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할 수 있어-381화 (381/556)

난 할 수 있어 381화

지금 네놈 새끼가 의기가 양양하지만 언제까지 그러나 보자.

오늘이 네 모가지 따이는 날이니까 실컷 웃어둬라.

돼지머리도 웃는 상이 비싸다더라.

“자, 시간이 됐으니 이만 스튜디오로 이동하실까요.”

“네, 가시죠.”

대찬도 다소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은오영 교수를 호기롭게 달래긴 했지만 정작 자신도 누군가 달래주기를 바랐다.

대공포처럼 자신을 겨눈 카메라가 적응이 안 되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장육부가 쩡할 정도로 차가운 냉수를 들이켜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은오영 교수의 손을 한번 잡았다 놨다.

“우리 쪽 전문가는 은 교수님 한 분이에요, 아시죠? 은 교수님 무너지면 우리 회사도 와르르 맨션, 오케이?”

“…오케이.”

MFG 쪽도 슛 들어가기 전에 분주한 모양새였다.

“자, 이제 들어갑니다. 오, 사, 삼, 둘, 하나, 큐.”

PD의 사인이 들어오자 아나운서가 능숙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손호엽입니다. 예고대로 오늘 이 시간에는 정규편성 프로그램 대신 특별 좌담회를 보내드립니다.”

그는 한 박자 쉬고 다시 말했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각계각층 사람들이 새로운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 미래먹거리 중 하나로 각광받는 산업이 있습니다. 배양육, 바로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고기인데요.”

아나운서는 대찬 쪽을 흘끗 보고 말했다.

“아, 오늘 참석해주신 분께서는 배양육 대신 다른 단어를 사용해달라고 해주셨는데, 뭐였죠?”

아나운서는 자연스레 대찬 쪽으로 화면을 주었다.

대찬은 짧게 대답했다.

“비도축육입니다.”

“네, 비도축육. 이 배양육, 비도축육을 최근 국내 기업 두 곳에서 적극적으로 개발에 뛰어들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경쟁이 과열되면서 두 회사 간에 진위공방도 있었죠.”

그 얘기가 나오자 대찬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기가 자청해서 마련한 자리이긴 하지만 면구스럽기는 여전했다.

“그래서 오늘 미래먹거리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당사자로부터 직접 청해 듣고, 두 회사 간의 첨예한 진위공방도 벌여볼까 합니다. 모쪼록 발전적인 토론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로튼 프룻츠와 MFG그룹에서 나와 주셨습니다.”

아나운서는 양측을 아울러 바라보며 말했다.

“로튼 프룻츠 측에서는 대표이신 조대찬 사장님과 연구를 총괄하시는 중림대 은오영 교수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MFG그룹 측에서는 인원이 퍽 많습니다. 고범수 MFG그룹 회장님을 포함하여 MFG연구소와 카이스트의 연구원 분들이 배석해주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인사를 마친 아나운서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좌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그 배양육, 비도축육에 대해서 말씀을 나눠볼까요?”

대찬은 아나운서의 진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양육이 뭔지 알 만한 사람들은 이제 다 안다.

다 아는 얘기를 줄줄 욀 거면 이런 자리를 만들지도 않았다.

다큐멘터리 같은 얘기를 늘어놓는 것을 알면 시청자들은 하나둘씩 채널을 이탈할 것이다.

쇠는 가장 뜨거울 때 두드려야 한다.

이 귀한 시간을 배양육에 대한 장광설로 허비할 수 없다.

이때 MFG의 뺨을 후려쳐야 한다.

대찬은 월권인 것을 알면서도 아나운서의 진행에 개입했다.

“비도축육에 대한 얘기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자격에 대한 얘기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격이요?”

아나운서는 예정되지 않은 개입에 다소 당황했다.

그러나 프로답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대찬은 눈을 빛내며 아나운서가 아니라 카메라를 응시했다.

“네, 비도축육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대중에게 관련 내용을 설파하는 건 사기나 다름없는 것 아닙니까?”

“예? 아, 그렇기야 합니다만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기에는 두 회사 모두 배양육을 주력 사업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까?”

“저희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MFG그룹은 사업의 실체가 없는 회사입니다.”

기습공격을 받은 고범수는 펄쩍 뛰었다.

“이, 이봐요!”

“MFG는 비도축육에 대해 일언반구 말할 자격이 없는 회사임을 이 자리를 빌려 분명히 밝힙니다.”

대찬은 쐐기를 박듯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일순 장내가 술렁였다.

장외에 있는 PD를 비롯한 제작진 전원도 경악했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돌발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장내에서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진행자인 아나운서 손호엽이었다.

