”

“그럼 너무 끔찍하잖아요.”

“저놈은 그런 꼴을 당해도 싸다고요.”

대찬은 잠깐 웃음을 비치고는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성난 투자자들 중에 가장 덩치가 좋은 이가 고범수를 지키려는 측근들을 대번에 밀쳐냈다.

그리고는 베란다에 몸을 바짝 붙인 고범수의 멱살을 콱 움켜쥐었다.

프로 방송인인 송희근은 좋은 구도에서 그 장면을 잡아냈다.

“너 잘 만났다. 그 요사스러운 혓바닥으로 우리 돈을 잘도 털어갔겠다?”

“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오해는 무슨 오해!”

얼굴 바로 앞에서 카랑카랑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고범수는 목을 움츠렸다.

“사, 사장님 진정하시고요. 일단 제 말을…….”

“듣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너는 일단 좀 맞자.”

투자자는 고범수의 뱃가죽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오장육부에 파열을 일으킬 만한 충격에 고범수의 눈알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헉! 소리만 냈다.

“벌써부터 아프면 곤란한데.”

투자자는 고범수의 뺨을 좌로 우로 한 번씩 내려치고 이제 사정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러자 같은 투자자가 그를 향해 외쳤다.

“겨, 경찰을 부르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러다 폭행죄로 잡혀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래!”

“지금 이놈 사지를 멀쩡하게 두면 나 화병 나서 죽어요. 그냥 지금 이 새끼 반송장으로 만들고 쇠고랑 찰래!”

“나도 그럽시다!”

“나도요!”

법과 제도를 깡그리 무시한 투자자들이 고범수에게로 왁 몰려갔다.

평생 모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릴 위기에 처한 투자자들이었다.

그 장본인인 고범수를 정말 죽일 기세로, 사무치는 분노를 한 번에 쏟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고범수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주먹에 정신을 못 차렸다.

팅, 이빨이 튕겨 나가 베란다 유리창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걸 보던 대찬은 불쑥 불안감이 들었다.

“저러다 진짜 죽으면 역풍 부는데.”

대찬은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정말 사람이 죽을 수도 있으니 신속하게 출동해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그 사실을 모르는 투자자들은 고범수를 빙 둘러싸고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부으며 린치를 가했다.

“이 새끼, 반지는 우라지게 비싼 걸로 꼈네? 이거 몇 케이냐?”

한 투자자는 고범수의 손가락 관절을 부술 듯 비틀며 손가락에 낀 반지를 빼앗았다.

“나는 혁대라도 챙겨야겠다.”

한 투자자는 고범수의 명품 허리띠를 취했다.

그러자 다른 투자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목걸이, 팔찌, 넥타이, 상하의 할 것 없이 모조리 약탈당했다.

“이 새끼 빤스도 브랜드 입었어!”

“아, 우리 정신건강을 위해 빤스는 그냥 둡시다.”

투자자들의 최후의 자비 덕택에 속옷만큼은 온전하게 보존되었다.

“이 새끼 눈알이라도 뽑아가야 내 속이 시원하겠네!”

“사, 살려주세요!”

정말 고범수의 눈알을 뽑아버리려는 찰나, 경찰이 출동했다.

“나이스 타이밍.”

출동한 경찰들을 보고 대찬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경찰은 순식간에 상황을 정돈했다.

그들은 고범수를 위시한 MFG 관계자와 투자자를 격리시켰다.

투자자들은 악을 썼다.

“누가 경찰 불렀어!”

“순경 양반들! 그냥 못 본 체 하고 가요. 우리 저 사람들한테 볼 일 많아!”

“선생님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성을 찾으셔야죠.”

“당신이 전 재산 날려봐! 이성 찾게 생겼나!”

작은 오피스텔은 난장판이 되었다.

송희근은 그걸 생생하게 불특정다수에게 전달했다.

덕분에 그의 실시간 시청자는 역대 최다인 5만 명을 돌파했다.

그 5만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주변에 오늘의 일을 전할 것이다.

그렇게 몇 다리만 건너면 이 사건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고범수는 이 땅에서 맘 놓고 발붙이고 살기는 그르게 되었다.

경찰은 더 험악한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황급히 고범수 일당을 연행해갔다.