그는 당황한 듯 안경을 한 차례 추켜올리며 대찬에게 말했다.

“자, 자유로운 진행은 저도 바라마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최소한의 정해진 틀은 준수해주시기 바랍니다.”

“미리 정해진 틀을 준수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컷 저 비전문가 집단에게 비도축육에 대한 내용을 설파할 시간을 허락한 후에, 제가 준비한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도리어 시청자 분들과 여기 계신 JNN 관계자 여러분께 더 민폐가 될 것 같아서 말이죠.”

“그, 그게 무슨…….”

“죄송합니다만, 제게 3분, 아니 1분만 자유발언의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제가 이렇듯 돌발행동을 하는 이유를 모두 납득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당황한 손호엽 아나운서는 PD를 바라봤다.

대찬의 말대로 해도 좋겠냐는 눈빛이었다.

PD는 잠깐 고심하다가 이를 악물고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막무가내인 녀석을 제지하면 오히려 더 엉뚱한 곳으로 방송이 튈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시청률은 오른다.’

방송국의 성적은 다른 것 다 필요 없다.

시청률과 화제성, 두 가지로 결정된다.

대찬의 행동이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저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에는 아주 확실한 액션이었다.

시시콜콜한 교양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는 링 위에서 룰 없이 치고 박는 화끈한 난타전이 좋았다.

주말 저녁에 치킨 한 마리 시켜놓고 맥주 한 잔 걸치는 이들에게 괜찮은 눈요기가 되어줄 것이다.

때문에 PD는 일단 대찬의 돌발행동을 용인하기로 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그런 관점에서 고범수 역시 쓸 만한 카운터파트였다.

그는 아주 인간적인 리액션으로 긴장을 더 고조시켰다.

“그런 근거 없는 모략으로 남의 사업 망칠 심산으로 이 자리 만들었어요? 아주 작정을 했구만, 작정을 했어.”

“근거가 있으니까 작정하고 자리까지 만든 거 아니겠습니까.”

둘 사이에 불이 붙자 손호엽 아나운서는 좋은 말로 어르려고 했다.

그러자 PD가 손짓을 했다.

가만 놔두라는 뜻.

손호엽 아나운서도 PD의 속뜻을 알고 그들을 방관했다.

그들의 암묵적인 동조를 얻은 대찬은 맘 놓고 고범수, MFG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비도축육 연구에 대해서 말해볼까요.”

“…….”

“MFG그룹은 지금 공공연히 우리 로튼 프룻츠보다 훨씬 앞선 기술력을 보유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기술이 확보됐는지 말씀해주시죠.”

고범수는 쉬운 대답을 선택했다.

“그건 영업비밀입니다.”

“영업비밀이라. 그래도 최소한 대중에게 당당히 공개할 수 있는 세일즈 포인트는 있어야죠.”

“…….”

“그럼 지금껏 투자자들께는 보유한 기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씀이 없으셨던 겁니까?”

대찬의 질문에 MFG그룹 연구소 소속의 연구원이 대신 대답했다.

그 역시 고범수만큼은 아니지만, 자기네 회사를 맘껏 헤집어놓는 대찬의 행태가 못내 마음에 들지 않던 차였다.

목소리에는 적잖이 가시가 돋쳐있었다.

“최신 연구 상황만 공개하지 못할 뿐, 우리 회사의 핵심 기술에 대한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럼 박사님이 좀 일러주시죠.”

“좀 성의가 없으시네요.”

“성의가 없다뇨.”

“홈페이지만 뒤져봐도 뻔히 나오는데, 그것도 안 찾아보셨다는 거 아닙니까?”

“아, 그게.”

연구원은 대찬의 말을 싹둑 자르고 제 할 말을 했다.

“아니면, 이미 찾아보셨는데도 우리 해코지하시려고 못 본 척 하시는 건지.”

연구원의 응수가 고범수는 마음에 쏙 들었다.

일단 싹둑싹둑 말 잘라먹는 것은 대찬의 장기였는데, 자기 장기에 자기가 당하니까 그것만으로도 깨소금 맛이었다.

고범수는 말문이 막힌 대찬을 구경하려고 그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비원과는 달리 대찬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여전했다.

“홈페이지는 물론 다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그것뿐이라면 좀 실망인데요.”

“…뭐라고요?”

“말씀하신 홈페이지에는 특허에 대한 부분만 나와 있거든요?”

“특허야말로 기술력의 가장 객관적이고 확실한 보증 아닙니까?”

“물론 그렇죠. 근데 그 특허가 가장 객관적이고 확실하게 보증하고 있는 기술이, 배양육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버섯떡갈비를 만드는 기술이라는 게 문제겠죠.”