다른 때였다면 고범수가 모가지를 뻣뻣하게 쳐들고 영장 있느냐며, 무슨 권리로 자기를 잡아가냐며 대거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형형한 눈빛을 뿜으며 정말 자기 목숨까지 거둬갈 태세였다.

고범수는 신변보호 차원에서라도 경찰에 연행해주기를 바랐다.

일당이 경찰들에게 끌려가고, 투자자들은 오피스텔에 있는 집기들을 투자액이 큰 순서로 하여 임의대로 나눠 가졌다.

그렇게 사태가 마무리되고 쏭과장TV의 오랜 생방송이 끝난 시점은 새벽 2시 반이었다.

로튼 프룻츠 임직원은 MFG그룹 붕괴 이후를 한참 고민했다.

MFG그룹의 붕괴가 로튼 프룻츠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꼼꼼히 따지고, 회사 차원에서 구사할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했다.

박 이사는 팔짱을 끼고 웃음을 흘렸다.

“손쉬운 상대한테 너무 힘을 쓴 건 아닐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맹윤주가 묻자 박 이사가 대답했다.

“그렇잖아. 저렇게 헐렁한 인간들이었으면 우리가 굳이 수고하지 않았어도 제풀에 무너졌을 걸.”

“에이, 그건 아니죠.”

일개 새파란 과장이 이사에게 에이, 야유를 할 정도로 로튼 프룻츠의 기업문화는 수평적이었다.

박 이사는 맹윤주에게 눈을 흘겼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다 우리 조대찬 대표님 덕분에 잘 풀린 거라고요. 아니었으면 여태 우리 애먹고 있었을 걸요?”

그러자 대찬은 맹윤주 쪽으로 몸을 틀면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음, 맹윤주 씨, 자세히 얘기해 봐요. 다들 주목하세요. 맹윤주 씨가 아주 통찰력 있는 얘기를 지금 하려고 하니까.”

“대표님이 그러시니까 갑자기 하기 싫어지는데요.”

“아, 빨리 해봐요.”

맹윤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MFG와의 좌담회를 공개적인 방송에서 열어서, 대중의 관심을 확 집중시켰어요. 대중의 관심이 없었다면 이렇게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될 수가 없다고요.”

“그렇지, 그렇지.”

“MFG에 대한 믿음이 깊은 투자자들도 우리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을 거고요.”

“그렇지.”

“지역사회, 언론하고 깊은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 MFG는 진흙탕 개싸움으로 이끌어서 자기를 지키려 했을 거예요.”

“그렇지.”

대찬은 전통 깊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듯, 미소를 띤 채로 맹윤주의 말을 경청했다.

맹윤주는 너무 대놓고 사탕발림을 즐기는 대찬을 보고 도중에 말을 관두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도 이왕 말문을 열었으니 할 말은 다 하기로 했다.

“MFG를 공격하는 주체가 언론이 아니라 우리 로튼 프룻츠니까, 괜한 오해를 사지 않는 거예요. 하마터면 우리도 사기꾼 집단으로 엮여서 투자자들 줄줄이 이탈했을 걸요.”

“그렇지, 그렇지. 역시 윤주 씨가 통찰력이 대단하다니까. 아시겠어요, 박 이사님?”

“…네.”

대찬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우리가 주력해야 할 건, MFG 쪽의 똥물이 이쪽으로 넘치지 않도록 막는 거예요. 트집 잡기 좋아하는 사람한테 트집 잡히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주세요.”

박 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MFG를 공격하고 나서는 건 어떻습니까?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발언권은 한정적이에요. MFG를 공격하는 만큼 우리를 소개할 여력은 줄어들어요. 우리를 내세우지 않고 남을 때리는 데만 집중하면 MFG와 다를 게 없잖아요.”

“아아, 그럼 이럴 때일수록 MFG의 존재를 의식하되, 그 의식을 철저히 감추고 드러내지 말아야겠군요.”

대찬은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겁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로튼 프룻츠는 대찬의 지침에 따라 MFG그룹 문제에서 한 발 빠졌다.

불은 지펴 놨다.

이제는 굳이 로튼 프룻츠에서 나서지 않아도 일은 자연히 해결될 것이었다.

여론의 마사지를 받은 검찰은 재빨리 움직였다.

고범수 일당의 재산은 일거에 동결되었다.

구속영장도 바로 발부되었다.

투자자들은 즉시 단체를 꾸려 투자금을 돌려받기 위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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