그러자 지금껏 잠자코 있던 손호엽 아나운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버섯떡갈비요?”

“예, 버섯떡갈비.”

그러자 MFG 연구원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버, 버섯떡갈비라니.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모욕적인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거 명예훼손에 허위사실유폽니다.”

‘목소리 커지는 거 보니까 제대로 짚었구만.’

대찬은 속으로 웃었다.

손호엽 아나운서도 묘한 웃음기를 띠고 대찬에게 말했다.

“MFG그룹의 특허가 버섯떡갈비라고 하셨는데, 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연되는 설명이 있어야겠습니다.”

대찬은 은오영 교수 쪽을 바라봤다.

“이 부분은 제 옆에 계신 은오영 교수님께서 더 잘 설명해주실 것 같네요.”

“은 교수님.”

손호엽 아나운서도 은오영 교수 쪽으로 손짓을 했다.

좌중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갑자기 바톤이 넘어오자 은오영 교수는 당황했다.

여태껏 지켜오던 평정이 흔들렸다.

그의 불안한 눈동자를 보고 대찬도 입안이 바짝 말랐다.

토론은 논리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기세싸움이다.

토론에는 심판이 없다.

승부가 스포츠 경기처럼 몇 대 몇, 깨끗하게 갈리지 않는다.

보는 저마다의 사람마다 승자와 패자를 임의로 정한다.

그들의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어쩌면 논리보다는 기세일지도 몰랐다.

흔히 말싸움의 승패는 기세로 결정되기 마련이니까.

그런 까닭에 은오영 교수의 막힘없는 논변이 절실했다.

여기서 쭈뼛거리거나 말을 더듬거나 허점을 보였다가는, 다소간의 무례를 무릅쓰고 가져온 기세를 저쪽에 뺏기고 만다.

대찬은 은오영 교수가 침을 꼴딱 삼키는 그 찰나의 순간이 억겁처럼 느껴졌다.

그가 계속 침묵하자 손호엽 아나운서가 다시 은오영 교수를 불렀다.

“은 교수님?”

“아…….”

대찬은 은오영 교수를 흘끗 바라보고는 손을 탁자 밑으로 보냈다.

그리고 천천히 은오영 교수의 손을 꽉 붙들었다.

‘이거 카메라가 잘못 찍으면 윤이영 놔두고 못생긴 아저씨랑 바람피운다고 소문나는 거 아닌지 몰라.’

대찬은 그 어마어마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은오영 교수의 손을 붙들었다.

그래도 그런 보람이 있었는지, 은오영 교수는 어깨를 움찔하며 정신이 들었다.

대찬은 비로소 손을 놓으며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은오영 교수는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MFG그룹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특허기술의 실체는 세포배양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버섯에서 단백질을 분리하여 그 단백질을 우지, 그러니까 소기름하고 콩가루 등과 배합하는 기술에 관한 특허였습니다. 이게 배양육 기술이라고 하시진 않겠죠.”

은오영 교수는 기본적으로 화술에 능하지 않았다.

대찬이 은오영 교수를 앉혀놓은 건, 어디까지나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빌리기 위함이었다.

간추려 말하는 데는 아무래도 대찬 자신이 능했다.

그러니 은오영 교수에게는 저 연구원들을 찍어 누를 정도의 대사만 허락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몫으로 삼았다.

“홈페이지에 핵심기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놓으셨다고 하셨죠. 버섯떡갈비 제조법이 MFG의 핵심기술입니까? MFG의 M이 머쉬룸의 M이었습니까?”

“Mushroom Fuck Galbi…….”

은오영 교수가 대찬을 도와준답시고 소심한 목소리로 헛소리를 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대찬은 화들짝 놀랐다.

그는 은오영 교수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가볍게 질책했다.

“그 떡이 아니잖아요.”

“…….”

대찬은 귀가 살짝 붉어진 채로 얼른 다시 MFG에 대한 공세로 전환했다.

“MFG가 배양육 기술을 갖춘 기업이라는 걸 광고하시려거든, 다른 특허를 시청자 여러분께 공개하셔야 할 겁니다. 보유한 다른 특허가 있습니까?”

“…영업비밀입니다.”

“없다는 뜻이군요.”

“자꾸 유언비어 퍼트리지 마세요.”

그렇게 경고하는 연구원의 목소리가 전처럼 기세가 좋지 못했다.

손호엽 아나운서가 MFG 측을 바라보며 말했다.

“로튼 프룻츠 측의 주장에 대해서 더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사실 조대찬 대표께서 저희가 정해놓은 순서를 준수하지 않으셔서 조금 난감은 했습니다만.”

손호엽 아나운서는 대찬을 흘끗 보다가 다시 MFG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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